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과 저주/삼하16:1-14 다윗이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왕궁을 떠나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가 올리브산 마루턱을 지나갈 때에 시바의 환영(1-4)을 받았고 또한 시므이의 저주(5-14)도 받았습니다. 이들은 서로 대조되는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상황판단이 달랐습니다. 시바는 압살롬의 반역이 곧 끝나고 다윗이 다시 권좌에 복귀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므이는 다윗의 모든 것이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던 다윗으로서는 환영해 주는 시바가 몹시 고마웠을 것입니다. 물론 그 환영은 순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기회에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시므이는 노골적으로 다윗을 저주하였습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고 섭섭했을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의 모습이 환영과 저주로 나타났지만 사실은 모두가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말씀을 함께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시바의 환영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조그마한 도움을 주거나 친절한 말 한마디를 건네면 매우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눈 빛, 얼굴 표정, 한 마디의 말이라도 매우 중요합니다. 조그마한 친절이라도 큰 힘과 용기를 주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비난을 받거나 비웃음을 당하면 마음이 약해집니다. 서글퍼집니다. 다윗이 피난길에 올랐을 때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음식물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1절에 보면 두 나귀에 떡 이백 개, 건포도 백 송이, 여름 과일 백 개,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싣고 나와 그를 맞이하였습니다. 이것은 피난길에 오른 다윗과 그 일행에게 매우 요긴한 선물이었습니다. 사무엘상 25장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발이 다윗을 선대하지 않아 분노하여 그를 치러갈 때에 지혜로운 아비가일이 그의 남편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평화를 얻고자 다윗을 맞이하러 나가면서 귀한 선물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녀는 떡 이백 덩이, 포도주 두 가죽 부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 볶은 곡식 다섯 세아, 건포도 백 송이,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나귀들에게 싣고 나아갔습니다.(삼상25:18) 그래서 다윗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었으며 가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남편이 죽은 다음에는 다윗의 아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귀한 선물과 지극한 환영을 받고 다윗이 너무 고마워서 시바에게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왔느냐”고 물었을 때 “나귀는 왕의 가족들이 타게 하고 떡과 과일은 청년들이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피곤한 자들에게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2)라고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이러한 말을 듣고 다윗이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했겠습니까? 그가 다윗과 그 일행을 위하여 귀한 예물을 준비하고 정성을 다해 환영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다윗의 고생이 곧 끝날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이러한 친절을 베풀면 그가 다시 권력을 다시 잡았을 때 큰 도움을 얻게 되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요즈음에도 권력의 움직임을 따라 줄대기를 하려는 약삭빠른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바도 그러한 유형에 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둘째로, 다윗의 환심을 산 후에 주인 므비보셋을 모함하여 그의 재물을 모두 가로채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윗이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시바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므비보셋을 모함하였습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의 친구 요나단의 아들로, 친구와의 언약을 생각하여 다윗이 아들처럼 대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그를 진실로 사랑하였습니다. 부자사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반역을 꾀하는 것처럼 중상모략을 한 것입니다. 3절 하반절에 보면 “예루살렘에 있는데 그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거짓말입니다. 므비보셋이 반역을 꾀한다고 말했지만 그는 어려서 입은 부상으로 다리를 절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설혹 다윗이 왕위에서 물러난다하여도 압살롬이 그 뒤를 이으면 이었지 그가 그 자리에 오를 가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꾀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듯한 말로 모함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날 때 므비보셋도 나귀를 타고 다윗 일행과 함께 동행하려고 하였습니다.(19:26) 그런데 시바가 만류하였습니다. 그렇게 해놓고서도 적반하장으로 그를 이처럼 모함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과 동행하지 못한 대신에 므빗보셋은 다윗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습니다.(19:24) 그러나 아첨이나 모략의 힘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여기에 뇌물이 첨가되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 때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은 이러한 때에 조심해야 한다고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당하면 넘어지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사람에게 귀가 둘인 것은 잘 들으라는 뜻입니다. 뇌물과 아첨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이 때 조심했어야 하는데 다윗은 너무 성급하게 그의 말을 믿고 므비보셋이 반역의 마음을 품고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4절에 보면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소유를 시바에게 준 것입니다. 그의 술수에 완전히 넘어간 것입니다.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진상을 알았을 때 이러한 사려 깊지 못한 결정으로 인하여 몹시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의 결정을 수정해서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19:29)고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므이의 저주 다윗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 사울의 친족이요 게라의 아들인 시므이라는 사람이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는 다윗이 다시 왕위에 복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정하였습니다. 그래서 평소의 불만을 터뜨려 저주한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부딪히고 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또한 잘될 때는 아부하고 조금 어려움에 처하면 비난하고 저주하고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세상 인심이 조석변이라고 하지만 더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는 왕과 그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졌습니다.(6) 그리고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7)고 저주하였습니다. 그뿐입니까?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8)라고 하였습니다. 압살롬의 난이 발생한 것은 결국은 다윗이 사울의 족속에 대하여 저지른 죄를 갚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해석하면서 다윗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무서운 저주요 모함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다윗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리고 옆에서 지켜보는 신하들이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드디어 아비새의 분노가 폭발하였습니다. 도저히 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께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9)라고 말하였습니다. 아비새는 요압의 동생이요 다윗의 조카이며 충신이었습니다.(2:18, 3:30) 그는 시므이의 저주를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죽이도록 허락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다윗은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이것은 그의 퍼붓는 저주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0절에 보면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비난을 좋아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더구나 억울하게 저주나 모함을 받게 되면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키지 않으시면 그가 그러한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다윗의 훌륭한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11절 말씀이 우리를 더욱 마음 아프게 해주고 있습니다.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체념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순종하려고 하는 그의 겸손한 자세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향하여 간절한 소원을 말합니다. 귀한 소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12)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 저주를 선으로 바꾸어 갚아 주실 것인데, 인간적으로 그를 보복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가 모든 것을 선으로 만들어 주시고 갚아주시는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므이는 계속하여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돌을 던지며 먼지를 날렸습니다.(13) 그러한 와중에서도 왕과 그와 함께 있는 백성들이 한 곳에 이르러 휴식을 취하게 되었는데(14) 그곳은 바후림에서 요단강 나루터 사이에 있는 아에빔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처럼 다윗을 저주했던 시므이는 나중에 다윗이 복위할 때에 나와서 사과하였습니다. 다윗은 모든 것을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다윗을 이어 왕이 된 뒤에 결국 그는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왕상2:36-46)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람은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실패하고 좌절을 맛볼 때도 있습니다. 다윗이 어찌 꿈엔들 이러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해 본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비참한 피난길에 오른 그에게 시바는 환영을 했고, 시므이는 저주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가 환영하고 저주하든 개의치 말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아첨이나 뇌물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분통이 터지는 저주를 받게 되더라도 그 속에서 분노하기만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고난은 우리를 성숙해지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잘 극복해 나가면 더욱 큰 축복을 준비해 주십니다. 어려움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맙시다. 믿음으로 잘 헤치고 나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들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