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강 사무엘하 3장 강해


아브넬의 죽음




(사무엘하 3:22-39)
아브넬은 다윗에게 협조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동안 그가 이스보셋을 옹립하여 사울 왕국을 유지하려고 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행동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보셋과의 감정대립이 중요한 원인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는 밀사를 보내어 다윗과 언약을 맺었습니다.(12) 이스라엘 장로들의 확답도 받았습니다.(17) 또 사울이 소속된 베냐민 지파도 설득시켰습니다.(19) 이제 다윗의 요구대로 미갈을 데리고(13-16), 헤브론을 방문하여 다윗에게로 나아갔습니다. 그로서는 이 회담을 통하여 두 왕국의 통합을 최종적으로 확정하고, 그의 위치를 분명히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그를 방문한 아브넬을 환대하고 그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였습니다. 그러기에 21절에 보면 그가 다윗에게 말하기를 \"내가 일어나 가서 온 이스라엘 무리를 내 주 왕의 앞에 모아 더불어 언약을 맺게 하고 마음에 원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게 하리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압이 이러한 결정에 대해서 항의하고 그를 죽였습니다.(22-30)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 앞에 슬퍼하며 조가를 불렀습니다.(31-39)





요압의 항의





22-26절에서 아브넬을 평안히 보낸 일에 대해서 요압이 다윗 왕에게 강력히 항의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윗과 아브넬이 국가 통합의 중대한 회담을 할 동안에 요압은 군대를 거느리고 적군을 쳤으며, 많은 전리품을 얻어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가 돌아왔을 때 아브넬은 이미 회담을 마치고 헤브론을 떠난 뒤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전개된 것을 알고 그에게는 몇 가지 섭섭한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는, 이러한 중대한 회담에 자기가 소외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앞으로 자기의 위치가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도 이처럼 어떤 일의 결과보다는 자기에게 역할이 주어지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고 중요한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사이의 화해분위기도 많은 반대와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미국도 견재를 합니다. 국내 야당도 무조건 제동을 겁니다.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 통일이나 평화를 이루는 일 보다는 누가 주도하느냐, 공로가 누구의 것이 되느냐 하는 것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아브넬이 그의 사랑하는 동생 아사헬을 죽인 이후 복수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그 좋은 기회를 이처럼 놓치게 된 것을 매우 섭섭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있었더라면 그렇게 쉽게 보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기회를 보아서 그를 죽이고 원수를 갚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절호의 기회를 놓쳤으니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그는 다윗 왕이 아브넬을 평안히 보낸 것을 강력히 항의하였습니다. 그가 온 것은 왕을 속이기 위한 것이라고 악평하기도 하였습니다.(25) 그리고 전령들을 보내어 다윗도 모르게 그를 자기에게로 다시 데려오도록 조치하였습니다.(26) 요압이 이렇게 한 것은 아무도 모르게 그를 죽여 없애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브넬을 죽임





27-30절에 아브넬이 헤브론에 다시 돌아오자 요압은 그와 더불어 조용히 말하려는 듯이 그를 데리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배를 찔러 죽였습니다.(27) 그의 동생인 아사헬의 원수를 갚겠다는 복수심과, 자신의 자리를 누구에게 빼앗기지 않고 유지해야 하겠다는 욕심의 결과였습니다.

기브온 전쟁에서 아브넬이 아사헬을 죽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 두 차례나 권고하였습니다. 그를 죽일 의사도 없었고 그가 자신의 대적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밝혔습니다.(2:21-23) 그래도 계속 쫓아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당방위 차원에서 그런 불행한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서로 원한을 갖게 되면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마음 아픈 일이나 억울한 일을 되갚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하면 원수갚는 것이 계속 될 것입니다. 비극이 계속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아브넬의 죽음은 다윗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28절에서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영원히 무죄하다\"고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아브넬의 피흘림은 오직 요압의 책임이라는 것을 밝힌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의 아버지의 온 집으로 돌아갈 것을 빌면서 \"요압의 집에서 백탁병자나 나병환자나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나 칼에 죽는 자나 양식이 떨어진 자가 끊어지지 아니할지로다\"(29)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안에 5부류의 불행한 자들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저주였습니다. \'백탁병자\'는 임질이나 혈류병 같은 유출성 환자를, \'나병환자\'는 불치병이며 천형병을 가리킵니다.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는 절뚝발이나 소경을, \'칼에 죽는 자\'는 전쟁이나 다른 이유로 칼에 맞아 죽는 자를, \'양식이 떨어진 자\'는 극빈하여 먹을 양식이 없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아브넬을 위한 조가





다윗은 무죄한 피를 흘린 요압을 저주한 다음에 백성에게 지시하기를 \"너희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아브넬 앞에서 애도하라\"(31)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 자신은 상여를 따라 올라가 헤브론에 장사하고 왕이 소리를 높여 울고 백성도 다 울었다고 하였습니다.(32) 그가 극한 슬픔에 빠져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3∼34절은 다윗이 아브넬을 위하여 지은 애가입니다. 다윗은 이미 사울과 요나단을 위한 애가를 만들어 부른 일이 있었는데(1:19-27), 아브넬을 위한 애가도 이와 더불어 애가의 걸작이라고 부릅니다.

아브넬이 역전의 용장이었는데 요압의 꾀에 빠져 암살 당한 것이 미련한 자의 죽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네 손이 결박되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차꼬에 채이지 아니하였거늘 불의한 자식의 앞에 엎드러짐 같이 네가 엎드러졌도다\" 앞부분은 아사헬을 죽이므로 체포되어 손발이 결박되지 않았으니 무죄라는 뜻입니다. 죄가 있다면 구속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뒷부분의 의미는 그가 자유로운 수족으로 얼마든지 살 수 있었는데 요압에게 허를 찔려 갑자기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장례를 치루고 나서 음식을 나누는 것이 히브리 사람들의 관례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해지기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아브넬의 죽음에 대한 큰 슬픔을 보여주는 자세입니다. 이처럼 다윗이 아브넬을 위해 진심으로 슬퍼하고 금식하면서 애통해하는 모습을 보고 백성들이 기뻐하였습니다. 전적인 신뢰를 받게 된 것입니다. 백성들을 한 덩어리가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백성들이 다 기뻐하였습니다.(37)

지난 주 노회기간 중에 우리 교회 묘지 문제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 몇 사람이 문제제기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뒤에 있던 장로님을 비롯한 교우들의 모습 속에서 교회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한 마음으로 뭉쳐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진실과 관심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신복들에게 \"오늘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큰 인물이 죽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지로다\"(38-39)라고 하였습니다.

요압과 아비새는 용장들로서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으나, 고집이 세고, 자기 뜻대로 하는 일이 많아 다윗이 제어하기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제어하시기를 원하고, 다윗도 죽을 때 유언으로 요압을 처벌하였습니다.(왕상2:5-6, 28-34)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라가 분열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전쟁을 몰아내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동안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재산의 피해도 많았습니다. 더구나 지도자들 사이에도 모함하고 죽이는 일들이 계속되었습니다. 다윗가와 사울가의 불행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 아픈 일들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의 계획대로 다윗을 중심으로 한 통일왕국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01. 4.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