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강 사무엘하 13장 강해


암논의 불륜




(사무엘하 13:1-19)
다윗이 범죄한 후 회개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지만 그 결과로 그의 가정에 여러 가지 환난이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낳은 아이가 죽었습니다.(12:18) 본문에는 다윗의 장자인 암논이 이복 여동생인 다말을 간음하는 사건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물론 어느 가정이나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와 같은 비극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 사건은 부모의 범죄가 구체적으로 자손들의 생애를 통해서 어떻게 다시 반복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지은 죄는 나 한 사람의 것으로 끝날 수 없다는 데에 범죄의 비극이 있습니다. 범죄의 죄과가 자손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한다는 십계명의 선언(출20:5)은 매우 엄격하며 정확한 진리입니다. 부모의 범죄가 자손들의 생애를 통해서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는 이 사건에 주목합시다. 그리고 우리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말을 사랑함





다윗은 여러 아내들에게서 많은 자녀들을 얻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암논은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으로 그의 장남입니다.(3:2) 그리고 다말은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소생입니다.(3:3) 그녀는 압살롬의 누이로서 매우 아름다운 처녀였습니다.

암논이 다른 사람아닌 이복 여동생 다말을 사랑하여 상사병까지 들게 되었습니다.(2) 자기의 사랑을 고백하거나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왜냐하면 다말은 공주로 궁중 깊은 곳에 살고 있었고 또한 모세의 율법에 근친상간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레18:9,11, 20:17)

이때에 요나답이라는 간교한 친구가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5절에 보면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그에게 말하기를 원하건데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게 떡을 먹이되 내가 보는 데에서 떡을 차려 그의 손으로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라\"고 하였습니다. 마침 왕이 암논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찾아 왔을 때 그대로 말씀을 드려서 허락을 받았습니다.

요나답의 계획은 의심을 받지 않고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들은 친구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친구가 잘못된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을 때 그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어 거기에서 헤어나오도록 해 주는 것이 진정한 친구이지, 간교한 방법으로 그를 도와서 죄를 짓게 하는 것은 진실한 친구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가까운 친구의 올바른 충고가 필요한 것입니다.





다말을 범함





다윗은 암논이 아파서 누워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고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암논이 부탁한대로 다말에게 전했습니다. 그리고 다말도 아버지의 그러한 말을 듣고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암논의 집으로 갔습니다. 몸이 좋지 않은 오빠 암논에게 주려고 열심히 맛있는 과자를 만들었습니다.(7-8)

요나답은 의도적으로 암논의 불륜행위를 조장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부지중에 방조한 셈입니다. 다말의 비극은 이처럼 암논과 요나답과 다윗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이 범죄행위의 주범과 공범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말이 정성드려 만든 음식물을 암논에게 가져갔으나 그가 거절하면서, 모든 사람을 밖으로 내 보내라고 하였습니다.(9) 단 둘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말에게 침실로 들어오도록 하여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11)고 말합니다. 부끄러움도 없이 불륜의 요구를 한 것입니다. 어떻게 동생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들은 여기에서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다윗의 죄가 이 아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누이를 범하려고 하게 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12-13절에 보면 이러한 암논의 요구에 대하여 다말이 필사적으로 항거하는 말이 나옵니다. 그것은 세 가지입니다. 한 가지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12)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교훈대로 살아야하는 백성들인데 율법은 이러한 근친상간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신27:22) 둘째로, 이런 일을 당하면 내가 얼굴을 들고 살 수 없을 것이니 비참하게 만들지 말아달라고 하였습니다. 13절 상반절에 보면 \"내가 이 수치를 지니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어리석은 자 중의 하나가 되리라\"고 하면서 사정하였습니다. 셋째로, 왕께 말하여 허락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13하) 물론 율법이 근친상간을 금하고 있지만 이복 형제는 예외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이복 누이였고(창20:12), 고대의 왕족들 가운데는 이러한 예가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에게 잘 말씀드려서 정식으로 허락을 받아 결혼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암논은 이러한 정당한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욕에 눈이 멀어서 억지로 다말을 범하고 말았습니다.(14) 다음 부분에 보면 그가 이러한 범죄의 결과로 생명을 잃게 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또한 곧이어 다가올 비극을 깨닫지 못하여 이와 같은 큰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다말을 추방함





암논이 다말을 범한 것도 큰 잘못이지만 이후에 보여준 태도는 우리들을 더욱 경악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15-19) 그는 누이동생을 너무 사랑하여 상사병이 들 정도였고, 억지로 그를 범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면 자기 행위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후에 그의 마음이 더욱 완악해 졌습니다. 조금도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것은 물론 다말을 심히 미워하였습니다. 15절에 보면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였습니다. 마음이 변하여 미워한 것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매정하게 내어쫓은 것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이처럼 변하기 쉽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습니까? 슬픈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다말이 애원합니다.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16)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종을 불러 다말을 쫓아내도록 지시합니다. 그때 그가 한 말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만듭니다.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17) 다말을 사랑하여 불러다가 범하고 욕심을 채운 다음에는 상대방을 생각지도 않고 매정하게 차버리는 암논은 일종의 변태성욕자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쫓겨난 다말은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쓰고 그의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가서 크게 울부짖었습니다. 재를 머리에 썼다는 것은 극한 슬픔과 노여움의 표시입니다.(삼상4:12, 왕하5:8) 채색옷을 찢었다는 것은 슬픔과 충격의 표시입니다.(왕상21:27, 스9:3) 손을 머리 위에 얹었다는 것은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는, 또한 자신의 무죄함을 알리려는 표시입니다. 다말은 이처럼 통곡하며 자기 처소로 돌아갔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들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암논처럼 무리한 사랑을 해서는 안됩니다. 더구나 진정한 사랑이 아닌 육체의 정욕을 채우려는 무책임한 사랑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잘못된 사랑은 돌이켜야 합니다. 회개하여야 합니다. 암논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상처받은 누이동생에게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문빗장까지 걸어 잠갔습니다. 이것은 짐승의 모습이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범죄가 자식에게로 이어지고 그래서 가정에 환난이 계속되는 다윗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음행뿐만이 아닙니다. 교회를 섬기는 자세, 교역자와의 관계 그리고 모든 신앙생활 태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정을 참으로 행복하고 축복받는 가정으로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01. 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