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제29강
삼상 14장 1-7절
요나단같은 목사, 병기든 자와 같은 성도(삼상강해 29)
본문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믹마스 어귀의 대치가 있었던 상황에서 펼쳐진 사건입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쪽 베냐민 게바에 진치고 있었고, 블레셋 군사와 백성들은 북쪽 믹마스에 진치고 있었습니다. 비록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객관적인 군사력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블레셋의 군사력은 병거(전차)가 삼만이었고, 마병(기병)이 육천이었으며, 백성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습니다(삼상 13:5).
반면에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형편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진영의 전력을 묘사할 때 \"병사\"라는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백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13:7,15,16,22). 즉 정규군은 조직되지 않았고 다 민병대라는 말입니다.
* 최후까지 남은 육백 명
그런데 처음에 사울에 의해 선택된 이스라엘 사람이 삼천 명이었고 남은 백성은 그냥 자기 집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남은 백성들은 사울이 보기에 도저히 전투병으로 쓰기 힘들었던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 선택된 3천명은 비교적 쓸만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13:2).
그러나 블레셋 군사력이 엄청나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하여 3천명 중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숨을만한 곳은 다 찾아다니며 숨었는데, 굴, 수풀, 바위틈, 은밀한 곳, 웅덩이를 가릴 것 없이 숨을 곳을 찾아 다녔습니다(13:6). 그리고 어떤 사람은 요단강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피신했습니다(13:7). 그러다가 사울과 함께 끝까지 남은 백성은 그 3천명 중에서도 대부분 도망가고 6백 명밖에 없었다(13:15).
게다가 남은 6백 명에 대한 전투력 묘사도 참 한심한 모습이었습니다. 그 6백 명 중에 칼이나 창을 가지고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오직 사울과 요나단에게만 칼이나 창이 있었습니다(13:22). 상대방은 지금 M-16소총으로 무장했는데 이스라엘 민병대는 몽둥이를 손에 쥐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최후까지 남은 최정예부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마저 무장상태가 그러하니 이런 상황에서 전투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최후까지 남은 게바의 6백명! 마치 기드온의 3백 용사가 연상되지 않습니까. 바로 그 600명이 최후까지 버티고 있었기에 블레셋 군사들과의 대치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만약 그들마저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최후를 맞이했을 것입니다.
* 요나단의 은밀한 계획
그렇게 대치하던 어느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요나단이 자기 병기든 자에게 자기 계획을 말했습니다.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의 부대로 건너 가자(1절)\" 6절에서는 동일한 상황에서 \"할례없는 자들의 부대\"라고 말한 것을 볼 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을 \"할례없는 자들\"이라고 비하시켜서 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요나단이 만용을 부리는 것입니까. 만용이 아니라면 어떻게 수만명이 진치고 있는 적진에 혼자 가겠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요나단은 만용을 부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위대한 후원자가 있었다. 6절에 나오는 요나단의 말을 계속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요나단의 말에서 두 가지 중요한 메시지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면 일은 끝난다는 사실입니다. 언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일하십니까.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믿는 것이요, 또 하나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둘째, 인생의 승패는 \"사람이 많다, 적다\"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많아도 하나님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외형은 그럴듯해도 알맹이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현재라는 눈에 보이는 것은 그럴듯해도 미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망이 비참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현재에 집착하는 자는 끝없는 갈등과 다툼 속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라는 눈에 보이는 것이 그럴듯하지 못해도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는 존재가 되면 됩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위대한 보상이 있습니다.
* 병기든 소년의 전폭적 후원
요나단의 말이 끝나자 병기든 자가 요나단에게 말했다. \"당신의 마음에 있는 대로 다 행하여 앞서 가소서 내가 당신과 마음을 같이하여 따르리이다(7절).\" 죽음의 위협이 눈 앞에 뻔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병기든 소년은 사울의 계획에 전적으로 동조해 주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병기든 소년의 후원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따르고 있어서 한 사람 분의 힘이 더 생겼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닙니다. 한 사람 분의 힘이 더해졌다는 사실보다 그 한사람의 말이 있음으로 요나단에게 얼마나 큰 격려가 되었겠습니까. 이 후원자의 격려야말로 정말로 보이지 않는 큰 힘입니다.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한다! 그 사실 하나 때문에 세상 살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왜 목회자가 그토록 많은 상처입을 만한 말을 많이 들으면서도 정신병에 걸리지 않고 오히려 정신적으로 더 건강합니까. 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찬양가사가 해답이 될 것입니다.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네!\"
목회자는 남을 위해서도 기도를 많이 하지만 기도의 후원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그 기도가 있기에 목회가 힘들지 않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세상살이가 쉬워집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나를 후원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나의 생각을, 나의 가치관을, 나의 결정을, 그리고 나의 계획을 후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큰 격려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역사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위대한 역사의 이면에 감추어진 진리가 있습니다. 그 위대한 역사 뒤편에는 한 사람의 충성된 후원자가 꼭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이 그토록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 바나바, 실라, 디모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나의 격려가 각자 마음 속에 있는 누군가 그 사람을 살립니다. 그리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위대한 역사를 이루게 합니다. 그러므로 요나단이 되든지, 아니면 병기든 자가 되든지 둘 중에 하나는 꼭 되셔야 합니다.
* 역사를 만들어내는 인물
최후까지 남은 게바의 6백명! 이들도 참으로 소중한 사람들이지만 더 나아가서 요나단이 되고 병기든 자가 되십시오.
왜 요나단은 자기의 계획을 자신의 아버지 사울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최후까지 남은 6백명의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을까요. 사울에게 말했으면 \"이러이러해서 안 된다!\"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백성들도 \"이러이러해서 안 된다!\"고 말하며 요나단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사울과 최후까지 남은 6백 명은 오직 수비형 인물들이었지 공격형 인물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역사를 만들어내는 역사형 인물들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역사형 인물들이 필요합니다. 오늘날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시대에 더욱 그런 인물들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요나단과 같은 목사! 병기든 자와 같은 성도! 여러분들의 교회 공동체에 이런 인물들이 나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들의 교회가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끌어내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