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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자 : 미상 (저자 연락요망) 저자서문
‘열린 예배’(Contemporary Worship) 예배에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예배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교회 생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모든 사역은 그 동기를 예배에서 제공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 예배의 실제적인 면을 현실감있게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려고 했다. 개혁주의 전통의 바른 예배를 배워서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우리의 교회를 바로 섬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예배는 우리교회의 삶과 활동의 중심 동력이다.
예배의 신학적 기초
대상, 종보자,원동력,예배는 본질젉으로 공동체적인 행위이다.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전 삶이다.
예배의 계획
대상,성경
예배의 인도
정신,역활,문제점
화중의 참여
주일 아침은 토요일 밤에 시작된다.
예배에서의 기도
예배는 기도이다.
예배에서의 실천
말씀의 선포
예배를 말한다
예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맏음의 표현이요,마음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곧 예배하는 사람들이다.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핵심이다.사람은 아는 만큼 행동한다.
기독교 예배의 진수는 하나님께 복을 받는 대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는 데 있다.예배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편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자신의 모든 것, 지성과 감성과 의지,태도 소유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그분의 탁월하심에 합당한 존귀와 찬송을 그분께
돌려드리는 것‘ 이다.
예배의 어원적 의미
예배의 현대적 용어
예배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는 언어에서부터 시작 된다. 예배라는 말(단어)을 한자어로
이해하면 ‘예를 다하여 절한다’는 의미이다. ‘worship\' \'하남님께 대한 최대한의 존경으로 최상의 가치를 돌리는 것(to ascribe Him supreme worth)\'이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부여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영어나 독일어를 사용하는 서구국가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예배의 개념을 살펴보면 예배를 섬김과 봉사의 의미로 이해하여 ’봉사적 개념‘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예배의 구약적 용어
‘예배’로 번역되는 구약 성경의 중요한 단어는 봉사와 섬김을 나타내는 ‘아바드(abhacdh)\'와 굴복하는 것 EH는 엎드리는 것을 뜻하는 ’사하아(shachah)\'가 있다.
아바드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주성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존재임을 나타낸다.
샤하아
아바드와 함께 예배의 의미로 사용되는 ‘샤하아(shachah)’는 엎드린다.굴복하는 의미로서 예배로자들이 숭배 대상에게 최대한으로 존경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샤하아로 종교적 숭배와 순종을 겸하여 마음과 몸으로 존경을 표하는 태도를 뜻한다.
구약의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무한의 겸소으로 자기를 낮추고 그분의 뜻을 좇아 봉사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그 외적 표현은 ‘육체적인 겸손의 자세’djk \'물질적인 희생으로소의 봉사 행위‘로 예배자의 진실한 마음과 생활의 표현이어야 한다.
예배의 신약적 용어
프로스쿠네오는 ‘누구의 손에 입맞추는 것’ 혹은 ‘존경의 표시로 다른 이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하남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어 경배하는 것을 뜻한다.‘레이투르기아’는 레이토스와 에르곤의 합성어로소 ‘백성을 위하여 일한다’라는 뜻이다.교회를 위한 공적인 봉사를 예배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신약에서의 예배는 개인적으로 나아가는 구약의 제사적인 희생의 예배와는 달리 어떤 특정인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회중 전체가 참여하여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봉사를 뜻하기 때문이다. 예배는 전체 회중의 일이요, 행위라는 것이다.
라트레이아
‘라트레이아’란 구약 성경의 아바드를 70인역에서 변역한 것으로 ‘섬긴다’는 의미이다.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와같이 라트레이아라는 단어를 통래 제사적인 예배와 전문적인 종교적 행위로서의 예배, 기독교인의 전생활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참 예배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배의 생활, 그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참 예배인 것이다. 이상의 용오에서 신약 성경의 예배는 최대한의 존경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 교회를 위한 공적인 봉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 믿음의 순종으로서 말씀 선포,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섬기는 삼 자체 등의 개념이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배란 사람이 존경과 경외감을 갖고 최상의 존재 앞에 엎드려 절하는 것이다. 예배는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경의와 존경을 드리는 것이다.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함께 모이는 이유이다. 예배는 하니님께 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 우리의 마음의 태도 및 우리의 소유물을 드리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예배의 교회적인 의미
제의(Cult)
종교적 의식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종교의 형식적, 의식적인 면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다.
봉사(Service)
예배의 주관자이시며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예배(Worship)
하나님께 영광 ,찬미, 감사를 돌린다는 뜻이다.
예식(Liturgy)
의식주의적 예배를 가리킨다. 17세기 이르러 이용어에서 의식적 색채가 없어졌다는 것을 이해한 후에는 개신교 일부에서도 예배를 리터지라고 부리게 되었다.
기도
예배는 공중의 기도 생활이다. 근본족으로 예배는 개개인의 기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공적인 교회의 예배는 바로 공동체의 기도의 장이다. 그 기도 가운데는 감사와 찬양, 회개와 도고와 간구 등 적어도 다섯 가지의 요소가 포함된다. 기도를 기원의 요소만이 아니 감사와 찬미를 포함한 광의적 의미로 생각한다면, 기도가 예배 전체를 표현하는 것은 타당하다.
예배의 성격
기독교의 예배는 다만 경험될 수 있을 뿐이다. 예배 인도자나 참여자들이 마음속에는 기독교 예배의 본질적인 성격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신비적 성격
예배는 놀람에 대한 반응이다. 하나님의 계시를 발견한 사람은 놀라게 되고 놀람은 예배로 표현된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예수의 열둘 제자 그놀람의 결과는 그분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것이었다,. “이가 누구이기에 이런 일을 행하는?” 라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이와 같이 예배는 계시적 성격과 신비적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우리를 예배로 인도한다. 우리는 예배에서 신비(하나님의 초월성)와 의미(하나님의 내재성)를 모두 경험한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계시가 기적이고 교회에서의 성령님의 계속적인 활동이 기적인 것과 같이 하나님과 사람과의 교제도 언제나 기적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인도하는 목화자가 신비감과 경외심과 경의심과 경이감을 가지고 예배에 임하도록 회중들을 인도 할 때 교회의 예배는 도욱 진실하게 될 것이다.
축제의 성격
기독교 예배는 본질적으로 역사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활동, 즉 창조, 섭리 구속의 언약,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족 계시, 그리고 성령님의 강림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의 나타나심을 찬양하고 축하하는 축제이다. 예배의 축제적 성격은 구약의 예배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예배란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하나님으로부 어떤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니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베퓨신 은혜를 상기하고 신뢰를 회복하며 말씀을 들음으로써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그에게 나타내는 것이며, 이것을 묘사하는 행위로서의 축제를 의미하는 것이다.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늘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하신 일을 감사하면서 예배를 드린다.
섬김과 봉사의 성격
교회에서 행하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임재하셔서 그의 백성과 교제하고 그의 백성은 예배에 임재하시는 하나님께 봉사한다는 영적 진리를 나타낸다.예배는 헌신의 행위와 의식 그리고 예식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배는 생활 전체를 의미한다.예배는 생활의 모든 경험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실현하는 것이다.바울은 로마서 12장 1-2절에 “너희 몸을 하나나미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했다.이것은 곧 성도의 삶 전체가 섬김과 봉사의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있다. 진정한 예배는 날마다 하나님께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행하는 모든 것을 드리는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께 종교한 기도를 드리는 것과 장엄한 의식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매일의 삶을 드리는 것이다.
교육적 성격
예배는 비의도적 교육 프로그램이다. 예배의 목적은 교육이 아니다.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는 언제나 교육적 성격을 가진다.우리는 지금도 예배 가운데서 교회를위한 신앙적 삶의 원리를 강화시키고 있다.예배의 가장 중료한 요소인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 가르치는 것으로서, 항상 윤리적 관점에서 사람의 지표로 선포되는 것이며 개개인의 신앙 강화에 교육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종말론의 성격
예베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이 세상 너머로 바라보게 하며 종말론적 소망을지니게 된다.교회는 예배를 계속하는 일을 맡았다.특별히 성찬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시대의 종말과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키는 한 표정이다.진정한 예배는 항상 예배하는 자의 실존적 필요를 충족시켜 주게 마련이다.진정한 예배는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항상 공급해 준다. 교회는 예배의 경축에서 하나님의 구속의 종말론적 성취를 보고, 종말론적 교회로서의 자신을 알아차리고,종말론적 완성의 소망을 갖는다.
예배의 성경적 근거
‘기독교는 예배하는 종교이다’‘기독교의 예배는 역사적인 것이다’ 예배학의 기본적인 연구는 역사적 이해를 전제해야 하며, 예배의 역사를 살피는 것은 기독교의 역사를 살피는 것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기독교의 예배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적 과정과 함께 하기 때문에 교회사의 맥락을 따라서 전개될 수 밖에 없다.기독교 예배의 근원은 성경이다.성경은 하나님께서 한 특별한 백성에세 자신을 계시하여 자기를 섬기도록 그들을 선택했다고 했다.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의 공족 예배 생활은 역사적으로 출애굽에서부터 시작되었디. 이것이 이스라엘 왕국 시대로 이어지면서 일정한 장소에 국한된 예루살렘 성전의 예배가 되었고,민족의 수난과 함께 회당 예배로 새로운 변화를 거치게 되었다.
구약 시대의 예배
기독교 예배의 원리는 먼저 구약 성경에서 찾을 수있다.먼저 일정한 제사가 발전했다. 또한예배의 실천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변화햇다.예배 처소의 경우 처음에는 다듬지 않은 큰 돌을 그냥 세워놓던 것이 광야에서는 이동식 성전인 성막으로 발전하고, 솔로몬 때는 항구적인 성전으로 발전한다.예물을 드리는 방식도 더욱 상세하고 엄격하게 규정된다.족장들은 자신이 직접 제사를 드렷으나나중에는 제사가 제사장의 고유 권한으로 확립되어 왕이라도 친히 예물을 드리지 못했다.고대 세계에서 이교도들이 드린 예배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린 예배와의 차이점은, 하나님께서 한 특별한 백성에게 자신을 계시한신 사실과 하나님께서 자기를 섬기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을 선택하신 사실에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셧다.
그는 역사 안에 개입하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셨다.
이스라엘은 그 예배에서 아무런 형상을 가지지 않았다.
이교도들의 예배는 아래로부터 시작된 것인 반면에 기독교의 예배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다.
