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강 골로새서 1장 강해
복음 진리의 능력
본문: 골1:3-8
(골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골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골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골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골1: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골1: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니라
우리는 지난 시간에 복음을 주신 것에 감사하는 바울 사도의 감사와 기도를 들었습니다. 그는 로마 옥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에겐 문제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복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 복음은 골로새 사람들을 성도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되게 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을 살리셨습니다. 그들은 거듭났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의 열매맺게 하는 능력으로 믿음과 사랑과 소망 중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복음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 능력있는 복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는 옥에 갇힌 몸이었지만 감사와 기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바울 사도가 그렇게 감사한 하나님의 복음은 오늘도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 이르는 곳마다 능력있게 역사하며 열매를 맺습니다. 복음은 복음 스스로의 능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역동적인 능력을 가졌습니다.
마치 씨앗이 스스로 자라 줄기와 잎을 내고 마침내 꽃을 피고 열매 맺듯이 복음이 그러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골1:6) 이 복음이 ...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복음은 스스로 열매맺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럼 복음의 어떤 성격이 그 복음을 능력있게 합니까?
무슨 특별한 비밀이 있어 복음은 스스로 열매를 맺어갑니까?
먼저 복음이 능력이 있는 이유는 복음은 \"은혜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그 은혜에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자신의 말씀 속에서 복음의 은혜성을 말씀합니다.
그는 골로새 교인들이 복음을 들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는 곧이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다고 말씀합니다.
\"(골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골로새 사람들에게 복음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골로새 사람들은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이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그 은혜는 그들을 변화시켰습니다. 복음은 그 은혜의 능력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이 복음을 듣고 은혜를 깨닫게 되는 사람들은 변화됩니다.
이 은혜에 감복합니다. 이 은혜에 심장이 찔립니다. 그래서 이 은혜에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찬송가 141장은이런 은혜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가 자신의 노래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 복음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이렇게 변화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세상의 모든 종교나 철학들을 살펴 보십시오.
그리고 모든 철학과 도덕 선생들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세상 어느 종교나 어느 철학도 이 복음의 은혜성을 따라 올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노력을 강조합니다.
모두가 자기 노력과 자기 극기로 벌어들이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까?
이들은 자기 노력의 결과를 얻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노력의 결과를 꼭 얻는 것도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꼭 얻는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이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은혜가 아닙니다.
이들은 인간의 노력, 인간의 수행, 인간이 행할 일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이들은 덕을 궁행실천합니다. 산에서 도를 닦습니다. 금식과 절제로 자신을 학대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앞은 아무런 보장도 없습니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불쌍히 보시고 긍휼히 보셨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의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 지셨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의 피로 우리 죄를 씼겨 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공로도 없이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영생을 얻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습니다.
우리가 행한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행할 일도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구원의 은혜를 빈 손으로 받을 뿐입니다.
찬송가188장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빈 손들고 앞에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샘에 나가니 맘을 씻어 주소서(찬송188장3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빈 손들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깨끗케 되었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변화됩니다. 새사람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은혜의 복음을 깨닫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계십니까? 복음은 그 은혜를 깨닫는 사람에게 역사합니다. 그래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리고 또한 복음의 능력은 그 \"진리성\"에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진리\"라 말씀합니다.
\"너희가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었다\"고 말씀합니다.
\"(골1:5하)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복음은 진리입니다. 진리인 복음엔 가감이 없습니다. 복음은 전혀 더하거나 뺄 것이 없습니다. 전적으로 완전하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복음을 왜곡하는 일은 있었어도 복음이 변경된 적은 없습니다.
복음을 사람들이 왜곡하고 그 복음을 더럽힌 일은 있었습니다.
교회역사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죄인들이 복음을 왜곡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집단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천주교회와 이단들이 그들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이비 종파들이 그러합니다. 이들은 복음을 훼손하고 인간의 철학으로 바꿨습니다.
