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제4강
잠1:20-33 지혜의 초청
성경에 지혜로 나오는 곳은 여호와 하나님, 예수님이라고 보면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는 것이 350여번 나온다. 지혜를 인격화(人格化)한 것이다. 마태복음 17장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변화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예 수님께서 부활 변화하셔서 재림하시게 될 때의 모습을 보여준 것 이다. 이것을 보고 제자들은 신기해 했다. 그 때에 2가지 중요한 말씀이 나온다. 하늘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저의 말을 들어라\"라는 소리와, 예수님께서 초막 셋을 짓겠다는 제자들에게 \"동리로 내려가자\"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은혜 받은 사람들을 교회 에 묶어놓아서는 안된다. 길거리, 시장 바닥으로 예수님을 모시고 나가야 한다. 즉 교회에서의 성도가 시장에서도 성도가 되어야 한 다는 말씀이다. 교회에서의 장로, 권사가 가정에서도 장로, 권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성도인데 가정과 직장 과 시장에선 성도가 아니다. 이것이 현대교회의 타락이다.
1. 지혜가 초청하는 장소
1) 길거리에서 (잠 1:20)
\"지혜\"는 \'지혜들\'이라는 복수이다. 지혜의 우수성을 표시하는 지 혜다. \"길거리\"는 사람이 왕래하는 곳을 의미하는 바 예수께서는 길 거리에서 전도하셨다(막7:1, 7).
2) 광장에서 (잠 1:20)
\"광장에서\"는 창26:22에서 처럼 넓은 공간을 뜻하는 바 많은 사 람이 모인 곳으로 예수께서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전도하 셨다.
우리는 \'벌이 왜 내게 오지 않는가\'하기 전에, 내게서 향기로운 냄새가 풍겨나는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우리는 더러운 냄새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넥타이에 향수를 약간 뿜으면 향수냄새가 더러운 냄새를 제거한다. 마찬가지로 향기나는 예수님을 내 맘속에 모시면 예수님 향기가 나는 것이다. 우리는 열린 무덤이나 예수님 을 모시면 향기나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3) 훤화한 길 머리에서 (잠 1:21)
\"훤화\"는 소요를 짓는 사람들, 소란한 무리라는 뜻이다. 여기서 는 사22:2, 왕상1:41처럼 시끄러운 곳을 뜻한다. 예수님께서도 훤화 하게 떠드는 곳, 즉 병자를 고치려고 떠드는 곳에서 전도하셨다.
사람들이 많이 시장으로 들어오는 골목, 문칸에서 초청하는 것을 말씀한다.
4)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잠 1;21)
\"어귀\"는 성문의 입구, 성문 어귀는 재판 장소였으므로 많은 사 람들이 붐비었다. 사무도 보았고, 토지의 매매와 속량도 행해졌다. 시장도, 회의 장소도 되었다.
시장 바닥, 사람이 많은 곳으로 생각하면 된다.
2. 초청의 방법
1) 부르며 (잠 1:20)
\"부르며\"는 소리를 진동시키다로서, 선언을 하는 분명하고 크게 울리는 어조를 뜻한다.
2) 소리를 높여 (잠 1:20)
\'그의 음성을 들리게 하며\' 이다.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부르시는 것이다.
3) 소리를 지르며 (잠 1:21)
간절성을 의미한다. 간절하게, 급한 소리로 다 듣게, 애절한 마음 으로 우리를 초청하신다는 말씀이다. 구약시대 사람보다 신약시대 사람의 벌이 더하다. 왜냐하면 성취하신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꾸 달라고만 기도하면 안된다. 주신 은혜를 잘 사용해야 한다. 자꾸 꾸어오기만 하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주신 것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지혜롭게 기도하는 성도가 되길 바란다. \'주 신 은혜를 하나님 좋아하시는 일에 쓰겠습니다\'라고 지혜롭게 기도 하자.
3. 초청하는 이유
1)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을 좋아해서 (잠 1:22)
\"어리석은 자\"는 4절에서처럼 생각이나 사려가 없이 무관심한 자로서 악에 유혹받기 쉬운 자를 말한다.
2) 거만한 자는 거만을 좋아해서 (잠 1:22)
\"거만한 자\"는 조롱하는 자, 29:8절의 오만한자와 같다. 어근은 조롱하다이다. 아마도 소리를 흉내내면서 조롱하는 자를 가리키는 것 같다. 이들은 모든 선언을 조소하며 스스로 만족하고 하나님과 사람을 멸시한다. 저들은 사람의 책(責)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고 또한 교육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들은 전혀 개신(改新)할 수 없다.
