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제11강


에베소서 강해설교 11


드러난 비밀(엡 3:1-6)

원래 비밀은 아무도 모르거나, 한 두 정해진 사람만 알고 있어야 진짜 비밀이다.
비밀이라고 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이 다 안다면 그건 이미 비밀이 아니다.
사실 비밀 중에 비밀로서 가장 경이로운 것이 자연의 신비요 비밀이다.
우리가 과학을 통해서 많이 알고 또 다 아는 것 같으면서도 다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 신문에 \"인간 두죄의 적응성\"이라는 제목의
심층 연구 기사가 실렸는데(9/28/99)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인간의 두뇌는 약 3 파운드 정도의 무게에 불과하고, 쭈굴쭈굴한 핑크색의 젤리같은
물체인데, 메밀리 디킨슨의 말대로 \"그것은 하늘보다도 넓다\"(It is wider than the sky).
그 두뇌에는 1,000억 개(100 billions)의 세포가 있고,
그 세포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연결선이 1조(兆) 개(100 trillion)가 된다.\"

줄로 엮은 테니스 라켓의 한 쪽 끝에서 다른 쪽으로 가는 길이 몇 개나 있나 생각해 보면,
물론 현대 수학적 방법으로 계산이 되겠지만, 굉장히 많은 연결선이 될 것이다.
또한 서부 로스엔젤레스에서 동부 보스턴으로 가는 길이 몇 가지나 될까?
수도 없이 많다. 직선으로 가는 길도 많은데, 지방과 도시마다 들러서 간다고 생각해 보라.

우리의 작은 두뇌 속에는 그 세포의 연결선이 1조 개나 되기 때문에,
평생동안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기억해 두고 또 지시하고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오래 동안 연구하던 죤 홉킨즈 대학의 과학자들도 인간 두뇌에 숨겨 있는 비밀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전 과학부 장관이었으며 세계적인 유명한 과학자 가운데 한 분인 정근모 씨도
\"천재적인 과학자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는
그는 조금도 거리낌이 없이 단순하고도 시원하게 다음과 같이 멋진 답변을 했다.
\"나는 내가 과학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는 참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비밀들이 담겨져 있다.
역사를 통해서 이미 많은 사람이 그런 것들을 경험했고,
신학 연구와 역사적 발굴을 통해서 상당히 많은 지식을 가졌지만 여전히 복음은 신비다.

복음이 무엇이기에 세계 역사 흐름에 그렇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며,
그것을 믿는 믿음이 어떤 것이기에 그 많은 사람들을 \"헷가닥\" 바꿔 놓는가?
성경이 무슨 책이기에 공산주의자들이 제일 증오하여 눈에 띄기만 하면 불태우고,
그것을 갖고 있지만 해도 반국가적 행동이라고 하는가?
예수가 어떤 분이기에 그를 믿는 자마다 인생이 그렇게 완전히 되돌아 서게 되는가?

이유는 우리가 얼마든지 짐작하고 또 알 수 있다.
그 성경을 마음을 열고 진실한 마음으로 읽기만 해도 생각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며,
또한 운명이 완전히 뒤집어 지기 때문이다.
태국의 어느 불교 교수는 약혼녀가 예수를 믿는 바람에 예수를 공격하려고 성경을 읽다가
완전히 변화하여, 지금은 태국에서 훌륭한 전도자가 되었고,
성경을 반박하려고 성경을 읽다가 변해서 그 유명한 소설 \"벤허\"를 쓴 루 월리스는
그 책에서 \"회개는 죄를 슬퍼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에 적합한 성품으로
변하는 것까지 포함한다\"고 말할 정도로 강력한 복음의 일군이 되었다.

이제 이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고 강력하게 항거하던 유대인 광신도가 있었다.
그는 예수믿는 자들을 제일 싫어했으며, 그의 이름은 사울이었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그들을 괴롭혔고, 급기야는 집단적으로 몰아 내거나 죽이려고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의 법적인 허락을 받고 흥분된 얼굴로 예수촌을 찾아 가고 있었다.
얼마를 가다가 다마스커스라는 도시를 지나게 되었다. 당시에는 다메섹이라고 불렀다.
갑자기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햇빛보다도 더 밝은 빛을 받고 길거리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그때 이상한 음성이 들리는 것이다.
\"큰 자라라고 장담하는 사울아! 너는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느냐?
돌맹이를 발길질하면 네 발만 다치지 않느냐? 가시채를 발길질하니 너만 다친다.
정신을 차려라.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줄 아느냐?\"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그렇게도 증오하는 예수다.\"

그것은 그가 증오하던 예수의 음성이었고, 그 순간 그는 극적으로 변화되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복음의 무서운 반대자가 이제는 옹호자로 변신한 것이다.
이제 그가 놀라운 변화를 경험한 후에 전도하다가 감옥에 들어가서 쓴 편지 중의 하나인
에베소서에서 그가 고백하는 하나님의 비밀에 관해서 생각해 보자.
그리고 우리도 부끄럽지 않게 누구에게나 고백할 수 있는 이 비밀을 간직하자.

