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제12강


에베소서 강해설교 12

이런 일군이 되자!(엡 3:7-13)

일군에도 종류가 많다. 어떤 사람의 말한 대로 개미처럼 부지런히 땀흘려서 자기 몫을 벌어
들이는 일군이 있는가 하면, 나비처럼 날아 다니며 남이 수고한 것을 그저 빨아 먹는 일군이
있고, 한편 거미처럼 자기 집에 가만히 엎드리고 기다려 있다가 지나가던 벌레가 거미줄에
붙으면 잡아 채 먹는 일군도 있다. 방법은 다르지만 나름대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나라 속담에는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먹으라\"는 말이 있어, 개처럼 열심히 일해서
점잖게 먹고 살라는 뜻이겠지만, 요즘 많은 사람들이 개처럼 지저분하게 벌어서, 개처럼 먹고
사는지도 모른다. 무엇인가 부정직한 수입을 하거나, 깨끗하지 않은 돈을 만지는 사례들을
신문에서 자주 읽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답게 일하고 벌어서 그리스도인답게 사용하면 된다.
정직하게 일하고, 선한 일에 베풀고 나누고, 하나님께 드리며 사는 것이다.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을 것도 주지 말라는 무서운 성경의 경고도 있듯이,
성경은 언제나 성실하고 정직한 농부를 비유로 들어서, 노동을 귀하게 여긴다.

근래에 미국은 도박 때문에 엄청난 몸살을 앓고 있다.
처음에는 심심풀이나 장난삼아 시작한 카드 놀이 때문에 부부 관계가 깨어지고,
집과 사업체을 날려 보내고, 자동차를 빼앗기고, 결혼 기념 반지는 물론이고,
심지어 팔목 시계까지 다 전당포에 맡기는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1997년 한 해에 도박으로 날린 돈이 미국에서만 509억불이 되었고,
습관성 도박자가 대략 440만명이 된다는 조사가 있다.
그런데 남자들만 아니라 여자들과 아이들과 노인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청소년들의 중독성 도박 행위가 어른보다 두 배나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습관성 도박군들은 다 망할 때까지 손을 떼기가 어려운 질병이 되고 있다.

뉴저지의 경우에는 사업의 파산 이유 중에 이 도박이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이며, 그것은
마약이나 알콜보다도 더 중독성이 강해서, 대개 자살로 끝나는 사례가 많다고 보고하고 있다.
빚을 얻는 것도 한계가 있고, 속이고 미루는 것도 지쳐서 결국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특히 로스엔젤레스 외곽 지역을 포함하여, 도박이 합법화된 주에서는 이런 현상이 현저하게
많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매일 텔리비젼에서 광고하는 복권 때문에 패가망신한 사람도
부지기수라고 \"L.A. Times\" 신문은 최근에 특집 기사로 다루고 있다.
그 복권이 교육 사업에도 일부 쓰인다고 하지만, 망한 가정이 더 많은 것을 비극이다.

왜 복권이 엄청나게 잘 팔리고, 도박이 더욱 무섭게 확산되는가?
힘든 일을 하지 않고 노력없이 쉽게 큰 돈을 잡아 쥐겠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장난삼아 하는 도박은 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지만,
그것은 완전히 거짓말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그 수고의 땀의 대가를 소득으로 삼도록 하셨다. 즉 선한 일군이 되라는 말씀이다.

유교적인 문화를 포함한 예전의 한국 문화에서는 양반과 상놈이 나뉘어 있어서,
양반은 불편해도 점잖은 도포를 입고 대청 마루에서 머슴들에게 호령이나 하고,
힘든 노동은 모두 낮은 계층의 상놈들이나 하는 것을 착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비뚤어진 생각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손쉽게 돈버는 궁리들을 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땀흘려 일하는 노동을 신성한 것이라고 가르치며,
남의 수고를 빼앗아 가는 자들은 강도요 사기군일 뿐이다.

그런데 과연 어떤 일에 열심있는 일군이 되어야 하는가?
정말 보람되고 가치있고, 한 평생이 다 지난 후에도 결코 후회하지 않고,
마지막 심판 때에도 하나님께 칭찬받는 일군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의 본문에서 바울이 고백하는 가장 고상하고 영광스런 일군에 관해서 생각해 본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3:7).

