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피신
(사무엘하 15:13-37)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스스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반역이 일단 성사되었습니다. 이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다윗과 그의 신하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13-23절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나는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24-29절은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는 것을 설명하고 있고, 30-37절은 다윗이 모략가 후새를 예루살렘에 보내어 압살롬의 계략을 어지럽게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는 다윗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13)라고 보고하였습니다. 다윗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인심은 갈대와 같아서 압살롬의 모략이 주효하여 백성들이 압살롬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어쩔 수 없이 신하들에게 피하자고 하였습니다. 물론 그의 가족들도 함께 떠났습니다. 단지 후궁 10명을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그가 이처럼 급히 떠나기로 결정한 것은 지체하다가 성이 포위되고 신하들과 가족들이 모두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떠난 후 벧메르학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이곳은 다윗의 별궁인 듯 합니다. 여기에 들린 것은 피난민을 재정비하여 앞으로의 피난길을 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8절에 그의 일행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은 다윗의 경호원입니다.(8:18) \'가드에서 온 6백인\'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피난생활을 보낸 초기부터 그를 따라 다닌 충성스러운 신복들이고 충신들의 핵심부대였습니다.(삼상21:10-15, 27:3-12) 그들은 그때부터 시작하여 시글락으로(삼상27:8, 30:1), 헤브론과 예루살렘으로(2:3, 5:6) 따라왔고, 이제 다윗의 피난길에도 함께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드 사람 잇대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0-23) 그는 블레셋의 가드 사람으로 거기에서 쫓겨나 그의 가족과 함께 이스라엘에 망명 온 사람입니다. 대 용사요 다윗의 군사령관이었습니다.(18:1) 그도 다윗을 따라 피난길에 나섰는데, 다윗은 그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살라고 강력히 권하였습니다.(19-20) 잇대를 아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따뜻한 인정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배려에 대해 잇대는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21)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러한 고백을 대하면서 저는 룻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며느리들에게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때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1:16-17)라고 하였습니다.
잇대도 왕과 같이 살고 같이 죽겠다고 고백하자 다윗이 더 권하지 않고 \"앞서 건너가라\"(22)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와 그의 수행자들과 그와 함께 한 아이들이 다 건너가고, 백성들도 큰 소리로 울며 앞서 건너가자, 다윗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 광야길로 향하였습니다. 기드론 시내는 여리고나 요단강 쪽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곳입니다.
23절에 \"광야길로 향하였다\"는 말이 나옵니다. 광야는 사울을 피해 다니면서 다윗의 인격이 형성되었던 곳입니다. 그리고 이번 피난길을 통해 그는 광야의 고통 속에서 겸손을 회복하였습니다. 기도를 회복하였습니다. 자애를 회복하였습니다. 압살롬에 대해 부드러운 마음을 다시 찾았습니다.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보냄
사독과 아비아달은 대제사장이었습니다.(8:17) 그들은 언약궤를 메고 다윗의 피난길에 함께 따라왔습니다. 이는 제사장들이 압살롬의 반역에 따르지 않고 다윗을 지지한 것을 가리킵니다. 다윗에게는 압살롬의 백만대군보다 언약궤가 더 소중하였습니다. 그들이 이것을 메고 따라온 것은 앞으로의 전투에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셔서 승리를 얻도록 비는 마음에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언약궤를 정처없는 피난길에 모시고 다녀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언약궤가 없다해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자신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셔서 그 궤 옆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독에게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25)고 말하였습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소중히 여기는 왕이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어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한 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은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성으로 옮긴 것입니다. \"다윗과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삼하6:15)고 하였습니다. 사무엘하 7장 2절에 보면 하나님의 궤를 잘 모시기 위해 성전을 건축할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피난길에 그를 따라온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보냈습니다. 언약궤가 있어야 할 곳에 모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독과 아비아달은 왕의 명령에 따라 그의 두 아들 아하미아스와 요나단과 함께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에 도로 메고 가서 거기에 머물렀습니다.(27-29)
아히도벨과 후새
다윗의 피난길은 눈물로 얼룩진 길이었습니다. 30절에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지도자에게는 눈물이 많아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을 쏟을 줄 알아야 합니다. 지도자의 눈물이 나라를 살립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눈물로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어야 합니다. 히스기야도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여호와여 구하노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왕하20:3)고 하였습니다. 자녀를 위해서도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교우 여러분들이 합심하여 기도했던 박만세 군의 병세가 호전되어 병실로 옮겼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어머니의 눈물을 보시고 고쳐주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번에 김영주 집사님이 큰 아들을 위해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모릅니다. 속히 완쾌되어서 기도와 눈물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다윗에게는 아히도벨과 후새라는 훌륭한 모사가 있었습니다. 요즈음 인기리에 방영되는「태조 왕건」에서도 최응이라는 보배와 같은 모사가 있었기에 궁예나 왕건이 큰 도움과 지혜를 얻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견훤에게도 파진찬 최승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와서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함께 모반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여호와여 원하옵건데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31)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아히도벨과는 달리 알렉 사람 후새는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덮어쓰고 다윗을 맞으러 나왔습니다. 한 사람은 배신하고 한 사람은 지조를 지켰습니다. 다윗은 그에게 \"네가 만일 나와 함께 나아가면 내게 누를 끼치리라 그러나 네가 만일 성읍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전에는 내가 왕의 아버지의 종이었더니 이제는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하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리라\"(33-34)고 말하였습니다. 적진에 뛰어 들어가 다윗을 위해 활동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의 궁중에서 무엇을 듣든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 정보가 다윗에게 전달하도록 되어있다는 것입니다.(35-36)
아히도벨과 후새는 똑같은 다윗의 모사였지만 한 사람은 배신자가 되고 다른 사람은 끝까지 다윗을 위해 충성을 바칩니다. 앞으로 전개되는 두 사람의 대결이 우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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