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제19강

삼상 9장 22-27절


위대한 만남(삼상강해 20)

9장에 나오는 사무엘과 사울의 역사적 만남! 역사적인 만남을 위해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예비하셨고 성경은 그 역사적인 만남이 결코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었음을 나타내기 위해 그 만남의 과정을 자세히 적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임을 확신하고 불문곡직하고 청년 사울에 대해 최선의 예우를 펼치기 시작합니다. 인간적으로는 사무엘이 사울에게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사무엘과 같이 정상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처음 만난 생소한 청년에게 잘해주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울을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믿었기 때문에 사무엘은 그런 예우를 펼친 것입니다.

성문 앞에서 간단한 대화를 마치고 사무엘은 사울과 사환을 산당의 객실로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산당의 객실에는 손님이 약 30명 가량 있었는데 그 30명 중에서 다짜고짜 사울을 수석에 앉혔습니다.

30명 가량의 손님들은 특별한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기골이 장대한 젊은 청년을 사무엘이 데리고 와서 청한 자 중에서 가장 상석에 앉히니 의아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을 것입니다. \"저 청년 누구야?\"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에 대한 사무엘의 철저한 예우를 보십시오. 그렇게 한 것은 바로 사무엘이 하나님의 뜻을 철저히 앞세우는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사무엘이 요리하는 사람에게 명령합니다. \"내가 네게 주며 네게 두라고 말한 부분을 가져 오라.\"(23절) 그러자 요리하는 사람이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을 가져와서 상석에 앉은 사울 앞에 두었습니다.

* 성경적 배경을 연구하는 법

여러분!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어떻게 수천년 전에 살던 사람들의 관습과 풍습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하는 논문을 그토록 확신을 가지고 내놓은 것일까요. 아마 이 점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너무 신통력을 가진 것처럼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성경이 말하는 구절 하나 하나에서 얻은 지식을 던져버리지 않고, 그 구절에서 얻은 하나하나의 지식을 최선을 다해 엮어내는 재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 구절이 바로 그러한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아무 고대 자료도 보지 않고 지금부터 약 3천년 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런 두가지 풍습이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들이 고기 중에서 가장 맛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넓적다리 부분이었다는 점입니다. 둘째, 그래서 가장 귀중한 손님에게는 그 고기의 넓적다리 부분을 대접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왜 그러한 주장이 가능합니까. \"3천년 전 이스라엘 풍물지\"라는 책이 따로 없어도 본문의 상황이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상황이 어떤 상황입니까. 사무엘은 젊은 청년 사울을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 그에게 예우를 보이는 것은 그가 처음보는 젊은 청년 사울을 쟁쟁한 명사 30명을 제치고 상석에 앉힌 것을 통해서 충분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상석에 앉은 그에게 따로 보관해 두었던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을 특별히 대접했다는 것은 앞서 말한 두가지 주장을 뒷받침하는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 자체를 통해서 이런 식으로 성경적 배경을 연구해 나가면 재미있는 사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예비하신 축복

사무엘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에게 철저한 예우를 했을 뿐 아니라 가장 귀한 넓적다리까지 따로 대접하는 철저한 대접을 했습니다. 그러한 사무엘의 겸손한 자세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사람의 뜻을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민감한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넓적다리 부분을 사울 앞에 놓았을 때 사무엘이 말했습니다. \"청년! 따로 보관했던 것이니 그것을 먹게! 이러한 때가 있을 것으로 알고 기다리며 따로 보관해 두었던 것이네.\"

여러분! 하나님이 쓰기로 예비된 존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큰 축복이 다가오려고 대기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기로 예비한 존재에게 어떤 축복이 있을까요. 본문은 두가지 축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그를 상석에 앉히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실 것이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신 28:13).\"

둘째, 하나님은 그를 위하여 가장 소중한 넓적다리를 예비하고 계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신 28:14).\"

* 밤늦도록 벌어진 지붕의 담화

그날 밤, 산당에서 사무엘과 사울은 함께 밥상교제를 했습니다(24절). 그리고 산당에서 내려와 성에 들어가서도 사무엘이 살던 집의 지붕에서 밤늦도록 같이 담화를 계속했습니다(25절).

도대체 지붕에서 담화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까. 하필이면 왜 지붕입니까. 신기한 일이 아닙니까. 그 장면 안에 무슨 영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 많은 장소 다 놔두고 왜 위험천만한 지붕에서 대화를 합니까.

그러나 영적인 의미는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지붕에서 담화를 했다는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중동 지방의 건축 양식, 혹은 지붕의 형태가 어떻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지붕의 이야기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몇번 나옵니다. 사도행전 10장 9절을 보면 베드로가 욥바에 사는 피장의 집에 있을 때 이런 설명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 기도하려고 하는데 왜 하필이면 지붕입니까. 이러한 구절들을 통해서 우리는 중동 지방의 지붕 형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한 구절 한 구절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그 구절을 가지고 그림을 그려 나가다 보면 수많은 성경적 배경상황을 내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구절을 통해서 볼 때 이스라엘 지방의 지붕은 대체적으로 평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지붕을 옥상처럼 만들고 옥상에 천막과 같은 것을 쳐서 원두막처럼 쉼터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온도가 뜨거운 지역이므로 그 지붕의 쉼터는 무더운 낮에 낮잠자는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했고 밤에도 열대야 현상을 피하기 위해 잠자는 공간으로 활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26절의 \"지붕에서 사울을 불러\"라는 구절을 보면 사무엘이 열대야 현상을 피하기 위해 잠자리를 지붕에 만들었다는 추정도 가능합니다.

그 지붕에서 밤늦도록 사울과 무슨 담화를 했겠습니까. \"청년! 자네와 내가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네...\" 그러면서 그동안 있었던 하나님의 인도에 관한 얘기를 사무엘이 했을 때 사울도 깜짝 놀라면서 반응했을 것입니다. \"아!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여러분! 알고 보면 인간의 만남들은 어느 것 하나라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손길 때문에 만남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만남을 소중하게 활용하기만 하면 어떤 사람은 사무엘처럼 역사의 새벽을 깨우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변하기 전의 사울처럼 역사의 주인공으로 활약할 수 있습니다.

사소한 만남일지라도 그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그 만남의 의미를 잘 파악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길을 생활 속에서 더욱 확실히 느끼며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