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제21강


에베소서 강해설교 21



어떻게 행할 것인가?(엡 5:15-21)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고 벌써 한 주간이 지났다.
갖가지 위험 신호가 퍼지고, 이단과 사이비는 더욱 극성을 부리며,
세계 각처에서 종교 종교간의 갈등이 점점 더 초긴장을 이뤄가고 있다.
주님의 재림이 더욱 가까워진 이 때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마땅한가?

사람들은 죽음이 가까워지면 보다 진지하고 솔직해 진다.
그리고 새해를 맞으면 무엇인가 새로운 결단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런데 실제로 그 많은 결단을 얼마나 실천하고 얼마나 만족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아무런 결단이나 방향도 없이 되는 대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새해의 결단들을 보면 대개 그 동안 제일 즐기던 것을 중단하겠다는 것이 많다.
체중을 빼기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줄이고 운동을 더 하겠다는 결단이나,
다시는 음주와 흡연이나 고스톱이나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얼마나 지켰는지?
새로운 해의 결단이 지난 해의 습관과 충돌할 때에 심각한 골치거리로 변하고,
좋은 결단을 내리는 데에는 시간이 걸려도, 그것을 중단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비록 작심삼일이 될지언정 끊임없이 새로운 결단을 하는 자가 그래도 전진한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성경 말씀이 이 시대에도 우리 삶과 신앙의 표준이라는 것이다.
세태가 변하고, 세상이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지만,
지난 수 천년 간 변함없는 이 성경 말씀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가장 정확하고 진실한 삶의 표준으로 삼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5:15-16).

21 세기는 너무도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큰 낭패를 당할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주의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과거에 하던 관행대로, 또는 옛날 습관대로 살다가는 형편없이 뒤지고 만다.
돌덩이처럼 굳어져 버린 관습과 전통을 고집하다가는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

이 시대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보다 신중하고 주의깊게 생각해야 한다.
생각이 얕은 사람은 꾀는 많아도 참 지혜가 부족하다.
여기서 세우러을 아끼라는 말씀은 곧 삶의 기회를 잡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기회는 가까이 다가왔다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이 때에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라는 말씀이다.

주를 믿는 믿음의 기회를 더 잘 활용하여, 주님 앞에 설 때에 부끄럽지 않게 하고,
주의 말씀을 배우고 훈련하는 기회를 더 활용하여, 믿음의 뿌리와 열매를 견고하게 하자.
봉사하는 것도 아무 때나 하고 싶을 때에 하는 것이 아니고 기회가 지나간다.
주를 위한 사역과 섬김과 헌신의 기회는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미국 어느 지방 신문사에서 시 작품을 모집하였다.
제목은 \"만일 일년 밖에 더 살지 못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였는데 당선작을 보자.

\"내 생애에 마지막 일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
세상을 조금 더 밝게 하기 위해서, 돕는 일년, 주는 일년, 사랑하는 일년,
축복하는 일년, 노래하는 일년, 미소를 주는 일년을 살겠다.

내 생애에 마지막 일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
주님을 찬양하는 일년이 되고, 더 성실히 일하는 일년이 되고,
주님 앞에 설 때에 상급받도록 준비하는 일년이 되게 하며,
지금처럼 매일 성실하게 살고, 영원을 준비하는 매일이 되겠다.

내 생애에 마지막 일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
즐거운 웃음을 주고, 돕는 손이 되고, 이해하는 가슴이 되고,
매일 주님을 섬기며 남은 날을 살겠다...\"

그러나 일년이 아니라 10년 또는 30년이 남았다고 해도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5:17).

요즘 세상은 엄청난 지식과 정보의 바다에 빠진 것같은 사회가 되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서는 너무 무지하다.
달 나라와 화성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아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무지하고,
증권 시장의 변화는 잘 예측하면서도, 주의 재림에 대해서는 준비하는 것이 없다.
세계 정세에는 밝아도, 주님의 뜻을 모르면 그는 어리석은 자이다.
영적으로 어리석은 자는 마음 눈이 어두워서 바른 것을 분별하지 못한다.