바울은 어떤 종류의 일군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가?
그는 한때 유대교를 위해서 목숨을 걸던 유대 종교의 극렬한 일군이었다.
유대교의 전통과 율법을 준수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 조금도 아깝지 않게
던져 버릴 정도의 열심을 가진 극렬분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복음으로 변하여 사도가 된 바울은 디모데에게 서신을 보낼 때에,
자기가 원래 예수님과 교회에 대한 훼방자요 포행자요 핍박자였다고 아픈 과거를 고백하면서,
그때에 몰라서 행한 악행들을 용서하신 하나님께서 자기를 충성되게 여기시고,
영광스런 사도의 직분을 주셨다고 겸손하게 자기 소명에 대해서 고백했다(딤전 1:12-13).

이제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복음의 일군이 되었고,
그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복음의 일군으로서 맡은 일을 감당한다는 것이다.

복음의 일군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았는가?
이 세상에는 생계를 위해서 매일 고된 일을 반복해야 하는 성실한 일군들이 있고,
한편 한탕으로 떼돈을 벌기 위해서 마약을 거래하는 악한 일군도 있다.
그런데 여기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밤낮으로 쉬지않는 일군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가치있는 일군인가?

그는 결코 그 동안 쌓은 경험과 실력을 믿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다만 하나님이 주시는 힘대로 자기의 최선을 드리는 것 뿐이다.
아마 자기 노력과 경험만 의지했다면 일찌감치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주의 힘으로 했으니 어려운 전도와 섬기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미 아는 대로 그는 예수믿는 자들을 체포하려는 악심을 품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소위 \"하나님의 충격 요법\"을 통해서 급작스럽게 변한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바울처럼 그렇게 변하지는 않지만, 그의 경우에는 참으로 하나님께서
복음의 일군으로 쓰시기 위해서 일방적으로 인생과 운명을 돌려 놓으신 것이다.

우리들의 경우도 생각해 보자.
사랑하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작처럼 보이지만,
매 주일 즐겁게 섬기며 봉사하게 된 것이 무슨 나의 의나 업적 때문이겠는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물론이거니와, 하나님의 집에서 사람들을 돌보는
귀한 봉사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도 정말 주님의 은혜 때문이 아닌가?
거기 무슨 우리의 자랑이나 교만이나 자기 과시가 있겠는가?

바울이 전도자로서 그 많은 고난과 핍박과 어려움을 계속해서 당했지만,
주님께나 교회에 대하여 한 마디라도 불평이나 원망의 말이 있었는가? 없다.
다만 값없는 은혜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된 것을 평생 감사하며 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설교자 자신을 돌아 본다.
무슨 은혜로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맘껏 외치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며,
어려운 삶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지혜를 전달해 주는 사람이 되었는가?
무슨 은혜로 매 주일 생명의 말씀을 설교하고, 많은 성도들의 사랑과 기도의 지원을 받으며,
또한 무슨 은혜로 어느 날 천국에 갈 것도 감히 소망하고 살게 되었는가?
저절로 감사의 찬송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이 전에 주님을 내가 몰라 영광의 주님을 비방했다.
내 하는 일들이 하도 적어 눈 앞에 큰 열매 안 뵈어도...\"
감사와 은혜의 찬송을 부르자면 끝이 없다.
복음의 일군된 것을 다시 감사하자.

이제 바울은 이런 엄청난 은혜를 받은 것에서 만족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가 받은 사랑과 평안과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혼자서 신나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기 만족에 취해서 옆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못보는 어리석은 전도자가 아니었다.
그는 그런 은혜를 받은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사명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3:8-9).

먼저 그는 자신이 모든 성도 중에서 가장 작은 자보다도 더 작은 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누가 성도 중에 가장 작은 자인가? 주일 학교의 어린 아이인가?
바울은 그 아이보다 더 작다는 것이다.
이제 갓 예수를 믿은 소위 초신자가 가장 작은 성도인가? 바울은 그보다 더 작다는 것이다.
당시에 낮은 계층에 속한 어부들보도다 더 자신을 낮추고,
교회 안에 있는 가장 어린 아이보다도 자신을 더 낮추는 것을 읽으면서
참으로 낮고 겸손한 그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사실 그것이 우리 주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남다른 재능을 받았으면 그 재능을 잘 사용하라는 것이고,
재물을 선물로 받았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지혜롭게 쓰라는 것이며,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은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그것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바울은 스스로 가장 작은 자인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은혜에 대하여
적어도 두 가지의 사명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하심을 세상 모든 이방들에게 전파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기 백성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줄 알지만,
바울은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들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라고 하면서, 그것을 영광스런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말한다(롬 11:13).

