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제34강

삼상 15장 1-23절


말씀에 순종하는 삶(삼상강해 34)


14장은 사울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신앙관 차이로 인해 처음으로 갈등하는 모습이 나와 있는 장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사무엘과 사울의 신앙관이 달라 갈등하고 있는 장면을 그리고 있는 장입니다.

14장의 사울과 요나단의 갈등을 현대 교회적인 표현으로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갈등이라고 말한다면, 15장의 사무엘과 사울의 갈등은 현대 교회적인 표현으로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갈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원로목사 사무엘이 담임목사 사울에게 말씀으로 권면했습니다. \"사울 목사! 지난 세월 동안 교회를 대적하는 아말렉이 있지 않소! 그 아말렉을 철저히 정리하라고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오! 그리고 아말렉의 뿌리까지 철저히 없애라고 하시오!\"

지금 모든 상황이 순조롭게 잘 풀려가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담임목사를 맡고 난 후에 블레셋이라는 문제와 한 번의 큰 전쟁을 치루고 승리한 뒤 담임목사 사울의 위상이 현저히 강화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원로목사 사무엘이 목회할 때보다 훨씬 조직적이고 훨씬 체계적이었으며 급속도로 성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성장을 바탕으로 그 동안 해결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아말렉 문제를 시정해야 한다고 원로목사가 권면을 한 것입니다.

그러자 사울은 원로목사의 말에 귀를 기울여 교회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아말렉을 쳐서 아말렉 왕 아각을 사로잡고 백성들을 모두 진멸하였습니다. 여기까지 잘 마무리 되었더라면 사무엘과 사울 사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사이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각자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신앙관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사울 담임목사의 신앙관은 예물을 드리는 행위를 중시하는 신앙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 원로목사의 신앙관은 그 드리는 예물이 깨끗해야 한다는 신앙관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겠다는 생각으로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물건은 남기고 오직 가치가 별로 나가지 않는 것들만 진멸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무엘 원로목사가 보기에는 담임목사 사울의 처사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담임목사가 처음에는 순수한 것 같았는데 자꾸 세상적인 모습, 물질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원로목사의 마음에 하나님이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을 담임목사로 앉힌 것이 후회가 되노라!\" 본인도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하나님께서 음성까지 들려주시니 사무엘은 은퇴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에게 한 마디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갈등이 일어날 것은 뻔한 일입니다. 그래서 근심하는 마음으로 밤새 기도하고 다음날 사울을 만나 말했습니다. \"사울 목사! 왜 그 죄악된 아말렉을 남겨 두었소! 왜 그렇게 죄악된 모습을 보이시오! 그렇게 물질적인 모습을 보이려면 어떻게 목회를 하려고 하오!\"

그러나 사울은 사울 나름대로의 신앙관을 피력했습니다. \"원로 목사님! 좋은 것을 남겨둔 것은 제가 쓰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려고 그런 것입니다! 저의 순수한 마음을 이해해 주십시오!\"

나도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사울이 가진 신앙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나도 어쩌면 어딘가에 사울과 같은 신앙적 모습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신앙관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불의한 예물을 드리려고 했던 것이고, 또 하나는 순종하는 마음이 없는 정성이 담기지 않은 예물을 드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물질적 헌신의 문제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예물을 받지 않으십니다

성경에서 아말렉은 죄를 상징하는데 죄인의 죄가 스며든 예물을 하나님께서 어찌 받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뇌물로 받은 돈의 십일조를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 그리고 도적질한 돈의 십일조를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 가난한 자의 눈물을 자아낸 고리대금업자의 십일조를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 사울은 하나님께서 불의한 예물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2.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예물보다 낫습니다

본문 22절에는 유명한 요절 말씀이 있습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사울은 하나님깨서 형식적인 예물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15장에 나오는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갈등을 보면서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 여러분들은 어느 입장을 지지하십니까. 말할 것도 없이 원로목사의 입장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물을 보실 때 예물 자체를 보지 않습니다. 그 예물에 담긴 마음과 정성을 보십니다. 그리고 그 예물을 드리는 행위 이상으로 우리의 언어도 하나님 앞에 합당하기를 원하고, 우리의 삶의 태도도 하나님 앞에 합당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면서 드리고 있는지 진단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에 합당한 생활,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최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바로 \"삶으로 드리는 제사\"라고 말합니다. 삶으로 드리는 제사란 말씀이 실제적으로 나의 삶 속에 살아 역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축복의 비결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축복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축복은 \"하나님이 나를 잡아주는 것\"이라고 정의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23절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버리면 하나님이 우리를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거꾸로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잡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잡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붙잡고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항상 말씀을 붙잡고 살면서 진정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