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강 사무엘하 10장 강해
암몬과의 전쟁
(사무엘하 10:1-19)
8장에 보면 다윗이 블레셋, 모압, 수리아, 에돔 등 여러 나라를 정복하였습니다. 이처럼 모든 외적을 물리치고 국내정치도 잘 하므로 나라가 안정되고 평화스러웠습니다.
그런데 10장에 보면 또 다시 이스라엘 군대가 암몬의 군대와 싸우게 되었습니다. 이 전투에서도 승리하여 그들을 정복하였습니다. 또한 이 전투에서 암몬과 협력했던 아람의 하닷에셀 군대도 격멸시키는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다윗은 가는 곳마다 승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행복한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축복받은 왕이었습니다.
조문사절이 당한 모욕
1-5절에 다윗이 보낸 조문사절들을 보내었을 때 하눈 왕이 그들의 수염을 깎고 의복을 자르는 등 모욕을 준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은 암몬의 나하스 왕이 죽자 정중하게 조문사절을 파견하여 그의 아들 하눈을 위로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맞아들이고 조문에 대해서 감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호의를 악의로 갚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나하스는 길르앗 야베스에서 사울에게 패배 당한 왕이었습니다.(삼상11:1-11) 그런데 자세한 언급이 없어 무엇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다윗은 그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그의 유족들을 위로하고자 하여 조문사절을 보냈던 것입니다. 2절에 보면 \"다윗이 이르되 내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되 그의 아버지가 내게 은총을 베푼 것같이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이때 하눈이 다윗의 뜻을 바로 알고 조문을 정중하게 받고 서로 화친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사람이 평소에 좋지 않게 지내다가도 슬픔을 당했을 때 서로 위로하고 도와주면 좋은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하물며 호의를 가지고 조문사절을 보내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그러나 그는 기회를 선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용하고 말았습니다.
조문사절을 생각할 때 지난번 정주영 현대건설 명예회장이 돌아가셨을 때 북한에서 사람들을 보내어 조문하게 하였던 일이 인상깊게 기억됩니다. 그들의 조문하는 모습이 매우 멋있게 보였습니다. 그들은 사상과 체제는 달라도 정회장이 살아 있을 때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여 지도자들을 만나고 여러 면에서 도움을 준 것이 감사해서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찾아왔던 것입니다.
하눈은 조문사절에게 모욕을 주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된데는 관리들이 잘못 보고한데 원인이 있었습니다. 3절에 \"다윗이 조객을 당신에게 보낸 것이 왕의 아버지를 공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다윗이 그의 신하들을 당신에게 보내 이 성을 엿보고 탐지하여 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지도자는 참모를 잘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을 잘 수렴하고 충고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잘못하면 실패하게 됩니다. 솔로몬이 죽은 다음에 왕위에 오른 르호보암 왕이 범한 실수가 바로 이러한 경우입니다. 원로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사려깊지 못한 소년들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왕국이 분열되는 비극을 초래한 것입니다.(왕상12:) 권력핵심부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말하기는 쉽지만 권력을 잡으면 이것이 잘 안 되는 모양입니다.
하눈은 밑의 사람들의 말만을 듣고 잘못 판단하였고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사절들의 수염 절반을 깎고, 그들의 의복의 중동볼기까지 자르고 돌려 보냈습니다.(4) \'수염\'은 그 사람이 자유인인 것을 나타내고 또 명예와 권위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자르는 것은 죽음 이상의 치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중동볼기\'는 엉덩이 부분의 다리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여기까지 잘랐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제사장 외에는 내복을 입지 않고 겉옷만 입었으므로 알몸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극한 모욕이었습니다.
하눈은 은총을 베풀고자하는 다윗의 호의를 저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주변 나라들을 하나씩 정복해 나가자 자신들도 위협을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조문사절에게 이러한 못된 짓을 하므로 그들의 멸망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수염이 깎인 사람들은 크게 부끄러워하므로 왕이 그들로 하여금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서 머물다가 돌아오도록 하였습니다.
암몬과의 전투
6-14절에는 이스라엘이 이 암몬과 싸워서 정복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암몬은 자기들의 행위가 이스라엘의 분노를 사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람제국에서 용병 3만 3천을 고용하고 싸울 준비를 갖추었습니다.(6)
다윗은 요압과 군대를 보냈습니다. 요압은 이스라엘 군을 두 대로 나누어 양면작전을 폈습니다. 요압의 정예부대에서 또 택한 정예부대를 자신이 지휘하여 아람군을 대항하게 하고, 남은 부대는 그의 아우 아비새가 지휘하여 암몬 군을 대항하도록 하였습니다.(7-10)
그러면서 요압은 아비새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11절에 나오는데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가서 너를 도우리라\"고 하였습니다. 긴밀히 연락하면서 상대방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피차 돕도록 약속한 것입니다. 이러한 말을 주고 받을 때 서로 큰 힘을 받았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12절에 나오는데 \"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고 하였습니다. 용기를 내어 싸우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나아갔을 때 본격적인 전투를 해보지도 못하고 싸움이 싱겁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아람 사람들이 대항하여 싸우지도 않고 도망하였기 때문입니다.(13) 저들은 용병이므로 싸울 명목도 없고 또 여러 나라의 연합군이므로 누구도 앞장서서 싸우려 하지도 않았으며 결국 그대로 전열이 흐트러져서 도망가 버린 것입니다.
아람 사람들이 이처럼 쉽게 도망하는 것을 보고 암몬 사람들도 함께 도망하므로 전쟁은 쉽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는 암몬, 아람 동맹군과 요압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은 수적으로 상대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이처럼 통쾌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군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굳게 뭉쳐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비록 악한 자들에 의해 사방으로 에워쌈을 당해도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면 능히 저들을 격퇴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엡6: 10-18)
아람을 격멸시킴
15-19절에는 다윗이 아람의 하닷에셀과 그 군대를 헬람에서 격멸시키는 말씀이 나옵니다. 아람 사람들은 이스라엘 군대를 피해 도망한 이후 이 패전을 설욕하기 위해서 재집결하였습니다. 그리고 군사령관 소박이 지휘하였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소식을 듣고 직접 온 이스라엘 군대를 친히 거느리고 나가서 아람 군대가 집결해 있는 헬람에 도착하여 진을 치고 더불어 싸웠습니다.(17) 아람은 이스라엘의 상대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아람 병거 7백대와 마병 4만명을 죽여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 군사령관 소박도 죽었습니다.(18)
이 전쟁의 승리로 하닷에셀에게 속한 왕들이 이스라엘 앞에 무릎을 꿇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람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여 다시는 암몬 자손을 돕지 아니하였습니다.(19)
이처럼 암몬과 아람군대를 물리치는 것을 보면서 이스라엘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통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시고 이스라엘을 도와주시므로 그들을 대적하는 모든 나라들을 하나씩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갈 때 감히 누가 그들을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도 살아나가면서 호의를 악의로 갚아서는 안됩니다. 악한 세력들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해서는 안됩니다. 전쟁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순종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대적들과 싸워서 백전백승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01. 7.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