\"이러하므로 그리스도의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3:1).

예수의 사도가 된 바울은 로마의 어느 돌로 된 깊은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
그는 한때 유대교의 율법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아깝지 않게 내어 놓을 수 있던 자였다.
그래서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로 율법준수에 열심히 지나쳐 특심한 자였다.

그런데 갑자기 급격한 변화를 받은 후에, 가는 곳마다 예수가 메시야라고 외치니,
그때까지 유대교의 탁월한 학자요 지도자로 알려져 있던 자가
정신이 돌았거나 변질된 것을 눈치챈 유대 지도자들은 그의 입을 틀어 막는 것이 급선무였다.

유대교 사회에서 예수 박해자로 그 명성을 날리던 소위 유명인사였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급변화를 한 것이다.

그는 시장이나 거리나 회당에서 기회만 주어지면 예수를 외치게 되었고,
숱한 고생을 하다가 이렇게 멀리 로마 감옥에 깊히 갇히고 만 것이다.
예수를 잘 믿고 전도하면 복받고 편할 줄 알았다면 생각을 고쳐야 할 것이다.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죽은 교인이나 꿀먹은 벙어리 교인으로 살면 누가 건드리겠는가?
그가 있으나 마나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면 누가 그에게 신경을 쓰겠는가?
그렇지만 그 한 사람 때문에 주변 사람이 변하고 직장과 공동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면,
그런 사람은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되지 않겠는가?
작은 실수에도 질책을 하거나 공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많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에도 그러했고, 사실 오늘에도 그렇다.

이제 전도하다가 감옥에 갇힌 바울 자신의 표현은 어떠한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이 바울이 투옥된 것 때문에 실망할까 봐 오히려 염려하고 걱정하면서,
\"이렇게 감옥에 들어온 것도 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된 것을 알라\"고 그들을 안심시킨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가 강한 로마라는 나라에 잡힌 불쌍한 신세의 포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의 포로\"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때문에 억울하게 잡혀서 꼼짝도 못하는 죄수의 신세가 된 것이 아니라,
에베소 사람들을 포함하여 복음을 모르는 이방 사람들을 위하여
스스로 그리스도에게 잡힌 바 된 자가 되었다는 당당한 의미가 들어 있다.

이것이 바로 구약 성경에서 주인을 사랑하여 자유를 얻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원하여 귀를 뚫고 평생 종으로 사는 것과 같다.
억지로 섬기는 자가 아니라 자원하여 힘든 일들을 감당하는 지원병과 같은 것이다.
목사는 부르심을 받고 일하지만, 성도들은 즐거운 자원병이 더 좋다.

그래서 그는 죄수요 옥에 갇힌 포로(Prisoner)이지만 참으로 자유를 가진 자이다.
그는 참 진리를 알기 때문에, 진리가 주는 자유를 거기서도 맘껏 누리고 있다.
그래서 그는 사방이 막힌 감옥에서도 종종 기도하고 찬송했으며,
자기를 감시하고 지키는 간수들에게 틈을 타서 복음을 말한 것이다.
그에게는 감옥이 복음을 전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로 여겼다.

어느 한국인 목사가 북한을 잠시 방문한 글을 읽었다.
신분을 숨기고 시내를 구경하는데 한 여자가 멀치감치 간격을 두고 계속 따라오는 것이었다.
자기가 빨리 걸으면 그 여자도 그렇게 하고, 속도를 늦추면 따라서 늦추는 것이다.
미행자가 틀림없기에 겁이 난 이 분이 모퉁이에서 몸을 잽싸게 벽쪽에 숨겼다.
그랬더니 그 여자가 뒤에 바짝 따라 와서 자기 앞을 홱 지나가면서 한 마디 하는 것이다.
\"할렐루야!\" 그는 자기가 목사인 줄 알고, 그 말을 하고 싶어서 그렇게 따라 온 것이다.
그 지옥같은 복한 땅에도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라.

