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설교 26 영적 전쟁(2)(엡 6:14-20) \"Insight\"라는 기독 잡지의 기사(11/99)를 보면 회교의 나라인 에집트에서는 핍박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의 일상적인 생활이 되고 있다. 에집트의 법규정에 의하면, 회교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것은 불법이며, 그 사람은 무슨 이유를 붙여서라도 감옥에 들어가고 만다. 특히 1856년부터 발효된 \"하마요우니\"(Hamayouni)라는 법에 따르면, 교회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은 그 자체가 불법 행위이고, 교회 건물의 깨어진 유리창을 고치는 것도 대통령의 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다. 만일 깨어진 유리창을 고치려는 것에 허락이 나지 않으면 대통령은 그 교회 건물을 철거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게 규정되어 있다. 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가슴아픈 신앙의 싸움의 현장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집트에는 죽음을 무릎쓰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한편 아직도 기독교를 강하게 규제하는 중국에는 약 1억명의 기독교인이 있고, 은밀하게 숨어 있는 교인들까지 합하면 거의 2억명이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공산주의 속에서 영혼이 목마르고 소망이 없어 고통하던 그들은 참 신앙을 찾고 있다. 80년대부터 매년 약 600개의 교회들이 세워졌고, 1800만권의 성경책이 중국에서 인쇄되었다. 에베소서는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가르쳐 주면서 끝맺음을 한다. 이 영적 전쟁은 곧 그리스도인들이 죄와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거룩하게 살고, 또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살기 위한 고상한 투쟁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세상의 악을 주장하고, 죄를 조성하는 보이지 않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믿음의 선한 싸움이요, 진리를 위한 것이며, 거룩한 싸움이다. 마귀와의 전쟁은 이미 선포되었는데, 십자가의 군병들은 어떻게 무장해야 하는가?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다른 모둔 장비를 구비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서는 것\"이다. 두 발에 힘을 주고 견고하게 서 있는 자세부터 필요하다. 죽었거나 병들어 누워 있는 사람에게 아무리 군복을 입혀도 소용이 없지 않은가! 바르게 선 사람은 전쟁에 임하겠다고 하는 의지와 결단이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첫 번 째는 \"진리의 허리띠\"이다. 군인에게 있어서 허리띠는 힘의 중심이며, 각종 무기를 구비하는 곳이다. 특히 로마 군인들은 군복을 입을 때에 가장 먼저 허리띠를 단단히 매고, 그 위에 다른 갑옷 종류를 입기도 하고, 그 허리에 각종 무기를 달게 된다. 그러므로 전신갑주의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이 이 허리에 매는 띠다. 우리의 힘은 진리에 있으며,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고, 지금도 예수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은 인생의 참된 진리를 발견하고 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여기서 말하는 것은 성도의 진실성과 정직성 그리고 충성심을 의미한다. 복음의 진리가 우리의 영적 싸움에 있어서 기초인 것을 물론이지만, 그 진리의 복음을 전하는 군사가 진리 가운데 살아야 그것이 의미와 힘이 있다. 내용물이 아무리 맛있는 것이라도 그것을 담는 그릇이 더러우면 누가 먹겠는가? 자신은 거짓되게 살면서 남들에게 참되게 살라고 하면 누가 그 말을 들으며, 자신은 어둠 가운데 살면서 남들에게 빛 가운데 살라고 하면 누가 듣겠는가? 인간 관계가 투명하고, 돈거래가 분명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어야 그 말에 힘이 있다. 이 복음의 진리로 허리띠를 삼고 힘을 얻어야 한다. 그리고 생활이 진실해야 영적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 위선과 형식과 겉모양만 꾸미는 허식을 벗고, 진리로 옷입은 새 사람으로 살자. 