에베소서 강해설교 1 신실한 사람들(엡 1:1-2) 요즘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범죄가 많고 요령꾼이 많아도 정말 신실한 사람은 어디를 가나 환영을 받는다. 사도 바울은 지금 옥중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 그런데 그는 복음은 전하다 가 비록 옥에 갇힌 몸이 되었지만, 그의 영혼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하늘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넓은 벌판과 큰 고속 도로를 달리면서도 마음에 눌리고 갑 갑한 삶을 산다. 에어콘 시설은 물론이고 현대식의 가장 편리한 건물에서 일하면서도, 항상 마음에 불안과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 보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에 얼마나 억압당하고 자유가 없었는가? 그러다가 출애굽하여 넓은 광야로 나왔으니 이제는 정말 자유를 누려야 하는데, 그들은 어쩐 일인지 참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의 몸은 마음대로 가고 싶은 대 로 갈 수 있지만, 그 마음 속에 원망과 죄와 갈등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부자유의 쇠사슬에 매어 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오막살이에서 불편하게 살면서도 웃음과 노래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커다란 주택에 살면서도 짜증과 투정과 두려움 가운데 산다. 참 자유는 예수 그 리스도 안에 있다! 비록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지만, 예수 안에서 참 자유 를 누리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신실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이 편지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 쓴 편지 중의 하나로서 흔히 \"옥중 서신\"이라고 부른다. 옥에 갇혀 있지만, 자기의 수고로 세워진 에베소 교회를 사랑하고 기도 하던 바울은 영적인 깊은 진리와 교훈을 담은 편지를 써 보낸다. 그리고 \"서신 중의 여왕\"이 라고 불리는 이 편지는 두기고라는 사람을 통해서 에베소에 전달하였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골로새서도 함께 전달한 사람이다. 그리고 에베소서의 중심 사상 은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고 통일된다는 것과 교회와 교회에 주어진 과업이 얼마 나 귀중한 것인지를 잘 설명해 준다. 바울, 그는 누구인가? 바울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말한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1:1). 자기가 누군지 그 신분과 정체를 분명히 아는 사람은 결코 불안하지 않다. 자신이 누구인지 도 모르면서, 으스대거나 실제가 아닌 모습으로 행하다 보면 꼭 어려움을 당한다. 십대 청소 년들이 자신에 대하여 바로 알지 못하여, 영웅심에 우쭐대면서 범죄하는 것을 보았고, 과대망 상증에 걸린 사람이 사회에 폐를 끼치는 악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특히 이민자인 우리들의 경우에 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혼돈하는 경우가 있어서 더욱 이 신분 확인의 문제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소위 자신에 대한 정체감(Identity)을 바로 아는 것이 삶에 활력과 의미를 크게 부여한다. 실제로는 아무 실력도 없으면서, 마치 유능한 사람인 것처럼 행세하거나, 아무 것 도 가진 것이 없으면서도, 마치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처럼 행세하다가는 결국 들통이 나고 망신을 당한다. 지금 사도 바울은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고 밝힌다. 이것은 대단히 놀라운 신분 확신이다. 사도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는 \"특별한 사명을 띄고 파 송받은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가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말한다. 즉 예수 그리 스도의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 른 것이라고 확실하게 말하고 있다. 이 사도는 마치 오늘 날의 국가 대사와 같다. 한 나라의 대사는 세계 어느 곳에 가든지 자기 나라를 대표하며 그를 파송한 국가의 최고 책임자를 대신하는 사람이다. 한 마디의 말도 실 수할 수 없고, 한 마디라도 국가 시책과 어긋나는 말이나 행동을 할 수 없다. 만일 그렇게 하 면 즉각 본국으로 소환될 것이다. 그는 자나 깨나 본국의 유익을 위해서 다른 나라에서 수고 하고, 또 본국의 파송자의 의견을 자주 물어 확인하면서 사명을 감당한다.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바로 이런 대사들이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 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20). 