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제5강
삼상 2장 1-11절
역전의 하나님(삼상강해 5)
믿음을 가진 사람은 구원, 변화, 열쇠라는 세가지 귀한 복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구원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천국으로 가는 복이고, 변화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복이며, 열쇠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받는 복입니다.
1. 구원
예수를 믿는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복음은 성경에 나오는 모든 말씀의 집합이자 완성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소중한 것입니다. 그 구원의 복음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8-11절은 구원의 소중함에 대해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로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그리고 이 구원의 복음은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필 정도로 경이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구원의 복음은 선지자들에게만 경이로운 것이 아니라 천사들에게도 경이로운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복음입니까. 만약 하늘 문이 열렸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하늘의 신비를 조금이라도 더 들여다 보려고 혼신의 힘을 기울일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이라는 주제에서는 반대의 모습이 나타날 것입니다.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는 천사들이 오히려 이 땅에서 펼쳐지는 구원의 역사가 신기한 듯이 내려다 볼 것입니다. 마치 천국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구원만큼 위대하고 매력적인 것이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 주어진 구원의 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2. 변화
믿음에는 예수님과 같은 성품으로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받기 전과 구원받은 후의 변화가 분명해야 합니다. 불변하시는 하나님을 기초로 삼으면 우리에게는 놀라운 변화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불변하시는 반석과 같은 하나님!
인간은 자신보다 덜 변하는 것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자신의 안정과 안식을 그 대상을 통해서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항구적인 지위를 원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이 지위는 오직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불변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불변하시는 하나님이 참으로 인간의 변화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불변성이 변화의 원천이라는 사실, 이 역설적인 사실이 바로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변화하는 것은 변화의 원천이 될 수 없습니다. 변화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고 자랑하는 것은 참된 변화가 아닙니다. 돈이 조금 있다고 변화된 줄 알면 착각입니다. 돈 자체가 변화무쌍한 존재이기 때문에 돈이 주는 변화는 참된 변화가 아닙니다.
오직 불변하는 것만이 참된 변화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변화의 원천입니다. 그리고 진리만이 변화의 원천입니다. 나는 예수믿고 변화된 것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나의 변화된 모습을 생각하면서 반석의 하나님이 나의 삶의 원천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할 때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3. 열쇠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가 손에 주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는 성도는 손에 열쇠를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문제의 문을 앞에 두고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의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문제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손에 쥐었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문제의 문을 스스로 열 수 있도록 열쇠를 활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이 열쇠를 최초로 받았습니다. 그가 어떻게 열쇠를 받게 되었습니까.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열쇠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뭐라 하느냐?\"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다른 어떤 선지자라고 합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나서서 말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참으로 멋드러진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그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이제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
베드로는 멋드러진 신앙고백 하나만으로 열쇠를 받았습니다. 신앙고백 하나라도 확실히 잡고 있으면 이런 열쇠를 손에 쥐게 됩니다. 한나에게도 베드로에게 주어졌던 열쇠가 주어졌음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본문에는 한나의 멋드러진 신앙고백이 잘 표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그의 노래를 통해서 하나님은 실제적인 변화를 주는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1절). 그리고 또한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요 반석이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2절).
그리고 3-11절에서는 하나님이 주권자 하나님임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 하나님은 교만한 자는 높이시고 겸손한 자는 낮추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만한 자의 행동을 달아보시며(3절), 용사의 활은 꺾고 넘어진 자는 힘주시며(4절), 하나님으로 인해 없는 자는 있게 되고, 있는 자는 없게 되며(5절),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6절). 그처럼 하나님은 생명까지 주관하시는데 다른 것을 주관하실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한나의 노래가 말하는 메시지가 결국 이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모든 문제 해결의 키를 소유하고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키를 쥐고 계신 분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주권을 쥐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러면 왜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 성도에게 때로 가난하게 만드시고, 낮은 자리에 처하게 만드시고, 진토와 거름더미에 두십니까. 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실패를 허용하십니까. 그 이유는 실패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실패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를 가릅니다.
첫째, 실패는 신앙을 가릅니다. 한 사람이 진정한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는 실패의 순간에 그가 반응하는 모습을 통해서 갈려집니다. 둘째, 실패는 친구를 가릅니다. 한 사람이 진정한 친구를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는 실패의 순간에 그를 찾아오는 친구가 있느냐의 여부를 통해 갈려집니다. 셋째, 실패는 축복을 가릅니다. 한 사람이 진정한 축복을 받아누릴 수 있느냐의 여부도 그가 실패를 어떻게 창조적 내일의 초석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 하는 여부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사랑하는 성도에게 실패를 허용하시는 이유는 실패가 보다 실제적은 교훈과 구체적인 삶의 지혜를 주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성공할 때보다 실패 속에서 더 큰 교훈과 지혜를 얻습니다. 항상 낮은 자리는 교훈을 받는 자리라는 원리를 알면 나를 낮추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낮은 자리는 배움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통해서 하나님은 많은 것을 배우게 하십니다. 그 자리에 있을 때 배움의 길을 닦으라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그 자리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잘 배우면 어떻게 됩니까.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이 임하게 됩니다. 잘 배운 순간, 하나님은 높은 자리에 여러분들을 이끌어 올리셔서 그 배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리고 열쇠를 주신 분입니다. 또한 변화의 원천으로 우리에게 변화의 삶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복된 삶을 사는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이 해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낮은 것을 높이시고, 약한 것을 강하게 하시는 역전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앞세우고 인생의 긍적적이고 창조적인 변화를 엮어내시고, 놀라운 인생 역전의 드라마를 만들어 내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