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 양식론

삼위 양식론, 삼신론, 성경에 따른 삼일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계시

이 소책자는 삼일 하나님에 대한 세 가지 관점, 즉 삼위 양식론, 삼신론 그리고 성경에 따른 삼일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계시를 일반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하고 단순하게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삼위 양식론과 삼신론을 이해하고, 성경 안에 있는 삼일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계시를 봄으로써 주님의 백성은 삼위 양식론과 삼신론이라는 이단적인 극단들을 분별하고 피할 수 있어야 하며, 성경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전반적인 진리들을 이해하고, 그분의 영원한 목적에 따라 삼일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보다 쉽게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삼위 양식론
몇 가지 정의
삼위 양식론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이 용어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생소하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양식(mode)」, 「양식의(modal)」, 「양식론(modalism)」, 「양식론자(modalist)」라는 네 가지 용어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철학적인 의미에 따르면, 「양식(mode)」은 어떤 것으로 꾸며진 외관이나 형태를 나타낸다. 즉 그것은 나타남이나 형태 혹은 정돈된 방식을 가리킨다. 형용사인 「양식의(modal)」는 그 본질 혹은 실체와 구별되는 사물의 양식을 특징 짓는다. 「(삼위) 양식론」은 아버지, 아들, 성령이 각각 구별된 세 인격이라기보다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나타내시는 세 가지 양식 또는 행동 형태들이라는 신학 이론이다. 「(삼위) 양식론자」는 삼위 양식론이라는 신학적 이론을 신봉하는 사람이다.
삼위 일체에 대한 삼위 양식론적 관념
삼위 일체에 대한 삼위 양식론적 관념에 따르면 아버지, 아들, 영은 동등하지 않고 영원히 공존하지도 않으며, 다만 하나님이 세 번 연속적으로 나타나신 것이거나 세 가지의 일시적인 행동 양식일 뿐이다. 사실상 일원론의 한 형태인 삼위 양식론은 그분 자신의 속 존재가 삼일(三一)이신 것을 부인한다.

도리어 삼위 양식론은 아버지와 아들과 영은 신성한 구속 계획을 수행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채택하신 일시적 또는 연속적인 역할들이고, 그들은 신격의 궁극적인 본성 안에서 어떤 것과도 부합될 길이 없다고 주장한다. 삼위 양식론은 그리스도의 독립적인 위격을 인정하지 않으며, 성육신을 아버지의 존재 혹은 나타남의 한 양식으로 간주한다. 삼위 양식론자들에게는 아버지와 아들과 영이 다만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계시하는 수단일 뿐, 그분의 속 존재와는 아무 관련도 없다.
삼위 양식론의 간략한 역사
이제 삼위 양식론의 간략한 역사와 그것을 신봉하는 몇몇 인도격인 인물들의 사상을 고찰해 보자. 2세기 말엽에 유일신론이라는 가르침의 형태가 출현했다. 삼위 양식론, 혹은 「양태론적 유일신론」으로 알려진 이것은 유일신론의 한 형태이다. 「유일신론」이라는 단어는 한 사람의 통치를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 「모나키아(monarchia)」에서 파생되었다. 유일신론자들은 신성한 연합 또는 「군주국(Monarchy)」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들의 지배적인 원칙은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셋이신 면의 계시를 설명함에 있어서, 유일신론은 그리스도인들이 세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사상을 배제하고자 했다. [4] 이러한 원칙을 유지하면서 양태론적 유일신론자들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도 주장하고자 했다.

그러나 우리가 보겠지만, 삼위 양식론자들은 사실상 그리스도의 독립적인 위격을 희생시켜 아버지의 실체 안으로 흡수되게 했다. [5] 삼위 양식론은 단순한 믿는이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신론, 삼신론(둘 혹은 세 하나님이라는 신앙)의 타락에 맞서 한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보존해 주는 최선의 방법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6]

삼위 양식론 학파의 초기 대표자들 가운데 프라케아스(Praxeas)와 노에투스(Noetus)는 둘 다 2세기 말에 소아시아에서 로마로 왔다. [7] 프라케아스는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의 동일한 위격인데, 아버지 자신이 사람이 되사 그리스도 안에서 굶주리고, 목마르고, 고통받고, 죽으셨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관점은 또한 「성부 고난설」로도 알려져 있는데, 라틴어로 「아버지」라는 뜻의 「pater」와 「고난당함」이라는 뜻의 「passio」에서 온 것이다. 이는 아버지와 아들을 실질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이 아버지가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셨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교회 역사학자인 필립 쉐프의 말에 의하면, 프라케아스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영과 육체의 관계로 생각했다. 영과 동일한 대상이 아버지요, 아들과 동일한 대상이 육체이다. 그는 카톨릭의 삼신론적인 교리를 생각했다.』 [10] 프라케아스가 지지한 삼위 양식론은 한때 로마에서 영향력이 있었고 유행했었다. 3세기 초에 신격을 「세 인격 안의 한 본질」이라고 정의한 터툴리안은 「프라케아스에 대한 반박」이라는 제목의 소책자에서 프라케아스가 성령을 몰아내고 성부를 못박았다고 반박하는 글을 썼다. 노에투스(Noetus)는 A. D. 200년 경에 프라케아스와 같은 견해를 출판했는데,

