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강 사무엘하 19장 강해


다윗과 바르실래/삼하19:31-39


8월 15일부터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감격적으로 상봉했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가 1천만 이산가족 가운데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고, 고향을 방문하거나 가족끼리 함께 보내는 시간이 허용되지 않은 것이 아쉽습니다. 3박 4일이라고는 하지만 제한된 가족들과 불과 몇 시간동안 만났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이 기간에 이산의 한을 품고 살아오던 당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TV를 지켜보던 많은 국민들도 함께 울었고, 그 흘린 눈물이 한(恨)강을 이루었습니다.
지난 85년 9월 이후 실로 15년 만에 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1회성이 되어서는 안되고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만나도록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판문점에 이산가족 면회소를 세워서 누구든지 만나고 싶은 가족들이 수시로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분단된 지 55년이 되기 때문에 이산가족들의 나이가 60대 이상이 되었습니다. 거의가 70~80대이고 100세 가까운 분들도 있습니다. 이분들의 남은 여생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토록 만나보고 싶은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생을 마치게 해서는 안됩니다.
주름이 깊게 패이고 백발이 성성한 늙으신 분들이 눈물로 상봉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다시 한번 절감했습니다. 그분들에게도 젊음이 왕성했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지금 젊게, 건강하게 산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저런 모습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분단 반세기만에 만나는 그들의 모습이 저렇게 변했다고 하면, 앞으로 50년 후의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하겠습니까?
이 시간에 주신 말씀에 나오는 바르실래도 80세 노인이었습니다. 나이가 많이 들었다고 소외감을 느껴서는 안됩니다. 이런 분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에서 어른 노릇을 잘 해주어야 합니다. 삶을 통한 지혜와 경험을 가지고 후배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나는 이제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비관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나 갈렙도 80세부터 더욱 큰 일을 이루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하나님을 위해 할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바르실래에 대해서 다윗은 굉장히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예루살렘을 떠나있을 때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서 보답하면서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양했습니다. 대신 자기 아들 김함을 데리고 가서 보살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래도 다윗은 이 일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죽기 전에 솔로몬에게 그의 후손들을 잘 보살펴 주고 우대하도록 유언까지 하였습니다.
다윗이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에 대해서 이토록 감사하게 생각하고 잊지 못하고 보답하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본문에서 몇 가지 그 이유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어려울 때 도와주었습니다

다윗은 풍운아였습니다. 많은 영광도 얻었지만 다른 사람이 겪지 못하는 어려움도 당했습니다. 왕이 되기까지 사울로부터 얼마나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까? 더욱이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므로 다윗이 왕궁을 버리고 예루살렘에서 도망하기까지 하였습니다.(삼하15:13-18)
그가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200㎞ 떨어진 요단강 건너편 조그마한 시골인 길르앗 땅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 그를 도와 준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바로 그들입니다.(삼하17:27) 그들은 권좌에서 쫓겨나서 이곳까지 도망쳐 온 다윗을 정성을 다해 도와주었습니다. 거처할 곳도 없고, 먹을 양식도 없고, 입을 옷도 없는 그들 일행에게 먹을 것을 주고 따뜻하게 보살펴 주었습니다.
이들 가운데서 발르실래는 마하나임의 족장이었습니다. 31절에 보면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많은 사람이 찾아오지만 막상 정승이 죽으면 찾아오는 이가 없다고 합니다. 세상 인심이 바로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부와 권세와 명예를 가지고 있을 때 가까이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잃게 되면 멀리합니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다윗이 권좌에 있을 때가 아닌 쫓겨났을 때 그를 도와주었습니다. 이처럼 어려움을 당할 때 도와주는 것이 진짜 도움입니다. 나보다 어렵고, 힘들고, 괴로운 사람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려움이 없는 사람은 나의 도움이 없이도 얼마든지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당한 사람은 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어려울 때 이 바르실래가 도와주었기 때문에 이것을 잊지 못하고 고마워하고 보답하고자 하였습니다.

2.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주었습니다

옳고 바르게 살려고 하면 위험한 일을 많이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신앙을 가지고 의롭게 살려고 해도 위험 앞에서는 기가 꺾이기 쉽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은 순교자들의 신앙을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생명을 내어놓고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존경을 받아 마땅합니다. 분명히 그것이 잘못인 줄 알면서도 권력이 휘두르는 총칼 앞에서는 침묵하며 살게 되는 것이 연약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이 실정법을 어기고 북한에 들어갔을 때 언론, 종교인, 보수적인 국민들이 일제히 그를 향하여 비난하고 돌을 던질 때 “아니요, 그분은 자기 몸을 던져 통일의 물꼬를 트고 있는 것이오”라고 외치지 못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에 옳은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 편을 들어주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살아온 것은 무사안일한 신앙적인 자세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위험을 각오하고 희생당할 결단을 가지고 옳은 길을 걸어가며, 어려움 당하는 사람을 돕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는 다윗이 권좌에서 쫓겨났습니다. 압살롬이 권력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다윗을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운 왕으로 존경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다윗이지 압살롬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가 기회주의자였다면 권력을 잡고 있는 압살롬의 눈치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 지방의 족장이며, 거부인 그로서 권력을 가진 자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면 현재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권력을 빼앗기고 도망 다니는 다윗을 도왔습니다. 이것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생명을 건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미 이러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추격할 대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과 그 일행에게 먹을 떡을 주고 그를 도와주었다가 사울의 미움을 받아 제사장 85명이 죽임을 당한 일을 여러분들도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삼상22:18-19)
바르실래는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을 도와주었습니다. 이것은 보통 용기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그를 그토록 고마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갚고자 한 것입니다.

3.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와주었습니다

사람은 대가를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도와주면 그가 나에게 어떠한 보답을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바르실래는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고 조건없이 다윗을 도와주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귀한 자세입니다.
얼마의 세월이 흐른 뒤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던 다윗이 드디어 압살롬의 군대를 물리치고 다시 왕권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왕궁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다윗을 전송하려고 요단 강에 이르렀을 때에 왕이 그에게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33)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양했습니다. 34절에 보면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35절에서는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왕으로부터 상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였습니다.(36) 자신은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한다”고 하면서 자기 대신에 아들 길함을 데리고 가시라고 하면서 왕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에게 베풀어 달라고 하였습니다.(37)
요단을 건너가서 왕은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복을 빌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쉬운 작별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죽을 때가 되어 솔로몬에게 여러 가지 유언을 하는 가운데, 바르실래에 관해서도 말씀하였습니다. 열왕기상 2장 7절에 보면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그들이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여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그들이 내게 나왔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는 바르실래가 죽고 없었기 때문에 그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그의 후손들을 우대하라고 한 것입니다. 왕의 식탁에 앉아 식사하는 것은 영광된 대우입니다. 그의 후손들은 이와 같은 후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 때에도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에 달려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지만 그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었습니다. 바르실래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조건없이 그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다윗이 그토록 잊지 못하고 고마워하였으며, 그 후손들이 다윗왕가의 지극한 사랑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마음을 가다듬고 신앙생활에 더욱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에 우리들은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훌륭한 삶의 모습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다윗이 어려울 때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다윗을 도와주었습니다.
다윗은 바르실래가 고마웠습니다. 잘 해주고 싶었습니다.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사양하고 자기 길을 걸어갔습니다. 나이가 80이 되었으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참으로 멋있게 보입니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이 귀한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에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를 배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