이것은 소수의 목사나 선교사와 전도자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신분 증명이요 확인의 말씀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사라면 파송자가 예수님이고, 맡겨진 일은 모든 사람 이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하는 전도의 일을 맡았다. 대사로 파송된 사람은 휴가를 떠난 사람 이 아니고, 여행하러 나선 사람이 아니다. 중요하고 분명한 사명을 띄고 보내어진 사명자라는 것을 기억하라. 대사를 자기가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하는가? 나라의 대사는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것이 보통이다. 사회에서 유능하고 영향력이 있으며 또 국가를 대표하여 해외에서 중요한 일을 잘 해 낼 수 있는 사람을 나라의 최고 책임자가 뽑아서, 파송하는 것이다. 아무나 스스로 하고 싶다고 하여 제멋대로 달려 나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교회 직분도 마찬가지이다. 신앙의 기초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과 생활을 통한 믿음의 증거도 없는 사람이 교회에서 눈에 띄게 활동한다고 해서 집사 직분 을 갖거나, 또는 헌금을 남보다 많이 하거나 봉사를 많이 한다고 하여 장로의 직분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 무엇보다도 신앙적인 면에서 확실한 증거와 믿음의 열매가 뚜렷한 사람이 교회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 근간에 이르러 교회 직분을 헌금으로 사고 파는 듯한 인상을 주 는 일들이 비일비재로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교회의 새로운 개혁이 있어야 할 것을 깊이 깨 닫는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직분은 언제 어떻게 받았는가?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인 줄 알고 두렵 고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 들이고, 또 그 부르심과 직분에 합당하게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으 로 살고 섬기는가? 그 직분이 누구에게 주는 것이며 무슨 일을 감당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일종의 상급이나 계급처럼 받고 자랑하는가? 왜 장관에 임명하는가? 나라에서 맡기는 중요한 일을 하라는 것이다. 만약 그 일을 제대로 못하면 임명된지 한 두 달 만에도 장관직을 물러 나야 하는 사람도 보았다. 더욱이 교회 직분의 자리는 계급장을 단 것처럼 멋부리고 으스대 는 자리가 아니라, 섬기고 봉사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높이는 좋은 열매가 전혀 없는 이는 속히 물러나야 하는 자리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사도된 바울은 예수 안에서 에베소에 있는 신실한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 내고 있다.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 니\"(1:1). 에베소라는 도시는 문화와 예술이 크게 발달되었을 뿐 아니라, 아데미 신전같이 웅장한 우상 신전이 위용을 떨치는 도시이다. 그래서 지식인이 많고, 부유한 사람들이 많으며, 거리에는 마술사와 점쟁이가 즐비한 그런 도시이다. 그런 곳에 교회가 서 있으니, 영적인 싸움이 치열 할 것은 불을 보듯이 뻔하다. 원래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제 3 차 선교 여행 중에 들러 서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성경을 가르친 것을 포함하여, 3년간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여, 귀신을 쫓아 내고, 마술사들이 마술책을 불에 태워 버리면서 회개하고 돌아와 시작된 교회이 다. 그러므로 교회 주변은 대단히 음란하고 귀신이 들끓는 아주 악한 환경이었다. 그 가운데 에베소 교회가 서 있는데, 거기 신실한 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누가 성도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주를 위하여 살도록 구별된 사람 이 성도이다. 이들은 영적으로는 분명히 주 안에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죄와 악이 많은 이 세 상의 도시 속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소음과 먼지와 범죄가 그치지 않는 곳에 어울려 살 지만, 삶의 방식이 구별된 자들이다. 언어가 구별되고, 돈버는 방식과 돈쓰는 방식이 세상 방 법과 다르며, 또한 삶의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는 사람들이다. 교회에 속한 성도라고 하 면서도 일요일만 되면 도박장으로 달려 가고, 술 담배를 이기지 못하고, 욕설과 저주를 자주 하고, 부끄러운 일들을 계속 한다면 성도로서 마땅치 않다. 여기서 진정한 의미의 성도가 누구인지에 관한 두 가지의 중요한 조건을 생각해 보자. 첫째는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죄와 우상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을 말한다. 