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제20강

에베소서 강해설교 20

빛의 자녀들(엡 5:8-14)

옛 어른들이 혹 못된 아이를 보면 \"저 놈은 뉘 집 자식이냐?\"라고 부모를 나무랐다.
반면에 착한 아이를 보면 \"그 뉘 집 자녀인지 참 훌륭하구먼!\"이라고 칭찬했다.
좋은 자녀는 자기 자신만 아니라 그의 부모까지 칭찬을 듣게 되고,
반면에 못된 자녀는 온 집안을 부끄럽게 한다.

나라 지도자의 아들이 마약을 하고, 추태를 부리니 그의 부모도 수치를 당하고,
반면에 자랑스런 일을 한 사람은 그 자신과 부모와 나아가서 모국에도 자랑이 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닌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두 발로 뛰기 전에 두 무릎을 꿇는 사람이고,
머리에 가득한 지식으로 경쟁하기 전에 하나님의 성령을 의존하는 사람이다.
또한 이 땅에 살면서도 천국 시민권을 가졌기에, 낮은 곳에서 저 높은 곳을 바로 보며,
자기의 귀한 것들을 나눠주면서도 \"여호와가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한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과연 어떤 신분을 가진 자인지를 말해 준다.
우리의 신분과 위치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 성경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라.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8).

이것은 놀라운 선언이다.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믿고 받아 들이기 전에,
우리는 어두움이었다. 가는 곳마다 어둠을 주고, 빛을 가로 막던 자라는 것이다.

어둠은 범죄를 의미하며, 어둠은 부정직과 갈등과 아픔을 의미한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금지된 열매를 따 먹은 후에
두려움이라는 어둠이 덮쳐서 동산 나무 뒤에 숨었다.
가인의 마음에 질투라는 어둠이 덮히니 사랑하는 동생을 쳐 죽이는 살인을 했고,
노아 시대의 사람들의 마음에 음란과 방종의 어둠이 싸이니
홍수에 빠져 죽을 때까지 그들이 처한 긴박한 위험에 대하여 전혀 무감각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옛 모습이었다. 그러나 빛을 보고 그 빛을 믿은 후에 우리는 달라졌다.
\"죄를 범하는 것은 보통 사람이고, 죄를 즐기는 자는 마귀이며,
죄를 회개하는 자는 성도이고, 죄를 용서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을 때에 어둠의 옷을 벗어 버리고, 빛을 입은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빛의 자녀라고 그 신분을 밝혀 주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이 얼마나 감사한 사실인가!
세상 속에서 어둠으로 살던 우리가 이제는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빛의 자녀로 살라고 주님은 명령하신다.
더 이상 옛날처럼 어둠 가운데서 방황하거나, 죄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살지 말라는 것이다.
더 이상 뒤에서 수근거리며 불평하며 주위 사람들을 비난하는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이다.

빛 가운데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컴컴하고 깊은 감옥 속에 갇혀 있던 바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 가운데 살 수 있었는가?
그렇다. 이것은 외부에서 빛이 들어오는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마음 속에 빛이 있는가를 우선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와 로마의 무서운 박해를 피하여
깊은 산골이나 토굴 또는 지하 동굴같은 데서 살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빛 가운데 살았다.

그러므로 빛 가운데 산다는 것은, 자신을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다 드러내도
결코 양심에 거리끼거나 수치를 당할 것이 없는 것을 말한다.
만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양심에 빛에 비춰 보거나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 비춰서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면 그 얼마나 담대하겠는가?

그래서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는다고 말했다(요일 3:21-22).

여기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것은 우리가 빛 가운데 살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빛이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의 말씀이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해서든지 어둠에 있지 않고 빛 가운데 살려고 애썼다면,
빛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받아 들인 후에 우리 자신이 빛이 되었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빛 가운데 사는 것보다 어둠을 몰아내야 한다.

예전에 지금처럼 전등이 흔하지 않을 때에는 집에 등잔이나 촛불 또는 남포들을 썼다.
날이 어두워지면 집 안 여기 저기에 등을 밝혔고, 여름에는 모기들이 모여 들었다.
그러다가 전등불이 일반화되면서 이제는 밤에도 대낮처럼 밝아지게 되었다.

금을 캐는 사람들은 땅 속 깊은 곳까지 금을 찾아 들어간다.
그곳이 깊고 어둡다고 바깥에 서성거리고만 있으면 절대로 금을 얻지 못한다.
등을 밝게 켜서 길을 밝히면서 금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다.

밝은 전등이나 환하게 켜진 촛불을 들고 굴 속에 들어가 보라.
숨이 막힐 정도로 어둡던 굴 속이 금방 환하게 밝혀지지 않는가!
어둠이 무섭다고 그것을 피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제는 어둠을 몰아내는 데까지 가야 한다.
죄를 피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자세이지만,
죄에 대하여 대항하고, 그 죄를 몰아내는 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할 책임이다.

