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제4강


에베소서 강해설교 4


보증서를 확인하라!(엡 1:13-14)

대학 졸업장이나 학위증에는 반드시 철인이 찍혀 있다.
이 철인은 쇠로 만든 도장과 같아서, 종이에 꾹 눌러 찍으므로 지워지지 않는다.

서양에서는 싸인을 사용하지만, 한국에는 인감 도장이 유명하다.
부동산 거래, 신분 증명, 은행 융자 등에는 반드시 쓰이는 도장이다.
중요한 문서에는 언제나 인감 도장을 쓰고, 막도장으로는 효과가 없다.

초등 학교 시절에 학교에서 성적표를 가져 오면
반드시 부모의 확인 도장을 받아야 하는데,
그때 성적이 나빠서 부모 몰래 서랍을 뒤져서 도장을 찍어 오는 애들이 있었다.
누가 찍었든지 그래도 그 도장은 효과가 있었다.

일본 천황이 미주리 항공 모함에서 유엔군 사령관에게 항복 문서에 서명하므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세계 대전이 그쳤고,
대통령의 서명이 국가 시책에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이와 같이 그것을 누가 서명하는가에 따라서
큰 기업과 단체의 운명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의 도장이 찍혔다면 아무도 바꿀 수 없는 보장이 되지 않겠는가?

인을 치는 것은 소유권을 증명하는 것이요,
문서의 정확성과 권위를 부여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임금의 도장을 어인이라고 하여,
아무도 거역하거나 무시하지 못하게 했다.

본인은 청년 시절에 아주 분명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종종 믿음의 형제들이 나에게 구원받은 확신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주님을 영접할 때의 그 분명한 결단을 기억하고 있으며,
또 그 후에 마음에 밀려 들어오는 평안과 쉼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을 확신할 수 있다고 대답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만일 상황이 어려워져서 마음의 평안을 잃고,
피곤하고 지쳐서 마음에 쉼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 확신을 어떻게 유지하겠는가?
병이 치료된 것이 구원의 증거로 여기는 이들은
병이 재발하거나 다른 병이 걸리면 구원을 의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구원받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무슨 영수증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내어 보이고 싶은 심정을 가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도장찍은 것 한 장이면 쉽게 해결될 텐데, 그것이 없어서 고생한 적이 있는가?
미국 비자나 영주권을 받을 때에 고생한 이들이 많다.
그것은 여권에 조금 특별한 도장을 하나 더 찍는 것인데,
그것이 있으면 여행이 얼마나 자유로운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무엇으로 천국을 확신하며, 구원의 확신을 누리고 살 수 있는가?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인침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없거나,
죽은 후에 과연 천국에 갈 수 있는지 의심쩍은 사람은
이 하나님의 말씀에 더 가까이 귀를 기울이라.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대로 순종해 보라.
반드시 믿음의 확신을 누리며, 구원의 기쁨을 얻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할 것 두 가지와 하나님이 하시는 한 가지가 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1:13).

첫째는, 진리의 말씀 곧 나를 구원하시는 복음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의 믿음이 들음에서 나고,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는 사도 요한이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귀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즉 귀는 있는데 반드시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는가?
진리의 말씀 즉 우리를 구원하시는 복음을 들어야 한다.
자기 사상과 자기 경험과 자랑을 나열하는 것을 들으면 주눅들기 쉽고,
실패의 이야기만 많이 들으면, 덩달아 실패자같은 느낌에 빠진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말을 자주 들으면, 인생을 정말 허무하게 살기 쉽고,
짧은 인생을 즐기며 살자는 말을 자주 들으면, 인생을 쾌락에 낭비하기 쉽다.

사람은 들은 대로 산다.
월남 전쟁 때에 자고 깨면 포성과 슬픈 울음과 전쟁의 소리를 들으며 큰 아이들은,
생각이 비극적으로 되고,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해도
늘 슬픔과 아픔이 가득했다고 한다.

심한 사투리를 들으면서 자라면 자연히 사투리를 쓰게 되고,
음악을 많이 듣고 크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음악을 좋아할 가능성이 아주 많다.
매맞고 욕을 들으며 천대받고 자란 아이들이 거칠고 험한 인생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사는 사람은 결국 그 진리 가운데 살게 되지 않겠는가?

모세는 아주 어릴 적에 어머니 요게벳으로부터 하나님에 관해서 듣고 큰 것이 분명하다.
그는 장성하여 자기 백성을 알아 보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도자가 되었다.
사무엘도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자라서,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관심이 없거나 흥미없는 것은 건성으로 듣는다.
즉 듣기는 듣지만 귓전을 스쳐 지나가고, 전혀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한다.
또한 잘못된 것에 귀를 기울이면 범죄하고, 길을 잃게 된다.
사이비 기독교와 이단의 주장을 듣다가는 인생을 망친다.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 가까이 하면서 살라.

어떻게 해야 진리의 말씀을 더 잘 들을 수 있는가?

