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제26강
삼상 13장 1-15절
참 예배(삼상강해 27)
사무엘상 12장에 나오는 사무엘의 고별사의 주된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왕을 세우기는 했지만, 그래서 정치문화는 바뀌었지만 진리는 바뀔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진리란 무엇입니까. 바로 왕 중심적인 아닌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진리입니다.
사무엘상 13장은 왕이 된 사울이 타락하는 장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사울이 왕이 될 때에 40세라...\" 이 사울의 나이를 볼 때 처음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고도 상당한 세월이 흘러 정식 왕으로 등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망령된 제사를 드리는 사울
사울왕 2년에 이스라엘과 블레셋 간의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습니다. 믹마스에 수많은 블레셋 군사들이 진쳤다는 소식을 듣고(5절), 많은 백성들은 숨을 곳을 찾았고(6절), 길갈에서 사울과 함께 있던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떨었습니다(7절).
그런데 그 상황에서 영적 지도자 사무엘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대신 나섰습니다.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래 내라! 다 똑같은 사람인데 내가 제사를 드리마!\"
이런 사울의 행위에는 별로 큰 잘못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 제사가 망령된 제사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잘못한 그것 때문에 사울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울의 타락은 참으로 엉뚱하고 특이한 타락이었습니다. 보통 경우에 있어서 \"타락\"이라고 하는 용어는 술을 먹고, 성적으로 문란하고, 노름을 하고, 하나님을 멀리하면서 세상으로 나가는 타락 등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러나 사울의 타락은 \"제사\"라는 분야에서 생긴 타락이었습니다. \"아니, 제사는 다 좋은 것이 아니냐? 제사드리는 것이 무슨 타락이냐?\"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사 자체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진실된 제사, 겸손한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예배드린다는 것의 의미
오늘날 예배를 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라는 것이 참으로 숭고한 행위이지만 그것이 타락의 한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다 같은 제사장인데 목사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 우리끼리 예배드리자.\"라고 말하면서 집사들이 돌아가면서 예배를 인도하는 교회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그런 예배는 받지 않으신다고 생각합니다. 받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예배를 망령되게 여기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가 없는 예배는 다 망령된 예배란 말이 아닙니다. 목사만이 예배의 인도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목사가 있든지 없든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자의 마음에 교만, 불신, 무질서, 그리고 반역정신 등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한다는 것에는 정말 한 점 흠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예배하는 자리가 소중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드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양심을 살리는 것이고, 마음에 하나님의 진리를 공급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으로 더러운 상상을 버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에 마음을 여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에 나의 의지를 바치는 것이고, 진실을 체험하고 생명을 바치는 것이고, 함께 모여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느끼고 체험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 즉 쉐키나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즉흥적으로 드려져서는 안됩니다. 또한 교만과 반역과 거리낌있는 마음으로 드려져서도 안됩니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드려져서는 안됩니다.
사울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역이 아닌 제사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사무엘이 늦게 도착하면 기도로 준비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더욱 옳은 자세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배라는 형식보다 예배자의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가장 위대한 축복의 통로인 예배! 그러나 이 예배가 잘못된 모습을 보일 때 우리의 축복을 끊어버리는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여러분들의 예배가 항상 참 예배로 드러날 수 있도록 더욱 힘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