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제23강

에베소서 강해설교 23




멋진 부모와 멋진 자녀(엡 6:1-4).

이 세상에서 부부 다음으로 가장 가까운 관계가 부모와 자녀 사이이다.
사실 부부 이상으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더 진하고 깊은 사랑으로 맺어진 경우도 많다.
그래서 부부는 서로 맞지 않으면 이혼도 하지만, 자녀와의 관계는 끊기가 더 어렵다.
비록 세상이 많이 험악해 져서, 제가 낳은 자식을 버리는 악한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는 언제나 최선의 것을 주고 싶어 한다.

임산부는 아기를 가진 후에 거의 9 개월간 아기를 위해서 모든 것을 절제한다.
아무리 아파도 태아에게 영향이 갈까봐 약을 복용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나쁜 것을 보거나 악한 환경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특히 임산부가 심하게 화를 내거나 슬픔 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태아에 직접적인 악영향이 있다고 하여, 얼마나 많이 조심하는가!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 중의 하나는,
짐승의 부모는 자기 새끼들을 잘 돌보는데, 새끼들은 자기 부모를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미가 새끼를 위해서 위험을 무릎쓰거나 죽음까지도 당하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새끼가 어미를 위해서 죽음을 무릎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새끼들은 위험이 닥치면 자기 목숨을 건지려고 어미를 버리고 도망쳐 버린다.

아마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말에 화를 낸 원숭이들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원숭이 세 마리가 나무에 앉아서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야, 너희 둘은 들어 봐라! 인간이 우리같은 고상한 혈통을 이었다고 하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인정할 수가 없단 말이다.
자기 아내를 버리는 친구 원숭이를 보았냐?
자기 새끼를 굶도록 내버려 두거나, 파멸시킨 동네 원숭이를 아느냐?
도무지 어미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이리 저리 팽개쳐 진 원숭이가 있느냐 말이다.

우리는 인간들처럼 코코낫 나무 주변에 울타리를 쳐서
우리 친구들이 그것을 먹지 못하게 한 적이 있느냐? 또 한 가지가 생각난다.
우리 가운데 총이나 칼을 들고 밤에 나가서 다른 원숭이를 죽인 적이 없지 않은가!
인간이 우리를 혈통을 이었다는 것은 완전히 우리를 모독하는 말이 아닌가!\"

물론 이것은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가장 고상한 사회적 존재라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악해졌는가?
부모를 살해하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자녀를 창기로 팔아 먹는 부모도 있다.
참으로 성경의 교훈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 세대의 가정은 어디에 의지할 수 있겠는가?

\"가정에서 즐거운 웃음 소리가 많이 들리면 밤에 청소년들을 길에 나서지 않게 한다.
이것은 엄격한 통행금지법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이 있다\"는 말이 있다.
경찰이 많아지고, 법이 더 엄격해진다고 해도,
행복한 가정이 밤거리의 불안을 해소하는 최선의 길이라는 것이다.

행복한 가정이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가정을 잃어버린 사람은 마치 고향을 잃은 자같아서 방황하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무거운 것을 들지는 못하지만, 가정을 견고하게 붙잡고 있을 수 있다.\"
즉 자녀가 우리 가정을 견고하게 매어 주는 아름다운 끈이 된다는 의미를 생각해 보라.
재산 때문에 싸우고 갈라지는 경우는 많지만, 그래도 거기 자녀가 있으면 끊기가 어렵다.

오늘의 짧은 성경 본문에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 대한 몇 가지의 교훈을 배우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6:1-3).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이다.
이 말씀에는 아무런 조건도 붙어 있지 않고, 아무런 제한도 없다.

우리 대부분이 어렸을 때에는 부모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살았다.
청소년이 되면서, 부모에 대한 불만이 생기고 이웃들과 비교하면서 투덜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다시 부모에 대한 고마움을 새로 깨닫게 된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부모 공경에 관한 하나님의 방법과 약속을 볼 수 있다.

