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제24강

에베소서 강해설교 24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라(엡 6:5-9)

만약 자신이 큰 기업의 회장으로서 회장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맡을 직원을 뽑는다면 어떤 것을 가장 중요한 자격으로 여기겠는가?
화려한 이력서를 보고 흥분하면서 그에게 기업과 자신을 맡기겠는가?
유명한 이의 추천서 몇 장을 읽고 나서 그에게 그 자리를 주겠는가?

본인은 어느 선배가 보낸 엉터리 추천서를 받아 본 적이 있다.
어떤 사람에 대한 추천 내용이 아주 훌륭해서 좋게 생각하게 되었는데,
며칠 후에 그 추천한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난 번의 추천장은 취소합니다. 사실을 알고 보니 문제가 많은 사람이군요.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없던 일로 합시다.\"
추천하는 사람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멋진 추천장을 쓴 것이었다.
심지어 추천장을 자신이 써 가지고 와서 서명만 해 달라고 하는 요청도 받아 보았다.
그러나 요즘의 추천장 가운데는 믿지 못할 것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미 잘 아는대로 요즘 큰 기업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에는 서류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최고의 대학과 좋은 경력을 가진 것이 물론 선택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사람의 됨됨이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진정한 동기를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회사나 사회 단체는 고용 계약에 따라 돈을 주면서 사람을 채용하기 때문에
회사에 적합하지 않거나 회사에 불이익을 야기시키는 사람은 해고하면 된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믿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원해서 모이는 곳이어서
거기에는 예배 출석이나 헌금을 강요할 수 없고, 또 나태한 자를 내어쫓지도 않는다.
교회는 믿음의 한 가족이어서 사랑과 책망과 따뜻한 정이 엉켜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나 올 수 있는 교회라고 해서 아무나 자기 주장을 하는 곳은 아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기준과 양심의 호소와 교회가 정한 규정이 있어서
거기에 동의하고 합의하며 자기의 시간과 재물과 마음을 헌신하고자 하는 이들이 모인다.
그리고 교회라고 해도 모두 똑같은 방식의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와 교단마다 특징이 있어서, 거기에 동의하고 마음이 맞는 이들이 찾는다.

우리 교회도 기존 교회의 틀을 벗어나 여러 가지로 새로워지려고 시작된 교회이다.
하나님께서 담임목사에게 주신 꿈과 비젼에 따라 특징있는 교회가 되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런데 예배에 참석하는 이들의 교회 배경이 너무 다양하고 달라서
종종 이전 섬기던 교회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우리 교회에서도 요구하는 경우를 본다.

우리 교회는 기존 교단에 속하지 않은 복음적인 초교파 교회이며,
성경 말씀만 가장 최고의 권위로 삼고, 복음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다.
그리고 연구하고 있는 조직과 체제도 성경에 입각하지만 상당히 새로울 것이며,
무엇보다도 불신앙자가 와서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 놀라운 구원을 받는 교회요,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여 바르고 성숙한 평신도 일꾼들을 세우는 교회가 될 것이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을 예로 들어 보자.
만일 이른 아침에 교회에 나와서 시간당 임금을 받고 하는 일이라면
아마 그렇게 매 주일 즐겁게 땀을 흘리며 수고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렇지만 주님을 위한 진정한 봉사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믿음과 은혜가 그 바탕이 되기에 기쁘게 섬긴다.

사회에서는 당장 합당한 보상이나 대가가 없으면 일할 의무나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모인 곳이므로
거기에 즐거운 협력이 있고, 한 방향과 한 의도와 한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원래 초대 교회를 봐도, 비록 그들은 세상에서 핍박은 받았어도 칭찬을 받았고,
가장 약해 보여도 로마 제국을 뒤흔들 만한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덕있는 사람은 양심의 소리를 듣고,
지혜로운 사람은 부모의 말을 들으며,
믿음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한다\"는 말을 기억하라.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천국 시민권을 가졌지만 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기 때문에
이 세상의 질서를 무시할 수 없고, 오히려 법과 사회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
비록 궁극적인 목적이 다르기도 하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좋은 시민이 되어야 한다.

