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략의 대결/삼하17:1-14 지난 시간에 아히도벨과 후새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이 두 사람은 훌륭한 전략가였습니다. 지도자가 자기 휘하에 이러한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고 그들의 지혜를 잘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은 자기 혼자서 일할 수 없습니다. 탁월한 지도자일수록 사람을 잘 씁니다. 혼자 모든 것을 다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참모들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그들의 건의를 경청하고 최종 결정은 물론 지도자가 잘 해야 합니다. 본문에는 아히도벨과 후새의 대조적인 계책이 나옵니다. 아히도벨은 오늘 밤에 다윗을 추격하여 그들을 급습하자는 것입니다.(1-4) 매우 전격적인 전략입니다. 반대로 후새는 준비를 철저히 하여 완전한 승리를 거두고자 합니다.(5-14) 압살롬은 이 가운데서 후새의 계략을 채택하였습니다. 만일 이 때에 아히도벨의 계략대로 하였더라면 다윗은 패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압살롬의 나라가 견고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시려고 아히도벨의 계략을 물리치게 하시고 후새의 계략을 채택하도록 하셨습니다.(14) 그리하여 압살롬이 몰락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아히도벨의 계략 16장 21절에서 아히도벨이 다윗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도록 압살롬에게 권한 것은 잘못된 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1-4절에서 말한 계략 즉 다윗을 전격적으로 치자는 계략은 매우 훌륭하였습니다. “오늘 밤”은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바로 그 날 밤입니다. 그 때 다윗은 멀리 가있지 않았을 것이니 다윗이 밤에 쉬고 있을 때 만 이천 명의 군인들을 이끌고 가서 급습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계략이 채택되어 그대로 하였더라면 다윗은 비참하게 패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압살롬의 반역은 성공하였을 것입니다. 아히도벨의 예견은 정확하였습니다. 슬프고 충격적인 피난길에 오르게 된 다윗은 심신이 피곤하고 힘이 빠져 있었습니다. 이 때에 많은 군대를 이끌고 추격하여 기습하였더라면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무서워 도망하였을 것이고, 다윗 왕을 죽이면 모든 일은 끝나고 말았을 것입니다.(2) 그리고 다윗 왕이 죽으면 백성들은 모두 압살롬에게 돌아오고, 나라가 안정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3) 그의 말대로 압살롬의 반란의 성패는 다윗에게 달려있었습니다. 다윗이 죽으면 반란은 성공하게 되고 그가 살아 있는 한 끝나지 않는다고 본 것입니다.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그의 말을 옳게 여겼습니다.(4) 만일 그의 말대로 따랐더라면 역사는 바뀌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말을 옳게 여기면서도 그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일이 잘못되려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후새의 계략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계략이 좋다고 생각하였지만 아렉 사람 후새의 말도 들어야 하겠으니 그를 부르라고 하였습니다.(5) 그는 후새의 충성심을 믿었고 일을 보다 완벽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후새의 말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후새가 오자 아히도벨이 제출한 계략을 자세히 설명해 주면서 그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때 후세는 단호하게 “아히도벨이 베푼 계략이 좋지 아니하니이다”(7)라고 말합니다. 그는 다윗을 위기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일단 아히도벨의 계략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벌기 위해서 정면으로 비판한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을 건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을 어느 정도까지 믿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힘들고도 어렵습니다. 누가 진정 나를 위해서 말하고 행동하느냐를 판단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장 위하는 것처럼 하면서 나를 넘어지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는데 나를 도와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려울 때는 누가 친구요 누가 적인지 분간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후새를 철석같이 믿었던 압살롬이 참으로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들도 살아가면서 이러한 경우를 많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8-10절에 보면 후새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세 가지를 말합니다. 첫째로,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은 용사라고 하였습니다. 섣불리 쳐들어갔다가는 큰 코를 다칠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지금 몹시 격분해 있다고 하였습니다. 들에 있는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 같이 화가 나 있을 때 싸우면 그들을 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다윗이 병법에 익숙한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래서 전쟁에 익숙한 그가 백성과 함께 자지 아니하고 어느 굴에나 어느 곳에 숨어 있으리니 혹 쳐들어갔다가 몇 사람이라도 목숨을 잃게되면 그 소문을 듣는 자가 압살롬의 군대가 패하였다고 할지도 모르고 그래서 용사들이 낙심하게 되면 큰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매우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습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완전히 준비하여 전면전을 벌려야 하며 왕 자신이 진두에서 지휘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11-13절까지를 함께 읽읍시다. “나는 이렇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많은 모래 같이 당신께로 모으고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 우리가 그 만날 만한 곳에서 그를 기습하기를 이슬이 땅에 내림 같이 우리가 그의 위에 덮여 그와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아니할 것이요 또 만일 그가 어느 성에 들었으면 온 이스라엘이 밧줄을 가져다가 그 성을 강으로 끌어들여서 그 곳에 작은 돌 하나도 보이지 아니하게 할 것이니이다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후새의 계략은 압살롬을 흡족하게 만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전국적으로 모병을 하면 전 국민의 지지를 얻게 되고, 그가 진두지휘를 하게 되면 그의 명성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압살롬의 영웅심을 부추기는 가장 달콤한 말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뜻에 따라 이렇게 되어 아히도벨의 계략은 후새의 계략에 여지없이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후새의 계략이 더 낫다하여 그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사실 후새의 계략은 듣기는 그럴듯하였으나 허황되고 교만하였습니다.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였습니다. 장기간의 준비가 필요하였습니다. 아히도벨의 안이 더 좋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배신한 아히도벨이 졌습니다. 다윗에게 끝까지 충성을 바치는 후새가 승리하였습니다. 배신하는 사람과 충성하는 사람의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후새의 계략의 목적은 시간을 지체시켜서 다윗이 요단강을 건너 안전지대로 피신하고 속히 전열을 정비하여 전쟁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의 영웅인 맥아더장군이 인천상륙에 성공함으로 공산군을 격퇴시킨 후에 “만일 공산군이 서울에서 지체하지 않고 탱크부대를 앞세우고, 그 뒤에 보병을 트럭에 싣고 그대로 부산까지 내려갔더라면 한반도는 쉽게 함락될 뻔 하였다”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사람이 계획한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이나 뜻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도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계획하고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생각이나 뜻에 따라 모든 것이 움직이게 됩니다.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아히도벨과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까? 후새와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의리를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충성심이 변치 않아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인간들의 계략들이 대결하는 치열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인간적인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계략을 생각하며 순종함으로써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