눈과 귀를 활짝 열어라! 눈감고 듣는 것보다 크게 뜨고 듣는 것이 더 잘 들린다.
귀를 그 쪽으로 향하여 더 잘 들린다.
그리고 마음을 열고 들으라!
생각이 딴 곳에 가 있으면, 아무리 오래 많이 들어도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들으면 훨씬 더 잘 들린다.

어떤 사람은 마음에 걱정과 욕심의 소리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해서 주의 음성을 못 듣는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마귀의 말을 듣다가 그렇게 무서운 죄를 범했다.
사사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보다 다 자기 소리만 하여 혼란에 살았다.
선지자 요나는 실제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귀를 막고 딴 길로 갔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그것을 싫어하여 계속해서 반항하고 불순종하다가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즉각 순종하여 믿음의 삶을 살았고,
갈릴리의 어부들은 주의 음성을 듣자 마자 그물과 배를 버리고 그를 따라 나섰다.
어떤 병자는 일어나라는 주의 음성을 듣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새 인생을 시작했고,
죽은 나사로가 예수의 음성을 듣고 무덤에서 걸어 나왔다.

유명한 성 어거스틴은 방탕아였는데, 32세 되던 해에, 정원을 거닐다가
\"성경을 펴 보라\"는 큰 소리를 듣고 무심코 편 성경 구절이 롬 13:11-14절이었다.
방탕과 음란을 버리고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그는 완전히 변했다.

법률 공부를 하면서도 늘 자신의 영적 상태 때문에 고민하던 마틴 루터는
교수이며 수도원 생활에서도 갈등이 쉬지 않았는데, 롬 1:17절을 통해서 주의 음성을 들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는 눈과 귀가 번쩍 뜨였고,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종교 개혁을 시행했다.

장로교 교리를 체계화한 죤 칼빈은 원래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24세 되던 해에 로마 교회의 수렁에서 나오는 회개를 통해서 위대한 개혁자가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에 사로잡힌 채 26세에 위대한 \"기독교 강요\"를 집필하였다.
그가 죽기 전 \"나라를 지키려면 먼저 하나님의 교회를 지키라\"는 말은 유명하다.

위대한 선교사 리빙스턴은 책을 읽다가 주의 음성을 들었고,
기도의 사람인 죠지 뮬러는 성경 공부반에서 주의 음성을 듣고 변했다.
구세군 창설자인 영국의 윌리암 부드는 길거리의 불쌍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복음 전도자가 되었다.

전쟁터의 천사인 나이팅게일, 미국의 링컨 대통령, 위대한 음악가 세바스챤 바하,
한국에 초기 선교사인 아펜셀러와 언더우드, 정직한 전도자 빌리 그래함,
한국의 부흥사 길선주 목사와 김익두 목사, 그리고 이승훈 선생과 조만식 장로 등
수 많은 인물들이 주의 음성을 듣고, 주를 위해서 빛나는 인생을 살았다.

주일과 성경 공부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거기서 믿음이 생긴다.
혼자서 성경을 읽을 때에도 스스로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읽으라.

둘째는, 그 들은 말씀을 온 마음을 다 해서 믿어야 한다.

듣기만 하고 곧 잊어버리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소용이 없다.
들은 것을 마음에 깊이 믿어야 한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항상 믿음을 구사하고 살고 있다.
수없이 많은 기계로 작동되는 아슬아슬한 비행기에 몸을 싣고 편하게 잔다.
보이지 않는 줄에 매달린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층 빌딩을 올라 간다.
번지 점프를 하는 사람은 그 까마득하게 높은 곳에서 줄에 매달려 뛰어 내린다.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의사에게 몸을 맡겨서 대수술을 하게 한다.
수술 전에는 만일 무슨 사고가 생겨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명까지 한다.

그런 것이 곧 믿음이다.
그런데 그런 믿음은 그저 이 세상에서 사는 것과 관련되어 있지만,
주 예수를 믿으면 영적으로 죽은 자가 살아나고,
죄를 용서받으며, 영생을 얻는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삶과 죽음의 문제가 달려 있는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동의하고, 수긍하고, 의지하고, 나의 삶 전체를 의탁하는 것이다.
맞는 말이라고 머리를 끄덕이는 것이나, 동감하는 것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아니다.
나의 삶의 주인을 나 자신에서 주 예수님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마음에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과 같다.

한국 교회 초기에는 뛰어난 전도자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 최봉석 목사가 있다.
그는 유식했지만 방탕한 자였는데,
한의사인 백유계라는 전도자의 말을 듣고 복음을 믿었다.
그는 40세에 평양신학교에 들어갔는데,
공부는 안하고 \"예수 따라 천당, 마귀 따라 지옥\"을 외치고 다녔다.

그는 학교 성적이 너무 나빠서 낙제를 여러 번 했는데,
수업 시간에 교장이 성령의 인도 따라 기도하라고 할 때
그는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서 기도한 후에
\"주께서 교장 선생님을 감화하셔서 제게 졸업장을 주게 하옵소서! 믿습니다.\"라고 했다.
교장도 \"아멘\" 했기 때문에, 믿음대로 졸업장을 달라고 하니
\"주기는 주되 언제 준다는 말은 없었소.\"해서, 후에 간신히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믿음은 있는데 좀 엉뚱한 믿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복음을 아무리 들어도 마음에 믿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히 4:2).

