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강 사무엘하 23장 강해


다윗의 마지막 말/삼하23:1-7


사무엘하 강해를 시작한지 벌써 2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일생을 더듬어 보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앞으로 세 차례 정도 더 공부하면 사무엘하 강해를 마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2장에서 다윗의 승전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본문은 그가 임종을 눈앞에 둔 때에 썼습니다. 이 두 시 사이에는 상당히 긴 시간적 간격이 있습니다. 22장에 나오는 시는 다윗 통치의 초기의 시로써 그의 넘치는 활기가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는 그의 죽음을 앞두고 썼기 때문에 유언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1-2) 장차 완성될 메시야 왕국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의로운 왕이 나타나 생명력 넘치는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것이며(3-5) 어둠의 모든 세력을 제거할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6-7)

다윗의 자기소개

1절에서 다윗이 먼저 자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소개하시겠습니까? 내가 누구인가를 확실히 알고 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창세기 16장 8절에 여주인이 쫒아내어 광야로 도망갔던 하갈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는데 우리 자신도 이러한 물음에 대답을 잘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가 말하노라”
이 말씀에서 자기소개를 세 가지로 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이새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잘 썼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베 구리온 공항이 있습니다. 전쟁에서 큰 공로를 세운 국방장관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인데 “구리온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예루살렘에 가장 번화한 거리의 이름이 “벤 여후다 거리”인데 “여후다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요 그중에서도 막내였습니다.(삼상16:11) 그는 미미하고 천하게 출발하였습니다. 이새의 아들이라는 말 자체가 욕은 아니지만 이새는 베들레헴 시골에서 양을 치는 목동이었던 만큼 시골뜨기라는 뜻으로, 다윗을 무시하는 호칭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갈릴리 사람”이라고 부르며 무시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이름으로 당당하게 자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왕으로 세운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5:3) 하나님께서 비천한 신분의 다윗을 높이 들어 올리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하는 왕으로 선택하셨다는 고백입니다. 그는 자기를 부르시고 왕으로 세워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시와 찬미 그리고 연주에 능숙한 사람이었습니다.(삼상16:16, 23) 시편 가운데 73편이나 그의 저작이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무명으로 되어 있는 34개의 시도 70인역에서는 두 편을 제외하고는 다윗의 시로 표기하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많은 시를 지은 아삽이나 고라자손(12편씩)도 그의 감독 하에 그의 음악을 관장한 자들이었으므로, 시편은 전적으로 다윗의 시편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메시야 왕국

다윗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2) 장차 완성될 메시야 왕국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는 의로운 왕이 나타나 생명력 넘치는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리라고 하였습니다.(3-5) 그리고 사악한 자들을 불로 심판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6-7)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석이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다윗을 이상적인 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메시야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3인칭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4절에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신선하고, 깨끗하고, 상승하는 것들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고, 사방의 모든 나라들을 정복하며, 대제국을 이룩한 승승장구한 그 모습을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여호와께서 이룩하신 축복이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또한 메시야가 통치하는 그 나라의 희망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을 노래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메시야가 오셔서 통치할 때에는 죄악과 역경 등의 어두움의 모습들은 사라지고 희망과 기쁨이 가득 찬 모습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축복이 임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5절에서는 그것을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세운 영원한 언약 때문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언약은 그의 왕위가 영원하리라 하신 “다윗 언약”(7:8-16)을 가리킵니다. 그의 왕위가 영원하다는 것은 곧 그의 자손에서 나실 그리스도를 가리키신 것입니다.(7:16) 3-4절에서 언급한 의로우시고 이상적인 통치자이신 메시야가 다윗 자신의 후손 가운데서 나오리라는 확신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이와 같이 축복하시고 언약하셨으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5하)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6-7절에서는 장차 의로운 왕이 나타나 어두움의 모든 세력을 제거하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상적인 통치자가 다스리는 그 나라는 축복과 희망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도 있습니다. 시인의 축복과 대조되는 악인의 운명은 어떠합니까? 6절에 “사악한 자는 다 내버려질 가시나무 같다”고 하였습니다. 가시나무는 쓸모가 없습니다. 농부가 밭을 갈다가 가시나무를 발견하면 뽑아다가 불로 태우는 것처럼, 그 나라의 통치자는 사악한 자들을 잡아다가 불로 심판하시리라는 것입니다.(마12:30)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메시야가 오셨을 때는 하나님의 통치에 순응하는 자에게는 큰 축복이 임하여 미래가 밝지만, 하나님의 통치에 대적하는 자에게는 불같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저들은 가시 때문에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가시나무 같은 것입니다. 가시나무는 사람이 거두어 불태우는 것 뿐입니다. 가시나무를 처치할 때는 손으로 만지지 않고 철과 창자루 같은 것으로 거두어 불에 태웁니다. 왜냐하면 가시에 찔리기 때문입니다. 사악한 사람들도 이처럼 무기로 죽고, 영원한 불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7) 불은 진노의 상징이자 심판의 도구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본문에서는 메시야 왕국에 있어서의 악에 대한 궁극적 승리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주 안에서 빛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그의 인생을 마치면서 자기소개를 잘 정리하였습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여러분 자신들은 어떻게 자신을 소개하겠습니까? 부끄러움 없이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앞으로 도래할 메시야 왕국을 희망의 눈으로 볼 수 있었던 다윗의 신앙을 본받기 바랍니다. 그날 불로 심판 받는 일이 없도록 하나님을 잘 섬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