족장시대
족장 시대의 예배는 주로 개인과 가족 중심의 예배였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족장이나 그의 가족와 계약을 맺으셨고 족장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과 순종으로 단을 쌓았다.‘희생 제물’이 그 제단의 중심이 되었다.족장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교회였고,그들이 머무는 곳이 어디든지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가 되었다.‘가족이 교회이고 교회가 곧 가정’이었던 족장 시대 예배의 신학적 성격
첫째,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둘째, 계약 백성의 구별된 표로서 할례의 제도를 세운 것이었다
셋째, 십일조의 실례를 세운 것이엇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찾는 자에게 오시고 예배드리는 자리에 임재하신다,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고,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예배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원리를 분명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족장 시대의 예배는 원리를 표상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율법 시대
율봅 시대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자신을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로 이스라엘에게 계시하고 예배의 형식을 요구(출20:1-18)하신 것으로 시내산 언약을 통하여 구체화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이란 새 계약을 그 백성에게 부여했으며 예배를 위한 성소의 내용과 규례 문제, 제사장 계열(레위 지파)의 확정, 제사 제도의 제정 들을 명하셨다.이로부터 노예 생활 속에서 무질서했던 여호와 종교의 독특한 예배 형태를 쇄신해 가는 구체적 발전 단계가 계시된다.
시내산에서 있었던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만남
첫째, 이 만나을 소집한 주체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은 각기 역할을 분담하여 전원이 참여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 선포이다.
넷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로 굳게 약속햇다.
다섯째,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의 만남은 언약에 인을 치는 비준의 극적인 상징으로 그 절절을 이룬다.
그리스도의 희생 이후에는 주님의 성만찬이 교회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관계를 보증하는 인이 되었다.성맏은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성소였다. 이 성막 예배에는 몇 가지 특징적인 요소가 있었는데, 첫째가 절기의 축제 예배였다. 둘째는 법궤를 중심으로 한 희생 제사의 예배였다.셋째는 안식일 제도가 지켜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신앙 행위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기 백성에게 구원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가르쳐주신 사건인 율법 시대의 예배는,모세로부터 아론과 그 아들들이 의하여 공중 예배의 한 제도로 확립되었다.율법 시대와 주어진 이스라엘 예배의 뜻과 목적은 “우상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말라”(출20:5)는 하나님의 요구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 6:4)라는 말씀 속에 가장 잘 요약되어 있다.
사사시대사사 시대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산당을 통해서 이루어 졌다.길갈은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께 예배하기 위해 건립된 첫 장소였을 것이다.길갈(삿2:1),오브라(삿6:24),실로와 단(삿18:29-31),헤브론(삼하5:3), 기브온(왕상3:4)의 제단들을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위하여 그 땅을 계속 정복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왕국 시대
모세의 출애굽에서 계시된 제물에 의한 제사, 즉 제물 중심의 예배는 이스라엘 왕국 시대로
오면서 계속되었고, 디윗과 솔로몬의 시대에 이르러 하나님의 집을 세우면서 그 전성기와 절정을 이루게 된다.
다윗시대에 하나님께로부터 계시 되었지만 솔로몬 시대에 비로소 건축된 예루살렘 선전(왕상 6:37-38)은 유동식 장막을 대치하여 나타난 예배로 장소로, 모세의 광야 예배에서 구원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계심을 상징하는 언약궤(법궤)가 이제 예루살렘 성전에 자리잡게 된다.그러나 성전 예배와 성막 예배는 구조나 내용상 본질적인 차이는 없었다. 이 성전 예배에는 몇 가지 특색이 있다. 첫째, 예배 장소가 성전에 국한되어 성전 이외의 다른 곳에서 희생의 제물을 드리는 일이 허락되지 않았다.
둘째, 예배에 관한 모든 요소가 성문화되어 세부적인 것까지 규정지어 있었다.
셋쩨, 특정인을 통하여 대리, 위탁 예배를 드렸다.
넷째, 의식적인 예배로소 설교와 기도가 없는 예배였다.
다섯째, 상징적이고 모형적인 예배였다.
포로이후 시대
성경에 따르면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 곧 예배는 이스라엘의 민족적 존폐 여부와 직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 예배는 솔로몬 말기부터 그의 타락과 함께 형식화되기 시작했고 예배의 본래적 목적을 상실하는 현상을 가져왓다.예루살렘의 함락과 솔로몬 성전의 파괴, 예배의 중심지로부터 멀리 떠나 있어야만 했던 오랜 포로 시절,예언 활동의 쇠퇴 등과 같은 역사적 상황의 변화는 ‘회당’이라는 예배의 새로운 형태를 일으켰다
포로 이후 시대의 예배는 한마디로 회당 예배라 할 수 있다.회당 예배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이해하는 데 있었는데, 성전 예배의 참여자는 구경꾼에 불과하지만 회당 예배는 모두가 예배의 참여자인 것이 특별한 점이었다. 회당 예배는 임시적인 것으로 메시아가 성전을 건축할 때 까지로 한정되어 있었고 성전에처럼 행을 피우거나 악기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회다에서는 안식일마다 예배가 거행되었는데 예배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이스라엘아 들으라”는 akfTMa, \"쉐마“의 낭독으로 예배는 시작된다. 하나님을 사랑함에 대한 신앙 고백(신6:4-9)과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받을 축복과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 이 받을 저주(신11:13-21),다시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복(민15:37-41)의 순서로 세 구절을 차례로 낭독한다.
둘째, 회당 예배는 기도를 중시한다.
셋째, 율법의 낭독이 있었다.
넷째, 구약의 예언서를 낭독했다.
다섯째, 강해와 권면의 시간이 있었다.
여섯째, 제사가 있을 때에는 축도가 있었고 축도가 있은 훙에 는 아멘으로 끝났다.
이 회당 예배는 주후 1세기에 와서 더 이상 변동하지 않고 고정 순서를 갖게 되었다.이러한 새로운 면모의 회당예배는 기독교 예배의 요람적 성격을 갖고 있으며 오늘의 개혁 교회가 가지는 말씀 중심 예배의 근원이 되고 있다.회당 예배는 신약 시대에 와서 매우 활발히 전대 전개 되엇으며 교회의 확장 속에 새로운 기원을 이룩하는 절대적 영향을 남겼다.
신약 시대의 예배
구약 시대의 예배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예배였다면, 신약 시대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한 구속 역사를 중심으로 하는 예배라고 할 수 있다. 또 구약 시대의 예배를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께 예배하는 역사라고 한다면 신약 시대의 예배는 새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께 예배하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곧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은 백성은 누구나 새 이스라엘 민족이 된다는 것 이다.
구약 성경의 예배와 신약 성경의 예배 사이에 근본조적인 단절은 없다.일반적으로 신약 성경에는 다음의 세 가지 융합된 예배 형태가 있다고 말한다. 곧 성전에서의 예배, 회당에서의 예배,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특수한 집단으로 모인 가정 및 다른 장소에서의 예배이다.
예수님 시대
예수님께서는 말과 행동을 통해 예배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모습을 보여 주셨다.새로운 예배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은 의식적인 제도보다는 사람들의 내면적 각성과 실천을 추구하는 가운데 드려지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요4:23)였다. 그는 백성들의 내면적 각성과 실천을 추구하는 가운데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함을 강조했다.회당에서 예배를 드렸으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장소에는 더 이상 제한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사도 시대 예배의 특징
첫째, 비교적 개방적이고 비형식적인 전도 형식의 예배였다.
둘째, 사도 시대에는 통상적으로 밤에 행하는 예배가 있었다.
사도 시대의 예배는 구속주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적 행위로서의 예배라기보다는 복음 전파의 과정에서 흔히 병행되는 비예전적 형태였고,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서 중심적 위치에 서 있는 부활하여 살아 계신 주님이 곧 과거에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하신 역사적 예수님이며,동시에 미래에 그리스도임을 지시하고 있다. 이상에서와 같이 신약시대는 성전 예배와 회당 예배,마가의 다락방에서와 같은 다락방 예배 요소들이 서로 용해되어 새로운 예배의 규범이 만들어지는 시기로서,예수님께서 이 모든 예배가 하나님과 동등하신 자신을 향한 예배이어야 함을 주장하면서 유대 민족이 주장ㅎ라는 예배의 대상과 예배의 기본 생각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내려 주셨던 시기이다(막2:27-28)
예배의 역사적 배경
초대 교회의 예배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남겨진 네 개의 문헌은 초대 교회의 예배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문헌들은 1.로마의 클레멘트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A.D. 96년경), 2.소아시아 버지니아의 총독이었던 플리니(Pliny)가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편지(A.D. 112년경), 3.디다케(didache)라 불리는 열두 사도의 교훈집(A.D. 130년경), 4.저스틴(Justin A.D. 140년경 순교)이 로마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에게 보낸 변증문, 일명 ‘이집트 교회 예식’이라고 불리는 사도들의 전승(A.D. 200년경)들이다.초대 교회의 예배에 대한 최초의 일반적인 개요는 저스틴의 ‘제1변증서’안에 있다. 저스틴의 자료를 중심으로 한 초대 교회의 예배 순서는 다음과 같다.
*말씀의 예전
1.찬송 부름(시편이나 성경)
2.성경 낭독(사도들의 언행록과 예언서)
3.인도자의 설교(훈계와 권고)
4.회중의 기도(기립하여 힘에 지나도록)
*다락방의 예전
5.성찬식 -평화의 입맞춤(밷전 5:14)
떡과 포도주와 물을 인도자에게 가져옴
성찬식 기도(인도자 즉석에서 드리는 찬양과 감사)
응답(아멘)
분배(떡과 포도주 분배, 결석자의 몫은 집사가 가져다준다)
6.헌금(가난한 자와 과부를 도와 줌) 등의 순서이다.
초대 교회의 예배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가 중심이었다.
둘째,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써 예배자들의 마음을 주께 드렸다.
셋째, 구약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읽고 그 말씀의 뜻을 강해하면서 신앙과 행위에 대한 권면과설교를 했다.
넷째, 주님의 기도를 비롯하여 감사, 간구, 남을 위한 기도 등과 주님의 재림을 소원하는 기도를 드렸고 아멘으로 응답했다.
다섯째, 예물을 드림으로써 감사와 헌신의 표현을 했다.
여섯째, 개인적으로뿐 아니라 공동으로 죄와 신알을 고백했으며 용서를 구하는 시간을 가졌다.끝으로 예배의 극치를 이루었던 성만찬 및 세례를 배풂으로써 예수님의 구속 사건의 새로운 경험과 은총의 신앙을 갖게 되었고, 이 예배 속에서 다져진 신앙은 성령의 역사와 함께 복음 전파에 역동적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예배의 모든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었고, 예배의 핵심적인 순서는 말씀과 성례에 집중되었으며, 그리스도인의 증인으로서의 새로운 생명을 재확인하는 데 역점을 둔 예배 분위기를 형성해 나갔다.
