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사무엘하 2장 강해
이스라엘과 유다의 전쟁
(사무엘하 2:8-32)
우리나라가 외세의 영향으로 분단된 지 벌써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지난 해 6월에 남북정상들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고 획기적인 합의서가 발표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남과 북이 평화롭게 살면서 통일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어려운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은 그 동안에 분단의 비극을 너무나도 많이 겪었습니다. 분열은 비극입니다. 더구나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라는 사실이 더욱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 왕이 된 이스보셋
8-11절에 보면 분열의 모습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유다의 왕으로 즉위할 때에도 나라가 두 동강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가 왕이 되는 것에 대항하여, 아브넬이 사울의 넷째 아들 이스보셋을 마하나임에서 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나라가 둘로 나뉘어지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이 죽은 후 르호보암 때에 남북왕국으로 양분된 것(왕상 12:)의 전초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분열이 7년 반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11, 왕상2:11)
아브넬은 사울의 군사령관으로서 넬의 아들입니다.(삼상14:50) 그는 길보아 전쟁에서 살아남았는데 사울이 죽은 후에는 이스라엘의 실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그는 패잔병들을 규합한 후에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서 나라를 재건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스보셋이란 이름은 \'부끄러운 사람\'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울을 대신할 왕으로 다윗을 지정하셨습니다.(삼상13:14, 15:28, 16:1-13), 또한 다윗이 이미 유다의 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나라를 분열시켰으니 그의 이름대로 부끄러운 일을 저지른 것이고,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10절에 이스보셋이 두 해 동안 왕위에 있었다고 했는데, 다윗이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7년 반 동안 유다의 왕으로 있었으므로(11) 여기에는 5년 반의 공백이 생깁니다. 이것은 아브넬이 패잔병들을 이끌고 잃어버린 땅을 회복한 기간으로 이스보셋을 즉위시키기까지 그가 군정을 폈던 때일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무난하리라 생각합니다.
2. 유다와 이스라엘의 결전
우리나라도 분단된 이후에 큰 전쟁도 겪었고 크고 작은 많은 충돌도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에는 많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12-17절에서도 기브온에서 유다와 이스라엘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브온 못가에서 이쪽에는 이스라엘의 실권자인 아브넬과 이스보셋의 신복들이, 저쪽에는 유다의 군사령관인 요압과 다윗의 신복들이 서로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요압의 어머니는 스루야인데 다윗의 누이이므로 그는 다윗의 생질이었습니다. 그는 다윗의 군사령관으로 용사중의 용사였습니다.(8:16, 23:18-24) 그는 다윗왕국의 확립에 큰 공을 세웠으나 독단적 성격으로 아브넬, 아마샤, 압살롬 등을 죽이므로 다윗을 괴롭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3:27, 18:14, 20:10) 이 일로 인하여 솔로몬에게 살해되었습니다.(왕상2:28-34)
양군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군사령관 아브넬이 먼저 도전장을 냈는데 14절에 보면 \"청년들에게 일어나서 우리 앞에서 겨루게 하자\"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칼부림을 하는 개인전으로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을 연상하게 합니다.(삼상17:41-51) 요압이 이에 동의하였습니다. 한 편에서 12명씩 선발하여 싸웠습니다. 서로 한 손으로 상대방의 머리를 잡고 칼로 상대방의 옆구리를 찔렀으니 결국 양편 모두 일제히 쓰러져 죽었습니다. 참으로 격렬하고 무의미한 싸움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16)
이와 같은 전초전이 끝난 후 심히 맹렬한 전면전이 두 진영 사이에 벌어졌는데 다윗군이 승리하였습니다. 다윗 편에서는 19명이 죽었으나 아브넬 편에서는 360명이 죽었습니다.(30-31) 이러한 승리는 다윗을 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아사헬의 죽음과 휴전
요압에게는 아비새와 아사헬이라는 형제가 있었는데 그 중에 아사헬은 발이 빨라 들노루 같다고 하였습니다.(18) 그러나 그는 고집과 과신 때문에 아브넬을 추격하다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아브넬과 살아남은 자들이 도망하는 모습을 보고 적장을 처치함으로 무공을 세울 욕심으로 빠른 발을 믿고 아브넬을 쫓아갔습니다.
사람은 모든 일이 잘 될 때, 승리했을 때, 자신만만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때에 자신도 여러 사람들 앞에 내세울만한 어떤 공적을 세우려는 욕심을 부려서는 안됩니다. 아사헬의 비극은 바로 이러한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적장 아브넬도 아사헬에게 두 차례나 권했습니다. 첫 번째는 너는 내 적수가 되지 못하니 다른 청년 하나를 붙잡아 그의 군복을 빼앗아 무공을 세우라고 하였습니다.(21) 사실 아사헬의 발이 빠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적수는 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서 군복을 빼앗는 것은 적을 죽이고 전리품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아사헬은 이러한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어코 아브넬 만을 뒤쫓아 갔습니다.
두 번째는 \"나 쫓기를 그치라 내가 너를 쳐서 땅에 엎드러지게 할 까닭이 무엇이냐\"(22)고 하면서 그렇게 하면 어떻게 그의 형 요압을 대면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서로 악착같이 쫓고 쫓기면서 죽이고 죽여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사헬은 이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따라왔습니다. 아무리 적이라 하더라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충고를 하면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생각만 절대화하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큰 비극을 불러오게 됩니다.
결국 아브넬은 창 뒤 끝으로 그의 배를 찔렀고 그 창이 그의 등을 꿰뚫고 나갔습니다.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아사핼이 죽는 것을 보고 추격하던 군인들이 그곳에 머물러 섰습니다.
그리고 해가 졌습니다. 아브넬이 요압에게 휴전을 제의했습니다. 26절에 보면 \"칼이 영원히 사람을 상하겠느냐 마침내 참혹한 일이 생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언제 무리에게 그의 형제 쫓기를 그치라 명령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기브온 전쟁은 시작도(14), 휴전도(26), 아브넬이 제의하였습니다.
드디어 요압이 휴전나팔을 불었습니다. 다윗군은 더 이상 아브넬군을 쫓아가지도 않았고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아브넬 군은 밤새도록 걸어서 마하나임으로 갔습니다. 요압도 돌아갔습니다. 한 쪽은 승리를 거두고, 다른 쪽은 패배를 당하고 각기 그들의 수도를 향해서 갔습니다.
이처럼 휴전은 되었지만 이 전쟁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다윗의 신복 중에 19명과 아사헬이 죽었습니다.(30) 아브넬에게 속한 자들은 360명이 죽었습니다.(31) 다윗의 대승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전쟁은 많은 비극을 가져옵니다.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많은 재산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요압도 전쟁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사랑하는 동생 아사헬을 잃었습니다. 다윗군은 그의 시체를 운구하여 고향 베들레헴에 가서 그 아버지 묘에 장사하고 헤브론으로 돌아왔습니다.(32)
아사헬을 잃은 것이 요압의 한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 원한을 풀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그 기회는 곧 찾아왔습니다.(3:27) 그는 자기 동생을 죽인 아브넬을 죽였습니다. 원수를 갚았습니다. 죽고 죽이는 일이 계속되었습니다.
전쟁을 막아야 합니다. 평화롭게 살아야 합니다. 더구나 동족끼리 서로 죽이면서 어느 편이 승리한들 그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기뻐할 일입니까? 우리나라의 6.25가 연상되어져서 마음이 아픕니다. 나라나 집단이나 개인 사이에 평화가 넘치고 사랑이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일을 위하여 부름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01.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