참으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와 성품에 대해서 다 아는 사람은 없다.
작은 송사리가 큰 바다의 넓이와 깊이를 어떻게 헤아리겠는가?
작은 개미 한 마리가 이 넓고 광활한 우주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오래 참으심과 지혜의 깊이를 바로 알 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라고 말한다.

이 풍성하고 넉넉하신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은 바울의 일만 아니며,
그 진리를 믿는 우리에게 동일하게 주신 책임 사항이다.
공부하고 오라고 학교 보냈더니 장난만 치고 싸움만 하다 왔다거나,
중요한 일을 위해서 심부름을 보냈더니, 동네 써커스에 구경가서 실컷 놀다가,
할 일은 안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면 어떻게 하는가?
반드시 책망을 듣지 않겠는가?
그런 것도 그냥 사랑으로 없던 일로 하는 것이 은혜이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불신앙의 식구들과 친구와 이웃에게 말하라고 부탁해 주셨는데,
전혀 엉뚱한 것에만 신경을 쓰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으면 큰 잘못이 아닌가?
전쟁터에 나가서 전자 게임을 하고 있는 군인이 있다면, 당신이 상관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것도 그 사람의 특징이며 취미이기 때문에 그대로 내버려 둬도 괜찮다고 하겠는가?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님을 더 잘 전해 주려고 최선을 다하자.
그 분이 이 비뚤어진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길을 인도하시는 인생의 안내자시오,
재난과 사고와 전쟁의 소문들을 자주 들으면서 마음에 평안을 잃고 불안해 하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반드시 도와 주리라\"라는 힘찬 격려의 말씀을 전해 주지 않겠는가?


마음이 공허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의사도 변호사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이에게
\"내가 너희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줌으로 새 힘을 얻게 하지 않겠는가?

깊은 바다에 얼마나 많은 물고기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노아의 홍수 때에도 바다의 물고기만은 더 싱싱하게 살았다고 하니 그 숫자는 엄청나다.
그 보다 더 깊고 더 많은 보화가 숨겨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하심을 전하자는 것이다.

둘째는, 창조주 하나님에 관하여 숨겨진 신비한 섭리를 온 세상에 가르치는 것이다.
바울이 받은 은혜의 두 번 째의 목적은 오래 전부터 숨겨져 오던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이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었으므로, 그것을 신비한 섭리를 에베소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아니라,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평이하고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관해서 바로 알지 못해서 많은 교인들이 신앙적인 혼돈에 빠져 있다.
특히 종교성이 강한 우리 한국인들 중에는 순전한 복음 신앙과 미신이나 타종교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혼돈하는 경우들을 자주 보았다.

종교성이 있어서 무엇이든지 열심히 믿기만 하면 천국이든지 극락이든지 갈 수 있는 것처럼
그저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열심을 낸다.
이것은 비단 기독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아들을 냫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돌부처에 이른 아침부터 쉬지 않고
3000번 땅바닥에 절을 마친 어느 부인을 어느 날 저녁에 만난 적이 있다.
거의 10 시간이 걸리더라는 것이다. 너무도 고통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를 만났을 때에 부인은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한 채 무턱대고 열심을 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소위 \"화끈한 것\"을 좋아하거나, 뜨거운 것을 좋아하는 이들은 그런 것을 자주 바란다.
그래서 \"불받으러\" 이곳 저곳을 다니고, 유명 강사를 따라 구름떼처럼 몰려 다니기도 한다.\"
이단이 성행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하나님 안에 숨겨져 있는 깊은 은혜의 비밀을 더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어느 전도자의 말대로 \"갈쿠리를 가지고 낙엽을 거두면 죽은 잎들을 거둘 수는 있지만,
땅을 깊이 파야 보물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의미가 깊다.
다이아몬드는 언제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얕은 물가에서는 작은 송사리와 피래미 밖에 잡히지 않는다.
파도와 풍랑이 심하고 바람이 거센 멀고 깊은 바다에 나가서
그 무서운 파도와 싸워 이겨야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놀라운 비밀들을 모든 사람들아 잘 알아 들을 수 있도록
평이하고 쉽게 알려 주는 것이 자기에게 주어진 중대한 사명으로 깨닫고 있다.
어려운 신학이나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단순하고도 분명한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예수를 먼저 믿은 우리도 마찬가지의 사명 의식을 가져야 한다.
섣불리 대충 알면서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할 때 위험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잘 배우고 바르게 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하나님 속에 숨겨져 있는 놀라운 뜻을 조금이라고 전해 준다면 사람들은 변하고 만다.
두꺼운 책 한권을 주면서 그 안에 어디엔가 100불 짜리 달라가 들어 있다면 어떻겠는가?
아마 책을 이리 저리 뒤지다가 흔들기도 하고 털어 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귀한 하늘의 비밀은 그것을 펴고 읽고 듣고 깨닫는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을
마음에 명심하라.

