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강 사무엘하 16장 강해


아히도벨과 후새/삼하16:15-23


오늘 저녁에 2002학년도 1학기 장학금 수여식이 있습니다. 매년 두 차례에 걸쳐서 이러한 행사를 가질 때마다 저는 부끄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왜냐하면 장학금을 준다고 말하지만 너무 적은 액수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가능하다면 귀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 대학이나 외국유학까지도 염두에 두고 뒷받침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잘 키워서 우리 교회와 이 사회와 나라를 위해 충성스럽게 일하는 일꾼들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투자해야 할 것이 많이 있지만 인재양성을 위한 투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이 일에 너무 소홀히 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훌륭한 인재들을 양성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교회학교, 온 교우들이 열심히 기도하고 협력하여 이 일을 이루어 가야 하겠습니다.

이 시간에 주신 말씀에 보면 당대에 가장 훌륭한 모사인 아히도벨과 후새 이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똑같은 다윗의 모사였지만 아히도벨은 다윗을 배신하였고 후새는 끝까지 다윗에게 충성을 바쳤습니다.

이미 살펴본 1-14절에는 피난길의 다윗을 환영한 시바와 저주한 시므이가 나오는데, 15-23절에서는 끝까지 다윗에게 지조를 지킨 후새와 배신한 아히도벨이 나옵니다. 환영과 저주, 신의와 배신 이 대조되는 길은 누구나 항상 선택해야 할 갈림길로 다가옵니다. 신의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눈 앞의 이익만을 위해 살 것인가?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안목을 가지고 살 것인가? 아니면 신의를 지키고 항상 긍정적으로 살 것인가? 이 시간에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후새의 위장 전향






15~19절에 보면 후새가 예루살렘에 입성한 압살롬에게 위장으로 전향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것은 다윗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믿었던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함께 모반에 가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낙심하였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여 원하옵건데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15:31)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아히도벨과는 달리 알렉 사람 후새는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덮어쓰고 다윗을 맞이하러 나왔습니다. 그는 다윗의 참모이면서 친구였습니다.(15:37) 한 사람은 배신하고 한 사람은 끝까지 지조를 지켰습니다.

다윗은 후새에게 고마워하면서 “네가 만일 나와 함께 나아가면 내게 누를 끼치리라 그러나 네가 만일 성읍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전에는 내가 왕의 아버지의 종이었더니 이제는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하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리라”(15:33-34)고 하였습니다. 적진에 들어가서 자신을 위해 활동해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리고 궁중에서 얻은 정보를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알려주면 자기에게 전달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15:35-36)

이 말씀에 순종해서 후새는 압살롬에게 나아가 “왕이여 만세, 왕이여 만세”(16)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거짓 투항입니다. 또한 생명을 건 모험이었습니다. 만일 그 정체가 드러나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압살롬이 이렇게 묻습니다. “이것이 네가 친구를 후대하는 것이냐 네가 어찌하여 네 친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17) 이것은 유도적 심문으로서 왜 친구 다윗을 버리고 내게 왔느냐는 것입니다. 후새는 내친김에 18-19절에서 앞으로 압살롬에게 충성을 다바쳐 섬기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에게 속하여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이다 또 내가 이제 누구를 섬기리이까 그의 아들이 아니니이까 내가 전에 왕의 아버지를 섬긴 것 같이 왕을 섬기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충성스런 후새는 다윗이 시킨대로 하였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압살롬의 귀에 솔깃한 말들을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압살롬 편에 계신 것과 이스라엘 온 백성이 압살롬을 따르는 것을 밝히고 있으며, 그러므로 이런 왕인 당신을 따라야지 누구를 따르겠느냐고 하였습니다.

후새의 작전은 성공하였습니다. 압살롬이 가졌던 의심을 풀어주었습니다. 그는 후새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후새의 위장 전향은 다윗에게는 큰 충성이지만 압살롬에게는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그의 몰락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아히도벨의 계략






20-23절에 보면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잘못된 계략을 가르쳐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역자 압살롬을 도와 예루살렘에 입성하였으니 그들의 반역의 첫 단계는 성공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무혈입성한 후에 압살롬이 그에게 “너는 어떻게 행할 계략을 우리에게 가르치라”(20)고 요청하였습니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뛰어난 지략가로 중용된 자였으며, 밧세바의 조부이기도 합니다.(15:12) 그가 고향에 낙향해 있었던 것은 다윗이 그의 손녀를 범한 것에 대해 격분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기도 합니다. 압살롬은 사람을 보내어 아히도벨을 그의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왔습니다.

아히도벨은 행할 일을 가르쳐 달라는 압살롬에게 “왕의 아버지가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소서”(21)라고 하였습니다. 큰 일을 이룬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고작 여인들을 그것도 아버지의 후궁들과 동침하라고 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의 계략은 첫째로, 압살롬을 다윗의 후계자로 확정하는 것입니다. 고대 중동에서 왕위를 계승하는 자는 전왕의 후궁들도 차지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합니다. 둘째로, 압살롬의 반역을 결정적으로 만들고 그로 인하여 부친의 미움을 사서 다시 화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압살롬과 함께 반역에 참여한 자들은 다윗의 보복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백성들은 자연히 압살롬을 잘 도울 것이라는 그럴듯한 계략이었습니다. 또한 다윗이 범한 밧세바가 그의 손녀이었기 때문에(15:12) 이는 그 일에 대한 복수의 뜻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생각도 못할 패륜적인 계략이었습니다. 꾀를 내어도 죽을 꾀를 낸 것입니다. 그 결과로 압살롬을 파멸로 이끌어가고 말았습니다.(삼하18:14)

압살롬은 아히도벨이 시키는대로 옥상 장막에서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아버지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였습니다.(22) 이 옥상은 다윗이 목욕하는 밧세바를 바라보며 정욕을 불태우게 되어 그녀를 범한 바로 그 곳이었습니다.

그는 높은 궁전의 지붕에서 모든 백성이 보는 가운데서 대낮에 부왕의 후궁들을 범하였습니다. 이것은 나단이 예언한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사무엘하 12장 11~12절에 보면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고 말씀해 주신 바 있었습니다.

사람은 옆에 좋은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옳고 그름을 분명히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기분이나 맞추어 주는 말에 솔깃해서는 안됩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도 원로들의 말을 듣지 않고 평소 가깝게 어울리던 젊은 친구들의 말을 듣다가 결국은 왕국이 분열되는 비극을 초래하였습니다.(왕상12:1-15)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지도자라면 아무리 가까운 측근의 말이라도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아히도벨과 후새라는 다윗의 훌륭한 참모들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들도 이러한 인재들을 많이 키우고 배출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 중에 하나입니다.

그들은 똑같이 탁월한 모사였는데 아히도벨은 배신하여 압살롬과 협력하였습니다. 그러나 후새는 끝까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신의를 지키며 충성을 다 바쳤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배신보다는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삶의 자세를 버리고 긍정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끝까지 신의를 지키며 다윗 왕에게 충성을 다 바치는 후새의 모습이 우리들을 감동케 만듭니다. 그는 위대한 참모요 충신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시바의 길과 시므이의 길 중에 어느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아히도벨의 길과 후새의 길 중에 어느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