중세 교회의 예배
초기 로마 교회의 예배
4세기경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로 개종한 것은 기독교 역사와 코페르니쿠스적 변화를 초래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로마의 콘스탄트누스 대제는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고 기독교인들의 일요일을 법적으로 성스러운 날로 지정했으며, 이 교들의 재산을 이용해서 교회를 만들도록 했다. 이로 인해 이 시대의 기독교 예배는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첫 번째는, 사적인 예배에서 공적인 예배로의 변화이다.
두 번째는, 교회의 성장과 부흥이다.
세 번째는, 예배의 전문화(상직화)와 평신도 참여의 후퇴이다.
네 번째는, 외적 형식과 예식의 강조이다.
이처럼 외적인 형식과 강조하게 된 것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례전주의(Sacramentalism)와 성직주의(Sacerdotalism)의 신학 제돋에 기인한 것 이었다. 교회의 이러한 급겨한 비약은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예배 양식에 대한 심각한 대립을 야기시켜 결국 1054년 동방과 서방교회의 영원한 분열이라는 불행을 가져오게 되었다.
동방 교회의 예배
A.D. 350-380년경애 언디옥과 알렌산드리아를 중심으로 교구를 정착시킨 동방 교회는 그 때부터 예전의 독특성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4-6세기 사이에 오늘의 예배 모습을 갖추었다.동방교회 안에 정착된 예배의 중심은 구원 역사의 상징적 묘사로서 주일 예배를 통해 영원한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역사 가운데 참여했다는 구원 계시의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다.
동방 교회의 예배 의식은 문화와 역사가 어떻게 예배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헬라문화의 영향으로 동방 교회의 예배 으식에는 신비스런 행사가 많이 발견된다. 언어를 사용하는 말씀의 예전보다는 신비의 능력과 표현이 담겨 있는 성만찬 예배에 더욱 큰 강조점을 부여했다.그러나 이러한 예배의 현상은 개혁자들의 눈에 우상 숭배라는 낙인이 찍혀 이단 취급을 받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동방 교회 예배의 이상은 영속적인(영원한) 예배이다.동방 교회의 예배는 준비 예배, 세례 청원자의 예배,믿는 자들의 예배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동방 교회의 예전은 예배에서 그리스도가 주님으로서 임재한다는 생각을 전체한다는 면에서 서구의 예배의 주된 축제로 삼고(부활 장면을 그림으로그려서 교회의 중심에 세워둔다) 있으며,강한 명상을 중심하는 예배라는 면에서 서방 교회의 예배와 차이를 보인다.
서방 교회의 예배
서방 교회 즉 로마 교회의 예배는 교황 그레고리 3세에 의하여 하나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여 트렌트 종교 회의가 있었던 1570년경에 확고한 가톨릭 교회의 예배 의식으로 결정되었다.이후 400년이 지난 1963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라틴아로 진행되던 미사를 자국어러ㅗ 인도하도록 하며, 성찬 중심의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도록 예배(미사)의규정을 새롭게 수정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서방 교회는 말씀과 성례를 예배의 두 기둥으로 붙들고 있었지만, 신비적인 면을 강조하던 동방 교회와는 달리 자신들이 속해 있던 문화권의 영향 아레에서 로마인들의 실용적이며 현실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즉 예배가 회중이 알 수 없는 단어로 성직자에 읳래서 연출되는 하나의 연극이며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설교의 쇠퇴로 초대 교회와 기독교 예배의 본질이며 특색인 말씀과 성찬의 균형이 상실 되었다. 교회의 본래 모습을 예배 가운데서 상실한 중세 교회는 결국 면죄부 판매와 같은 모순을 범하며 시대를 암흑기로 몰고 가게 되었다.그리하여 공명의 새 아침을 추구하는 참신한 개혁의 일꾼들이 드디어 나타나게 되었다.
종교 개혁시대의 예배
16세기 종교 개혁은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놀라운 사건이었다.하나님의 질서가 무너지고 ‘패역한 세대’로 전라된 중세 교회와 사회는 새로운 세계의 출현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종교 개혁자들이 중세 교화의 폐단을 개혁 할 때에 가장 구체적이며 실제적으로 착수 한것이 바로 예배의 개혁이었다.종교 개혁은 단순히 예전의 불만과 시정을 위하여 발생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자리에 교황이라는인간이 앉아 믿음보다는 제도 속에서 공적을 더 중요하게 취급한 것, 미사의 헌금과 면죄부의 구입은 성직 매매와 착취의 근원이 되었다.그러므로 종교 개혁의 필연적 발생을 서두르게 하는 요소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반복하지만 종교 개혁자들이 중세 교회의 폐단을 개혁할 때에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바로 예배의 개혁이었다.
종교 개혁 시대의 예배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가장 보수적인 개혁성을 띤 루터주의 예배 형태로서 로마 가톨릭 시대의 것을 상당히 축소하긴 했지만 많은 부부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던 예배 의식이다.둘째는 루터주보다 더 용감했지만 츠빙글리보다는 급직적이지 못했던 온건한 칼빈주의의 예배 형태로서,오늘날 장로 교회 또는 개혁 교회 예배 의식의 원형이다.셋째는 가장 급직적인 츠빙글 리가 주장한 예배 형태 로서,재침례교 및 퀘이커교와 같은 청교도적 전통의 독립 교회예배 의식의 근간이 된 것이다.
루터의 예배
루터는 첫째,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그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사귐을 강조했다.둘째,주님의 민찬은 중심이 되는 의식으로서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매일 거행되어야 한다고 믿었다.셋째, 그리스도께서 성찬의 음식에 실제로 임한다는 셍체 공재론을 믿었다.넷째, 미사는 가톨릭 교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죽음의 반복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바쳐서 그분의 희생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다섯째, 자국어로 미사를 드리도록 권장했다.여섯째, 라틴어로 대부분위 의식적 등불과 분향 및 제복을 사용하면서 로마 교회의 옛 관례로 돌아갔다.루터가 의도한 것은 복음적 태도에 입각하여 초대 교회의 예배의 균형을 다시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역사적인 교회 음악을 선호했던 루터는 츠빙글리나 칼빈과는 달리 오르간을 계속 사용할 뿐 아니라 성가대로 하여금 라틴어로 합창하게 했으며, 반주 없이 노래를 부를 때는 성가대가 회중의 찬송을 이끌어가도록 했다.성가대가 교회에서는 ‘칸토(cantor,노래하는 자)’가 찬송을 인도했다. 그는 성경에 금지 되어 있지 않은 것을 교회가 도움이 된다고 결정하면 허용하는 원칙을 제시했다.
칼빈과 제네바 교회의 예배
개혁 신학에 가장 큰 공헌을 했고 그 결과 다음 세대를 위한 예배 의식의 예식서를 만드는 데 가장큰 영향을 끼친 칼빈 칼빈은 중세의 미사를 흉내내는 것을 싫어했다.예배는 성경적이어야 하고 신학적으로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한 점에서는 칼빈이 루터보다 훨씬 더 철저했다.루터는 성경에 의해 금지되지 않는 한 교회에서의 전통을 허용했다.그러나 칼빈은 성경은 하나님의 법으로서 교회와 국가에서 지배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하나님에 관한 그의 원칙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명하지 않은 것을 금하신다”는 것이다. 둘째로 칼빈은 다른 종교 개혁자들과 마찬가지로 예배는 올바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는 예배 이해의 기능성을 강조했다. 이해될 수 있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중의 언어로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셋째로 칼빈은 예배는 신앙 인격의 성장, 곧 사람들이 덕성을 함양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넷째로 예배는 단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츠빙글리의 예배
츠빙글리는 예배 계획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종교 개혁의 파문을 확산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그는 예배 가운데 있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서 성경 봉독과 기도, 죄의 고백 그리고 설교만을 강조한 의식을 내세웠다.그리고 루터와는 달리 미사를 예배의 규범으로 간주하지 않았고, 주님의 만찬은 1년에 4회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며,주님의 만찬은 원래 상징적이라고 믿었다.츠빙글리는 중세 교회의 교리와 의식에 대해 매우 자유로운 관계에 서 있었고, 그의 신학은 루터보다 폭 넓고 충실했다.면죄부에 대한 그의 위치와 그것에 대항한 그의 태도는 루터보다 급진적이었다.그러므로 츠빙글리는 로마 가톨릭 교회를 루터만큼 동정하지 않았다.
예배와 성례
개혁 교회의 전통은 기독교 예배에서 중요한 네 가지 요소를 강조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와 기도와 친교의 삶에 대 의식적 증거라고 할 수 있다.말씀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나 성례는 그렇지 않으며, 말씀은 신앙을 일으키고 강화하나 성례는 신앙을 강화하는 데 유용하며,말씀은 곧 세계로 전달되나 성례는 오직 믿는 자들에게만 베풀어진다. 하이델베르크 신앙문답은 성례는 복음의 약속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하는 보이는 표시(Signs)요,보증(Seals)이라고 가르치고 있다.성례는 교회를 위한 것으로서 칼빈이 말한 대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표싱요 보증이 된다.실로 세례는 우리가 씻음받음과 깨끗하게 되었음을 증명해 주고, 성찬은 구속되었음을 증거해 주므로 성례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례를 어거스틴은 ‘보이는 말씀’이라고 하였다.
성례의 중요성
세례와 성찬의 성례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이다.성례는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의 복음을 구체화하고 설명한다. 따라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해위이지 결코 예배자들의 경험이 아니다.세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봉헌이나 믿음이 아니라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이다. 그리고 성찬서 가장 중요한 것은 떡을 떼는 것과 포도주를 붓는 수단을 통하여 예배자들에게 자신을 떼어주시는 그리스도이다.인간의 구원사역에 있어서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하심이 제일이요 인간의 행위는 부차적인 것과 같이 성례에도 그러하다는 의미이다.성례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의식을 재확인하는 것이다.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연합되어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사랑의 관계를 가지게 된다.그리고 성찬을 통하여 우리의 심령을 양육하고 신앙을 강화하며 교회 안에서 사랑의 관계를 지속 할 수 있게 된다.
성례의 어원과 신학적 의미
성례란 무엇인가?
