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제10강

삼상 5장 1-12절


엎드러진 다곤(삼상강해 10)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습니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는 분이십니다. 이 진리는 그리스도인에게는 평범한 진리이지만 이 진리를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반면에 인간은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천국이 아닌 이 땅에서는 죽는 것이 오히려 축복입니다. 천국에서 천년 만년 살아야지 이 땅에서 늙어 치매에 걸리기 일보 직전의 상태에서 천년 만년 산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에서는 모든 생명체가 노화되어 죽도록 섭리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미와 영화는 얼마 후에 떨어지게 되는데 살아가면서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길을 택할 것입니까. 하나님 중심주의와 인간 중심주의의 두가지 길이 있는데 어떠한 삶이 우리들의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본문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가장 생생하게 나타내는 성경의 위대한 본문으로서, 우리들의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잘 가르쳐줍니다.

* 스스로 영광을 지키는 하나님

고대 사람들은 각기 종족 수호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족간에 전쟁을 해서 이기는 종족은 자기네들의 신이 쎄서 그 전쟁에서 이겼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호와 신의 명성은 주변 나라들 및 족속들에게 자자했습니다. 여호와 신은 애굽의 나일신(첫째 재앙, 피로 물들게 함)과 애굽에서 가장 위대하게 생각했던 태양신(9번째 재앙,흑암으로 만듬)까지 물리치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시켰다는 소문이 각처에 퍼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신을 앞세운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의 어려운 환경과 수많은 대적들을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에는 변변한 무기도 없이 가나안의 수많은 종족들을 물리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주변 종족들은 그 승리가 전적으로 여호와 신의 도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능력이 많으신 위대한 여호와 하나님! 그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동일하게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앙이 있는 자에게만 위대한 전능자로 나타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신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신앙이 없는 이스라엘\"에 의해 전쟁터로 옮겨졌을 때, 처음에 블레셋 사람들은 완전히 사기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신념을 가지고 일어나며 외쳤습니다. \"블레셋아 일어나자! 우리에게도 다곤 신이 있다. 힘써 대장부가 되자(삼상 4:9).\"

누가 이겼습니까. 벌써 정신력의 싸움에서 이스라엘은 그 전쟁에서 이길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언약궤까지 빼앗겼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네들의 신 다곤이 여호와 신보다 쎄다고 환성을 질렀습니다. 그 환성과 함께 다곤 신과 관련된 과거의 피맺힌 한이 사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다곤 신과 관련하여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한스러운 아픈 기억이 있었습니다. 여호와 신에 의해 감동된 삼손에 의해서 다곤 신전이 무너짐과 동시에 수천명의 블레셋 사람들이 몰살한 치욕적인 사건을 블레셋 사람들은 대부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치욕적인 기억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여호와 신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빼앗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의기양양하게 그것을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신당에 놓았습니다. 다곤 신의 명예를 회복하기에 더 없이 좋은 기회가 아닙니까. 마치 다곤 앞에 언약궤가 무릎을 꿇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튿날 보니 다곤 신상이 코를 쳐박고 땅에 엎드러져 있었습니다. 소름끼치는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야! 우연한 사고일거야!\" 그리고 다곤의 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 이튿날 보니까 더욱 끔찍한 장면이 블레셋 사람들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곤의 상이 언약궤 바로 앞에서 몸뚱이만 남은 채로 배를 쳐박고 엎드러져 있고 머리와 몸뚱이는 분리된 채 처참하게 문지방에 널려 있었습니다.

그 장면이 무슨 뜻인지를 알고 가슴이 떨렸지만 블레셋 사람들은 또 현실을 애써 부인하며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이것도 우연일거야!\"

그러나 하나님의 손은 그들의 자위를 철저히 짓밟았습니다. 독종의 재앙으로 아스돗 사람을 철저히 멸하니 그들은 공포에 질려 그 언약궤를 가드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드 사람을 독종으로 또 치셨습니다. 그러자 가드 사람들이 언약궤를 에그론으로 보냈습니다. 그러자 에그론에도 사망과 독종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블레셋 전 지역에서 흘러나오는 이 애통소리가 들리는 듯 느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멸시한 죄가 이토록 엄중할 줄 그들은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역사! 이 하나님의 살아계심! 결국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이겼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이길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해서 본문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몇가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인간들만의 잔치를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탈취한 언약궤! 탈취한 하나님의 영광! 블레셋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위대한 전리품! 그 전리품 앞에서 승리를 만끽하는 블레셋 사람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들만의 잔치를 매섭게 심판하십니다. 불의한 자에게 승리는 곧 심판의 시작이나 다름없습니다. 잔치가 참된 잔치가 되려면 하나님이 그 잔치의 상석에 계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잔치가 바로 심판의 자리입니다.

