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장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나는 빌립보서를 가장 사랑한다. 주님과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뜨거운 심장을 느낄 수 있고 그의 심장을 가득채운 사랑과 기쁨을 볼 수 있으며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인 빌립보 교회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빌1장에 나타난 바울의 세 가지 고백을 사랑한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heart of Christ Jesus)\" (1-11)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타고난 성격과 심장과 기질의 종류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한다. 경상도 사람은 경상도 사람의 심장과 기질대로 전라도 사람은 전라도 사람의 심장과 기질대로. 그런데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기질도 다소 사람의 기질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과 기질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은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시는 심장인데 그 심장으로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감사하며 기도했다. 예수님과의 피의 관계와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의 사랑의 관계가 바울의 심장을 그렇게 만들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교제(fellowship)와 참여(participation)와 헌신과 사랑이 바울의 심장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서 바울은 감사하고 기뻐하고 사랑하며 기도했다. 2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rather, really)\" (12-18) 사람은 누구나 고난과 역경에 처할 때 낙심하고 원망하며 (또는 엄살을 부리며) 주저 앉는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가 당한 고난과 역경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도리어 잘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에게는 재난의 신이나 저주의 운명도 아무런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것들이 바울에게 도움을 주었다니! 하나님의 섭리의 손에 붙잡힌 사람과 성도들의 사랑의 손길에 붙잡힌 사람은 그렇다. 무엇이 잘 되었다는 말인가? 바울에게 무슨 이득이 생겼다는 말인가? 아니다. 복음의 진보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어차피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닌가! 1) 로마 시위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게 되었고 2) 로마 시의 겁쟁이 신자들이 담대하게 되었고 3) 바울을 시기하던 사람들이 바울이 매임 당한 틈을 타서 열심히 전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바울은 고난과 역경 때문에 그리고 그것들이 가져온 결과들 때문에 기뻐하고 또 기뻐했다. 바울은 못 말리는 사람이었다. 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torn between the two)\" (19-30)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 오래 살기를 원한다. 오래 살기 위해서 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경우는 정 반대였다. 바울의 솔직한 소원은 죽는 것이었다.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라고 고백했다. 바울은 이미 삶을 포기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사는 것이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바울은 기꺼이 죽음을 포기하겠다고 고백했다. 죽음과 삶, 그 두 사이에 끼어서 고민하다가 결국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하여 죽음을 포기하고 삶의 길을 택했다. 삶에 대한 바울의 동기는 우리들의 것과는 정 반대였다.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자랑이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그런 심정으로 바울은 이렇게 권면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협력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고난도 받으라. 삶과 죽음을 모두 포기한 바울의 권면에는 깊은 감동과 무서운 힘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