바울이 여기서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의 목적에 대하여 밝히고 있다.
즉 왜 그렇게 전파하고 모든 사람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政事)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3:10-12).

우선 교회를 통해서 모든 천사들에게까지 하나님의 모든 지혜를 알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은 성경 학자들이 대개 \"천사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
그리고 그 지혜를 알려 주는 통로가 바로 교회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방법은 영원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미 전해져 있는 것이다.
즉 다른 방법을 사용하다가 잘 되지 않아서 교회를 세워서 하신 것이 아니라,
원래 성령의 강림과 함께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셨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쉽게 받아 들이기 힘든 사실이다.
요즘 이민 교회들을 보면 여기 저기서 삐거덕거리는 잡음이 많이 들려 온다.
교인들끼리 멱살을 잡는 일이 생기는가 하면, 서로 비방하고 헐뜯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것은 예수님이 의도하신 원래의 마음이 아니다. 크게 비뚤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성경은 여전히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깊은 뜻과 지혜를 알게 하신다고 말한다.
돌팔이 의사가 여럿 있다고 해서, 모든 의사를 엉터리라고 매도할 수 있는가?
가짜 박사가 많다고 해서 실력있는 박사까지 한꺼번에 나쁜 사람들로 몰아 부치려는가?

비록 현대 사회의 많은 교회들이 바른 궤도를 벗어나서 시끄러운 잡음이 자주 나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도 바른 교회들을 두시고 주의 복음이 전파되게 하신다.
아무리 미국 교회가 쇠퇴한다고 하지만, 성장하고 기도하는 교회들도 있다는 것을 알라.

정치인들이 부패하고 경제인들이 썩었다고 비난하지만, 그래도 성실하고 정직한 기업인들이
아직도 많이 있기 때문에 나라 경제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
작은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연못을 흐리게 할지는 모르나,
큰 호수나 강물이나 바다까지 탁하게 할 수는 결코 없다.

이제 사도 바울은 자기가 받는 고난의 의미를 기가막히게 역설적으로 설명해 준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3:13).

바울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그들을 위해서 전도자 바울이 고난을 받지만
절대로 실망하지 말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영광이 되기 때문이다.
비록 위대한 전도자 바울이 침침하고 두려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그것 때문에 너무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복음에 더욱 굳건하게 서기를 기도하고 있다.

보석은 원래 일종의 돌맹이일 뿐인데, 엄청난 무게에 눌리면서 부서지지 않는 것으로 변하고,
그것을 전문가가 이리 저리 자르고 깎은 후에야 쓸모있는 보석이 된다.

어릴 적에 이빨을 빼기 위해서 실에 매어 흔들면서 아프지 않게 빼려고 하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내 앞니에 명주실을 잡아 매셨는데, 내가 심하게 엄살을 떠니까,
\"저 천장에 있는 것이 무어냐?\" 하시면서 내 관심을 돌려 놓는 순간 확 잡아 빼신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아파서 이리 저리 피하면 결국 보기 흉한 덧니가 생기고 만다.
잠간의 아픔이 고른 치아를 갖게 한다는 것을 장성한 후에야 깨닫게 되는 것처럼,
오늘 당하는 갖가지의 어려움들이 주님을 닮게 하는 지름길이라면 자꾸 피할 수만은 없다.

어느 80세가 넘은 노인은 병원에서 가제를 접는 봉사를 하며 즐거워하는 것을 보았고,
어느 분은 교도소의 사나운 사형수들에게 눈물로 복음을 전하며 주님께 순종하고 있다.
평생 내 일에만 매달렸다가 주님께 내어 드릴 것이 없이 빈손으로 가 서겠는가?
가장 고상하고 가치있는 복음의 일군으로 사는 특권을 누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