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제15강


에베소서 강해설교 15



왜 나를 세우셨나?(엡 4:7-12)

한국에서는 초등학교에서 반장을 하는 것도 신나는 일이고, 줄반장이라도 해 보면 신난다.
작은 기관에서라도 회장이나 의장이 되어 보는 것도 해 볼 만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리는 민주주의의 방식에 따라 투표를 통해서 하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어떤 의미에서 돈싸움이라고도 말한다.
그래서 선거 자금 모금에 실패와 성공이 선거 자체의 승패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나라마다 대통령 선거에 부정과 뇌물과 상대방을 비난하는 흑색 선전은 물론이고,
이것도 저것도 안되면 총칼로 소위 혁명을 일으켜서 정권을 빼앗는 것도 종종 보고 있다.
진실로 국민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정치인들을 만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보다.

하나님의 교회에도 일꾼이 필요하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에도 일꾼을 찾으시더니, 아직도 할 일은 많은데 손이 모자란다.
그렇다고 한 사람에게 네 개나 여섯 개의 손을 주시지 않으셨다.
어떤 사람이 사업에 너무 손이 달려서 고민하다가 손이 네 개를 가진 꿈을 꾸었다고도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무엇이든지 원하시기만 하면, 말씀 한 마디로 다 하실 수 있는데,
유독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바로 세우는 일을 그의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맡기셨다.
아마 준비되지 않은 딸을 시집보내는 친정 어머니처럼 불안하실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천국 복음을 우리에게 위탁하실 때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던져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주의 백성들 각 사람에게 독특한 영적인 재능을 선물로 주셨다.
이것을 성경은 영적인 달란트 또는 영적인 은사(Spiritual Gifts)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교회가 결국 하나라고 하는 교회 일치에 관해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제는 교회를 바로 세우시기 위한 다양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즉 연합(Unity) 속에 있는 다양성(Diversity)인 것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믿음의 분량에 따라 각기 다른 은사를 주셨다는 것이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4:7).

그리고 4:8-10절에서는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통해서 은혜의 선물
즉 각종 은사를 주셨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그가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 오셨기에 우리를 만나 주셨고,
또한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르셨기에,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 각 사람에게 다양한 영적 재능을 주신 것은 성경이 여러 곳에서 강조한다.

그 중에 영적 은사에 관하여 가장 분명하게 설명하는 구절들을 보면,
고전 12:4-6절에서는 성령과 주님과 아버지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은사와 직분과 그 사역은 다양하다고 말하고 있으며,

로마서 12:4절 이하에서는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는데
각 지체가 다 다른 역할을 하는 것같이, 교회에도 몸은 하나이지만,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다르다는 것을 밝혀 주고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은사를 갖는 것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성령의 은사를 말할 때에 많은 사람이 우선 방언을 말하는 것이나 신유의 은사
또는 예언하는 은사같은 종류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고린도교회에서 강조한 종류 즉 방언과 통역과 병고침과 예언 등의 은사만 아니라
보다 더 넓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다양한 재능과 역할을 하면서도 목적이 동일하다는 것이 교회의 신비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회를 어떤 사회적 체계를 갖춘 단순한 조직체(Organization)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명을 가진 유기체(Organism)라고 하는 것이다.
거기 아주 작은 신경 세포도 불필요한 것이 없고, 어느 부분도 버릴 것이 없다.
그래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르며, 그 몸의 머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제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쓰는 편지에서,
성도 개인의 유익보다는 교회 사역을 위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은사에 관해서 생각해 보자.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4:11).

첫째는 사도의 은사이다.
성경에서 사도는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열 두 사도를 우선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같은 이들도 사도로 불리웠고(행 14:4, 14), 야고보를 비롯해서
주님의 형제들도 사도라는 칭호를 받았다(고전 15:7). 그리고 사도라는 말의 의미는
\"특수한 사명을 가지고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

그들은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에,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사명을 받은 자들이며,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목격했거나 만난 이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에 오늘 날에는 그런 사도가 더 이상 없다.
혹 영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사라거나 복음을 전하는 사자라는 것은 용납되어도,
스스로 예수의 사도라고 말하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

예수님의 사도 이후에 사도직을 이은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고 말도 하지만,
우리는 그런 말보다는 주님의 제자 또는 하나님의 자녀나 성도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둘째는 선지자의 은사이다. 선지자는 종종 사도와 연관되어 부르기도 했다(엡 2:20).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음성이나 계시를 받고,
목숨을 걸고 그것을 백성들에게 전해 주는 통로였다.
그들은 절대로 자기 자신의 말을 할 수 없고, 다만 여호와께로부터 받아서 전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서 받지 않고 전하는 자들을 삯군이요 거짓 선지자라고 한 것이다.

