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제33강
시편 24 편 영광의 왕이신 만군의 여호와
2002-02-20 09:20:24 read : 27
오늘은 스물 네 번째의 시입니다. 표제를 보면 이도 다윗의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지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시는 다윗 한 개인의 시라기보다 이스라엘 전 공동체의 시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시는 다른 어떤 시보다 공동체적 특성이 강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곧 온 회중이 함께 노래하며 부른 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도자가 선창하면 회중이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옛 성도들은 이렇게 서로 화답하면서 성전을 올라갔던 것입니다.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는데, 먼저는 1절과 2절로 온 땅을 지으신 창조주로서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절로 6절에서는 하나님 앞에 선 예배자들의 언약적인 삶을 노래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7절로 10절은 영광의 왕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높이고 그 이름을 찬양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를 제왕시로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묘사하면서 그 영광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이 시는 인도자와 회중이 함께 화답하는 시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그 화답이 이루어지겠습니까? 먼저 선창자가 \"땅과 그 안의 모든 것들이 여호와의 것이요 세계와 그 안에 사는 모든 자들이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선창하면, 온 회중이 한 목소리로 \"왜냐하면 그가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셨고 강들 위에 건설하셨기 때문이라\"라고 화답하게 되겠지요? 또 \"누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있겠으며 누가 그의 거룩한 곳에 오를 수 있겠는가?\"라고 선창을 하면 회중들이 또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그 영혼을 우상에게 바치지 아니하며 거짓으로 맹세하지 않는 자라\" 이렇게 화답하겠지요?
또 \"그는 여호와로부터 축복을 받고 그를 구원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움을 얻게 될 것이라\"라고 선창하면 \"여호와를 찾는 세대가 그러할 것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가 그러할 것이라\"하고 화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모두 함께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께서 들어가신다\"라고 노래하고 다시 또 선창자가 \"영광의 왕이 뉘시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강하고 능하신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이시로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또 모두 함께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께서 들어가신다\"라고 합창할 것이고 또 선창하는 이가 물을 것입니다. \"영광의 왕이 뉘시냐\"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만군의 여호와, 바로 그가 영광의 왕이시니라\"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 시는 이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로 노래하며 성산에 오르는 그들의 감격과 기쁨을 완벽히 재현하고 그 감정을 느끼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삶을 잘 이해하고 또 최대한 잘 번역하려 해도 그들의 삶 속에 녹아 있고 그들의 언어 속에 녹아 있는 정서를 공감하기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들이 보였을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다. 나지막한 산을 오르면서 함께 주거니 받거니 노래하며 오르는 그들의 모습을 말입니다. 물론 우리 신약의 백성들도 많은 좋은 노래들을 가지고 있고, 서로 화답하며 부르는 복음의 노래 또한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백성들이 가졌고 누렸던 풍성한 유산 또한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비록 가리운 휘장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모셨으면서도 그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평안을 노래하고 의를 노래하고 소망을 노래했습니다. 형제들이 함께 어깨를 걸고 하나님 앞에 사는 언약의 삶을 노래했습니다. 혹시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러한 히브리인들의 노래와 그 속에 녹아 있는 독특한 삶과 사상을 연구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여하튼 그들의 삶과 신앙은 일체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노래는 삶 그 자체였고 그 삶의 노래는 모두 믿음을 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처럼 믿음의 노래들이 세속 사회 속에서 극히 한 부분에 불과한, 그래서 사람들의 입에서는 흘러 나오는 노래란 대부분 세속적인,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들의 삶이 더욱 동경이 가고 부러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교회 안에서만큼은 우리가 함께 이런 삶을 이런 문화를 구현해 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자 오늘 본문을 보면 먼저 1절과 2절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서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 아마도 레위인들이 선창을 하고 회중들이 화답을 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도 함께 교독해 볼까요? 1-2\"--------\" 다윗은 선언하기를 \'모든 피조물은 다 여호와의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땅과 그 안의 모든 것\' 그리고 \'세계와 그 안에 사는 모든 자\'를 짝을 이루며 반복하므로 그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법을 통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이 다 여호와 하나님의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절에서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곧 모든 피조물이 왜 다 하나님의 것인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친히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셨고 강들 위에 건설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물로부터 땅을 지으셨고 그리하시므로 그 터를 세우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러하기에 그 가운데 만유는 존재하는 것이고 그가 만유의 터가 되신다는 의미로 그는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곧 모든 피조물은 다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자신의 처소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여기 지으신다는 단어를 성전을 자신의 거소로 지으신 바로 그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곧 온 세상을 자기 영광을 나타내고 그 생명으로 호흡하시는 생명의 처소로 지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만유는 하나님의 영광의 처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중 에덴을 구별하여 그곳에 자기 형상으로서 사람을 두시고 그곳에 임재하셨습니다. 