아무리 밝은 곳에서도 부끄러움이 없도록 우리 마음과 양심에 거리낌이 없게 하자. 두 번 째는 \"의의 흉배\"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슴은 곧 심장이 있는 곳이어서 방탄 조끼로 가슴을 가린다. 가슴은 곧 그의 마음이요 생각이며 사상을 말한다. 이 부분이 의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범죄한 자로서, 본성적으로 불의 가운데 살았다. 그래서 의인은 없고 한 명도 없다고 성경은 결론적으로 말한다. 선을 행한다고 하는 사람을 보면, 거기에 자기 과시를 위한 것이고, 의를 행한다는 사람 속에 숨겨진 불의가 하나님 눈에는 다 보이는 것이다. 유대인들 중에 율법의 선생이며 도덕적인 자부심을 가진 무리가 바리새인이었다. 그들은 법 규정을 문자 그래도 준수하려고 무진 애를 쓰던 종교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손가락도 까딱하지 않으려고 했으며, 만일 누가 안식일 규정을 어기는 것이 발각되면 가차없이 엄벌했던 것이다.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거리를 이리 저리 다니면서, 참으로 공의를 행하여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성이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거리를 헤매기도 했지만, 그들 속에서는 거짓 맹세와, 교만과, 영적인 무지 밖에는 찾을 것이 없었다. 남들보다 율법 조항을 몇 가지 더 지킨다고 하여 스스로 의인인체 하는 무리가 너무도 많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모두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누구보다는 내가 낫다\"는 비교의식과 교만이 사람을 더욱 추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율법과 도덕 외에 하나님의 한 의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선물로 받는 그리스도의 의인 것이다. 즉 사람 속에서는 전혀 의를 찾을 수 없어서, 하나님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자들 속에 그의 의를 심어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 의가 내 눈에는 더러운 곳과 같다\"고 말씀하셨고, 율법의 의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을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며, 다만 먹장 구름같은 죄는 예수의 보혈로만 정결하게 씻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가슴에 담은 의는 나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다. 스스로 자랑할 것이 있다면, 다만 \"예수님 때문에!\"라고 말하자. 한국의 슈바이처로 알려진 장기려 박사의 한 토막 이야기가 있다. 늘 가난한 사람을 돕던 분인데, 누구에게 주려고 가게에서 샤츠를 하나 사게 되었다. \"이건 500원 짜리인데 손님에게는 400원에 드립니다\" 하면서 주인은 물건을 내어 놓았다. 장기려 박사는 \"이렇게 밑지면서 팔면 어떻게 사십니까? 여기 500원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제자가 묻기를 \"선생님은 그 말을 믿으세요.\" \"나라도 그렇게 해야 거짓말을 뉘우치지 않겠소.\" 이것이 우리 생활 속에 있는 구체적인 의의 삶의 모습이다. 바로 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는데, 저희가 배부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세 번 째는 \"복음의 신\"이다. 오늘 날의 군인들은 아주 두껍고 질긴 가죽으로 만든 군화를 신는데, 성경이 집필될 당시의 로마 군인도 가죽으로 된 샌들을 신었다. 비록 지금의 군화와는 다른 형태이지만, 그것은 돌밭을 달리기에 적합하고, 뛰어서 산을 넘기에 아주 가볍도록 발과 발목에 단단히 매었다. 그들이 가죽신이 닳도록 전쟁을 연습하고 준비했으며, 또 누구보다도 빨리 달릴 수 있도록 엄격한 훈련을 받았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군인의 샌들을 생각하면서, 십자가의 군사가 신어야 할 신을 연상한 것이다. 아이가 어릴 적에 \"나이키\"라는 상표가 불은 운동화가 아주 비쌌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던 젊은 전도사에게 그것을 사는 것은 힘들어서, 아이의 보통 운동화에 매직 팬으로 \"나이키\"라고 써 주었던 기억이 있다. 오늘 날 우리는 모두 좋은 구두와 비싼 운동화들을 신고 다닌다. 