다곤은 인어 모습을 한 자연을 지배하는 블레셋 신입니다. 혹은 \"풍요의 농경신\"이라고도 여겨집니다. 다곤은 영광과 미와 풍요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약궤 앞에서 코를 쳐박고 얼굴이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이 장면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얼마나 교훈이 되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없는 영광과 미와 풍요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순식간에 그 아름다움이 사라질 것이고 순식간에 그 체면의 코가 땅에 쳐박힐 것입니다. 안간힘을 쓰고 다시 그 체면을 세워보겠노라고 노력하시겠습니까. 그러면 어느새 체면의 목까지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화려한 모습을 한 다곤 신상의 머리와 팔이 잘렸을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다곤의 몸통 부분의 비늘이 있는데, 그 비늘만 남은 흉칙한 모습만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한 흉칙한 모습은 하나님이 없는 영광과 미와 풍요의 종말적 형태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클레오파트라의 미모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클레오파트라의 코만 보지 마십시오! 일설에 의하면 클레오파트라에게도 치질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멸시하는 블레셋 사람에게 생긴 독종은 무엇입니까. 학자들에 의하면 그 독종은 악성치질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클레오파트라의 항문에 독종이 생겨 흉칙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녀의 미모가 무엇이 그리 대단합니까.

하나님이 없는 자는 모든 것을 뺏아긴 자이고 하나님이 있는 자는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자는 곧 수치를 당할 것이고, 하나님이 있다고 하면서 없는 자는 더 큰 치욕을 당할 것이나, 진정 하나님이 있는 자는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당신의 마음의 상석에 모셔 두십시오! 항상(매 순간), 그리고 범사(모든 일)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여러분의 삶의 앞에 내세우십시오! 그것이 진정 복된 길입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은 절대로 침해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영광에 침해되는 길은 자멸의 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수단화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팔아먹어도 하나님은 스스로 그 영광을 지키십니다.

전쟁에서 블레셋의 손에 넘기워진 언약궤의 아픔! 그리고 블레셋 진영에서 혼자 외롭게 남아 있는 언약궤의 외로움! 그러나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법궤를 찾으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진정 법궤를 승리의 도구로만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최선을 다해 법궤를 찾으려고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약궤라는 상징을 복의 도구로만 이용했다. 진정 하나님의 심정을,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의 영광을 지키십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저해하는 모든 것을 엄중하게 경고하십니다. 이스라엘에게도 패배를 통해서 엄중하게 경고하셨고, 블레셋에게도 독종을 통해 그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얻을 수 있는 복이란 절대 없습니다.

3. 회개없는 기도는 하늘에 상달되지 않습니다

법궤가 가는 곳마다 블레셋 지역을 독종이 창궐하게 되었고 그 성읍들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습니다(12절). 하늘까지 사무치게 한 그들의 부르짖음! 그러나 그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의 마음에는 접수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접수되는 부르짖음은 진지하고 정직한 회개가 수반된 부르짖음입니다. 범죄했을 때 다윗과 같은 간절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시 51:4) 한으로 부르짖지 말고 회개함으로 부르짖으십시오.

회개없이 언약궤만 이리 저리 움직여 보십시오! 그렇게 함으로 언약궤가 가는 곳마다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만 블레셋 사람에게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오직 회개 뿐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인가 길이 막혔다고 느끼십니까. 그 길을 뚫기 원한다면 회개로부터 시작하십시오! 그게 바른 길입니다.

* 살아계신 하나님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멋있게 지금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인간의 눈으로는 하나님의 활동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의 눈으로만 그것을 볼 수 있는 뿐입니다.

믿음의 눈이 없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 지역에서 하나님이 그토록 멋있고 위대하게 활동하고 있는지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일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놀랍게 진행됩니다. 차근차근 하나님은 지금도 승리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에 하나님의 길은 궁극적인 승리의 길입니다. 만약 우리가 인간만의 잔치를 버리고 그 하나님의 길에 편승한다면 우리에게는 궁극적인 승리가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곳에서 하나님은 가장 멋있게 일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결국 다곤의 사상은 엎드러지고 하나님의 영광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방향 설정에 큰 도전을 줍니다. 하나님의 영광! 참된 축복! 이것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