‘성례’는 ‘신비’ 또는 ‘비밀’이란 뜻의 헬라어 뮈스테리온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교회의 역사에서 이 단어를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3세기경 로마 교회의 교부인 터툴리안(Tertulliian)으로 알려져 있다.성례는 세례와 성찬으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이다.세례는 신자가 기독교 신앙에 입문할 때 단 한 번 받는 반면에,성찬은 평생토록 계속한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로도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 일 즉 칭의와 부응하는 의식이며, 성찬은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성결한 생활을 하며 새롭게 되는 성화에 부응하는 의식이다.우리는 세례와 성찬이라는 두 의식을 성화에 부응하는 의식이다. 우리는 세례와 성찬이라는 두 의식을 통해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하여 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다. 상례전은 순수한 세례와 성찬은 예전 속에서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경험과 함께 하나님을 만나는 엄숙한 예전으로 이해되었다.
성례의 신학적 의미
종교 개혁자들은 예수님께서 직접 행하도록 멍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제정된 성례로서 세례와 성찬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즉 성례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현재적인 역사를 묘사하는 은혜의 수단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례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활동에 있다고 하겠다.성례전은 다음과 같은 신학적 의미를 가진다.
첫째, 성례전은 모든 예배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보이는 말씀’이다.
둘째, 성례전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포와 예배자들의 진지한 응답이 나타나는 현장이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성례전을 통하여 사랑의 실체로서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다.
냇째, 성례전은 성도들의 공동체 의식을 재확인하는 예전이다.
끝으로, 화육적(Incarnational Respect) 관계 형성이 성례를 통해 계속적으로 다짐되어야 한다. 성례는 한 인간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 시키고 그 새로운 차원의 세계에 머물게 하는 신비한 위력을 갖고 있는 예전이다.그러므로 우리는 이 현장을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예전이라고 부르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이룩되는 현장이라고 부른다.
세례의 신학
기독교 공동체는 세례를 통하여 한 인간의 삶 속에 하나님의 통치의 시작을 실증하고, 그 통치의 미래를 향한 공통적 회개를 실증한다.
세례 의식의 역사
초대 및 중세 교회의 세례 의식
기독교에서 행하는 세례 의식은 기본적으로 예수님의 명령(마28:19)에 근거를 두고 있다.세례의 사상이나 사역은 일찍이 구약의 유대 민족의 종교 생활 가운데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1.원시 세례
세례의 원시적 형태는 다음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나 거룩한 예전에 참여할 때는 반드시 물로 깨끗이 씻는의식을 가졌다.둘째로는 쿰란 공동체에서 가졌던 세례 의식이다.이들의 세례는 세례 요한의 세례의 줄기가 되었고 이후 기독교 세례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셋째로 유대교로 개종하는 이방인들에게 주었던 세례가 있었다. 영과 육을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바치는 성례전적 성격을 포함한다.복음의 전파와 확장을 유대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개해 갈 것을 명령하셨던 예수님께서 개종자들에게 세례를 베푸신 것은 기독교의 입교 의식으로 자리 잡았고, 이는 기독교라는 새 공동체 형성을 위한 훌륭한 방편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신학자 머레이는 “기독교 세례의 신학과 형태는유대교의 개종자 세례의 형태와 신학에 기인한다”고 말했다.세례 요한에게서 기독교 세례의 근원을 찾아볼 수 있다.이 세례는 유대교의 세례 형태에 새로운 내용과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서 곧 예수님의 사역 출발점이 되었고 그 후 기독교 공동체의 소중한 성례 의식이 되었다.
2.예수니미과 사도들의 세례
먼저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셔야 했던 의미를 생각해 보자.첫째로.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는 선지자 요한을 통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예수님의 정체성을 선포하기 위함이었다.“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이라고 한 것
둘째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는 순간에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막1:11)는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통하여 만인에게 예수님의 신분을 확인시켰다.그는 새롭게 다가올 미래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세례를 언급햇는데,그 내용은 십자가 수난 곧 오스카 쿨만의 말대로 메시아와 수난의 종으로서 그 자신이 행동적으로 받을 세례를 예언하셨다.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가 베풀어져야 되다는 사실과,복음을 받아들이는 무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인치는 예전으로 지켜나가야 할 의무임을 가르쳐준다.
3.사도들과 초대 교회의 세례
이것이 최초로 나타난 곳은 사도행전 2장의 베드로 설교에서이다.사도들에 의해 행해진 세례 사역의 의미는 우선 그들이 ‘주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는 데 있다.그리고 사도들은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죄의 용서를 선언했다.사도들을 통해 받은 세례에는 주님께 대한 헌신의 의미가 주어졌다.그러므로 세례를 받은 무리들은 새로운 공동체 세계에 서 참 기쁨을 향유했으며 그리스도의 강력한 증인으로 살았다.
종교 개혁 이후
개혁자들 에게 세례는 하나이며, 물 세례는 사람을 내적으로 정결케 하는 성령 세례를 표상으로 하는 외적인 징표였다.그리하여 루터로부터 독립된 세례 의식과 성찬이 개혁 교회에나타났고, 츠빙글리와 칼빈의 종료 개혁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의식 중심의 상정적인 것에서 완전히 벗어난 예전을 만들려고 했다.
세례의 본질적인 의미와 신학
개신교의 예배에서 세례를 성만찬과 함께 소중한 성례전으로 지키게 된 것은 특유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세례는 죄의 용서, 인치심, 성령의 부여,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함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함 등 다양한 의미를 간지다. “세례는 우리 교회의 친교를 허락하는 입회의 표요,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랴”는 정의가 있다.세례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취하신 절대 주권의 표시이며 인치심(seal)이라는 신 주도적 입장을 취한다.존 맥콰리(John Macpuarrie)같은 학자는 세례를 구원론의 단계에 속한 하나의 과정으로 보면서 죄의 인정과 회개, 칭의, 성화 그리고 선택의 순간으로 해석했다.세례를 좀더 구체적으로 우리의 실제 삶과 연관시켜 보면 몇 가지 의미를 새롭게 찾아볼 수 있다.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다.
둘째로, 세례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예전이다.
셋째로, 세례는 새로운 피조물의 탄생을 의미한다.
넷째로, 세례는 기독교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한다.
세례를 받지 않으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며,교회를 통한 권리와 의무 수행에 책임 부여되지 않는다.세례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섬기는 사람들의 일원이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공동체릐 삶을 확인하는 것이어야 한다.
유아 세례와 입교 의식
기독교의 역사와 전통은 어린아이들도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은혜를 입어애 할 자로 여겨 일찍이 그리스도의 세례를 베풀게 했다.유아들의 세례는 부모의 신앙에 근거하여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알고 믿음 안에서 자라도록, 기독교 신앙의 가르침과 양육이 전제된 가운데 세례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유아 세례는 기독교의 오랜 전통뿐 아니라 성경에서도 그 근거를 찾아볼수 있다.특히 유아 세례는 계약의 원리에서 추론하고 있다고 하겠다.둘째로, 사도 시대에 온 가족이 함께 세례를 받은 사건(행 11:14, 16:33, 18:8고전 1:16;딤후 1:16)을 근거로 많은 학자들은 그 가족에 속한 어린아이들이 세례를 받았다고 주장한다.자녀들이 성장하여 분명한 신앙 고백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아 세례는 무엇보다 부모의 신앙과 그들의 책임 있는 서약에 깊은 관심을 두어야 한다. 로렌스 스투키 교수는 ‘계약의 새로운 갱신’이라고 부른다.근본적으로 입교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세례를 유아 때에 받았던 자들이 성장 기간을 거쳐 일정한 연령에 이를 때에 교회가 기독교의 신앙 교리에 근거한 신앙 교육의 과정을 베풀고, 그 과정을 마친 자들을 교회의 일원으로 환영하는 예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성만찬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예배의 현장에서만 베풀어지는 성만찬은 세례와 함께 교회 공동체를 가장 기독교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예식 가운데 하나이다.성찬식을 통하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과 이웃의 화해를 경험하며 신앙을 재확인하게 된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그들의 삶이 가지는 의미와 세상을 향한 선교적 사명을 되새기며,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게 된다.
성만찬의 역사적 배경
성만찬 예배는 그리스도의 명령에서 출발한다. 그리스도께서 잡히시기 전 마지막 유월절 만찬석상에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이것을 행아여 나를 기념하라”(고전11:24)는 말씀에서 성만찬 예배는 출발한다. 초대 교회때부터 성만찬은 예배의 필수적이며 중심이 되는 순서였다.말씀으로부터 시작된 예전은 다락방 예전(성만찬)에서 절절을 이루었고 세례 교인은 성만찬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를 갖고 있었다.가톨릭 교회는 성만찬 중심의 예배로, 개신 교회는 성만찬이 빠진 설교 중심의 예배로 변질 되었다.그러나 종교 개혁자들중에 성만찬의 중요성을 무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종교 개혁자들의 성만찬에 관한 통일되지 못한 견해들이 말씀을 중시하고 성만찬을 소홀히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성만찬의 유래
초기 형태의 성만찬 예식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성만찬에 관해 신약 성경이 제공하는 자료로는 마태복음 26:26-29절, 마가복음 14:22-25절,누가복음 22:15-20절과 고린도전서 11:23-26절이 있다.
예루살렘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지는 성만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으로 예수님의 최후 만찬으로부터 유래 되었다.신약학계의 권위자인 예레미야스는 복음서의 기록 속에는 그만찬의 유월점 배경을 가리키는 열한 가지 사실들이 있다고 밝혓다.
첫째, 최후의 만찬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행되었다.
둘째,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에게 식사를 위한 방이 소란 없이 제공 되었다.
셋째, 밤에 거행되었다.
넷째, 소수의 남자들의 무리가 함께 모였으므로 유대 가족적만찬의 ‘가족족인’ 분위기가 유지 되었다.
다섯째, 제자들이 상에 기댔다.
여섯째, 빵을 떼기 전에 어떤 음식이 먼저 나왔다.
일곱째, 유월절위 독특한 특징인 붉은 포도주를 마셨다.
여덜째, 이 만찬은 자선 행위와 관련되었다.
아홉째, 만찬은 시 113-118편에서 발췌된 찬양으로 끝을 맺었다.
열째, 유월절에 일반적으로 있었던 성경 강해 순서에 빵과 포도주에 대한 주님의 말씀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열한째, ‘적신 빵 조각’의 사용(요 13:26이하)은 그 만찬의 특직에 대한 증거의 하나이다.
최후의 만찬이란 지금까지 키디쉬를 행해 온 것 중 ‘최후의 것’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최후의 만찬이 키디쉬에서 근거한다는 또 하나의 증거는 요한복음 기사이다. 요한복음 18장 28절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잡히신 것은 유월절 잔히를 먹기 전이라는 견해를 밝힘으로써 최후의 만찬은 다락방에서 마지막 날 밤에 빵과 잔을 나눈 것뿐이지 유월점을 기념한 것은 아니므로, 결국 최후의 만찬은 키디쉬였다는 것이다.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어떤 형태의 식탁을 이용하셨든 새로운 성례전으로서 성만찬을 제정하셨다는 사실이다.그러므로 성만찬은 전적으로 독특한 기독교적 전통이다. 예수님께서 친히 그 것으로미래 구원에의 새로운 희망을 제시해 주셨다는 것이다이 최후의 만찬을 성례전으로 제정하신 과정 첫째, 먼저 주님께서 빵을 취하셨다.