일본의 어느 유명한 영화 감독이 그리스도인인데, 그에게 배우려는 사람이 무척 많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진실하고 신실한 말과 행동을 보고 예수를 믿은 배우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부정한 뇌물이 오가고, 비상식적인 거래가 많은 연예계에서 얼마나 멋진 간증인가!
정치인 가운데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나오기 바라고,
연예인과 체육인들 가운데 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드러나기를 기도하게 된다.

오늘 성경 말씀에서는 사회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자세를 배운다.
이 본문에서는 과거 종과 노예라는 신분 제도의 배경을 말하고 있지만,
주 안에서 이제는 평등한 믿음의 가족이므로, 이 말씀을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6:5-7).

여기서 \"종\"이라고 말한 것은 과거에 \"노예\"와 같은 의미로서 바울 시대에는 많았다.
그들은 대개 전쟁 포로이거나, 큰 빚을 지고 갚을 수가 없어서 종이 되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자기 삶이나 소유가 없고, 다만 주인에게 온 삶이 달려 있었다.

실제로 바울이 살던 시대에는 로마 정치권 아래 있어서 노예 제도가 있었으며,
바울은 그것을 공격하고 무너뜨릴 입장이 아니었다.
비록 복음 안에서는 종과 자유자가 구별이 없지만
현실을 직시한 바울은 그대로 인정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종이라도 주 안에서 자유자가 된 것을 감사하며 성실한 종이 되라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주 안에서는 종이라도 자유자요 자유자라도 종이라고 말하며(고전 7:22).
유대인이든지 이방인든지 모두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분명히 말한다(갈 3:28).
그러므로 오늘 날에는 예전의 종과 노예와 같은 차별 대우의 생각을 버려야 한다.

대부분의 현대 사회에서는 과거의 노예 제도와 같은 것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 말씀은 직업인으로서 직분과 직책의 차이가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는 성별이나 신분의 차이가 없으므로 이 구절을 바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에서 맡겨진 직분은 계급이나 서열이 아니라 섬기기 위한 것임을 기억하자.
집사와 장로나 권사를 어떤 권위의 자리로 오해했다면 완전히 씻어 버리라.
오히려 우리는 예수님처럼 서로 섬기기 위해서 몸된 교회의 지체가 되었다.

사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서로 형제 자매들의 발을 씻기는 종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섬기고 사랑하는 주의 종이다.
종은 주인의 뜻에 합당하게 살며, 또 그의 명령에 조건없이 순종한다.
만일 종이 주인에게 반박하거나 거역한다면 그것은 종이 아니라 골치거리가 된다.
그러므로 주의 종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최선의 일이며,
억지로나 강제로 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하듯이 정성을 다해야 한다.

본 구절에는 그리스도의 종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하여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우선 윗 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을 갖는 것과, 성실성,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께 하듯이
정성스럽게 하는 것, 그리고 눈가림만 하지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모든 일에 강요를 받아서 하지 말고 기쁨으로 하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과 헌금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봉사도 사람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고 하면 곧 실망하거나 다툼이 생기기 쉽다.
그리고 실제로 은혜를 받았기에 섬기고 봉사하는 이들은 별로 불평이나 말이 없다.
헌금도 마치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처럼 하거나 강요된 것이라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한 최소한의 빚갚음으로 생각하고 한다면
누가 알아 주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실망하지 않고, 당장 보상이 없어도 중단하지 않는다.

그러나 헌금을 무슨 세금처럼 생각하거나, 또는 하나님과 흥정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불신앙이며, 비뚤어진 생각이다.
\"내가 헌금을 했으니 나에게 이만한 권리가 있다\"고 말하거나,
\"내가 이 만큼 헌금을 했으니 하나님이 이 만큼 보상하셔야 한다\"는 식의 잘못된 생각이다.