우리는 흔히 이 세상의 죄악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멀지감치 떨어져 구경만 하기도 한다.
나와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는 경우가 많다.
악법이 통과되든지, 총기 사고를 유발하게 하는 규정들이 있든지 말든지
나와 우리 가족과 우리 교회만 안전하면 상관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이제는 우리가 빛 가운데 살면서, 우리 주변에 있는 어둠들을 몰아 내자.
어둠이 생기지 못하게 우리의 빛을 더욱 밝게 비추자!

어떻게 사는 것이 빛의 자녀다운 삶인가? 여기 몇 가지가 제시되어 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9-10).

우선 착하게 사는 것이 빛 가운데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착한 사람들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면서 왜 그렇게 악질이냐?\"라거나,
예수쟁이들이 더 지독하다는 등의 악평을 받는 것은 결코 빛 가운데 사는 것이 아니다.

착하게 사는 것이 바보처럼 사는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라.
바보는 착한 것이 아니라 진리와 오류를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것이다.
착하면서도 지혜로울 수 있고, 착하면서도 뛰어난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라.

그리고 선량하게 산다고 언제나 손해만 보는 인생이라고 단정하지 말라.
우리는 무턱대로 착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기 때문에 다르다.
우리 예수님은 선하고 인자하시며 오래 참으시는 분이 아닌가!

그리고 둘째는 의롭게 사는 것이다.
예수믿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내가 무슨 선행을 함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의한 자처럼 살 위험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죄를 범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요,
죄를 즐기는 것은 마귀가 하는 것이지만,
죄를 슬퍼하는 것은 성도가 하는 것이고,
죄를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의 사람은 죄를 미워하기 때문에 불의와 친해 질 수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의를 아는 자들이 불의와 짝할 수 없다.
우리의 불의와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거기 머물겠는가?

구약의 발람이라는 선지자는 불의의 이익을 노리다가 삯군이요 사이비 선지자가 되었지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의식을 행함으로 의로운 채 했지만 예수님께 책망을 들었다.
그래서 불의로 진리를 막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늘로부터 심판이 있다고 성경은 경고한다.

셋째는 진실하게 사는 것이 빛 가운데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데,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성경은 선포한다.
즉 예수님에게는 죄인에 대한 한없는 용서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으시지만,
동시에 죄와 거짓에 대해서는 한 치도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분이다.
이 두 가지가 완벽하게 조화된 분은 이 세상에 예수님 밖에 없다.

사단에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무엇인가? 거짓이다.
마귀는 변장을 좋아하고, 마치 자기가 빛의 천사인 것처럼 우리를 속인다.
죄가 우리에게 접근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처음부터 도박이 패가망신하거나 인생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말하면서 접근하는가?
마약 중독에서 간신히 벗어난 이들의 공통적인 말이 무엇인가?
마약이 결국 자기를 그렇게 패인이 되게 할 줄은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링컨이 얼마나 정직했는지에 관한 일화가 많다.
그는 24살 때에 일리노이주의 어느 우체국 직원으로서 년봉이 $55.70였다.
그는 \"정직한 에이브\"(Honest Abe)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정직했다.
그가 일하던 뉴샬렘 우체국은 1836년에 문을 닫았는데,
링컨의 재정관계를 정리하는 중에 $17.00이 미납된 것을 발견하였다.
그때 링컨은 이름없는 변호사로서 갈등하는 시절이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링컨은 낡은 트럭에서 노랗게 바랜 낡은 헝겊에 싼 주머니를 열었다.
거기에 정말 $17.00의 돈이 남아 있던 것이다.
지난 24년 동안 그는 자기의 것이 아니라도 생각되었던 그 돈에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 동안 내가 번 돈 이외에는 손을 대지 않았소.\"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도 정직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진실한 것이 요즘 세상에서는 종종 미련하다거나 바보스런 취급을 받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그런 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펴시며, 결국 높여 주신다.
배우지 못해서 무지한 것은 슬픈 일이고,
가진 것이 없어서 가난한 것은 불편한 것이며,
진실하게 사는 것은 힘겹지만 최선의 삶과 신앙을 위한 전략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빛 가운데 사는 것이다.
이제 성경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시험해 보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떻게 감히 하나님을 테스트하겠는가? 이것은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우리가 어떠할 때에 정말 기뻐하시는지 보라.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때에 제일 좋아하는지 관심이 있고,
사랑하는 아이들이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에도 관심이 있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들에 대해서도 그 분들이 좋아하시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대개 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그의 좋은 자녀라고 말하겠는가?

잠언에서는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16:7)고 말하며,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이 계셨다고 말씀했다(요 8:29).