사무엘, 이사야, 엘리야, 예레미야, 다니엘, 아모스, 요나 등의 많은 선지자들이 백성을 향하여
책망과 경고와 격려와 위로 등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하다가 고난도 받고,
순교를 당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은사요, 하나님께서 맡긴 것이므로
피하지 않고 잘 감당했던 것이다.

셋째는 복음전도자의 은사이다. 이것은 여러 지방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성경에서는 전도를 성령의 은사에 포함시키고 있지 않으므로,
누구나 예외없이 개인적으로 전도할 명령을 받았지만, 드와이트 무디나 빌리 그래함같이
한 지역 교회에서 목회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나 지방을 순회하며 대중을 대상으로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확실히 성령께서 주신 은사다.

전도자로서의 은사가 있다고 생각되면, 우선 개인 전도부터 효과적으로 순종하고,
그 분야에 있어서 좋은 훈련을 받아서, 그것을 땅에 묻어 두지 않아야 할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어느 비유같이,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다가는 주인에게 혼줄이 날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전도자는 어느 이단 집단처럼 다른 교회 교인들을 데려 오기보다는,
아직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들이나 교회를 결정하지 못한 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믿지 않은 이들에게 복음을 제시하거나 진실한 안내자가 되라

제일 좋은 전도 방법 중의 하나는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조용히 풍기는 것이다.
어둔 곳에서는 소리없이 빛을 비추고,
부패한 곳에서는 소리없이 자신을 녹이는 소금의 역할을 하면 된다.
그러다가 기회가 생기면 구체적으로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로 인도할 수 있다

목말라 하는 사람에게 물이 있는 곳을 가리켜 주면 되고,
배고픈 자에게는 먹을 것이 어디 있는지 알려 주면 된다.
요즘에도 L.A. 거리의 홈레스 사람들은 어디에 가면 먹을 것을 주는지 잘 안다.
정신적으로 불안과 두려움과 공허를 느끼는 이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라.

그리고 넷째는 목사와 교사의 은사이다. 이 두 가지는 따로 떼어 놓지 않고
항상 더불어 있는 은사이다. 헬라어 성경 원문에도 이 두 은사가 하나로 붙어 있다.
즉 목사는 남을 돌보는 목자로서의 은사를 가지고,
남을 지도하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의 사랑방 이끄미들이 바로 작은 목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성전에서 행하는 것 중에는 우선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이 신앙적인 교육과 훈련이다.
세상의 학교나 기관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교회에서 배우며,
다른 곳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놀라운 것들을 교회에서 체험하게 된다.

설교자가 성경을 전하고 가르치며, 그것을 통해서 생각과 행동과 운명이 바뀐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담당하는 자가 곧 목사인데, 목사는 동시에 교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교회에 오면, 설교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
설교가 마치자 마자 부리나케 예배당 문을 나서면, 신앙에 진보와 성숙이 어렵다.

성도들 중에도 목자와 같이 남을 잘 돌보고, 또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이들이 있다.
비록 정식 신학교육이나 공적인 목사 안수를 받지는 않았어도,
배운대로 잘 전하고, 조리있게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규적인 신학 훈련과 복음적인 성경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고,
열정만 가지고 목사처럼 강단에서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은 여러 면에서 주의가 요망된다.
우리 주변에 어떻게 목사가 되었는지 분명치 않으면서도, 목사 행세를 하는 이들도 있다.
마치 뇌물을 주고 높은 직위에 오르는 것과 같이,
자리와 직위는 높을지 모르나, 실제로 그는 하나님께 바르게 쓰임받지 못한다.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성경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가르치다가 이단이 되거나,
교회에 혼란을 초래한 사례는 교회 역사에 그치지 않고 있어 왔다.
그리고 정통적인 교회와 목사를 비난하면서,
마치 자기들만 정통이며 그들 집단에게만 구원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독선과 사이비 집단화할 위험이 다분히 많다.