복음의 훼손은 이미 초대교회부터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그의 여러 서신들이 복음을 왜곡하고 훼파하는 자들 때문에 쓰여진 것입니다. 오늘 이 골로새 교회에 쓴 편지도 그런 서신 중 하나입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에서 이 복음을 곡해하고 왜곡하는 자들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갈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미 바울 사도 당시에도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복음을 왜곡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율법주의의 그물로 덮었습니다.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을 행위로, 구약의 율법을 지키며 그 의식을 행함으로 바꿨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또 하나의 유대교로 바꿨습니다. 우리는 이런 자들을 유대주의자라 부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 만으론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의식을 행하고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골로새 교회에도 이런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복음을 도덕철학으로 바꿨습니다.
오늘날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훌륭한 도덕강의를 하는 것쯤으로 아는 이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견해를 밝히고 훈수두는 것이 복음사역자의 일인 것같이 말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교회는 사람들을 교화하는 \"교화장소\"로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목사의 설교는 도덕적 훈계 쯤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를 도덕선생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목사는 복음의 전파자입니다.
하나님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하고 풀어서 사람들이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도록 경고하고 경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복음으로 변화되어 믿음과 사랑과 소망 중에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들로 세우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합니다.
(엡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엡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것이 목사요 교사인 목회자의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목회자와 설교에 대한 오해가 팽배해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곡해와 훼손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복음을 훼손하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일은 무서운 재앙을 초래합니다. 그 일은 저주받는 일입니다. 지옥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토록 복음을 훼손하는 일은 저주받을 일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은 복음을 훼손해 왔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이단과 사이비는 그 짓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골로새서를 배우고 들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짓과 진리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토록 많은 이단과 사이비들이 복음을 곡해하고 훼손했다고 해서 복음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죄인들이 복음을 짓밟고 더럽힌다고 해서 복음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진리 됨을 멈추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다이아몬드에 오물을 칠해도 다이아모드는 다이아몬드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다이아몬드에 먹칠을 해도 다이아몬드 됨을 멈추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들이 가짜를 만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것을 가짜로 만듭니까? 값어치 없는 것을 가짜로 만듭니까? 아무 가치도 없는 것, 싸구려를 가짜 만드는 것 보았습니까?
진짜 귀한 것, 참으로 가치있는 것, 진짜로 귀중한 것을 가짜로 만듭니다.
비싸고 좋은 것은 가짜가 판을 칩니다.
사단은 우리보다 현명합니다. 진짜 가치있는 것이 무언지 잘 압니다.
사단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가치있게 여기고 중히 여겨야 할 것이 무언지 잘 압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이 복음을 가짜로 유사품으로 만들기를 즐깁니다.
사람들은 이 복음 진리의 위대함과, 존귀함을 모릅니다. 하지만 마귀는 잘 압니다.
사단은 이 복음이 사람을 구원하고 자기 수하에 있는 자기의 종들을 뺏어간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그들을 유사품으로 붙잡아 놓습니다.
오늘날 마귀의 모조품을 진짜로 알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귀의 종으로 사는지 모릅니다. 마귀는 진리의 모조품을 들고 수많은 사람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종교와 철학, 그럴듯한 이론으로 많은 사람들을 잡아두고 있습니다. 신비스런 사건을 조작하고 조장하며 어리석은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잡아 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라는 미명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단은 진리의 빛을 어둡게 하고 진리의 빛을 가로막습니다. 수많은 유사 종교와 수많은 유사 진리로 자기와 함께 멸망받을 자들을 가둬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증거합니다.
(고후4: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자연인들은 사단과 마귀의 지배아래 있습니다. 사단과 마귀는 그리스도의 빛을 차단합니다. 그래서 죄인들의 구원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사단의 지배 아래서 진리의 빛을 가림당하고 거짓 것을 믿도록 강요받고 있습니다. 이들의 결국은 멸망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계속하여 말씀합니다.
(살후2: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살후2: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살후2: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살후2: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단은 온갖 그럴듯한 능력과 표적 그리고 거짓 기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래서 진리를 가리웁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못 듣게 하고 배척하게 합니다.
그리고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은 이런 것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진리보다도 눈에 보이는 현상을 좋아합니다. 진리보다는 이상한 것 신기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진리를 거부합니다. 진리를 믿지 않으려 합니다. 도리어 비진리 거짓 것을 더 좋아합니다. 사단은 이런 멸망하는 자들의 아비입니다.