성경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이 몇 가지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그를 믿는 믿음이다. 그래서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히 11:6). 그리고 바울의 고백처럼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는 까닭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고(살전 2:4), 구약의
에녹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는데, 그것은 항상 하나님과 동행한 것이었다(히
11:5). 또한 선을 행하고 넓은 마음으로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고
성경은 말한다(히 13:6).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려고 최선을 다하자.

빛의 자녀는 어떤 것에 주의해야 하는가?
\"너희는 열매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오히려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11-13).

먼저 열매없는 어둠에 속한 일에는 아예 참여하지 않아야 하며, 오히려 책망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은밀하게 행해지는 것은 수치스런 일일 가능성이 많다.
이것은 불신자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이 범하는 죄들을 염두에 둔 말이다.
그런데 죄일 줄을 알면서도 서로 모른척 하는 것은 결국 죄를 조장하는 것이 된다.
고린도교회에서는 무서운 범죄들을 저지르면서도 서로 눈감아 준 적이 많았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죄에 대하여 책망할 수 있어야 그것이 빛 가운데 드러나고,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여 구부러진 것을 고치고,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혹시 빛 가운데 드러나면 부끄러워할 일들이 우리 속 어느 곳에 감춰져 있지 않은가?
남이 알면 창피할 일들이 있으면, 속히 털어 버리고 새해를 맞자.
그리고 갚을 것이 있으면 최선을 다하여 갚고, 풀 것이 있으면 풀자.
그러면 믿음의 담대함을 다시 회복할 것이며, 믿음의 기쁨을 다시 찾을 것이다.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이에 대하여 무슨 명령을 받고 있는가?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14).

이것은 믿는 자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이다.
구약의 이사야서에서 범죄하여 책망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일어나 빛을 발하라\"(사 60:1)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나게 하는 구절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우상을 섬기기도 하고,
재물과 하나님과 우상을 섞어서 믿으므로 순수한 신앙을 혼탁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흙탕물 속에서 나와서 빛을 발하라는 하나님의 독촉이시다.

에베소에 있는 그들도 이미 예수믿고 새 생명을 얻었지만, 여전히 어둠에 속한 일을 하여,
믿는 자이면서도 영적으로 죽은 자들처럼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그런 어둡고 부끄러운 자리에서 깨어 나서 벌떡 일어서라는 도전의 말씀이다.
주 예수를 믿고 죄용서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데, 왜 거기 그렇게 있는가를 도전한다.
왜 아직도 많은 핑계를 대면서 교회를 멀리하거나 하나님의 일에서 멀어지려고 하는가?
하나님을 어떤 것을 기뻐하시는지 잘 알면서도 왜 불신앙자처럼 생각하고 말하는가?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빛으로 비취고 계시지 않는가?

그리스도인은 빛에 속한 자녀들이며, 그 자신이 빛이 되었다.
빛 가운데 살려고 애쓰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빛을 발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

정말 하나님을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로 믿는가?
정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삶을 책임지시며 인도하신다고 확신하는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이제는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 주자.

얼마 전 뉴욕의 할렘가의 한 허름한 아파트에서 불이 났다.
그런데 한 맹인 여자 아이가 4층에서 불길에 싸여 창 밖으로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소방관들이 커다란 그물을 펴고 뛰어 내리라고 소리를 치지만 아이는 두려워 떨고만 있었다.
그때 아이의 아버지가 확성기를 통해서 아이를 향해서 소리를 쳤다.
\"아빠다. 바로 네 밑에 그물을 쳐 놓았으니 그냥 뛰어 내려라. 아빠가 보고 있다.\"
그 말을 듣자 마자 맹인 아이가 창문에서 밖으로 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아이는 무사히 그물에 떨어져서 상처도 전혀 입지 않았고, 사람들은 환호성을 올렸다.
그는 자기를 사랑하는 아빠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완전히 믿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자가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할 삶의 모습이다.

이 어둔 세상에서 빛 가운데 살며, 빛의 자녀로 산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혹 경제적 손실을 볼 수도 있고, 너무 고지식하다느니 융통성이 없다는 말을 들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타협과 아부와 비양심적인 일들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우리라도 바르게 살자.

오늘은 1999년을 보내는 마지막 주일이다.
이제 한 주일을 지내면 새 천년의 21 세기가 밝는다.
예수님이 오신지 이미 2000년이 지나는 아주 중요한 시기가 된다.

그런데 아직도 세상에는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세계 인구의 반이 넘고,
우리 주변에도 복음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얼마든지 남아 있다.
사랑하는 그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좋은 길은 없는가?
이제는 우리가 정말 빛 가운데 살아서 칭찬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죄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용감하게 거절하며, 자기 욕심을 이겨야 한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새 해와 새 천년에는 우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빛이 더욱 밝히 빛나도록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