잘못하면 성경을 자기 체험에 비춰서 해석하고 가르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혹 듣는 자들에게 짜릿한 느낌이나 잠간의 감동을 줄 수는 있어도, 크게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마치 중독성 마약과 같아서, 자꾸 그런 곳을 찾아 가게 만들기도 한다.

에베소서를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관되게 가르쳐 주고 계시는 교훈은,
하늘에 속한 비밀들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해서 보여 주신다는 사실이다.

이런 것에 대하여 어느 집단에서는 자기들도 영적인 교회라고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불신앙보다도 더 위험하고 안타까운 것이 잘못된 신앙이라는 것임을 알라.

역사적으로도 많은 교회 밖에서 다양한 단체가 생겼다가 사라졌다.
건전한 기관들은 복음 전파에 훌륭한 몫을 담당하기도 했지만,
악영향을 끼친 기독교 단체가 많았고,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지역 교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끊임없이 성취하고 계신다.

이런 다양한 은사를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여기 세 가지가 언급되어 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4:12).

첫째는 영적인 은사를 활용함으로 성도 자신이 온전케 된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비밀이다.
하나님이 주신 영적 은사는 결국 하나님을 위한 것인데,
그것을 활용하다 보면 그 성도 자신이 더욱 주님을 닮아 가며, 성결해 지는 것이다.

여기서 온전하게 된다는 의미는 아주 중요한 일을 위해서 자격이 구비된다는 뜻이다.
외국에 대사로 나가려면 국내에서 상당한 기간에 걸쳐 훈련이 필요하고,
특히 전쟁에 파견되는 군인은 충분한 훈련을 받아야 죽음의 현장에서 살아남게 된다.

마치 높은 산을 오르는 등산가가 우선 강한 체력 단련과 정신력 훈련부터 하고,
그 무거운 많은 종류의 장비를 준비하고 사용 방법을 훈련하는 것과 같다.
하물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으면 어떻게 그 일을 감당하는가?

어느 피아노 콩클에 입상하기 위하여 손가락이 터지도록 연습한 사람을 보았다.
세계적인 골퍼가 되려면 혹 타고난 재능도 있어야 하겠지만, 엄청난 훈련을 계속한다.

그리스도를 닮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 지는 것을 거부하지 말라.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가 발견되었으면, 누가 알아 주든지 말든지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그것을 사용하라. 거기서 삶과 사역의 보람을 얻는다.

둘째는 영적인 은사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신 은사는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한 것이다.
교회는 자기 비지네스를 확장하기 위한 발판이 아니고,
아는 사람들이나 관심이 비슷한 사람들이 만나는 사회 단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다.

사실 교회는 사회적으로 잘난 사람들이 모이는 특수 단체가 아니다.
반면에 실패하고 늙고 병들고 무능한 사람들이 모이는 병원이나 자선 단체도 아니다.
비록 삶의 문제가 있고, 갈등과 고민을 안고 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변화를 받아서 새로운 삶을 경험하는 곳이요,
그렇게 새로워진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곳이다.

세상과 이웃을 비난하며 살던 사람이, 그들을 돕고 협력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곳이고,
상처와 아픔을 가진 사람은 성령으로 고침을 받아, 밝고 맑게 살게 되며,
음란에 빠졌던 사람은 경건을 배우고, 이기적이던 마음이 넓어지는 것을 배우는 곳이다.

그리고 땅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에만 눈이 쏠리다가,
이제 영원한 것도 바라보는 것을 깨닫고 배우는 곳이 교회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신 영적 은사는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섬기기 위한 것이며,
깊이 묻어 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매일 삶의 현장에서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셋째는 결국 영적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렇게 영적 은사를 활용하므로 자신이 구비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될 때에,
궁극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를 바르고 강하게 세워 간다.
여기서 \"교회를 세운다\"는 뜻은 예배당을 건축한다는 것이 아니다.
바른 교회로서 온전한 성도들을 세운다는 의미인 것이다.

