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제17강

삼상 9장 1-10절


네 말이 옳다!(삼상강해 17)


사울의 첫 인상은 외면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먼저 외면적으로 그는 유력한 집안의 사람이었고(1절), 준수한 소년이었으며(2절), 키가 농구 선수처럼 커서 남자로서 탁월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2절).

그리고 내면적으로 그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려깊은 마음도 있었고(5절), 헌신의 원리를 아는 사람이었으며(7절), 누구에게라도 배우려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10절). 그래서 숩 지역의 성에 있는 선견자를 찾아가서 묻자는 사환의 말에 대해서 \"네 말이 옳다!\"라고 할 줄 알았습니다.

사무엘상 9장은 \"만남장\"이라는 별명을 붙일 수 있는데, 왜냐하면 사울과 사무엘의 역사적 만남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역사적 만남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사환의 제의에 \"네 말이 옳다!\"라고 했던 사울의 자세였습니다.

* 인생의 가장 위대한 전환점

나는 인생이 축복된 존재가 되는 가장 위대한 전환점은 \"내 말이 옳다!\"라는 의식의 좁은 문에 있다가 \"네 말이 옳다!\"라는 의식의 문이 열릴 때라고 생각합니다. \"철이 든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여기에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고집이 들어서는 안됩니다. 철이 들어야 합니다. 특히 예수믿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철이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계절\"이 그의 삶에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나는 한 때 정신병애 관해서 잠깐 연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용인에 있는 정신병원에 가서 환자들을 만나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정신병 환자들이 대개 순하고 착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의 과거를 털어놓으면서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일 때에는 연민의 정이 생겨서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습니다.

다만 한가지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내 말이 옳다!\" 혹은 \"내 생각과 판단이 옳다!\"라는 의식의 좁은 문에서 결코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내 생각이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내 생각이 고집으로 발전해서는 안됩니다. 고집스런 경향을 보이는 사람은 특이하게 보이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나를 특이하게 보임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하기에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생각만을 고집하는 것은 정신이 병드는 지름길입니다. 내 생각이 다른 생각에 의해 철회될 수도 있고, 때로는 거부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한 유연성이 없기 때문에 내 생각을 뒤집어 놓는 말과 행동이 나오기만 하면 그것이 한과 상처가 되어 견딜 수가 없게 되고 결국 정신이 병드는 것입니다.

나의 의견이 거부되어도 나 자신의 인격이 거부된 것이 아니라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의견이 거부된 것을 두고 자신의 인격이 거부된 것처럼 한과 상처를 품는다면 누가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한 사람 한 사람 그를 떠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신이 병들기 전에 오는 적신호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나를 거북하게 생각하고 나를 멀리하기 시작하는 신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과 상처는 정신이 병드는 가장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입니다.

한과 상처, 그리고 모든 정신적으로 아픔으로부터 자유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항상 이런 태도를 가지고 사십시오. \"네 말이 옳다! 네 생각이 옳다!\" 주관이 없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인정하면서도 충분히 하나님의 바른 원리를 찾아갈 수 있고 나의 뚜렷한 주관을 가질 수 있습니다.

* 나의 멍에를 매라!

십자가를 대단한 표적에서 찾지 마십시오. \"네 말이 옳다!\"라고 말할 줄 아는 평범한 자세가 바로 십자가를 지는 자세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십자가를 져야 진정한 정신적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 내 생각과 판단에 방어벽을 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벗어버리십시오! 현대인이 가장 수고스럽게 생각하고 가장 무겁게 생각하는 짐은 바로 이 짐입니다. 그런 짐을 진 현대인에게 주님께서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다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다 쉬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 어떤 분들은 쾌재를 부를 것입니다. \"야 신난다! 주님께서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벗게 하시고 우리를 홀가분하게 하셨다! 이 자유를 주신 하나님!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런 외침은 위대한 착각입니다. 여러분! 어느 누가 홀가분한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말합니까. 홀가분한 것은 자유가 아니라 또 다른 고통입니다. 직장을 떠나 홀가분하게 된 것이 무엇이 그리 큰 자유란 말입니까.

예수님은 홀가분하게 쉬게 만들려고 오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기고 끝나시려고 우리에게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하신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는 말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옵니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쉬게 하시겠다고 우리를 초청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무엇 하나를 매라고 하시더니 또 무엇을 배우라고 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매라고 합니까. 예수님의 멍에를 매라고 합니다. 무엇을 배우라고 합니까. 예수님 그분을 배우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무엇입니까.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매고 그분의 삶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그러므로 짐을 무조건 훌훌 털어 버린다고 쉼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오라고 하셨지 그들의 짐을 훌훌 털어주겠다고 약속하신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한가지 짐을 더 얹으라는 명령은 내리셨습니다. \"나의 멍에를 매라!\"

* 십자가의 위대한 능력

그런데 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참으로 신기한 일이 발생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한가지 짐을 더 얹으니 그의 삶이 더욱 무거워질 줄 알았는데 그의 삶에 진정한 안식과 평화가 그때서야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위대한 능력입니다.

여러분! 지금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것 같습니까.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운 것 같아서 어깨가 고통스러우십니까. 그러면 한가지 짐을 여러분의 어깨에 하나 더 져 보십시오! 그러나 다른 짐을 지면 안됩니다. 오직 이 한가지 짐만을 져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나의 의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 말이 옳다\"라는 주장을 포기하고 \"네 말이 옳다\"라고 기꺼이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일을 위해 내가 흘리는 땀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지는 삶이 펼쳐질 때 여러분의 심령에는 다시한번 진정한 기쁨과 평안이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괜히 십자가를 지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우리가 기쁨을 찾는 비결이 있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 짐은 스트레스를 만들어내지만 십자가의 짐은 참 기쁨을 만들어냅니다.

지금 다시 한 번 내 몫에 태인 십자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그 생각했던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실천해 나가는 여러분들이 되십시오.

여러분! 교회생활만큼은 정말 홀가분하게 하지 마십시오. 큰 교회의 뒷자리! 얼마나 홀가분한 자리입니까. 부딪칠 염려도 없고 신경 쓸 염려도 없으며, 헌신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없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낭비스런 인생 낭비의 자리입니까. 왜 이 지경까지 왔습니까. 왜 일부 교인들은 헌신을 염려해야 하는 비참한 모습까지 보이게 되었습니까.

여러분! 만약 여러분들이 교회의 뒷자리 멤버라면 빨리 교회의 앞자리로 오십시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는 복 중의 가장 위한 복은 교회의 앞자리를 차지하는 복입니다. 그 복을 놔두고 무슨 세상적으로 머리가 되는 축복을 누리겠다는 말입니까.

교회의 뒷자리는 원망하는 자리, 판단하는 자리, 그리고 생각만 많은 자리입니다. 어떤 사람은 판단하기를 좋아한다면 그 사람이 판단하는 악령에 사로잡혀서 판단을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못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도 아닙니다. 다만 그가 뒷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 자리가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혹시 교회의 뒷자리에 계신 분은 빨리 교회의 앞자리로 이동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교회의 앞자리로 이동하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