둘째, 축하하셨다.
셋째, 그것을 쪼개셨다.
넷째, 제자들에게 나누어지면서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 아니라”고 하셨다.
다섯째, 그 후에 잔을 드셨다.
여섯째,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다.
일곱째, 제자들에게 드리면서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시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다.
예전의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 행하는 것은 신실한 교회의 모든 성도들의 참된 임무라 하겠다.
성만찬의 신학적 의미
예수님께 하신 말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막 14:22)라는 표현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전 11:24)는 말씀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기념(Remembrance)과 참여(Communion)와 드림(Offering)이다.초대 교회가 이해한 성만찬은 ‘새언약’의 표지와 구원과 새 생명의 종말론적 예표였다.둘째, 성만찬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되는 의식이다. 바울은 성만찬을 그리스도의 몸과 교제에 관련시켜서 말하기를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한 떡에 참예함이라”(고전 10:17)고 하였다.이 말은 성찬에서‘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일치와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그 지체들과의 일체를 의미한다.그러므로 기독교 예배에서 성찬은 예배의 중심이 되어야 되며, 예배자들은 성찬의 떡과 잔을 나누면서 다 함께 교회의 머리요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신적 몸의 지체가 되는 것을 확신하며 서로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고 피차 위로하고 권면해야 한다.셋째,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희생제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단번에 드리는 희생 제물이 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성찬은 오늘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믿음으로 성찬의 떡과 잔을 받을 때에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릐 죽으심으로 단번에 성취하신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오늘을 의한 성만찬의 순서
성찬식은 언제나 우리가 공동체임과 그리스도의 지체 됨을 확인하는 공동체 의식이다.성찬식은 인간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인 예식이며, 인간이 고안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예식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성만찬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현장이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의 의미에 대한 묵상과 죄의 회개로 이어지는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주의 만찬에 초대받은 감사와 기쁨이 넘치며, 종말론인 하늘 나라의 만찬을 소망하는 희망이 넘치는 축제적인 분위기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배의 계획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예배와 연관되어 있다.이 시대는 너무나 바쁘다.예배가 다양하고 많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단지 실용주의를 충족시키거나 마음의 평안과 만족을 휘한 것만은 아니다.예배가 그만큼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핵심이기 때문이다.그리스도인은 예배하는 사람들이다(요4:23). 우리가 구속받은 일차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배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시작된다. 결코 환경이 문제 된지 않는다. 우리는 예배의 특징을 설명하며 신비, 놀람, 경축이라고 설명한다. 예배는 반드시 계획되고 준비되어야 한다. 인간이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고 드려지고 올려지는 행위가 예배라면 그만한 준비와 내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그리고 교회 전체는 공중 예배에 대해서 큰 책임을 가지고 있다.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하나의 고정된 예배 순서를 지시하고 있으 않으나, 본질적인 예배의 어떤 형식은 항상 인정한다.구약은 형식과 의식을 매우 강조한다. 반면에 신약은 예배의 정신과 자유를 마치 형식과 행위를 배격하는 듯이 여겨진다.예수님께서는 예배의 실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셨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배를 예배 되게 하며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일이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예배가 되게 하는 것이다.
예배 순서를 결정짓는 요소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다’이다. 예배에서 하나님을 제대로 만날 때 우리의 옛 자아는 죽고 새롭게 변화한다. 예배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완전하신 모습을 닮아 가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되어가는 (becoming)\' 것이다. 역사적인 예배의 모형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발전되어 왔다. 우선 첫째로 로마 카톨릭 교회, 감독 교회, 루터 교회 등에 나타난 의식 중심의 예배 형태가 있으며, 두 번째로는 퀘이커 교도와 그 외 복음적 단체들이 바라는 것처럼 짜인 순서가 없는(적어도 신학적으로) 비의식적인 모형이 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따르고 있는 것으로서 “자유 안에서의 질서”로 표현되는 자유롭지만 순서가 있는 계획된 예배, 즉 획일적이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자유와 자발성을 참작하여 만들어진 예배의 형태가 있다. 이러한 예배 순서의 차이는 각각의 교회가 지닌 신학적 차이에서 비롯된다. 예배의 외적 형식이나 모양은 언제나 시대의 산물로서 그 시대의 문화와 긴밀하게 관련을 맺으면서 발전되어 왔다. 예배자의 자리에 설 때 우리는 적어도 세 개의 문화와 만나게 된다. 성경의 문화, 예배 인도자의 문화, 그리고 예배 참여자의 문화이다. 개혁주의 신앙을 전통으로 받아들이는 우리는 “개혁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라는 개혁주의 전통의 표어와, 자유와 형식이라는 예배의 두 기둥을 기억하며 예배의 원리를 찾아야 한다.
예배의 대상에 대한 바른 예배
그리스도인의 예배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른 예배 순서를 결절짓기 위한 첫 번째 요소는 예배의 대상을 바로 아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 바른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다. 후스태드(Don Hustad)에 따르면 예배란 “삼위 일체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인간의 긍정적인 응답”이다.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다.하나님은 생명의 원천이시며 보존자이시다. 또한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주도적으로 사랑의 행동을 하시는 분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과 사역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기에 지극히 합당한 분임을 깨닫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합당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예배자인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 바로 알고 있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창조주와 구속주가 되시는 삼위 일체 하나님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것이다.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비전과 통찰력, 믿음, 헌신과 부요함을 누리게 된다.
예배의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
바른 예배는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예배이다. 진정한 예배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바라보며 그릴 힘입어 예배하는 것이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하여 하나님께 직접 예배 드릴 수 있는 은총을 입게 되었다. 하나님께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에 감사하고 이 은총을 새롭게 확인해야 한다.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의 문제는 기독교의 예배를 타종교의 예배와 구별시키는 가장 독특한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예배는 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한다. 그리스도 중심의 예배는 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한다. 그리스도 중심의 예배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힘입고 그를 통해서 예배하는 것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어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배에 생명력을 넘치게 하는 것은 바로 성령이시다. 이 성령의 사역에 의해 교회는 주목받으며 어떤 목적을 향해 힘있게 활동하게 된다. 예배는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예배 가운데 성령은 필수 요건이다.이것이 하나님 중심 예배의 독특한 모습이다. 성령은 필수 요건이다. 이것이 하나님 중심 예배의 독특한 모습이다.성령은 예배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예배자에게 내적으로 증거하여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감동시키는 하나님의 영이시다.성령의 사역으로 인해서 예배자는 예배 속에서 현재적인 응답을 하게 된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린 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강권케 하심 아래서 예배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
성경은 믿음과 윤리에 있어서만 지배적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으로서 교회의 예배와 정치를 지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배의 대상을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이다.처음부터 성경이 하나님의 정확 무오한 말씀이라는 기독교의 교리를 지지해 왔고 거기에서부터 예배가 드려졌다. 우리는 성경에 대한 바른 신앙 고백 위에서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다.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고 예배는 경건한 것이기 때문이다.효과적인 예배는 반드시 성경적 근거를 가진 것이어야 한다.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확인되고 조정된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것은 성경에 대한 바른 신앙 고백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바른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비롯된다.
예배에 대한 신학적 바른 이해
예배가 최상의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하나님께 드려지는 순종과 봉사의 행위라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예배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우선 되어야 한다.예배는 그 자체 안에 신학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배의 대상으로서의 하나님, 예배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예배의 원동력이신 성령에 예배를 계획할 때에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두 가지 요소, 공동체적 행위로서의 예배와 삶으로서의 예배
예배는 공동체적인 행위이다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 신자는 단순한 개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몸의 일부이다. 예배는 고립된 개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교회 전체의 행위이다.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다른 지체들과 함께 공중 예배에 참여함으로써 예배의 풍성함을 경험하고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임을 확인한다.진정한 예배는 예배당 안의 예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활 가운데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예배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 동시에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부여받고 세상에 나아가는 것이다. 예배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과 동시에 하나님께로부터 사명을 받아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증인이 되며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예배 순서를 통제 해야 할 실제적 원리
예배를 계획할 때에는 예배를 예배되게 해야 하며 동시에 예배가 성도들의 필요와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
(1) 성경의 진리에 모순되는 어떠한 것도 포함하지 말아야 한다.
나답과 아비후, 사울, 웃사 예배의 기본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것이다.
(2) 예배 순서는 역사적으로 좋은 전통을 보전하고 있어야 한다.
(3) 좋은 예배 순서는 회중들에게 이해되는 것이다.
좋은 예배 순서는 그 자리에 모여 있는 예배자들이 곧 회중에게 이해될 것이고, 현재 생활의 환경에 복음을 적응시키게 될 것이다.예배 프로그램은 교회가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사람들의 필요와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4)공중 예배의 모든 경험은 일정한 목적과 보이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
예배의 주제가 없다면 회중 역시 하나님 안에서 떠돌게 될 것이다.
(5) 좋은 예배 순서는 통일성을 가져야 한다.
(6) 공중 예배는 연극의 줄거리처럼 진행과 전진이 있어야 한다.
(7) 종은 예배는 회중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
예배 순서 계획을 위한 지도적 원리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거기에 맞는 예배의 구성과 순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 때문이며, 무질서한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을 손상시킬 뿐만 아니라 예배자를 혼동케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 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오시는 길’ 그리고 ‘인간의 변화로 인한 결단과 헌신하는 일’이 세 가지 사건이 발생하도록 예배의 순서가 구성되어야 한다.
(1) 준비된 사람들이 예배 순서에 책임을 밀어야 한다.
(2) 예배의 효과적인 순서를 계획하는 대 많은 시간을 바쳐야 한다.
(3) 예배 순서는 그 회중들에게 적합해야 한다.
(4) 예배 순서를 짤 때 교역자는 마음에 일정한 목적을 가져야 한다.
(5) 비록 한 절기가 다른 절기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지만, 많은 교회는 기독교 월력에 따라예배를 계획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6) 예배 순서에는 일정한 양의 변화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예배로 그들의 관심을 더 높게 한다.
(7) 주보나 혹은 다른 보조물의 사용은 예배를 계획하는 인도자들을 도울 수 있다.
(8) 프린트되거나 복사된 예배 순서는 예배드릴 때 회중을 도울 수 있다.