첫째는 부모를 순종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명령이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좋으면 순종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순종해도 괜찮은 것이 아니다.
\"우리 부모가 나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 있어요?\"라거나,
\"우리 부모는 날 버렸단 말예요\"라고 소리치면서 이 말씀에 반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성경은 그런 특수한 상황보다는 불변하는 하나님의 원칙을 가르쳐 주고 있다.
즉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부모 공경은 피할 수 없는 명령이라는 것이다.

우리 한국 백성은 예로부터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대단히 중요시했다.
그 중에는 유교적 문화의 배경도 있지만, 실제로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다.
유교에서 지나치게 부모에게 집착하다 보니, 죽은 혼에게까지 절하는 미신이 심해진 것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께만 경배하기를 원하시며,
이방인들의 제사는 귀신들에게 하는 것이므로 금하고 계신다.

죽은 조상에게 절을 하고 음식을 바치는 등의 미신은 성경의 교훈대로 반대하지만,
부모에게 대한 공경과 사랑과 섬김의 마음은 결코 변할 수가 없다.
우리 유교 사상이 짙은 한국인들 중에는 예수믿는다고 조상에게 제사하지 않으므로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는 불효자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부모 공경에 대한 말씀이 대단히 많다.

구약에는 부모 공경에 관한 말씀이 상당히 많다.
즉 부모를 공경하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잘되고, 또 장수한다는 약속의 말씀,
부모를 소홀히 여기면 저주를 받으며 백성들도 동의한다는 충고의 말씀,
아비나 어미를 업신여기면 짐승의 밥이 되어 죽기도 한다는 경고의 말씀 등이다.
구약 성경의 그 엄한 율법 가운데 이와 같이 부모 공경에 대한 법이 많다.
그것은 창세기부터 구약 끝까지 반복되는 엄격한 하나님의 명령이시다.

그 가운데 솔로몬이 기록한 잠언서에 있는 몇 구절을 보라.
\"내 아들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3:1).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4: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10:1).

그리고 신약에서도 부모의 훈계를 들으며, 그의 법을 따르라는 주님의 명령이 있고,
특히 노인들을 공경하는 것이 옳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예수님도 어려서부터 그의 육신의 부모에게 받들어 섬겼다고 성경은 증거한다.

부모에게 불순종하면서 훗날에 자신이 훌륭한 부모가 된다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노부모에게 대하는 것을 보는 우리의 자녀들이 부모를 대하는 자세를 배우고 있다.
우리가 우리 부모를 소홀히하면 결국 우리 애들은 우리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성경은 결코 부모를 소홀히 여기도록 방치하지 않으며,
오히려 불효에 대해서 엄한 형벌을 내리시겠다고 경고하고 계시다.
예수님은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부모를 소홀히 한 유대인들을 엄하게 책망하셨다.

그러므로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아름다운 믿음의 표현이다.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기 원하는가? 가정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둘째는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말씀이다.

여기에 부모 순종에 관한 유일한 조건이 언급되어 있다.
그것은 부모를 순종하되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하라는 것이다.
종종 자녀들의 신앙 생활을 금지시키는 부모를 보는데,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그래서 신앙을 지키다가 가정에서 쫓겨 나고, 버림받은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증오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위해서 기도하는 자가 바른 자녀이다.

한 청년은 부모가 철저한 유교인으로 기독교에 대한 반대가 극심한 정도였다.
고등 학교 졸업반 때에 친구를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된 그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교회에 다녀온 것을 알면 성경을 아궁이에 던져 버리거나
더 이상 자식이 아니라고 하면서 집에서 내어 쫓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청년은 심지어 매를 맞으면서도 집으로 돌아왔고,
더 성실하게 공부하고 가정일도 열심히 도우면서 묵묵히 지냈다.

사실 그는 교회에 다니지 말라는 부모의 말에 불순종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 무섭다는 것과, 부모가 몰라서 그러신다고 믿었기에
많은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교회 생활과 성경 공부와 기도 생활에 힘썼다.
결국 그의 부모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 자신은 선교사가 되었다.
이런 것이 바로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한 예가 될 것이다.

셋째는 부모를 귀히 여기고 공경해야 한다.

