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제13강

삼상 7장 1-17절


승리의 비결(삼상강해 13)


구약성경에 나오는 3대 부흥운동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7장에서 사무엘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미스바 부흥 운동(삼상 7:1-11), 느헤미야 8장에서 학사 에스라를 중심으로 예루살렘 수문 앞 광장에서 일어났던 부흥운동(느 8:1-18), 요나로 말미암아 일어났던 니느웨의 부흥운동(욘 3:1-10)이 바로 그것입니다.

언약궤가 기럇여아림에 살던 아비나답의 집에 안치되었을 때에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 족속을 미스바에 불러서 회개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바로 그순간 이스라엘 백성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사실을 블레셋이 알고 쳐들어왔는데 하나님이 도우셔서 블레셋을 극적으로 물리쳤습니다. 그 극적인 사건을 기념하여 사우엘은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세웠고 그것의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하셨습니다. 에벤에셀이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뜻입니다.

에벤에셀의 역사가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미스바 회개운동이 일어났으며,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극적으로 승리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1. 여호와만 사모하고 섬긴 것

언약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빼앗긴 언약궤를 찾은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이스라엘 온 족속이 더욱 여호와 하나님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1절). 이러한 마음의 바탕에 사무엘이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의 그 말에 순종하여 우상 신들을 제거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섬겼습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큰 회개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회개운동을 바탕으로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은 모든 승리의 바탕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을 \"생존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여길 때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고 열심히 기도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왜 오늘날 신앙인들이 그렇게도 기도를 적게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기도 많이 하다가 신앙 열심이 식어 제대로 기도하지 않던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 사람의 딸 아이가 아빠의 무릎 위에 앉아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하나님이 죽었어요?\" 아빠가 깜짝 놀라서 되물었습니다. \"아니, 얘야, 왜 그런걸 묻니?\" 그러자 딸 아이가 말했습니다. \"요즈음 아빠가 하나님과 얘기하시는 걸 한번도 들을 수가 없어서 물어봤어요.\" 그 말을 듣고 이 사람은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머리를 떨구었습니다.

여러분! 혹시 지난날 무엇인가를 위해 기도했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혹시 기도를 완전히 그만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결코 죽지 않으셨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하나님은 마치 죽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서 아무런 기도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그 하나님께 구할 것을 구하십시오. 가정에 평안이 필요하면 그 필요를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지혜가 필요하면 지혜를 구하십시오. 돈이 필요하면 돈이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십시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가장 좋은 해결책을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모할 때 우리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찾아 보십시오. 문제해답을 하나님께 요구하기 전에 먼저 살아계신 하나님 그분을 찾으십시오. 진리를 찾는 가장 좋고 안전한 길은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깊은 존경심으로 \"주님, 주님만이 아십니다\"고 말하며 겸손히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지나치게 파고 캐는 것은 신학자를 만들어 낼지는 모르나 성인을 만들어 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2. 은혜받는 장소에 모인 것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 족속을 미스바로 모이라고 했습니다(5절). 여호와 하나님을 혼자 사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은혜받는 장소에 모여서 같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은혜받는 장소는 어디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우리 영혼의 보금자리입니다. 시편 84편 3절에서 고라의 자손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제단에서 참새와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는데 하물며 주의 제단이 성도들의 은혜의 보금자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교회는 성도의 보금자리입니다. 교회는 우리들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어 주는 교회란 얼마나 아름다운 곳입니까. 교회에서 시험에 든다고 하지만 교회가 무슨 악의가 있습니까. 때로 잘못된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교회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든 심령들의 열정이 하나의 꽃과 같이 향기를 발하게 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더욱 힘있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것

백성들을 위해서 사무엘은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히 중보기도를 드렸고 미스바에 모인 온 백성들도 다같이 함께 금식기도를 했습니다(5-6절). 그 기도가 회개운동을 일으켰고,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들이게 되었습니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게 하는 위대한 통로입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서도 공기만 파동시키는 형식적인 기도가 있고, 하나님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간절한 기도가 있습니다. 기도할 때 간절히 기도하는 자세가 있어야 변화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강원도 황지에 \"예수원\"이란 곳이 있습니다. 중국 선교사의 아들이던 아쳐 토리 목사님이 세운 일종의 기도원입니다. 저는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특별한 기도제목이 생기면 가끔 그곳을 찾았습니다. 그곳에 가면 예배실 중앙에 이러한 글씨가 쓰여져 있었습니다. \"기도는 노동이다.\" 기도가 사생 결단의 기도가 될 때 그 기도는 노동 이상의 것이 됩니다.

기도는 뜨거워야 합니다. 간절해야 합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 붓는 기도여야 합니다. 기도의 불이 붙어야 합니다. 불붙지 않는 기도, 습관적인 기도, 형식적인 기도, 증언부언하는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붙들 수 없는 기도입니다. 반면에 뜨거운 기도가 올려지면 하늘에서는 비상벨이 울리고 긴급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기도는 길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짧더라도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미사여구가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투박하더라도 정성이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야곱이 뜨거운 열정과 정성이 깃든 기도로 말미암아 위대한 인격변화를 체험하게 되었던 것처럼 여러분들도 뜨겁게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4.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린 것

사무엘은 기도하기 전에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9절).

진정으로 헌신하는 한 사람만 있어도 공동체에는 놀라운 승리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승리만을 목적으로 두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헌신은 하나님의 복된 자녀가 취해야 할 당연한 도리입니다.

스터드(C.T.Studd)라는 유명한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진정 날 위해 돌아가셨다면 내가 그분을 위해 아무리 큰 희생을 바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헌신, 헌신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번제를 원하십니다. 온전한 번제란 내 몸과 내 마음,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선의 헌신을 보여주십시오. 차선의 헌신은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최선과 차선의 차이는 실로 엄청난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5. 감사의 기념비를 세운 것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극적으로 승리한 후 사무엘은 무슨 조치를 취했습니까. 돌을 세워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우고 \"에벤에셀\"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뜻입니다(12절).

사무엘은 감사의 원리를 아는 지도자였고, 백성들에게 감사를 원리를 잊지 않도록 기념비를 세우는 조치를 했습니다. 그러한 감사의 심령이 예비되어 있었기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회개의 역사와 더불어 전쟁에서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신자는 삶의 두 원리 안에서 삽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원리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대한 감사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감사의 원리 중 가장 중요한 감사의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공했을 때 뿐만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에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인간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존재가 못 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어려운 환경에서 슬퍼하는 쪽에 더 가까운 존재입니다. 남의 슬픔에는 쉽게 감사를 얘기하지만 그 슬픔이 내게 현실이 되어 나타날 때에는 그 앞에서 감사는 커녕 쉽사리 좌절해 버리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범사로 감사하라고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성공했을 때에는 누구든지 감사를 하고 지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을 때에도 그 빈 자리에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패의 환경에서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것은 훌륭한 감사요, 가치있는 감사입니다. 그처럼 감사를 항상 마음 속에 예비하고 있는 자에게 하나님의 복된 손길은 결코 그를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