교제의 처소로, 영원한 생명의 처소로 그곳을 구별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범죄함으로 그곳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의 처소, 영원한 안식과 생명의 처소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이내 그 처소는 땅에서 사라졌고 다만 사람들에게는 인간이 가까이 할 수 없는 가리운 세계로 남겨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천사들을 두시므로 그 길을 막으셨고 그 천사의 형상은 가리운 휘장 가운데 새겨졌습니다. 곧 가리운 휘장 가운데 천사의 형상을 새기므로 하늘의 것을 땅의 상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생명의 길을 소망케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영원히 지으신 세계를 떠나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세상은 이미 그 때 끝났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임재의 처소, 영광스러운 교제의 처소로 친히 성전을 구별하여 주셨고 그 성전은 예루살렘 나지막한 산 위에 세워졌습니다. 소위 \'시온산\'이라 일컫는 산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3절에 \'누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있으며 누가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수 있는가\'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그 산에 오를 수 있으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습니까? 4\"-----------\" 이것은 지금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언약백성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도덕적인 탁월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언약적인 삶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보면 어디가 생각납니까? 시편 15편이 생각나지요. 까마득한 이야기입니까? 15편을 보면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라고 묻고 그 질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이런 식으로 쭉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하나님을 예배함에 합당한지, 누가 하나님과 함께 교제함에 합당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 24편의 시도 그런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함께 성전을 올라가며 누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거룩한 곳에 서며 하나님과의 언약의 교제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묻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합당합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요구인 율법 안에 거하는 자, 그 언약의 법에 신실한 자입니다. 바로 그것을 본문은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그 영혼을 우상에게 바치지 아니하며 거짓으로 맹세하지 않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손이 깨끗하다는 말은 그 행실이 깨끗하다는 말이 되겠지요? 그리고 \'거짓으로 맹세하지 않는다\'는 말은 맹세한 바를 따라 신실히 사는 것을 말하겠지요? 바로 이런 자가 하나님을 예배함에 합당하고 언약의 교제에 참여할 수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 거룩함과 언약적인 삶을 이루며 사는 자, 하나님의 나타내신 뜻에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응답하며 사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산에 오를 수 있는 자인 것입니다.
이처럼 주의 백성들은 성전에 임재하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가므로 생명과 복을 누립니다. 주의 산에 오르며 그 거룩한 성전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대면하여 서는 그런 백성이 복된 백성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생명을 누릴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자기백성과의 교제를 경영하시는 방식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제 시온의 성전에 자기 이름을 두시지 않았고 가리운 휘장을 여시고 그 처소를 하늘 성소에 두시므로 만유를 새롭게 하셨지만, 여전히 우리 또한 하나님을 떠나서 살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상에 앉지 않고 살 방법이 없고 하나님을 대면하지 않고 살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을 대면하여 삶이 우리의 생명이요 복이요 기쁨이요 만족입니다. 그를 떠나서는 곤고함이요, 저주요 슬픔이요 죽음입니다.
그래서 5절에서 그 축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기도 한 번 교독해 보도록 하십시다. 5-6\"--------\" 여호와를 찾아 구하고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가 축복을 얻을 것입니다. 그 앞에 나아오는 자가 의로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한 자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 복은 하나님께 의를 얻는 복이요 모든 약속하신 은혜를 얻는 복입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자가 그 은혜와 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상에 나아오는 자가 하나님께로부터 의와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옴이 중요한 것입니다. 기복신앙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아오지 않고 의를 얻을 수 없고 은혜를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복과 생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입니다.