부모는 못난 자녀라도 귀하게 여기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부모에 대하여 귀히 여기는 진실한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부모를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부모를 공경할 수 있는지 몇 가지만 생각해 보자.

부모의 교훈에 귀를 기울여라.
어떤 경우에는 정말 듣기 싫은 잔소리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크게 잘못되지 않는다.
특히 결혼이나 취업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는 부모의 의견을 존중하라.
물론 결혼의 당사자는 자기들이지만 부모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하라.

어느 성경 번역가가 \"순종\"이라는 단어를 그 부족들이 쓰지 않는 것을 알고 고민했다.
어느 날 집에서 휘파람으로 개를 부르니 쏜살같이 달려와 귀를 쫑긋 세우는 것이다.
그때 곁에 있던 원주민이 \"개는 귀가 많다\"고 하는 것이다.
거기서 힌트를 얻은 선교사는 \"순종\"이라는 단어 대신 \"귀가 많다\"고 썼다.

부모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라.
부모의 마음에 피눈물이 흐르게 하거나 못을 박는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기가 어렵다.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고, 그 얼굴에 웃음을 가지실 수 있게 노력하라.
아내를 기쁘게 하는 것만큼 부모의 마음에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 우리의 행복이 된다.

부모의 필요를 채워 드리라.
자녀들은 경제적으로 충분한데 노부모가 가난하게 사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다.
경제력을 일시 상실했거나 할 수 없는 부모라면 나라 정책에만 맡기지 말고 더 도우라.

부모의 여생이 하나님은 은혜 중에 사시도록 도우라.
만일 부모가 예수를 믿지 않는다면, 그것을 심각한 기도의 제목으로 삼으라.
하나님없이 아무리 풍요하고 건강하게 살아도 그것은 구름과 같은 인생일 뿐이다.
복음을 듣게 하고,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부모가 살아 계실 때에 행해야 한다.
죽으신 뒤에 아무리 잘해 보려고 해도 이미 때를 놓친 것이다.
아직 건강하시고 살아계실 때에 자녀가 할 도리를 기쁨으로 하라.

우리의 부모는 본인이나 자녀들도 잘 모르는 사리에 늙어가며 마치 지는 해와 같다.
어느 어머니가 자기의 건망증에 대해서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요즘에는 계단에 올라가서 중간에 잠시 쉬다가는 올라가려고 했는지
아니면 내려 가려고 했는지 헛갈리기도 하고,
다락방에 무얼 가지러 올라가다가 도중에 왜 거기 가고 있는지 몰라서
다시 내려와 그것이 생각날 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는 등의 내용을 썼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편지를 부치려고 우체통 앞에 섰다가
내가 들고 있는 편지를 금방 받은 걸로 착각하고 그걸 개봉했단다\"라고 썼다.

왜 부모를 순종하고 공경해야 하는가? 이 구절에서 적어도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그것이 옳기 때문이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것은 인간 사회에서는 예외가 없다.
옳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엄하게 명령하셨겠는가?
옳은 일은 속히 행할 수록 좋고, 많이 자주 행할 수록 좋다.

스페인의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1 그램의 어머니가 1 톤의 목사 만큼 가버치가 있다.\"
그 만큼 자녀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의미가 크다는 것을 말한다.

어머니 날에 설거지를 하는 것을 본 딸이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오늘은 어머니 날인데 좀 쉬세요.\"
딸의 사랑스런 말을 들은 어머니는 딸이 대신 설거지를 해 주려나 보다 생각하고
하던 일을 멈추고 앞치마를 벗고 거실로 와 앉았다.
그러자 딸이 말하기를 \"엄마, 오늘은 어머니 날이니까 내일 하면 되잖아요\"
자기가 대신 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두었다가 내일 하라는 얌체가 아닌가!

둘째는 그것이 약속있는 하나님의 첫 계명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무엇을 약속하셨는가?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처럼 부모를 공경하면 축복을 약속해 주셨다.