여기서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무엇이라고 술회하는가?
그 고통스럽고 죽음의 어둠이 엄습해 오는 무시무시한 로마 감옥에서 있으면서도,
그의 음성에는 조금도 원망이나 슬픔 또는 한이 섞인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원래 로마 감옥은 짐승의 밥이 되는 곳이거나, 사람을 산 채로 말려 죽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온 자가 없는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그런데 바울은 그렇게 감옥에 들어온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은 마치 복음 전도자가 받는 특권으로 여기는 느낌마저 든다.
그는 자기가 죽든지 살든지 자기를 통해서 그리스도만 영광을 받으신다면
그것이 가장 고상하고 고귀한 삶의 의미라고 확신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것이 바로 인간을 완전히 새롭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위력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의 모든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거칠고 험한 선교지로 나가는 사역자들이 의지하는 힘이며,
수많은 사람들의 왜곡된 비판과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굳건히 복음에 서 있는 성도의 힘이며,
손해를 보면서도 주를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감수하는 성도들의 능력이다.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3:2-3).

이제 사도 바울은 자기가 깊고 어두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하나님의 깊은 비밀을 경험하게 되는 특별한 기회로 여기고 있다.
마치 격렬한 경기를 하다가 잠시 \"타임 아웃\"을 하면서,
벅찬 숨을 가다듬고 전략을 재정비하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편지를 받고 있는 에베소 교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은혜로운 청지기의 책임에 대하여 이미 언급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경륜\"이라는 단어는 영어에 \"administration\" 또는 \"stewardship\"으로서,
바울은 성도를 돌보는 것이 은혜스런 책임이라는 의미로 말하고 있다.
즉 자기에게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잘 관리하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자기의 편지를 읽고 있는 성도들을 더 잘 돌보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주의 이름으로 교회에서나 가정이나 직장에서 성도를 섬기는 것은 아름다운 책임이다.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서 소리없이 흘리는 땀방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좋은 길이며,
요즘처럼 모두 바쁜 때에 성도들을 위해서 자기 시간을 헌신하는 것은 충성의 표현이 된다.
아마 시간보다 돈을 내라면 그것이 좀 더 쉬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든 헌신과 충성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주신 은혜의 경륜인 것이다.

이제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보이신 하늘의 비밀
즉 계시를 통해서 알려 주신 비밀한 것들을 이미 대강 기록했다고 말하는데,
과연 바울은 하늘의 계시를 통해서 무슨 비밀을 알게 되었는가?

다름이 아니라 진정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비밀이다.
그것은 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다녀야 하는 율법 외에 나타난 은혜의 복음이다.
평생 자신을 고행시키고 금식하고 자기 몸을 학대하면서 고생을 해도 갈까 말까 하는
그런 너무도 들어가기 어려운 천국이라고 생각했는데,
단순한 믿음으로 갈 수 있다니 종교와 율법에 찌들은 그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예수님의 구원이 크고 위대하다면서 값없이 준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 11:25-26).

그리고 종교적으로 뛰어나고 율법에 흠이 없다고 교만한 자들을 향하여, 그들도 어린
아이같이 순전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천국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한다고 경고하셨다.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3:4).

바울은 에베소의 성도들이 그의 편지를 읽으면서, 그 광적이던 유대교 추종자가
어떻게 그 복음의 비밀을 알게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바울이 급작스럽게 변한 것은 이미 유대 사회에 다 퍼졌고,
그를 몰래 살해하려는 음모들도 그치지 않고, 자객들이 그를 따라 다녔다.

그런데 이 편지를 자세히 읽으면 바울이 발견한 그 놀라운 비밀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다수는 평생 모세 오경을 읽고 외우고 이마에 적어 붙이고 다니면서도
그 깊은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서신을 자세히 읽기만 해도 하늘의 비밀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선교 여행 중에 베뢰아라는 지방에 와서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강론하다가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성경을 상고...\"(행 17:11)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한다.

이 성경이 바로 예수님에 대하여 너무도 구체적이며 진실하게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에베소 교인들이 바울의 서신을 자세히 읽기만 하면 비밀을 이해할 수 있듯이,
우리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고, 빠진 것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보낸 유일하고도 중요한 사랑의 편지처럼 주의깊게 읽기만 하면
그 속에 담긴 엄청난 보물들을 찾아 낼 것이며,
타는 목을 시원케 하는 생수를 발견하고, 배고픈 영혼을 살지게 하는 양식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논쟁하려고 읽거나, 따지려고 또는 공부하는 것만 목적으로 읽기보다는
그 안에서 내게 꼭 필요한 영적인 양식을 얻고 믿음을 키우겠다는 마음으로 읽으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3:5-6).

