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강 사무엘하 19장 강해


슬픔이 된 기쁨/삼하19:1-15


다윗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가장 훌륭한 분입니다. 그는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왕들을 평가할 때 잘못한 왕에게는 여로보암을 닮았다고 하였으며, 잘한 왕에게는 다윗을 닮았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는 다른 왕들을 평가하는 잣대였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였습니다. 용맹스러웠습니다. 시와 노래에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의리도 있었습니다. 지도자로서의 훌륭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13:22)고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가지로 칭찬과 축복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윗은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입니까?
사무엘 상, 하는 다윗이 중심인물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훌륭한 점이나 실수한 것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봉독해 드린 본문 말씀도 그의 실수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함께 듣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범죄가 부른 악순환

다윗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실수를 하였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것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일입니다. 자기는 수많은 처첩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서 생명을 내걸고 싸우는 부하의 하나밖에 없는 아내를 빼앗은 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는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철저히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12:10) 하셨고, 이어서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 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12:11)고 하였습니다.
성군인 다윗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범죄 때문이었습니다. 자녀들 사이에 불행한 일들이 생긴 것도 그가 저지른 죄값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어쩔 수 없이 피난길에 오르고, 어려운 전쟁을 하게 된 것(18:6-8)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죽음은 면했지만, 이러한 재앙과 어려운 일들이 계속하여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궁을 떠나서 도망해야 했고, 다른 사람 아닌 아들을 상대로 하여 전쟁을 해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우러 나가는 요압을 비롯한 사령관들에게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18:5)고 부탁하였습니다. 물론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겠지만 듣는 백성들은 무척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부자사이의 전쟁에서 압살롬의 군대가 완패하였습니다. 다윗이 승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아끼시는 다윗을 도우셔서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전사자가 이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더구나 압살롬도 살해당하였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우리 민족도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었습니다. 벌써 반 세기가 훨씬 더 지났지만 그 아픔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자간에 죽고 죽이는 전쟁을 하였으니 비극중의 비극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범한 죄값은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순간적으로 저지른 실수나 잘못이,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고 범한 죄가 이처럼 나의 삶에서 두고두고 무거운 짐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쁨이 슬픔으로

다윗의 범죄로 인하여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도 불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큰 기쁨을 나누어야 할 때에 그 분위기를 슬픔으로 만든 것도 또한 실수였습니다. 지도자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럼에도 제자들이 의심하고 두려움에 휩싸여, 기뻐하지 못하고 실패자처럼 행동하였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가 이처럼 어려운 전쟁에서 승리하기까지는 충성스러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책사 후새의 도움이 컸습니다. 그는 압살롬의 진영에 들어가 그를 위해 일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다윗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다윗으로 하여금 전열을 정비하도록 시간을 벌게 해주었고, 그와 일행이 위험을 피하여 요단강을 속히 건너도록 하는 귀한 정보를 제사장들과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다윗에게 전하였습니다. 이 사람들도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요압, 아비새, 잇대 등 사령관들과 천부장, 백부장들 그리고 온 백성들이 다윗을 위하여 한 덩어리가 되어 생명을 내걸고 싸웠습니다. 그가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도와주셨고, 충성스러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패배하였더라면 다윗은 재기하지 못하고 파멸 당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승전의 소식을 들으면서 기뻐하기 보다는 아들 압살롬의 생사에 더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심히 마음 아파했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18:33)라고 부르짖으며 슬피 울었습니다.
그가 이처럼 슬퍼한다는 소식을 듣고 백성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습니다. 지도자의 잘못으로 순식간에 승리의 기쁨이 슬픔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뜨거운 환영을 받으며 개선군으로 성에 들어오지 못하고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패배자의 모습으로 가만히 들어왔습니다.(2-3) 기쁨이 슬픔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큰 실수였습니다.
기쁨을 슬픔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어려울 때나 슬플 때 기쁘고 희망찬 분위기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압의 충고

이때 요압이 왕께 들어가 강력하게 항의하였습니다. 기쁨이 슬픔으로 변하게 된 것을 항의하였습니다. 그리고 슬픔을 기쁨으로 만들 것을 충고하였습니다.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5-6)라고 항의하였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표현입니까?
그리고 계속하여 귀한 충고를 하였습니다. “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7)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슬픔으로 변한 기쁨을 다시 회복시켜야 한다는 충고입니다.
우리들은 이처럼 사적 감정에 치우쳐 공적의무를 소홀히 하는 때가 많습니다. 물론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이 어떤 아들입니까? 패륜아요 반역자입니다. 그때에 무엇이 더 중요했습니까? 죽음을 무릅쓰고 나가서 싸워 승리한 백성들을 환영하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일이 급선무였습니다. 그리고 한시바삐 나라를 안정시키는데 주력했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우선순위를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실수하게 됩니다. 다윗처럼 사적인 슬픔 때문에 백성들의 사기를 떨어뜨려 기쁨을 슬픔으로 변하게 만드는 어리석음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먼저 기쁨을 나누고 나중에 개인적인 슬픔을 소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더구나 지도자는 이러한 의연한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늦었지만 다윗이 요압의 말을 듣고 일어나 성문에 앉았습니다.(8) 이 말은 왕이 자세를 바로잡고 공무에 복귀한 것을 의미합니다. 왕이 이러한 자세를 갖추자 백성들도 안도하게 되었고 모두들 왕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위기를 잘 넘기게 된 것입니다.

다윗의 귀환 준비

9-15절에 보면 왕의 환도를 준비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먼저 압살롬 편에 섰던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왕의 환도를 논의하였고(9-10), 다윗 왕은 예루살렘에 있던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이러한 소식을 전하면서 유다 지파로 하여금 솔선하여 왕의 환도에 앞장서도록 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다윗은 그들에게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11-12)고 전하라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나중이 되느냐”는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항상 나중에 뒤따라 가는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먼저” 일을 생각하고 이끌어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그들이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고 준비를 마친 후에 왕께 전갈을 보내어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14)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아들의 반란과 함께 백성들이 등을 돌리므로 어쩔 수 없이 예루살렘 왕궁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던 다윗과 그 일행이 모든 사태를 수습하고 승전의 기쁨을 나누며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다윗은 일시적인 잘못된 판단으로 승전의 기쁨을 슬픔으로 만드는 어리석음을 저질렀습니다. 공적인 의무보다 사적인 감정에 치우쳤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기쁨을 실수로 슬픔이 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적은 일에 집착하다보면 큰 일을 그르칠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작은 슬픔을 잘 극복하면서 큰 기쁨을 더욱 크게 만들어가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지도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기쁨을 슬픔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기쁨으로 변화시키며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