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제14강

삼상 8장 1-9절


기도로 문제를 푸십시오(삼상강해 14)


사무엘상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부는 사무엘상 1-7장으로 신정정치 최후의 사사라고 여겨지는 사무엘의 기사를 기록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2부는 사무엘상 8-15장으로 이스라엘이 신정정치에서 왕정정치로 들어서면서 이스라엘 최초의 왕 사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3부는 16-31장으로 다윗의 등장과 끊임없는 도피행로의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이 다윗의 도피는 사무엘상 31장에서 사울이 블레셋과의 길보아산 전투에서 사망함으로 막을 내립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신정정치에서 왕정정치로 넘어가는 첫 부분의 기록입니다. 이 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왕\"이란 단어로 10번 가량 나옵니다. 그러므로 이 장을 별명을 붙인다면 \"왕장\"이라고 붙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볼 때 자주 반복되는 단어 및 어구를 보면 그 본문이 무슨 말을 하며 무슨 주제를 다루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사무엘의 두 아들이 브엘세바에서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 본문을 보면 성경에 공식적으로 이름이 거명되어 나오는 마지막 사사는 사무엘의 두 아들인 요엘과 아비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흔히 마지막 사사 하면 사사기에서 가장 마지막 사사로 나오는 삼손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마지막 사사는 사무엘의 두 아들인 요엘과 아비야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이 두 아들은 대가성 뇌물을 받아서 그 자리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실질적인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는 사무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사는 신정정치 시대에 신의 대리인의 역할을 하며 백성들을 다스리고 이끌고 송사를 최종적으로 판결하는 대법원장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사를 영어로 \"judge\"(심판관)라고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사무엘의 두 아들 사사가 돈을 받고 엉터리 판결을 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그들이 비리법조인처럼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판결을 하니까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이 생각하게 되었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첫 사사 옷니엘 이후로 350년만에 정권교체 한 번 이뤄보자! 정부 구조조정도 하고 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바꿔보자!\"

그래서 그들은 사무엘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이제는 사사 제도가 지겹습니다.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 그들은 신정정치에서 왕정정치로 바꾸면 나라가 잘 될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참으로 어리석인 태도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어리석은 태도가 수시로 발견됩니다. 제도를 아무리 바꾸어도 단점은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도와 법을 숭상하면 항상 낭패하게 마련입니다. 오직 변하지 않는 하나님, 변하지 않는 말씀 중심으로 살 때, 그래서 인간이 변할 때 참된 선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장로들의 요청을 듣고 사무엘이 얼마나 섭섭했겠습니까. 그 배신감이 어떠했을까요. 이 모습은 오늘날 은혜를 끼치기 위해서 토요일마다 산고의 진통을 겪어가며 말씀을 준비했거늘, 교회성장이 안된다고 목사에게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들 교육 못시켰다고 목사에게 빨리 은퇴하라는 얘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들 잘못된 것이 어떻게 사무엘의 전적인 책임입니까. 그리고 이제는 아들을 문제삼아 제도까지 뜯어고치자고 하니까 얼마나 어이없는 노릇입니까. 사무엘의 아들이 문제이지 신정정치 제도가 문제입니까.

* 기도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사무엘은 매우 섭섭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반 정치가들처럼 장로들과 \"네가 잘났다. 내가 잘났다\"하고 싸우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장로들하고 싸우면 백성들에게는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사무엘은 섭섭한 마음을 꾹 참고 그저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억울한 일을 만나거든 달리 풀지 마십니오! 다른 인간적 방법으로 그 일을 풀려는 순간 부작용이 생길 것입니다! 오직 기도로 문제를 푸십시오! 그러면 정말 신기하게 풀리게 될 것입니다.

7-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위로의 음성을 주십니다. \"사무엘아! 까짓꺼 그들의 말을 들어 주라! 그들이 거부하는 것은 네가 아니라 나다! 그들은 애굽에서 인도하던 날부터 400년 동안 계속 그래왔다! 너무 상심하지 마!\"

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무엘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이 사무엘의 입장에 대신 서 주심으로 사무엘의 아픔을 대신 나눠 지시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무엘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너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거부하는 것이야!\" 싸우지 않고 기도하니까 이런 위로가 찾아옵니다. 우리는 이 원리에 담긴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 약속을 어기고 사기를 쳤습니다. 얼마나 속이 상합니까. 바로 그 순간 기도하면 하나님이 위로의 음성을 들려 주십니다. \"아무개야! 그 사람 너에게 사기친 것이 아니고 내게 사기친 것이야!\" 하나님께 사기쳤으니 그 사람이 회개하지 않고 일이 잘 되겠습니까.

누가 나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웁니다. 얼마나 속이 상합니까. 바로 그 순간 기도하면 역시 하나님이 위로의 음성을 들려 주십니다. \"아무개야! 그 사람 너에게 누명 씌운 것이 아니고 내게 누명 씌운 것이야!\" 하나님께 누명 씌웠으니 그 사람이 회개하지 않고 길이 열리겠습니까.

여러분! 치고받고 싸우는 편보다 아무래도 기도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기도로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을 개입시키십시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주시면,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심정을 이해해 주시면 이 고통많은 세상에서도 어렵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