오늘날 천지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하면 비웃는 무리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진화론을 믿습니다.
그러나 진화의 결정적 증거물도 없습니다. 그리고 진화의 증거는 아무데도 없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창조가 아닌 진화론을 더 좋아합니다.
왜 일까요? 죄인들은 진리보다 거짓 것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말씀십니다.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란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에게서 진화했다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가설이며 죄인들이 하나님을 버리려는 교묘한 술책입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했고 우리는 그 분의 피조물이란 사실을 싫어합니다. 그 분을 따르고 창조주를 경배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스스로 왕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보다 진화론을 좋아합니다.
이렇게 죄인들은 진리보다 거짓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거짓이 사실이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을 뒤지고, 우주를 뒤져서 자기들의 이론이 사실임을 증명하려 듭니다. 지구 곳곳을 뒤져가며 진화의 증거들을 찾아봅니다.
우주선을 쏘아 달에 보냅니다. 화성에도 보내고 목성에도 보내고 우주의 기원을, 진화의 증거들을 찾아보려 돈과 인력을 쏱아 붓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진화의 증거는 없습니다. 우주 시작의 증거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화론은 단순한 가설이며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코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진화가 아니라 창조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진리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진리입니다.
나가노 올림픽의 피겨 스케이팅을 보며 우리 애들과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애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애들에게 물었습니다.
\"얘들아, 원숭이가 진화해서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스케이팅을 하고 있는 거다\"라고 믿을 수 있니?\"
성도 여러분! 여러분 생각은 어떠합니까?
아무리 원숭이가 진화해도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의 신체와 몸매를 가질 수 있을까요?
\"털달린 원숭이가 그렇게 진화를 해서 이젠 스케이트를 타고 한발로 서서 달리며, 뛰어 회전하고 그런 화려한 동작을 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습니까?
\"털달린 원숭이가 진화돼서 이젠 털없는 원숭이가 됐다\"고 믿으십니까?
과연 그렇습니까?
어느 진화론자가 평생을 진화론만 주장하다가 나이가 들어서야 회개를 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가 지나간 그의 생애를 후회하며, 열심히 진화론을 주장하며 낭비한 인생을 회개하면서 적은 놓은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고 합니다.
\"나는 사람이 동물로부터 진화해 왔다는 이론을 학술적으로 그 나름대로 자신있게 가르치기도 하고 많은 책을 내며 설명도 했다. 그런데, 한가지 꺼림직한 것은 동물원에 가서 원숭이를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다. 어떻게 저 원숭이가 내 조상인가? 어쨌든 원숭이가 조상이라는 생각에는 한심하고 묘한 감정이 있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여러분!
과연 인간 본성이 \"나는 원숭이에게서 진화했다. 나의 조상은 원숭이다\"라는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정말 전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사실을 바탕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적극적인 진화론자도 그러하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이 진리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죄인이 거듭나 새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새 삶을 살게 합니다. 복음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진리는 그 자체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화론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죄인을 거듭나게 하고 새사람이 되게 할 수 없습니다. 진화론은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론이며 인간을 모독하는 이론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부인하는 무신론입니다.
윌리암 부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구세군을 창설한 사람입니다. 성탄절이 가까우면 자선남비로 유명한 교파가 구세군입니다. 바로 이 사람이 그 구새군의 창설자입니다.
그가 길에서 전도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한 무신론자가 그를 조롱하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신단 말이요 그 하나님 좀 보여주시오\"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러자 부쓰는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좋소 그럼 저와 이렇게 해 봅시다. 당신이 주장하는 그 무신론을 믿고 변화받아 새 사람이 된 사람 10명을 데리고 오시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어 변화된 사람 200명을 데리고 오겠소. 그럼 다음 주 이 시간에 여기서 우리 만나도록 합시다.\"
그러자 하나님을 조롱하며 비웃던 사람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빠르게 그 자리를 피해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복음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복음 진리를 들었습니까? 복음의 은혜를 깨달았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자신이 변화된 것을 아십니까?