그 구두와 운동화는 무슨 일을 하는 데에 가장 많이 닳고 있는가? 물론 학생은 학교에 다니는 일, 직장인은 회사에 다니는 일로 가장 많이 닳을 것이다. 그 외에 그 이상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성경은 복음을 듣고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아름답다고 말한다(롬 10:15). 얼굴이 고운 것도 좋고, 체격이 우람한 것도 좋고, 각선미가 예쁜 것도 멋지지만,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험한 곳을 다니며, 힘든 곳을 찾아 가는 그 발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씀하신다. 건강할 때에 우리의 발이 전도하는 일에 더욱 힘쓰고, 약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찾아 가서 위로하고, 시련을 당해서 고통하는 사람이 있으면 힘을 돋우어 주는 발이 되자. 네 번 째는 \"믿음의 방패\"이다. 당시 전쟁에서는 총과 대포 대신에 창과 칼과 활이 대표적인 무기였다. 그래서 가까이서는 창과 칼을 막아야 하지만, 위험한 것은 화살인데, 거기에 불이 붙은 화살이 가장 무서웠다. 이것을 막으려면 창과 화살이 뚫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방패가 필요하다. 우리 삶에도 무서운 공격이 항상 있다. 순전한 믿음을 빼앗아 가고 부패시키려는 음란이 어느 곳에 가든지 만연해 있고, 어둠과 타협하게 하는 유혹이 하루 종일 우리 주변을 맴돈다. 사단은 한번도 게을러 본 적이 없고, 실수로 딴 사람에게 활을 쏘지도 않는다. 마귀는 이 전쟁에서 피곤하거나 포기한 적이 없이 끈질기에 우리를 괴롭힌다. 이런 공격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주 예수를 믿는 믿음 뿐이다. 사도 요한은 주 예수를 믿는 믿음이 얼마나 큰 힘이 있는지를 잘 말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이 믿음이 세상의 악한 풍조와 사상을 이길 수 있고,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당하지 않고 승천했고, 노아는 믿음이 있었기에, 땡볕 속에서 큰 배를 만들어 대홍수에서 살아 났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순종하여 고향을 떠날 수 있었고, 모세는 믿음이 있었기에 세상 쾌락보다는 자기 백성을 위해서 고난당하는 길을 택했으며, 요셉도 믿음이 있었기에, 외국에 종으로 팔려 가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았다. 이 믿음이 있었기에, 어떤 사람은 핍박과 고난과 비난을 받아도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고, 이 믿음이 있었기에, 어떤 사람은 비겁하게 사는 것보다 용감하게 순교하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대단히 조심할 것은 아무 것이나 또 아무나 믿으면 큰일이라는 것이다. 어느 신용 금고 회사는 고객이 믿고 맡긴 거액의 돈을 개인적으로 빼돌려서 투자가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쳤고, 회사까지 휘청거리게 한 일이 있다. 그것은 허술한 회사를 믿고 투자했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믿는 것은 강한 믿음일 수록 위험하다. 이단과 사이비 종교를 믿는 이들이 이런 위험과 비극을 겪는다. 거기에 헌신하고 재산과 인생을 투입할 수록 그 결과는 비극이 되기 때문이다. 순전하고 성경에 입각한 믿음을 가지라. 믿음의 종류는 한 가지이지만, 그 깊이와 높이와 강도는 다르다. 대만의 큰 지진 때에 많은 건물이 무너졌는데, 무너진 것들의 대부분은 건축 규정을 어긴 것들이었고, 법대로 지진에 대비하여 설계한 대로 건축한 것들은 거의 다 안전했다. 지금 어디에 나의 믿음을 두고 있는가? 조금만 흔드려도 쉽게 무너져 내릴 모래 위에 삶을 쌓고 있는가?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 20-21). 다섯 번 째는 \"구원의 투구\"이다. 전쟁터에 나서는 군인에게 필수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이 철모요 투구다. 머리에 아무 것도 가리지 않고 싸움에 나서는 것은 자살 행위가 된다. 팔이나 다리는 잘려도 머리가 남아 있으면 생명을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사장이나 지하 갱도에 들어갈 때에는 반드시 견고한 모자를 써야 한다. 그리고 자건거나 모터 싸이클을 탈 때에는 헬멧을 쓰는 것이 의무 사항이다. 만일에 사고가 나도 머리를 보호하면 목숨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유대교의 유명한 선생 가운데 한 사람인 니고데모라는 지도자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 왔다. 