3)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잠 1:22)
\"미련하다\"라 함은 무겁다, 둔하다, 비대(肥大)하다 등의 뜻이 있 는데 도덕적으로 무감각하고 또한 도덕에 관심치 않고 행동하는 자들을 일컫는다.
누가 말을 해도 듣지 않고 자기만이 제일이라고 한다. 우리 속담 에 \'벽은 창문이다\'라는 말이 있다.
4. 초청의 내용
1) 책망듣고 돌이키라고 (잠 1:23)
이 말씀은 22절에 언급된 인물들을 전연 소망이 없다고 보지 않 는다. 책망은 죄인이 돌아와서 회개하기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사람은 인간 사회에서 다른 사람의 책망을 듣기도 하고, 책망을 하기도 해야 한다. 우리는 다 50%는 좋은 사람이고, 50%는 나쁜 사람이다. 50%는 하나님의 형상을 받았고, 50%는 죄로 인하여 타 락된 모습이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권면, 책망이라는 말씀이 많이 나온다. 우리는 책망을 듣고 돌이킬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뉘우친다는 말과는 다르다. 회개와 같은 말이다. 회개라는 말은 \"생각 + 달리한다\"의 합성어이다. 즉 행동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정신이 우리 몸을 이끌기 때문이다. 사탄이 가룟 유다의 머리속에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어더라에서 \'생각\'을 주목해 보라.
2) 신을 부어주신다고 (잠 1:23)
물이나 기름 붓듯이 부어 주겠다는 말이다. 사 44:3, 욜2:28과 같 은 후대(後代) 예언과 그 예언을 그리스도께서 응(應)하시고 허락 (許諾)하셨다는 선언은 실로 여기서 싹트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신\"이라는 말은 성신을 말하며, \"부어 주신다\"는 충만히 받으라 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이 것은 신자와 성도가 다르다는 말이다. 우리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3) 말을 보이겠다고 (잠 1:23)
성령을 먼저 받아야 말씀을 해득하게 되고, 성령을 받으려면 먼 저 회개해야 함을 의미한다. \"보이리라\"함은 가르치리라, 상술하리 라, 밝히 해석해 주리라의 뜻이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예수님을 4대 성 자중의 한사람으로 아는 사람들이 있다. 서기관, 율법사, 교법사들 은 성경을 베끼는 사람들이다. 보관하는 사람들이다. 가르치는 사 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우리 는 성경을 이성으로 받아들이면 안된다. 성령의 감동과 내 꾀는 전 혀 다르다. 그러므로 \"귀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 이다. 귀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귀에 할레를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기 전에 \'성령으로 기록된 말씀 성령께서 밝혀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말씀을 먹은 후에는 \"말씀을 먹었으니 살과 피가 되서 살게 하소서\"라고 기도해 야 한다.
4) 초청을 거절하면 재앙 만날 때 비웃고 웃겠다고 (잠 1:26)
\"재앙\"은 무겁게 뒤덮치는 불행이며 희생물을 눌러 부수어 버리 는 것을 말한다. 악인의 형벌의 중함을 표시하는 말들이 연달아 나 온다. 즉 재앙, 두려움, 광풍, 폭풍, 슬픔, 근심 등 이런 것들이 올 때 지혜는 웃으며 비웃으리란 것이다. \"웃는다\"라 함은 비웃는다는 시2:4의 것과 같다. \"두려움\"은 여기서 환유적으로 공포와 무서움 의 원인이 되는 무엇을 가리킨다.
초청을 거절하는 것은 \'미친 사람이 자기 발로 송곳을 밟는 사람 과 같다\'는 말과 같다.
5. 초청을 거절하는 자
1) 불러도 듣기 싫어하는 자 (잠 1:24)
저들은 지혜가 불러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은혜로운 초대 대신 에 심판의 협박을 받게 되었다.
마귀가 말씀을 못 받게 하는 것이다. 예배 시간에 조는 것은 사 탄의 장난이다. 한 번 망신당하면 마귀가 도망간다. 한번 망신시키 면 예배 시간에 자지 않는다. 이와같이 사탄은 말씀을 못 듣게 한 다. 하나님께서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다. 듣지 말라는 친구 말은 듣는다.
2) 손을 펴는데도 돌아보지 않아서 (잠 1:24)
긍휼을 베풀어 구원하려고 손을 펴도 돌아보지 않다가 망한다.
누구가 사랑해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은 적 있는가? 누구를 위해서 죽어본 적이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구원이 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멸망밖에 없다.