1775년 가을에 볼티모어의 한 대형 호텔에 허름한 농사꾼 차림의 손님이 들어와 방을 청했다.
호텔 매니저는 그런 복장을 한 사람을 받으면 호텔의 품위가 상할까 봐 거절해 돌려 보냈다.
그 사람은 다른 호텔에 가서 숙박하게 되었는데, 잠시 후에 알고 보니 그가 미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이었던 것이다. 놀란 호텔 매니저는 쪽지를 보내서 정중히 사과하고 다시 자기
호텔로 돌아와 달라고 청했는데, 그는 이렇게 답변을 보냈다.
\"나에게 빈 방을 주겠다니 고맙지만 이미 여기서 방을 찾았습니다. 허름한 농사꾼이라고
거절한 것을 보니, 미국 부통령에게 아무리 잘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호텔은 어리석은 매니저 때문에 큰 실수를 범하여 나쁜 소문을 얻게 되었다.

지금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전혀 바로 알지 못하고,
그를 거절하며,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어리석은 삶을 고집하고 있다.
성경이 어디나 있고, 설교를 들을 기회는 흔해도, 마음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세운 계획과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을 올리지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고 그 뜻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차디 차다.

나 개인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이해하라.
우리 가족과 우리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라.
이 시대에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면 그 수고가 헛되지 않고, 그 경주가 방향을 잃지 않는다.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5:18).

이 세대는 술취한 세대와도 같이서 이리 저리 휘청거린다.
윤리의 기준이 없어서 어느 것이 예절이고, 어느 것이 에티켓인지 불투명하다.
사람이 총에 맞아 죽어도 살인자가 정신병이 있으므로 무죄라는 이상한 판결이 나고,
윤리를 무시되어도 돈만 벌 수 있다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술취하면 제 정신이 아니다. 그는 곧바르게 걷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술취하면 도덕이 무너지고, 말을 함부로 하며, 행동에 절제를 상실한다.
이 시대가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모두 흔들린다.

지진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흔들리는 기반 위에
살고 있다고 한다. 즉 지진대가 대단히 넓게 퍼져 있다는 것이며, 그 가운데서 지진의
잠재력이 가장 높은 곳은 남부 캘리포티아, 동남부 하와이, 커키, 대만, 아이슬랜드, 그리고
인도차이나 국경 지대라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안심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동성연애자들에게 정상적인 부부가 누리는 혜택을 동일하게 주라는 법이 통과되어서,
이제 동성연애자의 결혼 주례를 거부하는 목사는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한다.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동성연애자에 대해서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는 정책을 주장했으나
실패를 인정했다. 정말 술취한 세대와 같지 않은가?

그런데 여기 이 시대에 지혜롭게 사는 가장 확실하고도 강력한 길이 여기 있다.
재산이나 경험이나 기술에 비교할 수 없는 힘의 근원이 있다.
이것은 성경 지식이나 신학이 감당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것이다.
그것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을 받아 사는 것이다.
그것은 이 시대가 고안해 낸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도 아니고 비법도 아니다.
그것은 성경 실력이나 현대 과학의 힘을 빌리는 것도 아니다.

믿는 자 안에는 성령이 거하신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마치 카셋 테잎에 녹음된 음악과 같다. 음악이 녹음되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하나는 붙어 있는 라벨을 보고 알고, 또 직접 들어서 안다.

마찬가지로 믿는 자 안에 성령이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믿음으로 알고,
또 실제로 성령의 열매를 보아서 알 수 있다. 우선 성경대로 믿고 순종하면 그것을 경험한다.

성령의 충만을 받는다는 것이 이 초현대 과학 시대에도 해당되는 것인가?
지식이 팽배하고, 컴퓨터를 통해서 세계가 한 울타리보다도 좁은 느낌을 갖는 이 시대에도?