그는 성경에 대해서 박식하고, 남들에게 존경받는 종교적인 인물이었다. 예수님은 그에게 \"당신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도전하셨다. 즉 아무리 종교적이고 도덕적이라고 해도, 죄에서 구원받지 못하면 천국에 못간다는 것이다. 이 구원의 투구는 어떻게 쓸 수 있는가?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 12:2). 그리고 죄와 사망과 심판으로부터 진정으로 구원받는 것은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다. 이 구원은 나의 노력과 율법을 지키는 것이나 훈련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거저 받는 선물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주 예수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약속하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유대교를 신봉하는 바리새인이던 사울이라는 사람은 다메섹을 가다가 구원받았고, 어느 이름없는 강도는 십자가 사형틀에 매달려서 죽기 직전에 구원받고 천국을 약속받았다. 선교사 로버트 마펫과 성자 어거스틴은 성경을 읽다가 구원받았고, 전도자 집시 스미드는 찬송을 듣다가 구원받았으며, 빌리 그래함은 어느 전도 집회에서 설교 후 구원의 초청을 듣고 결단함으로 구원받았다. 이 구원을 확신하며, 죄용서받은 믿음과 기쁨으로 살 때에 우리의 머리에는 구원의 투구가 씌워져 있는 것이며, 영생이 보장된다. 나의 머리에는 예수의 보혈로 얻은 구원의 투구가 있는가? 맨 머리로 지내면서도 거기 투구가 씌어져 있는 것으로 착각하지는 않는가? 부모가 가진 믿음 때문에 내가 구원받지 못하고, 아내의 뜨거운 믿음이 남편에게 구원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여섯 번 째는 \"성령의 검\"이다. 로마 군인에게 있어서 유일한 공격 무기는 이 칼이다. 크고 무겁지만 날카롭게 빛나는 칼로 적을 쳐서 무찌르는 무기이다. 이 칼은 항상 날카롭고 깨끗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그 군인은 언제든지 싸움에서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충분히 훈련해야 한다. 성령의 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성경이 가르쳐 준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 말씀의 칼이 예리하고 강력한 것이 승리의 필수적이다. 만일 칼이 녹이 슬거나 둔하여 아무 것도 자를 수 없고, 오히려 부서져 버린다면, 그것은 곧 패배와 죽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을 갈 때에 매일 하늘에서 받아 먹던 만나와도 같아서, 매일 아침 받아 먹고 건강과 체력을 유지하는 영혼의 양식이다. 기근으로 굶어 죽어가는 북한의 어린이들을 보았다. 몸에 뼈가 앙상하고, 눈에 깊이 패어 있고, 손발에 힘이 없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여 땅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제 그에게는 죽음이 눈 앞에 어른거리고 있는 것이다. 영혼의 양식을 제대로 먹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런 사람은 영적으로 배고프기 때문에, 교회 생활에 짜증을 잘 내고, 헌금하거나 봉사하는 것은 생각도 못한다. 자기 시간과 물질과 마음을 바쳐 수고하는 이들을 보면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교회와 성도와 목사를 비난하는 것도 그 영혼이 기근에 들었기 때문이다. 사막 기후에서도 풀과 나무가 자라는 것은 밤에 내리는 이슬 때문이다. 설교와 성경읽기를 통해서 새벽 이슬같은 영혼의 양식을 충분히 받아 먹으라. 건성으로 듣고, 건성으로 교회에 다니다가는 정말 어느 날 크게 고통하게 된다. 우리는 복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부르심을 받은 십자가의 군사들이다. 한가하게 놀면서 무책임하게 인생을 다 허비할 수 없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이 여전히 고통하고 있고, 진리가 주는 자유를 모른다. 병든 사자보다는 건강한 고양이가 낫다는 말처럼, 복음의 전신갑주를 단단히 입고, 이 백병전과 같은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하자. \"나의 힘과 대장되신 주 예수여, 제가 주를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