그는 『그리스도는 아버지 자신이었고, 아버지 자신이 태어나셨고, 고난받으셨고, 죽으셨다.』고 가르쳤다. [12] 노에투스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는 그분이 아버지와 동일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노에투스에게 있어서 신격의 분할이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고난받은 것은 아버지가 고난받은 것이었다. [13] 노에투스에 의하면 오직 한 하나님, 아버지만 계셨으며, 그분은 그분이 기뻐하시는 대로 그분 자신을 나타내셨다. 아들은 다만 하나님의 명칭일 뿐이며, 그때 그분은 자신을 세상과 사람들에게 계시하셨다. 아버지는 땅에서의 체험과 관련된 일정 기간 동안만 아들이라고 불리셨다. 노에투스에게 있어서, 아들은 육신 안에 가려진 아버지이다. [14] 노에투스의 제자들인 에피고누스(Epigonus)와 클레오메니스(Cleodmenes)도 로마에서 그의 교리를 전했다. [15]

나중에 교황 칼리스투스 1세가 된 칼리스투스(Callistus)도 노에투스의 교리를 채택하고 지지하여 아들은 단지 사람의 형태로 아버지가 나타나신 것이라고 했다. 칼리스투스는 영이 몸에게 생명을 불어넣듯이 아버지도 아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가르쳤다. [16] 그의 반대자들이었던 이신론자(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칼리스투스는 육신을 입은 하나님은 아들이라고 불리나, 육신을 떠나서는 아버지라 불린다고 가르쳤다. [17]

3세기 초에 베릴루스(Beryllus)는 아들의 인격적인 존재를 부인하고, 사람들 가운데 오시기 전에는 그분이 자신의 개별적인 존재를 갖지 않았다고 가르쳤다. 베릴루스는 또한 그리스도의 독립적인 신성을 부인하면서, 그분은 고유한 신성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땅 위에서의 생애 동안 그분 안에 거했던 아버지의 신성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어떤 의미에서 베릴루스는 삼위 양식론의 초기 학파와 사벨리우스파 사이의 징검다리였다. [18]

사벨리우스(Sabellius)는 삼위 양식론자들 중에서 단연코 가장 근원적이고, 심오하고, 교묘한 자였다. [19] 그의 이론은 본질적으로 노에투스의 이론이지만,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졌으며, 아들에게는 물론 성령에게도 명확한 위치를 부여했다. [20] 사벨리우스는 하나님의 단일성을 보존하는 데 있어서 앞서 있었던 자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 같다. 그는 하나님이 한 본질이실 뿐 아니라 한 위격이라는 것을 가장 가능한 방법으로 주장했다.

사벨리우스에 의하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모두 한 분이시고 동일한 분이시며, 자신을 환경에 따라 다른 식으로 나타내시는 한 하나님의 세 이름이다. 아버지이신 그분은 창조주요, 주관자요, 율법을 주신 분이며, 아들이신 그분은 구속주로 성육신 되신 분이고, 영이신 그분은 사도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분이요, 거듭나게 하는 분이요, 거룩케 하는 분이시다.

그러나 사벨리우스에게 있어서 그분은 유일하고도 동일한 하나님이시고, 유일하고도 동일한 신격이시며, 연속되는 일시적 표현들 안에서 나타나셔서 마치 한 개인이 다양한 역할에 따라 다른 칭호로 불리우듯이 이 모든 방식으로 행하는 분이시다. [23] 하나님은 아버지, 아들, 성령으로 동시에 역사하지 않으시고, 그 필요에 따라 하나의 행동에서 또 다른 행동으로 이어서 전환하여 유일하고도 동일한 하나님이 때로는 아버지로, 때로는 아들로, 때로는 성령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결코 모두 동시에 존재하시지 않는다. [24]

사벨리우스의 근본적인 사상은, 하나님의 단일성이 세상에 펼쳐지는 과정 가운데서, 혹은 계시의 기간 동안에는 세 가지 형태로 드러나나 구속이 완성된 후에는 다시 단일함으로 복귀되신다는 것이다. [25] 사벨리우스는 아들의 계시가 승천으로 끝나고 영의 계시는 거듭남과 거룩케 함까지 계속된다고 가르쳤다. [26] 그러므로 사벨리우스의 삼위일체는 하나님의 속 존재인 본질의 삼위일체가 아니라 계시의 삼위일체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단지 한 신성한 본질이 그 자체를 계시하는 세 가지 다른 면의 명칭일 뿐이다.

사벨리우스는 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각자의 임무를 완성한 후에는 추상적인 실체로 복귀되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한 것에서 정통 교리와 다르다. [28] 사벨리우스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님의 속 존재 안에서 영원히 동시에 존재하심을 부인한다. 오히려 그는 아버지와 아들과 영은 하나님의 한 인격의 일시적이고도 연속적인 나타남이라고 주장했다.

유명한 교리 학자 베튜운 베이커(J. F. Bethune-Baker)의 말에 의하면, 사벨리우스에게 있어서는 『참된 성육신이 없고,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났던, 따로 분리시킬 수 없는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이 없다. 하나님은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 자신을 나타내셨으며, 그 역할을 수행하고 위대한 연극의 막이 내릴 때, 그리스도 또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역할은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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