시련을 많이 겪은 다윗은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그 머리에 기름을 바르셨다고 하면서,
성령의 기름부음에 대하여 감격적으로 고백했다.
시련을 이기는 것은 끈기나 용기나 인내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그것을 오히려 은혜로 받아 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 예수님은 그 인격과 삶이 온통 하나님으로 가득차 계셨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로 가득한 것이 곧 성령 충만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열매가 나타나게 된다. 속에 가득한 것이 밖으로 나오게 마련이다.
즉 사랑하게 되고,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선한 마음과,
충성스럽고 온유한 마음과 스스로 자기를 절제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을 받았고, 독주를 마시지 않고,
단순하지만 위력있는 짧은 삶을 살았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그 극심한 환난 속에서도 성령의 충만을 받아 넉넉히 이겼고,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니 학식은 없었지만, 한번 설교에 수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였다.
평신도 스데반 집사가 성령에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조리있고 권위있게 외칠 때에,
그는 눈을 들어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예수님이 그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았다.
바나나는 착하고 성령이 충만한 자로서 바울을 세우는데 큰 몫을 담당하였으며,
바울은 성령이 충만하니, 군왕이나 대제사장 앞에서도 담대히 예수를 전했던 것이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말이 달라지고, 얼굴빛이 달라지며, 행동과 삶이 달라진다.
마치 오래 비가 오지 않아서 바싹 말라버린 숲에 단비가 흠뻑 내려서
온 산이 생기를 얻고, 나뭇잎마다 새 힘을 얻는 것처럼,
성령으로 충만하면, 마치 죽은 것 같았던 맥없는 신앙이 독수리같은 새 힘을 얻고,
각박하고 옹졸하던 마음이 넓게 트이며, 주님과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

고든 코넬 대학의 설립자 중이 한 사람인 A. Gordon이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이 우물에서
펌푸질하는 광경을 보았다.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사람이 아니라
사람 모양의 나무 조각이었다. 그 손을 펌푸 손잡이에 붙여 놓아서, 물이 넘쳐 흘러나오며
자동적으로 팔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이었다. 즉 사람 모양의 조각이 물을 퍼 내는
것이 아니라, 샘에서 흘러 나오는 물의 힘으로 그 손이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의 삶과 비슷하다. 내가 내 노력으로 진리의 샘에서 물을
길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 잡혀 있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나를 통해서 생수가 흐르게
되고,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바울이 주의 은혜에 붙잡혀서 용감하게 복음을 전했던 것처럼, 우리도 성령께 붙잡혀 살아야
활기차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

성령에 충만한 삶이란 은혜와 진리의 성령께 나를 온전히 맡기는 삶이다.
그것은 환상을 보고 계시를 받고 신비한 체험을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치 스폰지가 물에 잠기면 물이 스폰지 속에 가득하게 차는 것과도 같다.
그렇게 물이 가득한 스폰지는 조금만 눌러도 물이 뚝뚝 떨어지게 된다.

정말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그에게 즐거운 일이 닥치든지 환난이 오든지
거기서 나오는 것은 성령의 바다에서 흘러 넘치는 은혜와 진실과 사랑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한 교인이라고 하면서, 그 입에서 불평과 원망과 거짓말이 나온다면
그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에 불과하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5:19-21).

이제 성령에 충만한 사람들에게 현저하게 나타나는 몇 가지의 현상을 생각해 보자.

첫째는, 그의 입에서 신령한 노래가 나온다.

하나님을 찬송한 사람들 가운데 아마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댜윗일 것이다.
그의 시편은 하나님을 향한 깊고도 강하며 영감이 넘치는 노래들이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리오니
주는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환난날에 피난처이심이니이다.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의 나의 산성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 59:16-17).

무슨 노래를 자주 흥얼거리는가?
세상을 한탄하는 비탄과 슬픔의 노래를 종종 부르는가?
사랑의 이별과 죽음의 고통의 노래를 많이 부르는가?
아니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뻐하면서 감사하는 노래를 많이 부르는가?
시시 때때로 나를 도우시고 잡은 손을 놓치 않으시는 주님을 높이는 노래를 부르는가?

이제부터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노래를 더 부르고, 주를 사랑하는 노래를 더 부르고,
곡조있는 기도가 되도록 믿음의 노래를 더 부르자.
다윗처럼 시편을 노래하기도 하고, 믿음의 사람들이 쓴 아름다운 찬송곡들을 더 부르자.

잔악한 노예 무역상이었다가 주님을 만난 후에 그 감격을 적은 \"Amazing Grace,\"
힘겨운 종교개혁에 앞장서서 위기에 처했을 때에 쓴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세상에 의지할 것이 없어서 손들고 주 앞에 나온다고 노래한 챨스 웨슬레의
\"천부여 의지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를 부르라.
이와 같이 성령에 충만한 사람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찬송이 흘러 나오게 된다.

