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제6강


삼상 2장 12-26절


엘리의 아들들과 사무엘(삼상강해 6)


본문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극명하게 대조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철저히 겉 사람의 육적인 삶을 추구하는 엘리의 두 아들들과 속 사람의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무엘입니다. 이 두 종류의 삶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1. 손에 쥔 시간이 차이가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엘리의 두 아들들은 세상이 제 것인양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제물을 마음대로 제 것으로 취하고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죄악까지 저지릅니다. 그처럼 마음대로 활개를 치고 다녀도 뚜렷이 제지하는 사람이 없으니 겉으로 보면 화려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현재라는 시간만 화려할 뿐입니다. 그들의 미래는 암담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얼마 후에 그들을 죽이기로 작정하셨습니다(25절). 그들은 오직 현재라는 시간만을 손에 쥐었을 뿐입니다.

반면에 사무엘은 소박합니다. 흰 세마포 에봇을 입고 집에도 가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 섬길 뿐이었습니다. 현재라는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은총을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현재라는 시간은 쥐지 못한 것 같았지만 미래의 시간은 그의 손에 있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들과 같은 겉사람은 오늘보다 내일이 못하고, 내일보다 모레가 못한 삶을 삽니다. 그래서 그들의 길은 시간과 함께 절망의 길이 될 것입니다. 반면에 사무엘과 같은 속사람은 오늘보다 내일이 낫고, 내일보다 모레가 나은 삶을 삽니다. 그래서 그의 길은 시간과 함께 복된 길이 될 것입니다. 겉 사람은 현재라는 시간만을 손에 쥔 사람이지만 속 사람은 미래의 시간을 손에 쥔 사람입니다.

2. 추구하는 방향이 차이가 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과 같은 겉 사람은 추구하는 방향이 땅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땅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들의 행동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영원의 장에 남을 것은 없습니다. 그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살다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고 그들의 영혼은 지옥에 빠져 신음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사무엘과 같은 속 사람은 추구하는 방향이 하늘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로 가게 됩니다.

겉사람의 동기는 땅에 속해 있으나 속사람의 동기는 하늘에 속해 있습니다. 겉사람의 촛점은 자기 자신이지만 속사람의 촛점은 하나님입니다. 겉사람은 사람을 죄로 인도하지만 속사람은 사람을 의로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방향은 항상 속사람이 추구하는 영적인 방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방향을 잘 잡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속도도 중요한 것이지만 속도보다는 방향이 훨씬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방향을 잘 잡으면 보잘 것 없는 인생이 다이아몬드와 같은 인생이 될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도 거무스름한 석탄 조각이 변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에 더 관심을 가지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3. 아는 것이 차이가 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들은 엘리 제사장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사무엘은 하나님을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주인으로 알고 섬겼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같이 알고 있었지만 그 지식의 내용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의 두 아들들과 같은 겉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교만해지나 사무엘과 같은 속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운 인격체가 되어갑니다. 무엇을 아느냐 하는 것보다 어떻게 아느냐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겉사람은 지식의 증대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속사람은 삶의 변화를 자랑합니다. 어느 것이 중요한 것입니까. 삶의 변화가 중요한 것입니다. 실천없는 지식은 교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지식 자체를 무시하는 것은 편협한 자세입니다. 바르게 알려고 하고 바르게 아는 만큼 바르게 실천하는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행동하는 것이 차이가 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들과 같은 겉 사람과 사무엘과 같은 속 사람은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전혀 다릅니다. 겉 사람은 정욕적으로 지내며, 몇 푼의 돈에 신경질을 내고 인격을 팝니다. 그리고 겉 사람은 성공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이성에 관심이 많고 때때로 도적질과 사기를 자행합니다. 그리고 원한을 쉽게 품으며 평생을 냉혈 동물처럼 살아갑니다. 겉 사람의 생활이 이처럼 추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생각이 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속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속 사람은 항상 거룩한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생각을 품는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의 생각의 호수에 파문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잔잔한 호수와 같습니다. 또한 헐벗고 추워도 마음은 항상 따뜻합니다. 태양에 시선을 빼앗긴 사람이 샨데리아 불빛이 아무리 찬란한 들 마음이 뺏기겠습니까.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는 속 사람은 어떤 유혹에서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는 엘리의 두 아들들과 같은 겉 사람과 사무엘과 같은 속 사람이 혼재해 있습니다. 겉 사람은 육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고 속 사람은 신령한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을 추구하시겠습니까.

육적인 것이 악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결코 추구하지 말라고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육적인 추구가 신령한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 앞서도록 하지 마십시오. 신령한 것을 육적인 것과 바꾸면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판 유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팥죽으로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육적인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앞세우도록 해야 합니다. 성도는 시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니고데모처럼 세상 돌아가는 것은 잘 알면서도 신령한 것을 모르는 성도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항상 하나님 중심적으로 사는 위대한 속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