우리가 자꾸 기복주의를 대항하다 보니까 \"하나님은 이 예배당에 계시는 것이 아니고 어디나 계시고, 꼭 교회에 와야만 은혜를 얻는 것이 아니고, 꼭 교회에서 기도해야만 들으시는 것이 아니고\" 이런 식으로 말하게 되지만, 우리가 교회로 모여 하나님을 예배함에 복이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고 은혜를 얻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럼 혼자 예배하면 은혜를 못 얻냐\" 그런 말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주님의 몸을 이루는 교회로 부르셨고, 함께 언약의 상으로 나아오는 교회에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곧 교회가 그 모든 약속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교회는 함께 모여야 하는 것이며 함께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7절로 10절의 말씀입니다. 여기도 한 번 함께 교독해 보겠습니다. 7절과 9절은 다 같이, 8절과 10절 상반절은 제가, 나머지는 여러분이 하시면 되겠습니다. 7-10\"--------\"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입니까?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므로. 그 영광의 왕은 누구십니까? 강하고 능하신 여호와십니다.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이십니다. 만군을 지휘하는 지휘자이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묘사하기를 마치 이스라엘을 위한 전사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병사들을 진두 지휘하여 싸우시고 그 승리를 이끈 왕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승리하신 왕으로서 돌아오시고 그 처소에 들어가시는 것으로 그리고있는 것입니다.
그가 이스라엘과 함께 나가 싸우시고 이제 승전하신 왕으로 자기 처소로 들어가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문들은 열려야 하고 그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모든 이들이 그 영광 앞에 무릎꿇어 경배해야합니다. 바로 이 승리를 이제 하늘의 승리로 이끄신 분이 우리의 영원한 왕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친히 이스라엘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신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를 위해 싸우셨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지금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어둠의 영과 싸우셨습니다. 그는 죽임을 당하시므로 굴복하시는 듯 했으나, 이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므로 그 세력을 꺾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보좌에 오르시므로 그 권세를 무력화시키셨습니다. 하늘 성소에 들어가시므로 은혜의 왕국을 이 땅에 세우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하늘 문은 그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영원한 문들은 들려야 합니다. 그가 부활하신 주로서, 영광의 왕으로서, 영원한 생명의 권세자로서 그 성소에 들어가시기 때문입니다. 강하고 능하신 왕으로, 죽음을 이기신 왕으로, 이 세상을 이기신 왕으로 하늘 성소에 들어가시기 때문입니다. 이 영광의 왕이 누구십니까? 친히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시고 죽기까지 싸우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죽은 자 가운데 일어나시므로 결국 승리를 얻으신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친히 자기 생명을 버리신 분, 우리를 위해 죽음을 이기고 일어나신 분, 하늘 영광의 생명의 보좌에 오르신 분이십니다. 그리하여 이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자가 되신 분이십니다. 모든 성도와 모든 천사들의 왕이 되신 분 바로 이분이 영광의 왕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승리하신 부활의 주님을 기뻐함이 우리의 능력입니다. 그분을 소리 높여 즐거이 노래함이 우리의 능력입니다. 그분을 찾고 그 얼굴을 구함에 우리의 승리의 길이 있고 그의 택하신 백성으로서 그 언약에 신실함에 우리의 의로움과 축복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하여 그 앞에 우리를 세움에 우리의 깨끗함과 모든 죄의 속삭임을 이기는 승리의 길이 있습니다. 다른 길로 여러분이 깨끗해 질 수 없고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산에 올라 수양을 한다고 죄를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운다고 정결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빛이신 하나님을 대면할 때만, 영광의 주님 앞에 설 때만 여러분은 깨끗해지는 것이요 모든 죄의 속삭임을 이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활의 주님을 알고 그분을 기뻐할 때만 이 세상을 이기는 것이요, 나아가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까지도 이기는 것입니다.
다른 길이 있지 않습니다. 오직 그분을 믿고 의지하는 것, 그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 그 언약에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 끊임없이 그를 대면하여 사는 것, 바로 거기에 우리의 의로움과 담대함과 능력과 깨끗함과 축복과 승리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영광의 주님을 노래하는 이 시편으로 주의 부활을 노래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므로 사실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