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제3강
삼상 1장 9-28절
한나의 눈물(삼상강해 3)
에브라임 산지에 엘가나라는 레위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한나와 브닌나라는 두 아내가 있었습니다. 한나라는 이름은 \'풍성한 은혜\'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브닌나라는 이름은 \'붉은 진주\'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한나\'와 \'브닌나\' 가운데 어느 것이 좋습니까.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나는 \'붉은 진주\'보다는 \'풍성한 은혜\'를 택할 것입니다. 사춘기 때는 아마 브닌나(붉은 진주)를 택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브닌나를 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브닌나(붉은 진주)보다는 한나(풍성한 은혜)를 더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메튜 헨리는 한나와 브닌나에 대해 말하기를 한나가 첫째 아내인데, 한나가 아이를 갖지 못해서 엘가나가 두 번째 부인으로 브닌나를 맞이했을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결정으로 엘가나의 가정에는 \'한나와 브닌나의 갈등\'이라는 복잡한 문제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가정의 혼란에 대해서 첫 번째 책임은 엘가나에게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일부일처의 법을 어기고 혼란을 자초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일부일처의 법을 만드셨을까요. 좋은 사람끼리 자유롭게 잠도 자고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헐리웃 영화의 사랑처럼 오늘은 이 침대, 내일을 저 침대로 갈 수 있다면 좋아할 사람이 꽤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삶은 결코 좋아할만한 삶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런 삶은 틀림없이 인간의 불행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일부일처의 법을 제정하신 것입니다.
엘가나가 일부일처의 법을 어김으로 가정에 복잡한 문제가 생겼으나 한 가정의 복잡한 문제가 결국 은혜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 문제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사무엘이 태어나는 발판이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많은 위대한 일들이 무의식 중에 행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베들레헴의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처럼 위대한 일이 태동되고 있을 줄은 이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몰랐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아는 일이지만 가치없는 일이 있고 사람들이 모르는 일이지만 위대한 일이 있습니다.
엘가나의 성급함으로 인한 가정의 분란! 그러나 하나님은 그 분란이라는 고통스런 환경을 통해서 사무엘이란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그러나 그 선한 작품이 나오기까지 있었던 한 여인의 눈물을 잊어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 눈물은 바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눈물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장에서 우리는 한나가 세 종류의 눈물을 흘린 것을 보게 됩니다.
1. 탄식의 눈물
처음에 한나가 흘렸던 눈물은 탄식의 눈물이었습니다. 그 눈물은 아들을 낫지 못했기 때문에 설움을 받아서 생긴 눈물이었습니다. 아들을 낫지 못했어도 엘가나는 그녀를 더욱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희생제물을 다른 사람들보다 갑절이나 주었습니다(1:5). 그러나 아들을 못낳는다고 둘째 브닌나를 맞이한 것 자체가 속상할 일인데, 그런 중요한 과실은 접어두고 갑절의 위로를 한들 그 위로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둘째 브닌나가 수시로 한나를 격동시켰습니다. 그러므로 한나의 탄식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한나가 아들을 낳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사무엘상 1장 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니...\"
한나도 자신의 고통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시련도 인간의 치욕이 수반되니 참기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하는 사람에게 치욕까지 주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잔인한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꼴찌에게 치욕을 주지 마십시오. 오히려 꼴찌에게 박수를 쳐 줄줄 알아야 합니다. 패자에게 치욕을 주지 말고 격려해 줄줄 아는 문화가 선진문화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패자에 너무 인색합니다. 패배한 것도 속이 상할 일인데 거기에다가 치욕까지 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패자에게 박수를 쳐 주는 데에 참으로 인색합니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경기에 나가 진다면 감독과 선수들이 여론에 의해 얼마나 혹독한 몰매를 맞습니까. 이런 문화는 정말 고쳐야 합니다. 이런 문화는 못사는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사는 본능에 의한 일차원적인 문화입니다. 이런 문화를 고치지 못한 상태라면 돈좀 가졌다는 점으로 인해 어찌 선진문화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지면 안되는 줄 알고 온갖 부정을 저질러서라도 이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선거에까지 그런 관행이 생겨서 한 번 선거가 있다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 자기 인생의 전부를 걸면서 행동합니다. 그래서 선거에 지면 자기 인생이 실패한 것으로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는 것은 악이고 이기는 것은 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선이 잠시 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최선을 다한 패자에게도 박수를 쳐 줄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교인들도 부분적으로 반성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일부 교인들은 외적인 것을 보고 교회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큰 교회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크게 일어나고 작은 교회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작게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고방식은 절대 진리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작은 교회를 외면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렇제 않습니다. 작은 교회에도 박수를 쳐 주면서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않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타인의 행복을 증진시킬 때 나의 행복이 발굴됩니다. 그러나 타인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면 나의 눈에는 피눈물이 흘려지게 될 것입니다. 브닌나는 이 원리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나의 탄식의 눈물은 깊어져만 갔습니다.
2. 기도의 눈물
그러나 한나는 탄식의 눈물로만 밤을 새우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탄식의 눈물을 기도의 눈물로 승화시켰습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한나는 통곡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탄식의 눈물은 기도의 눈물로 변해야 해결의 길이 열립니다. 그런데 이 한나의 몇가지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간절한 기도
한나는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소리는 나지 않고 입술만 움직이니 제사장 엘리는 한나가 술먹고 취한 줄 알았습니다. 그와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한나의 기도는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기도할 때 소리를 내어서 기도해도 좋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기도해도 좋습니다. 다만 간절히 기도해야 하나님 앞에 상달됩니다.
