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궤를 옮김 (사무엘하 6:1-23) 하나님의 궤에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을 새긴 두 돌판과 만나가 든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히9:4) 이것은 언약궤, 법궤라고도 불리었는데 이스라엘의 지성물 중의 지성물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여 정치적인 중심지가 되게 한 다음에 또한 이곳을 종교적 중심지로 만들기 위하여 그동안 바알레유다에 있던 법궤를 옮겨오기로 하였습니다. 이 시간에 함께 읽은 6장은 법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되어진 일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웃사의 죽음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옮겨오기 위해서 정성을 다하여 준비하였습니다. 지금까지법궤가 머물러 있던 바알레유다가 블레셋과 접경해 있으므로 혹시라도 그들과 전투가 벌어질 것을 대비해서 전 국민 가운데서 골고루 선택하여 3만명의 정예부대를 모았습니다.(1) 그런데 법궤를 옮기는 방법에서 다윗이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3절에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라 하였습니다. 여기 \"새 수레\"라는 정성이 지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궤를 옮길 때에 수레를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레위인, 고핫자손들이 어깨에 메고 운반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민수기 4장 15절에 보면 \"진영을 떠날 때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는 일을 마치거든 고핫자손들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라 그들이 죽으리라\"고 하였습니다.(출25:14-15 참고) 이 모든 말씀을 잘 알고 있었던 다윗이 어떻게 이러한 중대한 실수를 범하게 되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차분하게 생각하고, 여럿이서 함께 검토하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항상 잘못된 방법은 실수와 비극을 가져오도록 만듭니다. 아비나답의 집에서 법궤를 실은 수레를 모시고 나오던 웃사와 아효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소들이 뛰므로 법궤가 땅에 떨어질 위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고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3-7)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힘으로 바로 잡으려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바로 잡으실 것이고, 사람이 억지로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내 손을 내밀어 내 손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내리치십니다. 그래서 이때로부터 이곳 이름이 웃사를 쳤다는 뜻을 가진 베레사웃사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8) 오벧에돔에게 주신 축복 벱궤를 옮기다가 웃사가 죽는 모습을 보고 다윗은 여호와를 두려워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이 일을 중단시켰습니다. 그래서 오벧에돔의 집에서 석달 동안 법궤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는 레위인으로 고핫의 자손이요 성전의 문지기였습니다.(대상15:24) 그는 다윗마저도 궤를 옮겨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두려워할 때 기꺼이 자기 집으로 맞아들였습니다. 그 법궤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자기 집에 모셨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석달 동안 충성스럽게 하나님의 법궤를 섬겼습니다.(11) 이러한 오벧에돔에게 하나님께서는 큰 축복을 내려주셨습니다. 11절에 \"여호와께서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12절에도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고 사는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그 위에다가 내려 주시는 축복까지 듬뿍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웃사의 잘못된 행동을 처벌하신 바로 그 손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여 법궤를 모신 그에게 귀한 축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가 받은 축복은 토지 소산이 풍성하고 가축들이 충실한 것 등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 하나님의 성전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귀한 축복이 주어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기쁨 법궤를 옮기려는 첫 번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에 그것을 모시고 있던 오벧에돔의 집에 큰 축복이 내려진 것을 보고 다윗은 이제 하나님의 진노가 풀렸고, 법궤를 운반할 좋은 기회가 온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기쁨으로 두 번째 시도를 했고 예루살렘까지 성공적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12절에 \"기쁨으로 메고\"라는 말이 나오는데 앞에서 수레에 실은 것이 실수였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율법의 지시대로 메고 온 것입니다. 먼저 법궤를 옮기면서 다윗의 기쁨이 충만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12절에 \"기쁨으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교회의 일이나 이웃을 섬기는 일들도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서 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말이나, 얼굴에나, 생활에도 기쁨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지난 월요일 동부시찰회 수련회 강사로 초청을 받아 오랜만에 제주에 다녀왔습니다. 많이 발전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사진 몇 장을 찍는데 \"얼굴이 굳어 있어요, 웃으세요\"하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우리들의 표정이 너무 굳어있습니다. 기쁨이 넘치는 표정을 짓고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날마다 가능한데로 자주 웃고 기뻐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법궤를 옮기면서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13)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은 역대상 15장 11절에 보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 레위인 우리엘, 아사야, 요엘, 스마야, 엘리엘, 암미나답 등 8명이었습니다. 그들은 몸을 성결케 하고 모세의 율법대로 법궤를 메고 갔습니다.(대상15:14-15) 그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기에서 헌신과 예배의 생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또한 다윗은 법궤를 옮기면서 춤을 추며 환호했습니다. 14절에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라고 하였습니다. 15절에도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고 하였습니다. 법궤를 모시고 오게 된 것이 너무 즐거워 춤을 추었습니다. 환호했습니다. 나팔을 불었습니다. 찬송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이래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환호하고 춤을 추며 찬양하는 열정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미갈의 비극 16-23절까지에는 다윗의 아내 미갈의 잘못과 그로 인한 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갈은 사울의 둘째 딸로 다윗의 첫 아내입니다.(삼상18:17-30) 그러나 발디엘이라는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가 다윗이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될 때에 다시 데리고 왔습니다.(3:14 -16)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는 미갈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대에 창으로 내다보았습니다.(16) 남편인 다윗 왕을 비롯해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뻐하고 감격하며 환호하고 있는 그때에 창으로 내다볼 뿐이었습니다. 구경꾼이었습니다. 방관자였습니다. 동참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일에, 교회가 하는 일에 주역이 되어야 합니다.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0장 7절 이하에 나오는 유두고라는 청년은 사도 바울의 설교를 창에 걸터 앉아 들으면서 졸다가 3층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창문은 위험합니다. 창으로 내다보는 것같은 그런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둘째로, 다윗을 업신여겼으며 또한 책망까지 하였습니다. 16절 하반절에 보면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20절에서는 왕으로서의 체통을 지키지 못하고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었다\"고 책망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태도들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이 없는데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에 대한 존경심이나 순종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미갈은 무서운 저주를 받았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궤를 옮기게 된 것이 너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그는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21)고 고백하였습니다. 감사해서 제사도 드리고 백성을 축복하였습니다. 백성들에게 화목제물을 나누어주어 각기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왔다가 화가 나서 미갈에게는 자식이 없을 것이라는 저주를 내렸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자식이 없는 것을 가장 큰 치욕이었습니다.(삼상1:1-8) 왕가에서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이후로는 다윗이 미갈과 동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다윗은 예루살렘을 종교적 중심지로 만들기 위하여 그동안 바알레유다의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성전과 법궤는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것을 중심으로 하여 그들의 삶이 이루어져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법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웃사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이 궤를 모시고 있던 오벧에돔의 집에는 큰 축복이 임했습니다. 웃사와 오벧에돔을 대조하면서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윗의 기쁨과 미갈의 비웃음을 대조하면서 우리들의 신앙과 생활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큰 깨달음을 주시는 은혜의 말씀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01. 5.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