실제로 구약 시대에는 이 구원의 비밀이 신약 시대처럼 그렇게 선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골로새서에서도 이 비밀은 옛날부터 감취어져 있던 비밀한 것인데,
이제는 성도들에게 나타났다고 말한다(골 1:26).
이 비밀은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났는가?

첫째로, 하나님의 비밀은 성령으로 나타났다.
이 구원의 비밀에 관한 것들이 구약 시대에는 깊이 숨겨진 비밀과 같아서,
선지자들과 서기관들 일부가 부분적으로 이해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성령이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강림하시면서 각 사람이 그 비밀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갈릴리 바닷가의 어부나 바리새인이던 바울이나 남녀의 차별도 전혀 없이
동일하게 영생을 받게 되었다.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에 정탐군 열 두 명을 보냈던 적이 있는데,
그들 중에 열 명은 패배적이며 실망을 주는 비관적인 보고를 하여 백성을 고통에 빠뜨렸다.
그런데 여호수아도 여리고에 정탐군을 보낼 때에 성경에는 두 명이라고 되어 있지만,
유대인들 사이에는 아마 관습에 따라 열 두 명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위대한 지도자인 모세가 보낸 정탐군들은 백성을 비참하게 만든 반면에,
그보다 훨씬 지도력도 약한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군들은 승리의 보고를 한 이유가 무엇인지
유대 랍비들이 궁리를 많이 했다.

그들의 결론은 이러하다.
모세는 열 두 지파에서 뛰어난 족장들을 중심으로 보내서, 각자 자기 지파만 생각하는
이기심 때문에 실패한 것이고, 여호수아가 보낸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어서
모든 백성을 생각하는 헌신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었기에 그런 좋은 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비밀은 겸손한 자와 성령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둘째로, 다른 세대에서는 예언과 그림자로 보여 주셨다.
예를 들어서 모세의 오경 중에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말씀을
읽을 때에 구약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하였는가?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사람들이 쳐다 보기만 하면 낫는다고 하던 장대에 달린 구리뱀을
예수님과 연관시키지 않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출애굽 당시 문에 발랐던 양의 피를 예수님의 보혈과 상관없이
단순히 짐승의 피로만 여긴다면 결코 복음의 핵심을 깨달을 수가 없다.

마치 모든 것이 뿌옇고 희미하게 보이던 장면이 안경을 쓰니 환하게 보인 것과 같다.
그 많은 상징과 그림자와 예언에 예수님을 대입하니 모든 것이 시원하게 풀리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이 세대에 성경을 통해서 하늘의 비밀을 열어 보이신 것이다.

셋째로, 이 비밀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엄청난 변화가 담겨 있다.
하나는 이방인들도 복음을 통해서 예수 안에서 함께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이요,
둘째는, 함께 예수님의 교회에 속한 지체가 되게 하셨고,
셋째는, 함께 하나님의 엄청난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셨다.

마치 고아가 좋은 가정에 입양되어 사랑받으며 살고 또 유산을 물려 받게 된 것과 같고,
망가져서 여기 저기 흩어져 버렸던 장난감을 잘 맞춰서 이제 제 자리를 찾은 것과 같으며,
이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많은 축복의 약속을 받을 자격까지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아주 귀한 것을 잘 간수해 두었다가,
그 곳이 기억나지 않거나 그런 것을 간수해 두었다는 것 자체를 잊을 때가 있다.
그래서 어느 날 집안을 청소하다가 생각지 않던 곳에서 100불 짜리 현금이 나오기도 하여,
공돈을 얻은 것처럼 기분이 너무 좋아하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준비해 놓으신 하늘에 속한 어마 어마한 복이 있는데,
전혀 엉뚱한 곳에서 방황하며 그런 것을 찾아 헤매고 있는가?
이미 하늘에 속한 놀라운 것들을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셨는데,
어디서 그것을 찾을지 몰라서 이 모임 저 집회를 따라 다니지는 않는가?
아니면 영에 속한 것은 생각지도 않고, 그저 땅에 속한 것에만 삶을 쏟아 붓고 있는가?

복음은 이제 더 이상 아무도 찾지 못할 정도로 꼭꼭 숨겨 둔 것이 아니다.
이미 상세한 안내서가 마련되어 있어서, 그대로 순종하고 따르기만 하면 반드시 찾아 낸다.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열고 경청하라.
스쳐 지나가는 말로 듣다가는 평생을 들어도 비밀을 발견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비밀의 깊이는 아무리 파고 또 파고 들어가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더 겸손하게 하나님을 사모하며, 날마다 그의 비밀을 조금씩 더 알아 가는 희열을 경험하며,
땀흘리며 밭을 일구는 농부처럼 성실하고 끈기있는 믿음의 사람들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