기도와 구제와 금식을 하는 것에 있어서도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하면
이미 상급을 받은 것이라고 성경이 말한다. 그러면 하늘에서 상급이 없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지금도 그가 쓰실 만한 일군을 찾으신다.
만일 당신이 한 교회의 담임목사라면 교회에 중요한 일을 어떤 사람에게 맡기겠는가?
면전에서는 아첨하고 잘하는 척 하면서 뒤에서는 나태하고 비판하는 자를 원하겠는가?
자기 주장만 내세우면서 겸손하게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학력이 높고 머리가 좋고 경력이 많으면 선택하여 세우겠는가?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다루는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은 누구겠는가?

주님의 마음에 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식과 경력보다도 충성과 지혜이다.
그리고 종교성보다는 영성이 더 필요하고, 형식보다는 영적으로 성숙한 것이 더 중요하다.
또한 작은 일이든지 큰 일이든지 주님께 하듯이 진실하게 하는 자가 필요하다.

회사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듯이 성실하게 하고,
그 회사에 유익한 직원이 되어야 한다.
자기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회사에 손해를 끼치거나 악한 일을 하는 것은 잘못이다.
더욱이 기업주가 까다로운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그를 존경하며 자기 일처럼 할 수 있어야
하나님은 그 믿음과 충성을 기뻐하신다.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6:8).

이것이 심은 대로 거둔다는 불변하는 자연의 원리를 말하며,
이것은 또한 영적인 원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진실한 믿음을 심고 구원의 열매를 거두며,
아름다운 선행을 심고 하늘의 상급을 거두게 된다.

이것에 관하여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

이 심고 거두는 농사의 원리에는 에누리가 없다는 것을 알라.

나쁜 습관을 심고 좋은 인품을 얻지 못하고,
시기와 증오를 심고 사랑과 우정을 거두지 못하고,
악한 생각을 심고 청결한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인색함을 심고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욕심과 이기심을 심고 마음의 풍요를 거두지 못하고,
비난과 거짓말을 심고 칭찬과 진실을 거두지 못하고,
게으름과 핑계를 심고 넉넉함과 만족을 거두지 못하고,
세상적인 것들로 심고 하늘에 속한 것들을 거두지 못한다.

우리는 자기 직분이 무엇이든지 그 심은 그대로 주님에게서 받게 된다.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을 심은 아담과 하와는 가인이라는 살인자를 보게 되었고,
방탕하고 복잡한 가정 생활을 심은 솔로몬은 압살롬이라는 슬픈 자식을 보았다.
아브라함은 믿음과 순종을 심고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었는데,
엘리라는 제사장은 무책임과 방관적인 삶을 심고,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불량자를 낳았다.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암 부드는 당시에 지독한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믿음의 군대가 세상에서 칭찬받는 주의 종들이 될 것을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국의 왕 에드워드 7세가 그를 궁으로 초청했다.
그날 왕은 윌리암 부드 장군을 보고 \"귀하는 참으로 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부드 장군이여. 대단히 위대한 일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한 마디에 윌리암 부드는 그 동안에 겪는 핍박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방문객 비망록에 서명해 달라는 왕의 말을 들은 노인이 된 윌리암 부드는
허리를 굽혀서 펜을 들고 자기의 삶을 간단하게 요약하는 글을 썼다.
\"폐하, 어떤 사람의 야심은 뛰어난 예술가가 되는 것이고,
어떤 사람의 야심은 더 높은 명성을 얻는 것이며,
어떤 사람의 야심은 더 많은 황금을 모으는 것이지만,
저의 유일한 야망은 더 많은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오늘 날에도 훌륭한 복음 사역을 하는 구세군을 일으켰다.

지금 좋은 씨앗을 잘 심어야, 다음 세대에 귀한 열매를 얻는다.
우리 자녀들과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 무엇을 심어 주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특히 교회에서라도 순전한 복음과 선한 행실과 정직함이 그들의 마음에 심겨지게 하고,
교회의 평안과 봉사의 즐거움과 배우는 기쁨이 마음에 심겨지게 하자.

오늘 우리의 말과 행동과 인품으로 무엇을 심었는지는 훗날 그 열매를 보고 알게 된다.
요즘에 우리 교회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주일에 교회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한다.
그리고 수고하는 교사들도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6:9).