2) 서원기도
그리고 그녀는 서원기도까지 했다.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겠습니다(11절).\" 이 한나의 겸손한 서원기도에는 하나님의 흥정하는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과 흥정하는 식의 서원기도는 정말 금물입니다.
3) 믿음의 기도
또한 한나의 기도는 믿음의 기도였습니다. 기도한 후에 한나의 얼굴에는 다시는 수색이 없었습니다(18절). 응답은 오지 않았는데 수색이 사라졌다는 것은 응답이 올 것을 믿었다는 증거이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었다는 증거입니다.
기도하기 전에 한나는 슬픔을 억누를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가나는 한나에게 \"어찌하여 그대 마음이 슬프뇨\"라고 했다(8절). 우리 믿는 사람들은 잠시 슬픈 모습은 보일 수 있어도 오래도록 슬픔 가운데 젖어 있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자녀를 통해 전혀 영광을 받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슬픔도 지나치면 죄가 됩니다. 우리가 욕망을 조절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슬픔도 조절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슬픔을 조절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힘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욕망과 슬픔을 조절하는 가장 적절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한나는 기도 후에 얼굴을 폈습니다. 참 기도가 바로 그런 기도입니다. 기도한 후에 얼굴을 펴는 기도! 이런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4) 어머니의 기도
여기에서 사무엘이라는 자녀를 얻기 소원하는 장래 어머니 후보생의 기도를 볼 수 있습니다. 한나가 사무엘을 낳기 전에 기도하는 여인이었듯이, 그녀는 사무엘을 낳은 후에도 역시 기도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오늘날 가장 그리운 것이 무엇일까요. 나는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무엘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도의 어머니 한나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훌륭한 사람에게 있는 것은 바로 훌륭한 어머니입니다.
어렸을 적에 한 어머니의 교훈은
신묘한 위력으로 자녀의 영혼을 죽을 때까지 감쌉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어머니의 교훈은
어머니의 기도와 어머니의 눈물!
눈물의 기도를 아는 어머니는 이 시대 최고의 교사입니다.
3. 헌신의 눈물
결국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녀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한나는 그 은혜를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 아들 이름을 사무엘이라 지었습니다. 사무엘이란 이름은 \"내가 하나님께 구했는데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셨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을 절대 외면하지 않는 하나님인데, 사무엘이란 이름에는 그와 같은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한 한나의 간증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21절과 22절의 초반부를 보면 엘가나와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그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한나는 제사를 드리러 여호와의 전으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아들을 바치겠다\'고 서원한 것을 지키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누구보다 먼저 성전에 달려가 기도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한나의 더 깊은 뜻은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뵈게 하고 거기 영영히 있게 하리이다.\"
그녀는 바로 아들을 데리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지 아니한 것은 아이를 더 정성껏 준비시킴 다음에 바치려고 한 때문이었습니다. 어린 젖먹이를 그저 성전에 데려다 놓으면 엘리가 어떻게 아이 문제를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젖 땔때까지 기다린 것입니다. 여기에서 조금 늦더라도, 조금 적더라도, 조금 감동이 덜 되어도 하나님 앞에 정성껏 드리려는 한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나는 간신히 젖뗀 아이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에 가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아이를 바치고 난 다음 돌아올 때의 한나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사무엘은 어렵게 간신히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한나에게 있어서 사무엘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녀는 최고의 것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 아들을 바치고 돌아올 때 눈물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 눈물은 헌신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눈물로 아들을 바치면서 서원기도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로 인해 원망스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하다는 생각도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받았으면 드릴 줄 알아야 한다는 평범한 원리를 그녀가 몰랐겠습니까. 받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썪습니다. 웅덩이 물이 잘 썪는 이유는 받기만 하고 바칠 줄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받은 것만큼 흘려보내면 맑은 생수가 끊임없이 솟아난다. 그런 의미에서 한나의 헌신의 눈물은 그녀에게 있어서 영혼의 생명수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 눈물의 헌신을 준비하십시오
왜 믿는 자에게 탄식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까. 그 이유는 기도의 눈물을 통해 응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나 \'응답받았다\'는 것에 머무르면 결코 행복이 없습니다. 응답받았다는 것으로 결론짓지 말고 한차원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 차원은 바로 \'헌신의 눈물\'이 흘려지는 차원입니다. 그러한 헌신까지 나아가야 진정한 행복이 찾아옵니다.
고통 다음으로는 기도가 있어야 하고, 기도 다음으로는 응답이 있을 것인데, 응답 다음으로는 헌신이 예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생은 마치 400미터 계주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 고통의 순간이 다가오면 기도라는 차원으로 바톤을 잘 넘겨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가 응답된 후에는 헌신이라는 차원을 바톤을 잘 넘겨야 합니다. 응답받고 끝나는 것은 400미터 계주에서 300미터만 달리고 끝나는 것과 같습니다. 300미터만 달리고 끝나는 것은 엄밀히 얘기하면 100만 달리고 끝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헌신의 눈물이 없다면 응답의 역사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탄식의 눈물은 최종적으로 헌신의 눈물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헌신의 눈물이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헌신의 눈물\'이 없을 사람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그분의 무한하신 예지능력으로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헌신을 준비하십시오! 그러한 마음의 준비가 있을 때 하나님의 여러분의 삶에 신속하게 개입해서 여러분의 고통스런 환경을 복된 환경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