마음에 믿으라. 그리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입으로 시인하라. 마음에 들어오시라고 기도하라.
그러면 믿음이 아주 구체화된다.

셋째는, 그렇게 듣고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성령으로 도장을 찍으신다.

그렇게 복음을 듣고 믿은 사람을 성령께서 인치신다고 성경은 말한다.
중요한 문서에 최고 책임자가 서명을 하면, 아무도 그 내용을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 없다.

여기서 인을 친다는 말은 오늘 날의 보증금과 비슷한 뜻이 있다.
집이나 자동차를 살 때에 처음 내는 돈을 흔히 착수금(Down payment)라고 말하는데,
이제 머지 않아 잔액을 다 지불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그 물건의 소유권이 이전된 것을 의미한다.
이제부터는 그 집이나 자동차의 소유주의 이름이 명기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이 바로 그러하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근거로 하여,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성령께서는 마지막 구속의 날까지 우리를 확실하게 지키신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자신의 확신을 말하고 있다.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바울은 이런 확신 때문에 위험과 고난을 뚫고 복음 전하는 일에 진력한 것이다.

이것은 도중에 무효화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것이며, 결국 완성될 것이다.
이것을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인을 치셨는데,
그것은 무슨 신비한 체험이나 감정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기록된 문서 즉 성경 말씀의 약속대로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것과,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되었다고 증거한다(롬 8:17).

이것은 정말 굉장한 것이다.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가 되다니!
거룩하신 독생자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받는 기업이 되다니!

이제 이런 영광스런 성령의 인치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말해 준다.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1:14).

성령이 우리에게 영원한 상속에 대한 보증이 되신다는 것이며,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는 것이다.

요즘에 보증을 잘못 섰다가 집안이 망한 사례가 적지 않게 들린다.
IMF 이전에 사업이 잘 될 때에 빚 보증을 섰다가, 사업이 파산되면서
많은 보증인이 그것을 떠맡게 되었는데, 보증인도 힘이 없으니 같이 쓰러지는 것이다.

만일 우리의 신앙을 우리의 힘으로 스스로 지켜야 한다면 큰일이다.
내 힘으로 천국에 가야 하거나, 내 힘으로 마귀의 세력에 대항해야 한다면 큰일이다.
내 지식으로 설교하고, 내 경험으로 교회를 섬겨야 한다면 정말 난감하다.
내 뱃장이나 말재주로 전도하고, 내 건강을 믿고 살아야 한다면 정말 두렵다.

그런데 여기 가장 든든한 보증이 있다.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틀림없이 보호하고 지켜 주신다는 성령의 보증이다.
마귀가 유혹하고, 세상이 우리를 혼란하게 하며 흔들지만, 성령께서 붙잡고 계시니 안심이다.

영국 Woolwich에서 Radstock이라는 그리스도인이 설교를 마치고 급하게 기차역으로 달렸다.
출발 직전에 간신히 기차에 올라타려고 하는데, 한 젊은 장교가 달려 와서 묻는다.
\"선생님. 조금 전에 설교를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신앙에 바로 설 수 있나요?\"
이미 기차는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래드스톡은 연필을 꺼내 들고 손바닥에 세우면서
\"이것이 혼자 설 수 있나요?\" \"안됩니다.\"
그는 연필끝을 손으로 꼭 잡고 세우면서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당연히 바로 설 수 있지요.\" \"예수님께 잡혀 사십시오.\"
기차가 서서히 역을 빠져 나갈 때에 래드스톡은 창 밖으로 연필을 쥔 손을 계속해서 흔들어
보였다. 그로부터 25년 후에 그 두 사람은 선교사가 되어 인도에서 다시 만났다.
그날 기차 역에서 보여 준 대로 그 청년은 주님의 손에 잡혀 살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며 살되,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찬미하는 것이다.

자기 가족을 위해서 사는 것도 좋고, 자녀를 위해서 희생하며 사는 것도 귀하다.
자기가 속한 교회를 위해서 수고하는 것도 아름답고,
자기 민족과 나라를 위해서 목숨바쳐 일하는 것도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고 수고하고 사는 것이 가장 고상하며 귀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창조된 진정한 목적인 것이다.

델라웨어의 어느 감리교회에서는 1129명 전 교인에게 $1.00을 우편으로 보내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것을 가지고 교회를 위해서 이익을 남기라고 부탁했다.
며칠 후부터 회신이 들어 왔는데, 한 부인은 경마에서 이겨서 $110.00을 벌었고,
어떤 사람은 인형을 만들어 $373.00을 얻었다. 결국 합계 $6,000.00이 모금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가진 것은 적어도 주를 위해서 기도하며 마음과 머리를 쓰면 방법이 생긴다.

이제 다시 한번 우리 구원의 보증서를 확인하자.
그러나 그것을 내 주머니나 내 머리에서 찾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찾으라!
그것을 지나간 경험에서 찾지 말고, 지금 나와 주님과의 관계에서 찾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