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의 반란/삼하20:1-13 다윗이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환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지파와 유다지파 사이에 심한 갈등을 빚게 되었습니다. 똑같이 다윗왕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같았는데 서로 협력에 서툴렀고, 조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도화선이 되어서 분쟁이 심화되었고, 세바의 반란까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남북왕국이 분열되는 비극도 일어났습니다. 조그마한 개미구멍으로 물이 새어나가다가 큰 저수지 둑이 무너지게 됩니다. 큰 전쟁도 사소한 문제가 발단이 되어 일어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큰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소한 문제가 큰 일을 그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좋은 일이요, 옳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대로만 일을 처리해서는 안됩니다. 혼자서 주도해 간다는 인상을 상대방에게서 주어서도 안됩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도 배려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면서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바가 반역을 일으킨 본문을 대하면서 귀한 것을 배우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여러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일하면서 불평이나 불만을 가진 사람이 없도록 사람들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습니까? 물론 이렇게 하는 것이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러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더욱 더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갈등 본문을 강해하기 전에 19장 40~43절을 먼저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승전한 다윗왕을 모시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이 일을 이스라엘 지파에서 먼저 시작하였습니다.(19:9) 유다 지파는 나중에 참여하였습니다. 다윗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소식을 전하여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19:11)라고 나무랐습니다. 이렇게 해서 왕의 형제요 골육인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 지파보다 조금 늦게 이 일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두 세력 사이에 주도권을 놓고 다투게 되었습니다. 시작은 이스라엘 지파들이 하였는데 요단강을 건널 때는 유다 지파가 오히려 앞섰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전체가 건너갔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반 정도가 건너갔습니다.(40) 이스라엘 사람들이 왕께 나아와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둑하여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게 하였나이까”(41)라고 항의하였습니다. 그러자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기를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 내느냐 우리가 왕의 것을 조금이라도 얻어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신 것이 있느냐”(42)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다시 유다 사람에게 “우리는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43)고 불평하였습니다. 조금만 더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였더라면 이런 분쟁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두 세력을 비교해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말이 보다 이론적이고, 유다 사람들은 보다 감정적이었습니다. 그들의 말이 더 강경하게 들렸습니다. 세바의 반역 세바가 반란을 일으키고, 다윗은 예루살렘 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1-3) 다윗이 환도하는 도중에 베냐민 사람인 세바란 불량배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불량배들이 많습니다. 안심하고 살 수가 없습니다. 며칠 전에는 카드 빚 7-800만원을 갚기 위해 아무 관계도 없고 죄도 없는 20대 여인 5명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시체를 자동차에 싣고 다녔습니다. 참 무서운 세상입니다. 세바도 불량배입니다. 그는 나팔을 불며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고 백성들을 선동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이 남북왕국을 나눌 때도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왕상12:16)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세바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왕과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따랐습니다. 이처럼 남과 북 곧 이스라엘과 유다가 분쟁하게 된 그 원인은 유다의 편협성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자기 지파 사람이니 이스라엘 지파 사람들과 더 가까이 지내도록 배려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3절에 보면 다윗이 피난길에 두고 떠났던 후궁 열 명(15:16)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압살롬이 그들과 대낮에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동침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들을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며 그들과 관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는 날까지 갇혀서 생과부로 지냈습니다. 이것은 율법의 교훈을 따른 조치였습니다.(신24:1-4) 아마사의 죽음 아마사는 다윗의 조카로 압살롬의 군지휘관이었습니다.(17:25) 다윗과 요압, 압살롬과 아마사는 적대관계에 있었습니다. 유다사람들이 왕의 환도에 소극적이었던 것이 이러한 아마사 때문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아마사를 포용하므로 유다 지파도 포용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반란군의 군지휘관이므로 벌을 받아야 할 처지인데 그를 요압을 이어서 군지휘관으로 발탁한 것은 다윗의 아량을 나타내보인 것입니다.(19:13) 드디어 아마사는 군지휘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유다 백성들을 불러 모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4) 그러나 3일 동안에 그 일을 마치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지체하므로 다윗은 요압의 동생 아비새에게 이 귀한 사명을 주었습니다. 왜 요압에게 이 귀한 일들을 맡기지 않고 먼저 아마사나 아비새에게 맡겼습니까? 그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로, 요압은 압살롬을 해치지 말라고 한 왕의 부탁을 어겼기 때문입니다.(18:5, 14) 둘째로, 요압이 압살롬의 죽음 때문에 슬퍼하고 있던 왕에게 항의하고 충고했기 때문입니다.(19:5-8) 물론 그 말이 옳고 그래서 왕도 그의 말에 따르긴 하였으나 그를 경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압과 아마사가 기브온 큰 바위 곁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요압이 아마사에게 “내 형은 평안하냐”(9)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와 입을 맞추려는 체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다정하게 다가오므로 아마사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습니다. 방어자세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요압의 손에 있는 칼도 주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틈을 이용하여 요압이 칼로 그의 배를 찔러 죽였습니다.(10) 다윗이 발란군의 최고 지휘관이었던 아마사에게 요압의 자리를 대신 주었던 것도 물론 큰 실책이었습니다. 압살롬의 반란 때 요압은 충실하게 다윗을 수행하여 그 반란을 진압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를 제치고 반란군으로 다윗군과 싸웠던 군지휘관 아마사로 그를 대신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잘못된 인사정책이라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국민의 정부가 임기 7개월을 남기고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이 정부는 부정 부패와 너무 깊숙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자녀들이나 참모들도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 보다도 인사정책에 실패하였습니다. 남은 몇 개월이라도 잘 해서 성공한 정부가 되어야 할텐데 걱정이 많습니다. 요압은 다윗이 자기를 제치고 아마사를 군사령관으로 임명하였으므로 화가나서 그를 그대로 놔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압은 그 동안에도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아브넬을 죽였습니다.(3:27) 압살롬도 죽였습니다.(18:14) 그리고 아마사도 죽였습니다. 다윗의 뜻을 어긴 세 번째 살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죽을 때 솔로몬에게 요압을 죽이라고 유언하기까지 하였습니다.(왕상2:5-6) 아마사가 죽은 다음에 요압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백성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반란을 평정하기 위해 뒤쫓아 갔습니다.(13) 그리고 반란은 잘 수습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무슨 일이든 서로 협력하고 함께 일해야 합니다. 서로 주도권을 쥐려고 불화를 일으켜서는 안됩니다. 다윗의 환궁을 둘러싼 일 때문에 유다와 이스라엘의 갈등이 시작되었고 세바의 반역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남북왕국의 분열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세바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를 평정시키기 위해 아마사를 군사령관으로 세운 다윗의 인사정책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요압이 얼마나 불쾌하고 배신감에 휩싸였겠습니까? 포용이나 아량도 좋지만 옆에서 지금까지 충성을 바친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 위해 주어야 합니다. 세바의 반란도 진압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계속하여 시련이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어려움들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다윗은 역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사람임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