물과 성 령으로 난 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이것은 교회당 안에 있 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교회 활동에 참여한다는 말도 아니다. 주 예수를 진정으로 믿고 마 음에 구주로 영접하고 산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 예수를 진정으로 믿는 사람을 \"주 안에 있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 다. 찬송가에서도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있으랴...한 것을 보라. 그를 믿음으로 예수님 을 마음에 구주로 영접할 때에 우리 안에 주님이 오시지만, 동시에 우리가 주 안에 있게 된 다. 둘째는 주 안에 있는 자가 지역 교회에 속해 있어야 한다. 물론 성경이 의미하는 진정한 의미의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고 주를 믿는 사람들의 공 동체이다. 이 세상에 있는 지역 교회는 결코 완전하지 못하다. 아무리 훌륭한 목사가 훌륭한 목회를 한다고 해도, 어느 부분은 부족하고 허술하며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이 땅에 두신 교회는 지옥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힘이 있지만,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연약한 부분들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 해서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신다. 그러므로 교회에 위선자가 많아서 못 다니겠다거나, 헌금을 너무 자주 말해서 기분이 좋지 않다든지, 또는 교회들이 경쟁하고 교인들이 온전치 못하기 때문에, 예배당에 다니지 않는다 는 하는 사람은, 실은 그 이유보다는 교만한 마음을 가진 것이며, 또한 세상에 있는 것들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은 복음적인 교회 에 반드시 참여하여, 다른 성도들과 함께 예배하고 성경을 배우고, 사귐을 갖고, 자신의 신앙 성숙을 위하여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바른 성도로 살자. 아무리 범죄의 파도가 심판 도심 한 복판에 산다고 해도, 함께 썩지 않고 오히려 썩는 것을 막는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모두 자기 주장에 혈안되어 있지만, 무슨 일 을 하든지 그리스도를 높이며, 다 자기 유익을 위해서만 경쟁하고 다투지만,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 주는 성도로 살자. 특히 정신빠진 이단 집단이 많이 나타나서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시대에, 순전하고도 분명한 성경 중심의 바른 신앙으로 기도와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보이자.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 보아야 할 것은, 그 복잡하고 소란한 에베소 지방에도 이런 신실한 주 의 백성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주변 환경은 형편없이 악한데, 거기에 뒤섞이거나 휩쓸리지 않 고 순전한 신앙을 잘 지키고 있는 것이다. 요즘에는 범죄한 후에도 엉뚱한 이유를 대고 무죄 를 선언받는 경우가 많다. 무고한 사람을 총살한 후에도, 그것은 그 사람이 잘못이 아니라 그 를 그렇게 성장하게 한 사회에 잘못이 있다거나, 부모를 살해한 어느 소년은 가정의 불화가 그를 비행 소년으로 만들었다고 하면서, 처벌을 면하는 것도 본다. 모두 그 자신이 죄인이 아 니라, 이 사회와 부모와 환경이 유죄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 교인은 상당히 많지만 진 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소수에 속하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일과 생활에서 약속을 잘 지키고, 그 말이 보증수표와 같고, 정직하며 충성스런 사람은 그렇게 흔치 않다. 신실한 사람을 만나면 참으로 기분이 상쾌하고 시원하다.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고 솔직하며, 꾸미거나 위선을 떨지 않지만 참으로 예절이 바르고, 또한 무슨 일을 부탁하든지 소리없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때에, 하나님도 참으로 기뻐하실 것이다. 믿음있고 기도를 많이 한다고 소문난 사람들 중에서 종종 느끼는 불편은 너무 자기 신앙을 드러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자기 식으로 목회하고 기도해야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 이 있다. 또 자기 식의 신앙 생활이 최선의 방법인 것처럼 주장하여 남에게 은근히 압력을 가하거나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비판의 화살을 쏘는 것도 본다. 예를 들어서 은사에 관해서도 그렇다. 