3) 교훈을 멸시하여 책망을 받지 않는 자 (잠 1:25)
\"교훈\"은 선을 행하라고 장려하는 의미에서 충고이다. \"멸시하 려\"는 지나가게 하는 것, 풀어주는 것을 뜻하므로 여기서 지나쳐 버리는 것, 거절하는 것을 뜻했다. \"책망\"은 악을 행치 말라는 권고 를 의미한다. \"받지 아니하였은즉\"은 추종을 거부하다의 뜻이다.
안 듣는 것만해도 죄가 큰데, 멸시하는 것은 더욱 죄가 크다. 책 망을 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 보다 불행한 것은 없다. 사람은 간섭 이 있어야 한다. 고추나무에도 지줏대가 필요하다. 세상에 살 때 으지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소중한 것이다. 이들은 이것을 외면하 고 제 멋대로 산다.
4) 지식을 미워함 (잠 1:29)
저들은 신령한 진리의 빛이 저들의 행하는 길의 악함을 들어냄 으로 그 빛을 미워한다.
예수님은 빛이시다. 그런데 이 빛을 사람들이 싫어했다. 빛이 어 둠에 왔으나 어둠이 깨닫지 못했다. 캄캄한 밤에 빛이 오면 얼마나 반가운가? 그런데 이 빛을 싫어했다.
6 초청을 거절하는 자의 결과
1)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함 (잠 1:27)
\"광풍\"은 황폐케 하는 태풍을 말한다. 집이 무너지는 것처럼 붕 괴시키는 것을 뜻한다. 즉 멸망의 갑작스러움을 뜻한다.
멸망이 갑자기 임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에 당황할 일이 참 많이 발생한다. 앞으로는 더욱 더 당황하는 일이 많이 발생할 것이다. 빛과 어두움, 선과 악, 물과 기름, 성령과 마귀가 하나가 될 수 있 는가? 섞일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영이 다르기 때문에 여호와 하 나님 섬기기를 싫어한다. 길거리에 놀던 아이들이 해가 질녘에 자 기 집으로 돌아간다. 마찬가지로 세상 끝날에 성도는 아버지집 천 국에, 저들은 저들의 아버지 집인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2) 재앙이 폭풍같이 임함 (잠 1:27)
\"폭풍\"은 납치해가다라는 뜻이다. 모든 것을 휩쓸어 가는 회오리 바람을 가리킨다.
초청을 거역하면 이렇게 된다. 회오리 바람에 욥의 10남매가 죽 었다. 말세에는 여호와의 초청을 듣지 않는다.
3) 근심과 슬픔이 임함 (잠 1:27)
\"근심\"은 압축을 의미한다. \"슬픔\"은 협소, 포위를 뜻한다.
근심과 슬픔이 오는 일을 해놓고 웃기를 원하는 착각속에 빠진 다.
4) 환난때 불러도 대답이 없고 찾아도 못 만남 (잠 1:28)
그들은 너무 늦게 찾아보았다. 문이 이미 굳게 닫혔다.
입양되었던 아이들이 엄마와 아버지를 찾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피가 통하는 것이다. 버렸다는 슬픔보다 만난 기쁨이 더 큰 것이다. 그것이 피다. 밭에서 일하는데 콧노래 부르며 일하는 사람 이 있는가 하면 시간만 보며 빈둥빈둥하는 사람이 있다. 콧노래 부 르는 사람은 그 밭 주인의 아들이고, 빈둥빈둥 시간만 보는 사람은 삯군이다. 환난 때에 여호와께서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러므로 우 리는 가까이 계실 때에 여호와를 부르는 성도가 되어야 겠다.
5) 행위의 열매를 먹음 (잠 1:31)
심은대로 거둔다(갈6:7-8).
무엇을 심었는가? 챨을 심은 데 팥의 싹이 나오게 마련이다. 콩 을 심은데 콩의 싹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만이, 모르드개가 자기가 판 함정에 자기가 빠졌던 것이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불에 던지려던 사람이 자기 꾀에 빠진 것이다.
7) 자기를 죽임 (잠 1:32)
\"퇴보\"는 돌아선다, 돌아간다라는 뜻이다. 이반(離反), 탈당, 반 역, 물러감을 뜻한다. 즉 하나님에게서 돌아선다는 것이다. \"안일\" 은 여기서 나쁜 의미로 쓰여졌고 부주의함, 나태를 뜻한다.
\"예\"하는 사람은 살고, \"싫어요\"하는 사람은 죽는다.
7. 초청을 응하는 자의 결과
1) 안연히 삶 (잠 1:33)
위험이 없이 안심하고 산다는 의미이다(신33:12-18).
형통한가? 지혜에 초청에 응하자! 당황하는 일이 우리 주변에서 많이 일어난다. 내 당대만이 아니라 내 후손까지 여호와의 초청에 응하여 안연한 삶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