여러분은 새사람이며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과연 여러분은 복음 진리를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변화된 새사람입니까?
그리고 또한 복음의 능력은 그 \"객관적 확실성\"에 있습니다.
복음은 모호함이 없습니다. 복음은 확실하고 정확합니다. 복음은 누구나 \"이것이 복음이다\"라고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진짜고 저것은 가짜다라고 판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객관적 확실성입니다.
복음은 모호한 감정이 아닙니다. 환상 속에 헤메는 신비주의의 묘한 체험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바울 사도는 이 복음을 \"골로새 사람들이 배웠다\"고 말씀합니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교인들에게 역사한 복음을 말씀하면서 이 복음을 너희들이 에바브라에게 \"배웠다\"고 말씀합니다.
(골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골1: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우리가 복음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서 복음은 객관적인 진리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확실한 구체적인 진리임을 알게 됩니다.
골로새 성도들은 복음을 배웠습니다. 골로새교회의 지도자 에비브라는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골로새사람들은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배웠습니다. 그러자 그 복음이 능력있게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며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혼자 터득하는 그 무엇이 아닙니다. 아무도 가르칠 수 없고 스스로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특별한 체험을 하고 어떤 환상을 보고 그래서 깨닫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세상엔 스스로 터득하고 깨달아야 한다는 종교도 있습니다.
깨달음은 아무나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은 깊은 수련과 고행 속에서 온다고 합니다. 깊이 묵상하고 수련을 쌓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고통 속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깨달음은 너무나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라서 아무도 가르칠 수 없습니다.
단지 넌즈시 암시해 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모호하고 분명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들이 이런 모호함으로 자기들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호함 속에서 두려움과 신비감을 느낍니다.
특히 종교적인 일엔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많은 신비종교는 모호함과 신비로움을 가장 큰 무기로 삼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그 신비한 두려움 속에 사로잡힙니다.
그리고 가끔 무언가 아는 듯한 소리로 알 듯 모를 듯 암시를 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신비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런 모호함이 없습니다.
광명한 태양같이 밝습니다. 어린이도 듣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간수가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행16:30)...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바울 사도가 대답했습니다.
(행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단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답했을 뿐입니다. 빌립보 간수는 믿었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렇게 복음은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구원의 길에 어떤 모호함도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이 세상에 대해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도 모호함이 없습니다. 죽음 후의 일에도 모호함이 없습니다. 복음은 확실하고 명백합니다.
그래서 신비주의자들, 기묘한 환상주의자들은 복음을 싱겁다고 조롱합니다.
그래서 복음의 객관적 단순성을 비웃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복음은 명확합니다. 단순합니다. 밝은 빛과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빛을 줍니다. 사람들에게 확실한 구원의 길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명확한 미래를 약속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뻐합니다.
확실히 보장된 미래를 보며 오늘 당하는 그 어떤 환난과 고난도 능히 이겨 갑니다.
복음을 통해 알게 된 확실한 진리가 사람들의 삶을 확실케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힘있고 능력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골로새 교회에 임한 복음이 그랬습니다.
이 진리의 복음이 임하자 골로새 사람들은 변화 됐습니다.
밝히 알게 된 진리에 의해 미래에 대한 환한 소망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자 그들은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늘의 소망으로 기뻐했습니다. 진리의 복음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어 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여러분은 복음을 아십니까? 그 복음을 배웠습니까? 그 복음을 깨닫습니까?
복음 진리의 능력에 의해 새사람이 되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십니까?
성도들과의 사랑을 아십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하늘의 소망을 바라고 기뻐하십니까?
오늘 여러분 모두가 복음의 은혜와 그 진리됨과 그 확실함을 깨달아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성도들에 대한 사랑과 하늘의 소망으로 기쁨 중에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축 도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4-26).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량없는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크고 영원하신 사랑과 성령의 교통 위로 충만케 하시는 역사가, 복음에 담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깨달아 그 복음의 능력을 깨달은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과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가지고 어떤 미혹과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확신하며 견고한 믿음으로 기뻐하며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모든 교회와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의 심령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