(9) 저녁 예배 의식은 아침 예배 의식과는 조금 달라야 한다고 흔히 권한다.
(10) 예배의 계획은 건물과 시설의 준비를 포함한다.예배당은 매력있게 지어져야 한다.
(11) 창조성은 생동적인 예배에 필수적이다.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시대에 적합한 방법으로 다가오셔서 구원의 방법을 제시하셨다. 효과적인 예배(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예배의 초점이 하나님을 향해 있는지, 성경적 예배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
제네바 교회의 예배 순서와 그 진행
칼빈의 예배 순서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다음의 세 가지 원리에 의해서 순서가 배열되었음을 알게 된다. 첫째는 죄의 고백과 용서의 부분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 선포의 부분이며, 셋째는 삶 속의 헌신과 세상으로의 선교적 파송 부분이다.
예배 순서
1.예배의 말씀(개회의 선언)
2.참회의 기도(죄 고백)
3.용서를 구하는 기도
4.용서의 선언
5.회중의 시편 찬송
(1545년부터 십계명 첫 부분 낭독이 첨가됨)
6.중보의 기도(성령의 임재를 위한 기도)
7.회중의 시편 찬송
(1545년부터 십계명 두 번째 부분이 낭독됨)
8.주기도문
9.설교 전 설교자의 기도
10.설교
11.설교 후 기도(목회의 종합적인 기도)
12.주기도문의 해설
13.회중의 시편 찬송
14.아론의 축복 기도(민 6:24=26)
바람직한 예배 순서의 모양
칼빈을 위시한 개혁자들이 예배순서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다음의 세가지 원리에 의해서 순서가 구성, 배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의 개회 부분이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오시는 말씀 선포의 부분이며, 셋째는 하나님을 위한 결단과 헌신의 부분이다.칼빈은 “교회 안에 의식이 증가하면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감소되고 믿음이 예식으로 바뀐다”는 근거 위에서 예배의 단순성을 주장했다.
개회(하나님께 나아가는 부분)
말씀의 선포(하나님께서 오시는 부분)
결단과 헌신(하나님을 위한 부분)
예배의 인도
‘예배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정의를 이렇게 가정해 보려고 한다. 즉 예배는 하나의 오케스트라(A Symphony Orchestra)이다.오케스트라는 지휘자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할 수 있을 마나큼 지휘자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예배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일한 회중이 같은 악보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지만 예배 인도자가 어떤 사람인가는 따라 예배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예배 인도자
예배에 대한 한 사람의 바른 이해가 영적 부흥을 가져온다. 예배 인도자는 어떻게 해야 예배를 예배되게 할 수 있으며 사람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지를 언제나 생각해야 한다.
예배 인도자의 정신
예배 인도자는 예배에서 이중적인 역할, 즉 그들 자신이 예배자이면서도 동시에 다른 예배자들을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예배자
예배 가운데 우리는 스스로가 얼마나 존재인지와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바로 참된 예배의 목표이다.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가 말하는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예배 인도자는 선수이며 동시에 코치이다.예배자인 동시에 예배 인도자이다.모든 예배 인도자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참 예배자이어야 한다. 예배 인도자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9:27)의 말씀을 깊이 새기며 인도자 이전에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
예배 인도자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하셨고,하고 계시며,행하실 일 때문에 찬양과 감사를 받으신다. 예배 인도자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 사건을 드러내어 사람들오 하여금 기억나게 하고, 지금 행하고 계시는 일들을 보여주며, 앞으로 행하실 미래의 일들을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이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도와야 한다. 예배 인도자는 자신이 예배자인 동시에 예배 인도자임을 분명히 자가하고 있어야 한다.
예배 인도자의 역할
예배 인도자는 회중들에게 공적인 예배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공적인 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목회자나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적인 유익을 위한 특권이고 하나님을 위한 의무이다. 예배 인도자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해야 하며 성도들의 삶을 알아야 한다. 예배 인도자는 예배가 바로 자신의 삶의 결정체라는 사실을 언제나 깊이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예배 인도자는 히브리서 11장 6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계신 것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임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
예배 인도자의 문제점
예배 인도자들이 종종 범하는 실수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것은 언급한 것처럼 준비 부족 그리고 자기 중심적인 태도이다.
준비 부족
예배를 위한 인도자의 준비가 부족하거나 임시 변통적이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불가능하다.
자질 부족
인도자의 절대적인 자질 곧 삶의 태도가 잘못되었거나 자세가 부저절할 때에는 생명력 있는 예배를 드리기 어렵다. 특히 겸손, 경건, 엄위로우신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서 회개하는 자세 등이 인도자에게서 부족할 때 그 예배는 문제가 있다.
자기 중심적인 태도
많은 예배 인도자들이 처신이 지혜롭지 못하다. 글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에게 중점을 두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중점을 둔다. 하나님의 종 대신에 하나님이 중심이 될 때 우리의 예배는 자신들에게 의미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참 예배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예배 인도자가 갖추어야 할 것
예배 인도자에게는 언제나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예배 인도자에게는 예배 가운데서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할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이 필요하다.
예배를 위한 비전(방향 감각)을 가져야 한다.
인도자는 예배를 위한 비전을 가져야 한다.
청중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말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듣는가’이다. 예배 인도자와 회중사이의 단절된 대화를 막고 생명력 있는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예배 인도자는 듣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침착해야 한다.
예배 인도자가 기억해야 하는 예배 요소들
예배의 현장에서 인도자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보자.
1.예배 의식의 세목에까지 완전히 준비해야 한다.
2.적절한 정신적 준비는 자신을 균형 있게 하고 침착하게 만들 것이다.
3.인도자는 회중과의 인격적인 일치를 추구해야 한다.
4.적극적인 태도는 예배에서 사람들을 인도하는 데 필수적이다.
5.인도자는 ‘직업적인 목사’의 상투적인 어조를 결코 쓰지 말고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말해야 한다.
6.교역자는 예배 의식을 결코 늦게 시작하지 말아야 하고,의식의 어떤 부분을 질질 끌거나 적절한 시간의 양보다 더 많이 소비 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고 시간을 엄수해야 한다.
7.인도자의 이상한 버릇과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특성은 예배에 장애가 된다.
8.인도자의 정신은 옮아간다.그러므로 예배 인도자는 희망과 열정과 낙관의 정신을 보여야 하고 결코 무관심이나 패배감이나 비관의 정신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9.예배 인도자의 특권 가운데 하나는 회중과 더불어 예배에 동참하는 것이다.
10.교역자는 언제나 자신을 거져주어야 한다.
예배 인도의 원리
기본음 맞추기
따라서 예배 인도자는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본음에 사람들의 마음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 삶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과 능력이 달라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각 사람들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본음에 모아놓을 때 참된 예배가 가능하다.
악보대로 연주하기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예배 인도자는 예배 시간 동안 말씀에 주의하며 최대한 객관적으로 하나님을 소개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순간적인 편곡은 금물이다.
철저한 준비
예배는 우리의 삶의 집약이다. 순간적인 편곡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주비가 필요하다. 예배는 설교뿐만 아니라 모든 의식 순서 하나하나가 완전히 준비 되어야 한다. 연주회를 하기 전에 리허설을 하듯이 예배를 위한 리허설까지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다.우리는 하나님께서 듣고 박수를 치실 만큼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기 원한다. 그것은 철저한 준비에서 시작된다.
회중의 참여
예배 참여자로서의 회중
예배에서 회중은 어떤 존재인가? 예배에서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다.
회중은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공연하며 연주하는 사람이다.회중은 각각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악기를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라는 악보에 따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들이다. 다양한 인생들이 모여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본음에 마을을 조율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한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그러므로 조화를 이룬 멋진 화음으로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기 위해서 우리는 예베 인도자인 지휘자인 지휘를 따라야 하나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회중의 준비
예배를 드리기 위한 마지막 점검이 필요하다. 주일 아침은 주님을 사랑하는 가정이 즐거움 속에서 기다리는 순간이 되어야 한다. 예배는 수고이다. 그그서도 힘든 수고이다. 그것은 또 보상을 받으면서 하는 수고 이다. 주일 아침에 하나님을 대면하는 일에는 최저가 아니라 최고의 에너지를 투자 할 가치가 있다. 예배는 특별하다. 청교도들은 특별한 예배를 위한 특별한 준비를 철저하게 훈련 시켰다.지금 당장 우리의 예배를 심화 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예뻬 의식 순서나 형태의 개정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느 충분한 예배 준비의 노력이다.우리느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주일 예배는 토요일 저녁에 시작된다.
예배에 대한 참여자(회중)의 태도
예배의 시작 전과 도중에 올바른 태도를 지니는 것은 피수적이다.회중들은 설교를 듣는 일, 공중 대표 기도에 동참하는 일, 헌금드리는 일 등의 응답하는 행위를 통해 예배에 참여한다.각 예배자는 이 응답에 협동할 의무가 있다.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위하여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공동체의 일정한 원리를 따라야 한다.
1. 정기적 출석은 필수적이다.
2. 예배자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존경하는 것같이 예배의 집, 예배의 날, 예배의 인도자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임해야 한다.
3. 잘 따르는 사람이 되는 것은 좋은 인도자가 되는 것만큼 필요하다.
4. 모든 회원은 예배 의식이 끝날 때까지 참여해야 한다.
5. 회중이 나가면서 간단히 친교하는 시간은 정다운 인사를 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올바른 예배의 태도는 다음이 요소들을 포함한다. 첫째, 예배드리러 들어오자마자 기도할 것, 둘째, 가사의 뜻에 착념하여 진심으로 찬송을 부를것. 셋째, 성경을 펴고 본문을 열심히 봉독할 것.넷째, 주보를 보고 순서에 따라 예배에 참여 할것. 다섯째, 기쁜 마음으로 헌금을 드릴 것. 여섯째, 사도신경으로 진실되게 신앙을 고백할 것. 일곱째, 성경을 펴놓고 연필과 노트를 가지고 필기 하면서 적극적인 자세로 설교를 들으려고 노력할 것.여덜째, 만약 필요하다면 예배 진행을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
박은규 목사가 제시한 ‘한국 개신교 예배자들의 십계’ 즉 회중의 열 가지 올바른 예배 태도를 소개한다.
1.예배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인생의 가장 큰 목적임을 알고 예배에 참여하라.
2.예배자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총’에 대하여 마음을 열고 ‘응답’하라
3.예배자는 단순히 ‘복을 받으려는 마음’을 앞세우지 말고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려는 마음’을 가진라.
4.예배 출석시에는 ‘몸’을 정결히 하고,‘복장’을 단정히 하며,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라.