둘째는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한다.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의 입에서는 누구보다도 감사의 말이 많이 나온다.
우리의 삶의 상황이 그렇게 우리를 신나게 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문제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절망하지 않는다.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를 포함하여
8000여 곡의 찬송가를 작곡한 Fanny Crosby는 태어난지 6 주 만에 맹인이 된 여성이다.
그렇지만 그는 한번도 자신이 맹인된 것을 원망한 적이 없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에게 \"하나님이 자매에게 많은 은사를 주셨는데,
시력을 주셨으면 얼마나 더 좋았겠습니까?\"라고 말하니, 크로스비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맹인된 것을 감사하고 삽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가면 눈을 뜨게 될
텐데, 처음으로 눈을 떠서 내가 평생 사모하던 나의 사랑하는 주님을 제일 먼저 보게 될
것이니까요!\" 이것이 믿음의 감사이다.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감사하라는 것인가?
성경은 감사의 대상의 최우선이 하나님께 있다고 선명하게 말한다.
그의 능력있는 이름을 감사하고, 그의 놀라운 구원을 감사하고, 그의 도우심을 감사하고,
시험을 이기게 하시는 것을 감사하고, 주신 은혜를 감사하되 항상 하라고 명령하신다.

지난 해의 은혜를 되돌아 보고, 새해에 주실 은혜를 감사하라.
문둥이 열 명이 주님의 도우심으로 치료를 받았는데, 단 한 사람만 감사를 표시했다.
우리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는 감사의 말을 듣고 싶어하면서도,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의 기도의 도움과 사랑의 손길에 대해서는 감사에 인색하다.
감사를 잊어버리는 사람을 배은망덕한 자라고 부른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여러 가지로 풍성하게 감사하고 살자.

그리고 셋째는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성도들 사이에 서로 복종한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면서 성도들 사이에 서로 비난하거나 헐뜯지 않고 서로 섬긴다는 것이다.
서로 주장하거나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어 주며,
다른 사람들이 더 편리하고 편안하도록 살펴 주는 모습이 믿음의 사람의 모습이다.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목숨을 걸고 다윗을 보호하였다.
다윗은 훗날 요나단의 아들 절름발이 므비보셋을 왕의 식탁에서 함께 먹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복음전하는 사역자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사랑하고 기도했다.
서로 섬기고 사랑하는 모습이 불신 세상에 무서운 도전이 되었던 것이다.

\"Christ has no hands but our hands to do His work today.
주님께는 손이 없어서 우리 손으로 일하시고,
He has no feet but our feet to lead men in the way.
주님께는 발이 없어서 우리의 발을 통해 사람들을 인도하시고,
He has no tongue but our tongue to tell men how He died.
주님께는 입이 없어서 우리의 혀를 통해 그가 어떻게 죽으셨는지 말씀하시며,
He has no help but our help to bring them to His side.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사람들을 그의 곁으로 인도하시네.

We are the only Bible the careless world will read.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읽는 유일한 성경이요,
We are the sinner\'s gospel; we are the scoffer\'s creed.
우리가 죄인의 복음이며, 비난자들의 신조이고,
We are the Lord\'s last message given in word and deed.
우리가 주님이 말과 행동으로 주신 그이 마지막 멧세지라네.

What if the type is crooked?
그 멧세지의 글자가 비뚤어지면 어찌하는가?
What if the print is blurred?
그 멧세지의 인쇄가 희미하면 어찌하는가?
What if our hands are busy with other work than His?
우리의 손들이 딴 일에만 바쁘면 어찌하는가?
What if our feet are walking where sin\'s allurement is?
우리의 발이 죄의 길에 어울려 있으면 어찌하는가?
What if our tongue is speaking of things His lips would spurn?
우리의 혀가 주님이 뱉으실 말을 하면 어찌하는가?
How can we hope to help Him or welcome His return?\"
그러면 어떻게 주의 일을 소망하며, 어떻게 그의 재림을 환영하겠는가?

유대인의 포로수용소 벽에 다음과 같은 글이 지워지지 않고 써 있었다.
\"나는 태양이 빛나지 않을 때에도 해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사랑을 믿는다.
그리고 하나님이 침묵을 지키실 때에도 그 분이 계신 것을 믿는다.\"

예수님의 재림이 더 가까워오는 것을 느끼는 이 시대에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가?
베드로의 권고대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자(벧후 3: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