요즘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예배당을 짓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첫 선교사들을 내어 보냈던 영국을 포함한 유럽과 미국에서는
가장 좋은 위치에 가장 좋은 재료로 예배당을 웅장하게 세웠다.
그렇지만 성도들을 바로 세우지 못하여 결국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웅장한 건물에 소수의 노인들만 모여 있는 곳이 많고,
건물 유지비와 융자금을 갚느라고 정작 꼭 해야 할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은 교회를 귀하게 보시며 또 교회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신다.
한 국가나 민족을 볼 때에, 정치와 경제와 군사적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도,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가 건강하게 서 있으면 그래도 회복될 소망이 남아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거역하여, 외적의 침입도 받고,
멸망의 위기를 자주 당했지만, 그래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용감한 사람들이 남아 있었기에,
진멸되지 않고 끝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어떤 글에서 다음과 같은 교인들이 모인 교회가 가장 좋은 교회일 것이라고 적고 있다.
\"오순절교인들처럼 뜨겁게 기도하고 아멘 소리도 크고 열정적인 교인,
장로교인들처럼 교리와 교단을 존중하는 교인,
감리교인들처럼 사회 봉사에 열심히 참여하고, 다른 교파도 잘 용납하는 마음이 넓은 교인,
성결교인들처럼 중생을 강조하고 복음적인 교인,
침례교인들처럼 자기 교회를 사랑하는 교인,
그리고 문제는 있지만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전도에 열심하는 교인이 모인 교회라면 좋겠다.\"

주님의 교회를 더욱 사랑하라.
이것은 대리석으로 지은 예배당 건물을 아끼라는 말과 다르다.
하나님의 일을 귀히 여기라.
자기 직업에 충실한 것처럼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라.
하나님께 함께 드리는 예배를 귀하게 여기고, 예배 생활에서 샘솟듯 하는 기쁨을 맛보라.

예배에 실패하면서 풍성한 신앙을 가진 이가 없고,
예배에 기쁨을 누리면서 어둡고 억눌린 삶을 산 사람도 없다.
매 주일 드리는 예배가 새로운 감격과 은혜가 터지는 샘이 되도록 기도하며 참여하자.
주님과 만남이 새롭고, 찬송이 가슴에 차고, 감사와 감동이 넘치는 예배가 되게 하자.

주일 아침을 기다리는 성도가 되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자다가도 정신이 반짝 들어야 한다.
마치 소풍가는 아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나가는 연인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워서 이른 아침부터 기대에 차서 교회로 달려 오는 성도가 되자.
하나님이 그런 이들에게 하늘에 속한 놀라운 복들을 부어 주실 것이다.

\"세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대사 중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
\"무엇보다도 너 자신에게 진실하라.\"는 것이다.

미국 브로드웨이와 헐리웃에서 크게 이름을 날렸던 Jin Rockhard라는 스타가 있다.
그는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열리는 어느 연극에 출연해 달라는 급한 청탁을 받고
뉴욕행 기차를 탄 후에 대본을 읽어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좋은 연극 대사 중에는 욕설이 많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도 많았다.

록하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서 기도했다.
그리고 밤새도록 대사를 외운 후에 리허설에 들어 갔다.
연출자의 주문이 필요없을 만큼 모든 것이 척척 맞춰 들어갈 정도로 그는 배테랑이었다.
그러나 그가 욕설과 하나님을 모독하는 대사를 다 고쳐서 한 것을 눈치채는 사람이 없었다.

며칠 후에 막이 오르고, 극장에 초만원을 이룬 관객과 언론이 최고의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극장 수입은 엄청날 정도로 많아서, 모두 환호성을 올렸다.

얼마 후에 진 락하드는 자기가 대사를 고쳐서 했다는 사실을 토로했다.
모두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연극은 그대로 3년이나 계속적으로 공연되었다.
진 락하드는 자기 신앙에 진실했던 것이다.

주님을 믿는 자기 신앙에 충실하자.
우리를 여기 이곳에 세우신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정말로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