5.공중 예배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므로 어린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다 함께 참여하라.
6.하나님의 전에 들어오면 하나님께 대한 ‘경의’와 ‘경축’의 태도로 마음을 바쳐 예배하라.
7.예배 순서의 각 요소는 다 똑같이 중요하므로 찬송, 기도, 고백, 찬양, 말씀 선포. 응답, 봉헌 순서에 ‘자발적’ 으로 ‘열심’을 다하여 참여하라.
8.미신적이요 운명론적인 예배 심성을 버리고 창조주시오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인류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승리’를 경축하라.
9.공중 예배는 산만하게 모인 ‘군중(Crowed)의 예배’가 아니라 ‘회중(Congregation)의 예배’가 되어야 하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다 하나가 되라.
10.예배자는 ‘말씀’과 ‘성례전’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후 세상의 구원과 화해를 위한 하나님의 ‘선교’에 과감하게 동참하라.
공연으로서의 듣는 행위
설교를 듣고 있을 때 당신은 청중이다. 그러나 듣는 방식은 일종의 공연(Performance)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그 말씀이 나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나에게 말하고 있다”고 계속해서 되뇌이는 것이라고 키에르케고르는 말했다. 듣는 것은 그 자체가 일종의 공연이다. 하나님께서는 듣는 태도로 우리를 판단 하신다.예배는 우리가 연기자가 되고 하나님께서 관객이 되시는 일종의 예식적인 드라마이기 때문에 ‘나는 과연 어떻게 연기 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새 회원의 영접
예배가 예배다워지려면 신입 회원에 대한 관리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
예배에서의 음악
예배의 원칙은 성경에서 나오지만 그 실제는 역사로부터 나온다.예배 중의 설교가 하나님의 감화(Impression)의 한 방편이며 도구이듯 예배 음악 역시 그러한 역할을 수행한다. 음악은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며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그러므로 음악은 공중 예배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음악을 바르게 사용할 때 더 의미 있고 진정한 예배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다.음악은 방관자적인 예배자들에게 ‘구경꾼’ 심리를 조장하기 위한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음악의 선택이나 연주자세, 방법 들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예배자들의 마음의 시선을 음악 연주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릴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 ‘최선의 음악’을 드리는 것이 중요하지 ‘최고의 음악’만을 드려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개인 예배가 아닌 회중 예배에서는 음악적 이해 수준과 취향이 천차만벌일 수 있으므로 가능한 한 전체 회중이 공감하고, 의미 있게 자신의 신앙으로 표현하며, 동일시 할 수 있는 음악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음악과 예배
음악은 적어도 세 가지 면에서 예배와 관계가 있다.첫째로, 예배의 목표 또는 정신을 나타낸다. 둘째로, 음악은 작가의 기본적 진리와 경험을 회상케 하며, 이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갖게 하는 예배의 한 조력자로서 이바지한다, 또한 음악은 예배의 한 행위다.
좋은 예배 음악이란?
예배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완전하신 모습을 닮아가고 그분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되어가는 것이다. 예배의 행위는 우리 자신이 참된 의미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고후 6:16)이 되도록 반복적으로 실시되는 연습이며 훈련이다. 이러한 가운데 하나님을 향해 우리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음악을 ‘제사장적인 음악’ 이라고 한다면,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데 사용되는 음악은 ‘선지자적인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예배 음악은 하나님과 우리의 예배적 만남이 인격적이고 의미 있는 참된 만남이 되도록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해주는 음악이다. 또한 좋은 예배 음악이란 우리가 최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높여드리며, 그분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음악이다. 결국 좋은 예배 음악이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고백과 표현이 담겨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수단이 되는 제사장적이며 선지자적인 음악이다.
찬송가의 선택
찬송가의 선택을 지도해야 할 몇 가지 원리가 있다.
1.예배 인도자는 찬송가를 잘 알 뿐만 아니라 그 예배에 적합한 찬송가를 택하는 방법까지 잘 알아야 한다.
2.교역자는 찬송가의 선택을 지도해야 한다.
3.찬송가의 선택에는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4.어떤 특수한 예배 의식에서도 찬송가는 예배의 원만한 경험을 조성해야 한다.
5.교역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찬송가와 주관적인 찬송가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음악 지도자로서의 예배 인도자
모든 피조물의 궁극적인 존재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사43:71 ; 고전 10:31)이다.‘하나님의 목마름’은 우리의 사역이 아니라 예배이다. 예배 음악은 예배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달라므로 음악 자체의 문제 이전에 음악 지도자의 자질이 선결 조건이 된다.음악 지도자로서의 예배 인도자에게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자세가 요구된다.
신선한 영적 생활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신다(요4:24).예배 인도자는 예배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자신을 준비해야 한다.
교회의 지도자들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교회의 지도자와 음악으로서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은 서로 비전을 공유하며 인간 관계와 비전에 있어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음악으로 예배를 돕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예배의 내용과 흐름을 기억해야 한다.
음악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
회중을 훈력시켜야 한다.
예배에 있어서 음악
오르간 연주
오르간 전주는 예배의 분위기를 조성하며 예배자들이 개인적인 명상을 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오르간 전주는 예배 전 시간을 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배 그 자체이며 예배의 첫 부분이다.
행렬송
성가대, 목사, 기도자, 헌금 위원 등 예배를 담당한 사람들이 입장 할때,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고 그의 영광을 노래 하는 것은 예배 시작부터 장엄한 순서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행렬송은 성가대나 회중이 해도 좋고 오르간이나 피아노와 같은 악기로 연주해야 한다.
예배에의 부름
개회 찬송을 부르면서 예배자들이 모두 하나님의 전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께서 예배자들을 불러주시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들의 응답인 화답송은 감격적이고 웅장한 것이 좋다.
기원
기원은 회중의 느낌보다는 하나님 중심이어야 하나다.
죄의 고백
예배에 참석한 모든 회중들이 자신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공동적으로 고백하는 것으로서 이는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예배자가 주님 앞에 지은 죄를 진심으로 고백하지 않는다면 그 예배는 열납되지 않는다.
대 영광송
고백의 기도 즉 하나님의 용서가 선언 된 다음 인간의 응답으로서 영광송을 부른다.용서받은 기쁨 속에서 성부, 성자, 성령 되신 하나님께 찬양할 때 진지하고 엄숙한 자세로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가운데 성삼위 일체 하나님만을 찬양하는 내용을 가진 곡들로 찬양해야 한다.
기도에 대한 화답송
목사의 목회 기도 또는 장로의 중보 기도 뒤에 성가대가 회중을 대표하여 화답하는 것으로 부르는 곡은 아멘에 관한 곡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합당하다.
성가대 찬양
하나님을 향하여 가장 아름다운 경외를 드리는 부분이다. 또한 예배자들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끌고 가는 헌신의 경험을 주는 사명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 할수 있도록 마음의 그릇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성가대의 찬양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미의 제사(히13:15)로서의 찬양이 되어야 한다. 설교 전의 찬송은 시편에 나타나 있는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찬양의 주제가 되어야 하고 그러한 곡을 선정해야 한다.
독창
이 시간은 모든 회중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한 음악적 헌신으로 표현 되어야한다.
퇴장 찬송
입장 찬송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예배 또는 경배의 찬송이라면, 퇴장 찬송은 신앙의 결단, 충성, 선교, 감사등의 의지를 가진 찬송이 되어야 한다. 이때 주님의 권세로 세상을 이기며 정보자로서 살도록 하는 주제이어야 한다.
축도송
신적 권위에 의한 목사의 축도 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으로 성가대가 대표해서 부르는 것이다.
오르간 후주 오르간 후주는 전주와 마찬가지로 바깥 세상과 골방 사이의 커튼의 역할을 한다.
예배에서의 기도
예배는 기도이다
신학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예배는 기도이다. 본질적으로 기독교 예배는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드리며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께 예배자 자신을 드리는 것이었다.성경에 나타난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계 계심을 감사하며 회상하는 것이다.그러므로 우리가 부르는 대부분의 찬송가들은 기도들이다.찬송가는 회중의 기도서이며, 우리의 언어로 표현된 가장 훌륭한 기도를 담고 있다. 예배에는 기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주의 기도
시편 51편에 기록되어 있는 다윗의 기도는 개인 기도 대표적인 전형이며, 역대하 6장에 나타난 성전 봉헌식 때의 솔로몬의 기도는 대표적인 공중 기도이다.모범 기도(The Model Prayer)라고 불리는 주의 기도는 예배에 필요한 여러 가지 태도 존경,복종,고백,간구 헌신을 포함하고 있으며 하나의 일정한 형태가 있다.
1.하나님의 이름-기도의 대상 그리고 기도하는 이와 그 대상과의 관계
2.하나님의 나라-하나님의 통치의 영역
3.하나님의 뜻-하나님의 주권(계획,진행 방법들을 포함한 그의 희망과 목적)
4.사람의 물질적 요구-필요에 따른 간구
5.죄를 고백하고 싶은 사람의 요구-관계 세움
6.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의 서약-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
주의 기도의 첫 부분은 하나님께 대하여 말하고, 뒷부분은 인간의 관심과 관련되어 있다.기도의 모범으로 알려진 주의 기도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존경으로 시작하고 모든 것이 그의 목적과 영광에 속하도록 송영으로 끝을 맺는다.
기도는 복종의 행위릴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재복하는 신앙과 희망의 행위이기도 하다(벧후3 :12)
공중 기도의 주도적 원칙
공중 예배에서 드리는 기도에는 일반적으로 세가지의 종류가 있다.첫째, 공중 예베에서 읽도록 마련된 모근 기도의 고정된 또는 의식적 기도, 둘째 미리 준비하지 않고 기도하는 자연 발생적 또는 즉흥적 기도, 그리고 셋째 준비한 뒤에 즉석에서 드리는 기도. 공중 기도가 회중에게 은혜를 끼치며 하나님께 드려지는 바른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계획 할때 따라야 할 일정한 원칙들이 있다.
1.예배에 있어서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하심을 확인하여야한다.
2.기도 인도자는 회중앞에서 공중 기도를 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3.모든 기도는 고유의 일정한 목적을 가져야 한다.
4.모든 기도는 훌륭한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
5.모든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6.만일 회중이 기도의 인도자를 따라야 한다면 그 기도의 전달은 더욱 중요하다.
7.공중 기도는 미리 준비하여 기도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공중 기도는 개인 지도가 아니라 교회의 기도이므로 기도 시간은 3-4분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목적에 따른 기도의 형태
목적에 따른 기도를 분류해 보자.
기도에의 초청
기도에의 초청은 기도를 잘 알릴 수 있다.