교회라는 신앙 공동체에는 교육에 은사와 열정이 남다 른 사람이 있고, 한편 전도나 선교에 특별한 열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것은 모두 좋 은 일이며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가진 은사만 가장 중요시하여, 남의 은사를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봉사하기를 즐거워하면서 섬기는 것은 좋으나, 자기처 럼 일하지 않는 사람을 비난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잘못이다. 교회에는 다양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것인데, 어느 특정한 은사만 너무 강조하 면, 성도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불편한 관계가 형성되기 쉽다. 무슨 은사든지 그것은 교회 에 유익이 되고, 주님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은사도 존종할 줄 알 아야 한다. 전혀 훈련되지 않은 어중이 떠중이가 모였을 때에 흔히 오합지졸(烏合之卒)이라는 말을 쓴다. 그런 사람들도 다 귀한 생명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들이 치열한 전쟁터에서는 종종 거침돌이 되거나, 전쟁 포로가 되어 아군에게 불리한 여건을 주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도 아 무런 책임감이나 의무감도 갖지 않고, 그저 뜨내기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리 많이 모여도 영적인 싸움에는 소용이 없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무책임하거나 거만하여 신실치 못하다는 오명을 쓰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 다\"(1:2). 이제 이런 신실한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신비 한 은혜와 놀라운 평강이 늘 있기를 기도한다. 은혜와 평강이라는 두 단어는 당시 서신에 흔 히 사용되는 표현이지만, 바울은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거의 모든 서신에 이 말을 쓰 고 있다. 그리고 거의 예외가 없이 언제나 은혜를 먼저 말하고 그 후에 평강을 말한다. 이것 이 바른 순서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는 곳에 어떻게 하늘의 평안이 주어지겠는 가? 집문 앞만 나거면 사방에 우상이 들끓고, 학교와 직장에도 우상 숭배자들이 대부분인 에 베소에서, 신실한 주 예수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결코 용이하지 않다. 근간에 제인 라스키라는 컬럼니스트가 세계 여러 나라 여행자들과 특히 사업가들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토막 이야기들을 기록하였다. 그 가운데 한국에 관한 글은 이러했다. \"이 나라는 형식이 아주 중요하다. 사업상도 마찬가지이다. 연줄이 전혀 없이 한국 기업과 연결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한국인들은 중요한 일을 할 때에 정장을 한다. 아무리 자신감이 넘쳐도 평상 복으로 한국 기업인을 접촉하면 무시당한다. 그리고 한국인의 기업 협상에는 반드시 유흥이 따른다. 주로 술을 마시는데, 거절하면 사업에 지장을 준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약을 복용하기 때문에 술을 안 마신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면, 오히려 동정해 준다. 그리고 한국 인들과의 대화에서는 가능한 한 농담을 하지 말라. 사업과 무관한 자유로운 시간에는 농담이 통해도, 중요한 협상 테이블에서는 안 통한다. 또 한 가지는 무슨 선물을 받았을 때에 그 자 리에서 펴지 말라. 그냥 감사하다고 말만 하라. 그것을 그 자리에서 열면 선물준 사람을 크게 당황하게 만든다.\" 상당히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의 글이다. 그 내용이 맞기는 한데, 어쩐지 기분이 개운하 지 않은 느낌이다. 특히 우리 생활과 신앙에는 너무 외모를 중시하여, 실속없는 허풍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사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이 이 현실 사회에서 조금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거래에서 불편한 타협을 하지 않으면 거래가 성사되 지 않고, 거의 공식화된 뇌물을 거절하다가는 기업이 곤경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공무원 사 회에 뇌물은 너무 일상화되어 있으며, 부정직한 공사로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자주 잃는다. 그런데 모 기업이 세무 공무원에게 한 푼도 뇌물이나 선물을 주지 않아서 특별 세무 감사를 받은 적이 있다. 며칠 간 이를 잡듯이 샅샅이 재정 장부를 뒤졌는데, 아무 것도 잡아 내지 못 하자 한 감사관이 한숨을 쉬면서 \"이런 기업은 보다가도 처음 봤다\"고 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고 한다. 이 시대에 성실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경제적인 도움이나 선물이 아니라, 하늘 로부터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환경이 악해져도 빼앗기지 않는 주의 평안이다. 그래서 아 무리 힘들어도 주의 은혜를 생각하면 풍랑 중에서도 마음의 평강을 누릴 수 있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