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살롬의 반역 (사무엘하 15:1-12) 그동안 사무엘하 강해를 계속하지 못해 여러분들에게 매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가능한대로 빠트리지 않고 이어가려고 합니다. 교우 여러분들께서도 기도해 주시고 이 강해를 통해서 큰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사무엘하 14-18장에는 압살롬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형을 죽이고 도망갔던 압살롬이 돌아옵니다.(14:) 그가 차차 세력을 키워 반란을 일으킵니다.(15:1-12) 다윗이 요단강 동편으로 피신하였습니다.(15:13-16:14) 사태는 내란으로 발전하여(16:15-17:29) 압살롬이 전사하고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18:) 이처럼 나라가 일대혼란에 빠지며, 다윗 일가가 불행한 일들을 겪게 된 것은 모두가 다윗의 범죄의 결과였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다\"고 아담의 범죄에 대해서 말씀해 주었는데, 다윗의 범죄가 계속해서 불행한 일들을 몰고 오게 된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봉독해 드린 본문 말씀을 가지고 압살롬의 반역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포옹해 주지 못한 아버지 다윗이 압살롬으로 하여금 3년 동안의 유랑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도록 했지만(삼하14:1-23) 다윗은 그를 만나주지 않았습니다.(삼하14:24, 28)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용서는 비인격적이었습니다. 아버지로서의 따뜻한 포옹을 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를 돌아오도록 허락했고 그에게 살 장소를 주었지만 그를 만나려고 하지도 않았고 찾아오는 것을 허락하지도 않았습니다. 죄는 죄를 키웁니다. 다말을 강간한 사건은 암논 살해사건으로 발전했고 암논 살해사건은 다윗의 무정한 행동을 키웠습니다. 암살롬은 암논의 죄에 죄로써 반응했고 다윗 역시 압살롬의 죄에 죄로써 반응했습니다. 압살롬은 암논을 죽여버림으로써 그를 제거했고 다윗은 압살롬을 멀리함으로써 그를 제거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죄 때문에 암논을 잃었고, 자신의 죄 때문에 아들 압살롬을 잃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압살롬은 한이 맺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집에 있었지만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대접받고 싶었고 용납받기를 원했으며 인격적인 용서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웠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탕자의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왔을 때 달려가서 따뜻하게 맞이하고 포옹해주었습니다. 집으로 맞아들여 풍성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눅15:11-32)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돌아온 그가 한편으로는 미웁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돌아온 아들을 책망하지 않고 뜨거운 사랑으로 맞이하였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이렇게 맞이하였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랬더라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원만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모질게 대했습니다.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용서하기를 거절하고 은혜 베풀기를 거절한 결과로 비극적인 반역이 시작된 것입니다. 반역을 위한 준비 아버지와 가까워질 희망을 포기한 압살롬은 스스로의 일을 추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이 당한 대로 갚아주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반역을 준비하였습니다. 첫째로,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세웠습니다.(1) 그는 이러한 위용을 갖추고 자신이 다윗 왕의 후계자임을 내외에 과시하였습니다. 열왕기상 1장 5절에 보면 아도니아가 반역할 때에도 이와 똑같은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둘째로,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2-5) 그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성문 곁에 서서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오는 사람을 불러 주소와 이름만 묻고 사건의 내용도 묻지 않은채 \"네 일이 옳고 바르다\"(3상)고 하였습니다. 고도의 인기전술입니다. 그리고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3하)고 말함으로써 은근히 다윗 왕을 원망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자신에게 오는 자에게 정의 베풀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4)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그에게 가까이 와서 절하려고 하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5) 입맞춤은 사랑과 친근의 표시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그의 편으로 만들어갔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13절에 보면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가 나옵니다.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소문이 나서 해고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의 증서를 가져오라고 해서 실제 빚보다 적게 고쳐 주어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주인은 그 청지기를 칭찬하였습니다. 살아가노라면 바른 소리를 해야 하느냐 아니면 적당히 인기전술을 쓸 것이냐 고민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교회 운동장의 주차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엄격하게 통제하면 예배드리러 오는 교인들에게 불편은 없지만 주위 사람들로부터는 욕을 먹습니다. 요즈음에는 복지관 공사관계로 자유롭게 풀어놓으니 동네 사람들이 저를 만나면 인사도 잘하고 다정해졌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의 차를 주차하기에도 불편하고 주일예배 시에는 교인들이 주차하기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사람들에게 환심을 사면서 적당히 인기전술을 쓰며 살아가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사는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살려고 한다면 어려움이 많이 생길 것입니다. 6절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욕망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훔치며 살아서는 안됩니다. 헤브론에서 왕위에 오름 압살롬은 4년에 걸쳐서 반역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동안 백성들로 하여금 다윗왕에 대해서 불만을 갖도록 유도하고 추종세력을 하나씩 모으다가 민심이 자기 쪽으로 기울었다는 확신이 들자 마침내 들고 일어섰습니다. 그는 다윗에게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하소서\"(7)라고 요구하였습니다. 헤브론은 다윗이 처음으로 왕이 된 곳이고, 또한 압살롬이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2:2, 3:3) 그가 형 암논을 죽이고 도망하여 외조부의 왕궁에서 3년간 피신할 때(13:38) 하나님께 서원하기를 \"만일 여호와께서 반드시 나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내가 여호와를 섬기리이다\"(8)라고 서원하였다는 말을 듣고 다윗이 허락하였습니다. 서원은 꼭 실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이 무서운 반역을 꾸미고 있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평안히 가라\"고 하였습니다.(9) 이것이 부자간의 마지막 이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곧 말하기를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 하라\"(10)고 준비시켰습니다. 압살롬의 치밀한 반역 계획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이백 명이 예루살렘으로부터 헤브론으로 내려갔습니다.(11) 그들은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제사를 드린다고 해서 동행한 것 뿐인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반역에 가담하면 빠져나오기가 어렵습니다. 그들은 정부의 고관들이었을 것이며 그들의 동원이 반역의 성사에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5·16군사쿠테타를 일으켰던 박정희 소장을 비롯한 주체세력들이 당시 육군참모총장이던 장도영 장군을 지도자로 추대하였습니다. 대외적인 지지와 명분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유력한 인사들이 동조자인 것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이 비슷합니다. 12절에 보면 아히도벨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다윗의 뛰어난 모사로 밧세바의 조부였습니다.(23:34, 대상3:5) 이때는 고향에 낙향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모시어 오게 하였습니다. 앞으로 이 모사꾼의 행위가 어떻게 펼쳐지고 어떠한 어려움을 초래하는지 흥미롭게 관찰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드디어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위에 스스로 올랐습니다. 그리고 민심의 지지를 얻어 그에게 돌아오는 백성들이 많아졌습니다.(12)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부자간에 권력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한 순간의 다윗의 범죄가 이처럼 계속되는 비극을 불러오게 된 것입니다. 압살롬은 똑똑하고 잘 생긴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평화와 사랑과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일에 바쳐졌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반역을 위해 쓰임을 받고 마침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순종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배신과 반역의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역사에 가룟 유다처럼 부끄러운 이름으로 기록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01. 11. 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