이것은 우선 당시 노예를 가진 주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들은 노예를 자기에게 소속된 재산처럼 여겨서 거칠게 다뤘던 것이다.
노예에게는 인격이나 개인적인 삶이 인정되지 않았으며 다만 말하는 도구였다.
한때 미국에서도 이와 흡사한 제도가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불법이다.

바울이 살던 당시에 로마의 상전들은 노예를 심하게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도망치는 예가 흔했던 것이다.
그 중에 빌레몬이라는 종도 주인에게서 도망쳤다가 로마에서 바울을 만나서
복음을 듣고 변한 다음에 다시 주인에게로 돌아간 사례가 있다.

이것을 우리의 실제 삶에 적용해 보자.
여러 명의 직원들을 두고 기업을 운영하는 이들이 있으면 이 말씀을 더 잘 들으라.
이것은 부하 직원을 아무렇게나 다루는 악덕업자가 되지 말라는 것과도 통한다.
재벌 가운데 자기는 엄청난 부를 누리면서도 직원들에게는 크게 인색한 경우가 있다.

성경은 주인된 자들이 직원들에게 공갈을 그치라고 말한다.
이것은 위협과 두려움을 주는 것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권세와 돈으로 사람이 평가되는 경우가 흔하다.
마치 국회의원이 되면 모든 면에서 국민의 지도자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을 너무 깊이 안 많은 사람들이
최근에 국회의원 선거에 낙천과 낙선 운동까지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 서명 운동에 많은 시민들이 호응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진정한 상전과 주인은 예수님이시다.
그를 진실로 나의 최고의 주님으로 섬기는 자라면
종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길 것이다.

우리 인생을 마지막 평가할 때에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다스렸는가를
계산하겠지만,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섬겼는가를 물으실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나폴레옹은 군사력으로 프랑스와 온 유럽을 주장했지만,
루이스 파스퇴르는 프랑스와 세상을 섬기는 자가 되어 질병 퇴치에 힘썼다.
뭇솔리니는 이태리를 10여년간 다스리고 결국 불명예스런 종말을 고했지만,
무선전신을 발명한 마르코니는 세상을 섬기며 살았고 지금도 그 이름이 명예롭다.
공산주의자들은 아프리카 콩고에 침입하여 나라를 분열시키고 독재를 키웠지만,
알버트 슈바이쳐는 그곳에 가서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치료하면서 섬기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성경은 누구든지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 가운데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섬기려 오셔서 우리를 섬기시고
자기를 대속물 즉 죄값을 치루는 대가로 내어 주셔서 우리의 영원한 구세주가 되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실 때에
그를 무시하거나 박대하던 사람들은 구세주없는 인생을 살았지만,
그를 믿고 마음에 영접한 우리는 새 주인과 함께 천국길을 간다.

그러므로 이제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위선적이며 겉을 꾸미는 삶을 벗고,
불꽃같은 하나님의 눈을 항상 의식하여 거리낌이 없고 담대한 믿음의 삶을 살자.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
사람의 눈에는 겉 모양 밖에는 볼 수 없다.
그래서 그의 외모와 높은 신분과 화려한 학력과 경력과 가문에 놀란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더 깊은 곳을 들여다 보신다.

속 사람이 다 드러나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감사할 수 있는 생활을 하자.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를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면 어떻게 감사하지 않겠는가!
예수님 때문에 영혼의 눈이 떠지고, 예수님 때문에 얼음장같던 가슴이 따뜻하게 되었고,
예수님 때문에 어둔 마음에 빛이 생기고, 예수님 때문에 위기에서 마음에 평안을 찾고,
예수님 때문에 멸망길에서 천국길로 돌아서게 되었는데, 어찌 감사하지 못할까!

어둔 곳에서나 뒤에서 불평하고 투덜거리던 옛 사람의 방식을 털어 버리고,
가정에서 행복한 남편과 아내요, 부모와 자녀가 되고,
직장과 사업장에서 존경받는 사회인이 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좋은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