기원
기원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주님께 드리는 개회의 기도이다.
고백의 기도 또는 참회의 기도
회중이 하나님의 거룩한 존전에 서 있는 실존으로서 부끄러운 자아의 모습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예배 공동체의 기도이다.
묵도
묵도는 목회 기도의 일부가 되는 것이 좋다.
중보의 기도
예배 인도자가 하나님 앞에 모여 예배드리는 무리를 위하여 사제적 기도를 펴는 부분이므로 목회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연도
연도는 회중의 예배 참여를 격려하는 효과적인 방벙이며 기도의 한 형태이다.
봉헌 기도
공중 기도의 절정으로 예배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봉헌 기도는 물질을 드리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희생의 예물을 대신하는 것으로서 회중 각자의 몸과 마음을 드리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응답하는 상징적 행위이다.
축도
예배 의식의 절정을 이루는 이 기도는 하나님의 돌보심에 우리 자신을 맡기고, 하나님의 복을 회중에게 선포하는 귀중한 기도이다. 이 이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가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고 세상의 빛이요 증인의 삶을 살기 위한 복을 선언하는 데 있다.
기도 인도의 준비
개인적으로 기도하라
요구를 참작하라.
성경의 기도를 연구하라.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연구하라.
기도의 윤곽을 잡아서 기록하라.
기도의 일부를 암기하라.
성령님을 의지하라.
그 외에 기도에서 기억해야 할 것들
더 깊이 있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우리는 기도와 찬양을 조성하는 분위기로 기도를 감싸야 한다.침묵의 순간이나 부드러운음악. 또는 성경 본문을 읽음으로써 기도를 인도하면 훨씬 더 많은 것ㄱ을 기도로부터 끌어 낼 수 있다. 공적 예배 중에 개인적인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침묵의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46:10)기도는 예배 중 가장 흥분되는 시간이어야 한다.기도는 영원에 이르는 장막을 뚫고 하나님께 말씀드릴 수 있는 가장 용이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인도자는 다만 회중에게 예배의 진정한 의미를 소개함으로써 회중 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영적인 예배를 드리고 기도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만 하면 된다.그러면 하늘에서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응답해 주실 것이다.
예배에서의 설교
성경은 설교자와 회중을 하나로 묶어 한 생각을 가지게 하며 예배의 방향을 제사한다.결국 성경은 예배의 중심이다.성경은 성령님에 의하여 사람들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의 활동’을 써놓은 기록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객관적 내용의 주된 원천으로서 예배에서 그리스도를 믿음의 대상으로 제시한다.뿐만아니라 성경은 예배에서 사람의 생각을 지도하고 예배의 정신을 창조한다.
성경 낭독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요,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에 대한 복음을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지혜와 능력을 모든 인류와 각 시대에 전달하고 있다. 따라서 예배가 하나님의 계시에 의존하고 있는 한 성경이 중심에 있어야한다. 회중은 강단에서 말씀에 접하게 되며. 이계시에 대한 응답으로 모인 교회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 낭독은 설교보다 더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된다. 성경 낭독 그자체가 예배의 독립된 요소라고 생각하고 이해해야 한다. 성경 낭독을 할때 에는 되도록 낭독해야 한다. 이 순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시간이다. 그리고 성경 낭독은 듣는 자에게 영감을 줄 수 있도록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성경 봉독과 강론의 강조는 회당에서 기독교 예배로 옮겨졌다고 할 수 있다. 성경 봉독은 성령의 한 통로로서 회중이 하나님의 말씀과 만나는 감격스러운 경험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성경 본문 낭독의 기술
성경 낭독은 그 자체가 기록된 말씀(성경)이 증언하는 살아 계신 말씀(그리스도)의 예배의 한 행위이다.성경 봉독을 위한 말씀의 선택과 봉독에 있어서 예배 인도자는 성실한 마음으로 다음의 사항들에 유의해야 한다.
1.설교 본문이 아닌 봉독을 의한 말씀은 교훈을 주면 신앙심을 일깨워주는 헌신적인 것이어애 한다.
2.봉독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은 형태와 언어와 표현이 비교적 단순해야 한다.
3.신구약 성경 각 책에서 경건한 분위기를 만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해야 한다.
4.경외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다루라.
5.그 성구를 현명하고 홧실하게 알리라.
6.성경을 해석적으로 읽으라.
7.회중들이 이해 할 수 있도록 똑똑하고 확실하게 읽으라.
8.중단하거나 설명하지 말고 그대로 평범하게 읽으러.그 본문을 읽고 난 후에는 성경이 스스로 말하도록 하자.
9. 설교 본문은 설교자가 봉독하고 다른 성경은 평신도 중에서 대표를 선정하여 정중히 봉독케 하는 것이, 예배 순서에 평신도들을 참여케하여 회중들로 하여금 말씀에 대한 친근감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나님의 모든 권고, 즉 신약과 구약을 체계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예배의 필수적인 요건이다. 성경을 봉독할 때 오르간을 연주하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아무튼 성경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간의 생명의 교통으로 대해야 한다.
예배의 본질로서의 설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인데 잃어버린 세상의 영혼들을 구원하고 교회가 진리 가운데 든든히 서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최상의 방편이라는 것이다.설교는 예배의 한부분이다. 예배를 기도와 찬송으로 아뢰며 경배하는 부분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부분이다. ‘설교’는 선포되고 기록된 말씀을 강론하거나 전달하는 것이므로 선포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을 모두 함축한 말로 사용해 왔다. 설교는 예배의 핵심이며 클라이맥스가 되어야 한다. 설교는 교회의 예배라는 구체적인 순소 속에 언제나 넣어서 시행 되어야 한다.
말씀의 선포
“기독 교회는 설교에 의해 존립 할 수도 있고 무너 질 수도 있다”
설교의 참된 목표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발 견 할수 있는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설교는 사람들이 이해 할수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예배 의식에서 설교와 다른 요소들과의 통일성과 조화를 강조하기 의하여 몇 가지 제안을 아래에 제시한다.
모든 성경적 설교는 당대의 대화이다.
설교는 하나님께 바치는 것인 동시에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설교는 세상을 향한 교회의 증언이다.
설교는 각 설교자의 것이기 이전에 교회의 것이다.
설교는 또한 설교자 자신의 개인적인 증언이다.
설교는 다른 예배 순서들과 조화를 이루며 균형이 잡히도록 해야 한다.
본질적으로 설교는 예배의 한 행위이다.
설교는 예배자로 하여금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게 한다. 그리고 예배자의 심령을 밝혀 그들의 삶이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게 하는 데 설교의 목적이 있다.설교자의 가장 큰 두가지 위기가 있는데 하나는 지적 고갈이다.예배가 예배다워지려면 먼저 설교자의 묵상 생활이 전제 되어야 한다.진정으로 효과적인 설교는 훌륭한 기술을 갖추는 데 있지 않고 어떠한 확신에 사로잡히는가에 달려 있다. 이 확신은 먼저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다. 다음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것;이라는 확신이다. 세 번째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먹이신다는 확신이다. 네 번째로 목사는 ’성직자‘가 아닌 ’목회자‘로서 말씀으로 양 떼를 먹이는 임무를 맡았다는 확신이다.설교자의 할 일은 자기 자신의 생각을 전달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근거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알리는 것이다.
설교와회중
우리는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과 대면하는 자리인 예배에서, 옷깃을 여미고 하나님께서 그 시간에 우리에게 필요한 영의 양식으로서 주시는 말씀으로 알고 경청하는 자세로 들어야 하는 것이 설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감상 거리로 혹은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이야기거리로 취급하는 자세는 하나님을 거룩히 여기는 자세 일 수가 없다.
예배에서의 기타 순서
모든 예배가 통일성 있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제요소에 대한 이해가 절실히 필요하다.
전주
예배자로 하여금 하나님께 명상과 전주곡은 하나님의 임재(성령)를 상징하는 의미가 부여되는 곡이 좋을 것이다.
예배의 선언(예배에의 부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예배 드리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순서로서 온 회중으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교통의 시작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다.
개회 찬송(경배의 찬송)
예배에 부름을 받은 회중들아 죄인된 자신들을 거룩한 존전에 예배하도록 불러주신 하나님께 찬양으로 응답하는 순서이다. 순서에서 부를 찬송은 예전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와 찬양의 뜻이 담긴 찬송이 바람직하다.
예배의 기원
예배 시작에 드리는 기도는 예배의 인도자나 회중이 예배 가운데 성령으로 임재하신 하나님의 현존을 깨닫게 해달라는 단순한 기원의 성격을 띠어야 한다.
참회의 기도
예배자의 죄의 고백은 신학적으로 하나님과의 교통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사죄의 선언
이 순서는 예배자들이 앞서 행한 참회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의 용서와 그 용서의 보증을 성경 말씀을 통해 선언하는 것이다.
신앙 고백(사도신경)
사도신경에 의한 신앙 고백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교회적응답이다.
성시 교독
회중과 인도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교독하는 순서로서 회당 예배로부터 물려벋은 성서 교독(눅4:16)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찬송
이때의 찬송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의 은혜를 감사하는 찬송이 좋다. 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감사하는 찬송이나 그날의 설교와 관련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찬송이 적합니다.
목회 기도
목양적 책임을 가진 목사가 목회 전반에 걸쳐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를 기원하는 제사장적 기능을 수행하는 부분으로서, 첫째, 죄 고백에 대한 기도는 반복하지 않도록 하고, 교회의 전반적인 일들을 일일이 기도하기보다는 범사에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둘째, 기도는 간략하게, 회중들이 쉽게 공감하고 이해하는 내용과 언어로 해야 한다. 셋째, 즉흥적인 기도가 아닌 준비된 기도여야 한다.
성가대의 언약
성가를 부르는 대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찬양하는 것이므로 마음으로부터의 깊은 신앙의 표현으로 불러야 한다.
말씀(설교)
설교는 개혁 교회 예배의 심장부 설교는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회중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해석해 주고 생활 속에 구체적으로 현장화시키는 예배에서 가장 활력 있는 순서이다.
설교 후의 기도와 찬송
받은 바 말씀은 은혜에 대한 회중의 감사와 헌신을 위한 결단의 기도이다. 이때의 찬송은 역시 말씀을 통하여 받은 바 은혜에 감사하는 찬송과 순종에 대한 결심을 도우는 찬송이 적합하다.
헌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순서이다. 범사에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책임이다.(살전 5:18).
축도
축도의 근본적인 취지는 두가지이다. 첫째는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회중들에게 하나님을 위한 사명적 존재로서의 삶을 살것을 독려하는 것과 둘째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려는 자들에게 성삼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는 확약의 선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