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강 사무엘하 18장 강해
다윗의 슬픔/삼하18:19-33
다윗 군은 에브라임 수풀에서의 압살롬 군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것은 사필귀정입니다. 권력욕에 눈이 멀어 아버지를 배반한 압살롬을 하나님이 도와주실 리가 없습니다. 다윗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를 대적하는 세력을 물리쳐 주신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였다는 소식은 그에게 기쁨을 주었지만, 아들 압살롬의 죽음은 그를 슬프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자신을 배반하고 죽이려고까지 하였지만 그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33)하면서 슬피 우는 그의 모습이 우리들의 마음을 찡하게 만들어 줍니다.
소식을 전하는 사람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아히마아스가 사령관 요압에게 “내가 빨리 왕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 갚아주신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19)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후새가 전하는 정보를 다윗 왕에게 전하여 무사히 다윗과 그 일행을 요단 동편으로 피하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17:17-22) 그는 타고난 전령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한 이 기쁜 소식을 빨리 왕에게 전하고 싶어 자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압이 “너는 오늘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지 말고 다른 날에 전할 것이니라”(20)고 반대하였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좋은 소식이지만 왕의 아들이 죽은 것은 슬픈 소식이므로, 오늘은 전하지 말고 다음에 좋은 소식이 있을 때 전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소식을 전하는 사람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문제입니다. 좋은 소식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칭찬을 듣습니다. 고마워합니다. 로마서 10장 15절에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고 하였습니다.
반대로 나쁜 소식은 사람들에게 슬픔을 줍니다. 감사하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벌을 받게 됩니다. 사무엘하 1장에 보면 아말렉 사람이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더구나 자신이 사울을 죽였다는 말까지 하면 다윗이 기뻐하고 큰 상급을 내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고 책망하면서 “그를 죽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14-15)
구스 사람이 승전의 소식을 전하도록 요압으로부터 선택되었습니다.(21) 아히마아스도 자신도 가겠다고 다시 청하였습니다. 요압은 “내 아들아 너는 왜 달려가려 하느냐 이 소식으로 말미암아서는 너는 상을 받지 못하리라”(22)고 만류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계속 간절하게 청하므로 허락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히마아스가 더 빨라서 구스 사람보다 앞서게 되었습니다.
지혜로운 보고
다윗은 전쟁 소식이 궁금하였습니다. 그래서 두 문 사이에 앉아 있었고, 파수꾼은 성 문 위층에서 보고 있다가 어떤 사람이 달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홀로 달려오는 것을 보고하고, 이어서 또 한 사람이 달려오고 있음도 보고하였습니다.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다윗은 달려오고 있는 사람이 아히마아스라는 사실을 알고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27)고 말하였습니다. 요단강 나룻터에서 그로부터 좋은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그를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분 나쁘고, 부정적인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가능한대로 내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입만 열었다하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주고, 실망시키고,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아히마아스처럼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히마아스는 왕께 “평강하옵소서”라고 인사하면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의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넘겨 주셨나이다”(28)라고 승전소식을 보고하였습니다.
다윗은 그가 올 때부터 승전했구나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소식을 듣자 일단 안심하고 기뻤으나 그 다음 문제는 압살롬의 안부였습니다. 그래서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29)고 물었습니다. 난처한 일입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그래서 요압은 그에게 전령으로 가지 말라고 만류했던 것입니다. 아히마아스는 물론 압살롬의 죽음을 알고 있었으나 요압이 자기를 보낼 때에 큰 소동하는 것을 보았으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다고 모호하게 둘러 대었습니다. 요압이 그렇게 시켰는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내가 죽었더면
아히마아스가 답변을 지혜롭게 회피하였으므로 압살롬의 죽음의 보고는 결국 구스 사람이 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는 왕의 물음에 그는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32)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아히마아스처럼 주저하지 않고 사실대로 솔직하게 보고하였습니다. 압살롬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비참하게 죽었으며, 누구든지 왕의 원수나 대적하는 사람들은 압살롬처럼 죽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33절을 보면 압살롬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다윗이 얼마나 슬퍼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왕은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울었습니다. 그는 올라가면서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고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은 차리라 아들 대신에 자신이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울었습니다. 이것은 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마음입니다. 자식이 몹쓸 병이 들어 고생하거나 죽었을 때 부모들은 자신이 대신 당하고 싶은 것입니다. 다윗의 아버지로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자신의 슬픔을 억누르고, 전쟁터에 나가서 생명을 걸고 싸워 승리한 부하들과 백성들을 위로했어야 합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을 보는 백성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다윗은 승리하였습니다. 압살롬 군을 격퇴시켰습니다. 반역자도 죽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여 주었던 다윗의 모습은 우리들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물론 자식이 죽은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나라에 큰 혼란을 가져온 반역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먼저 피흘리며 전쟁하느라 수고한 백성들을 위로하고 한시바삐 나라를 안정시키는데 주력했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고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이 앞섰다는 것은 그의 큰 실수입니다. 어느 경우에나 물론 힘든 일이긴 하지만 사적인 감정보다는 공적인 자세를 앞세우는 여러분들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