십계명 가운데 이렇게 분명한 약속을 준 계명이 또 어디 있는가?
다른 계명들은 모두 엄한 명령으로 되어 있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도적질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거짓 증거하지 말라\" 등 모두 일방적인 명령들이다.
그런데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하는 일이 형통하고 장수한다고 약속하신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훈계와 교양으로 양육하라\"(6:4).

자녀를 노엽게 하여 부모와 다투고 충돌하며 마음에 아픔을 품고 살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애들의 잘못을 고쳐 준다고 하면서 분노하여 그 마음에 상처를 남기지 않게 하라.
반면에 하나님의 교훈에 따라서 바르게 훈계하고 양육하라는 것이다.
이 말씀 속에는 매서운 회초리와 따뜻한 손길이 다 포함되어 있다.
회초리만 있으면 악하게 되기 쉽고, 부드럽기만 하면 바로 서지 못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주의 훈계와 교양으로 자녀를 키우는 것인가?
무엇보다도 바른 신앙을 갖도록 돕고 인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삶의 진로를 결정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안내서가 되게 하라.
무엇보다도 부모가 삶에 모든 면에 있어서 좋은 모범이 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우리 자녀 교육의 일차적인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학교에 있는가, 교회에 있는가, 아니면 사회 전반에 있는가?
우리 자녀의 잘못에 대하여 정치인을 욕하겠는가, 학교를 비난하겠는가?

사실 어디서 우리의 자녀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거리에서 방황하게 내버려 둔다고 해서 경찰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아니다. 일차적으로 그 책임은 가정에 있으며 또한 부모에게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잊어버리고 종종 사회와 환경을 탓하기도 한다.
\"우리 아이는 착한데 친구를 잘못 새겨서 그만...\"
\"우리 딸은 잘못이 없는데 주위 환경이 너무 나빠서 그만...\"
이것은 부모가 자기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피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드로 윌슨이 프린스턴의 총장이었을 때에 학부모들에게 연설하면서
\"여러분들이 제게 편지를 보내서 왜 학교에서 더 잘 가르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교수들이 더 잘 교육해 주기를 바라는 편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러분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자랐고, 부모를 보면서 듣고 보고 배웠습니다.
여러분이 그들의 삶의 모습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미 굳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들의 삶에 지워지지 않는 것들을 새겨 놓은 것입니다.\"

어느 어린이 교실에서 부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성경 암송 대회가 있었다.
한 여자 아이 차례가 되어서 앞에 나갔는데 모두지 첫 구절부터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가까이서 아이를 보고 있던 엄마가 입으로 말을 흉내내도 전달이 안되었다.
그러자 아이의 엄마는 들릴 정도의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해.\"
그러자 아이는 얼굴빛이 환해지면서 성경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는 세상의 빛이라...\"
아마 아이의 마음에는 자기 엄마가 세상의 빛처럼 너무 좋은 엄마였기에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우리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훈계해야 하는가?

마땅히 믿을 것을 가르치라.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마땅히 행할 것을 가르치라. 그것은 의롭고 정직한 행동이다.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인도하라. 그것은 하나님의 집이다.
마땅히 귀담아 들을 것을 듣게 하라. 그것은 주의 말씀이다.
마땅히 순종할 것을 가르치라. 그것은 주의 뜻이다.
그러면 나머지 결과는 하나님께서 감당하실 것이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열 자녀가 있었는데,
그는 자녀들이 세상죄에 빠질까봐 늘 신경을 쓰면서 신앙의 모범이 되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절대적인 순종을 보인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는 자녀를 갖기 전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인생 행로를 결정하였고,
그 약속의 말씀을 믿어 자녀를 얻었으며,
가장 사랑하는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까지도 순종했던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의 아들 이삭은 그의 순종하는 삶을 보면서 아름다운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그의 가슴으로 사랑하고,
그의 말씀으로 말하고, 그의 손발되어 섬기는 사람이다.

멋진 부모는 하나님의 손에서 빚어지고, 멋진 자녀는 부모의 손에서 빚어진다.
그리고 멋진 부모와 멋진 자녀들이 함께 사는 가정이 멋진 사회의 기초가 된다.
아무도 너무 늦지 않았고, 아무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