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본문요약 |
1강 성언운반일념으로서의 설교사역 이해
『서설』(p.11-12) ▶설교자의 에토스: 문명이 발달한 반면 상대적으로 시들어져 가는 설교 사역자의 고유한 정신(ethos)과 사려 깊은 노력의 결핍현상이 일어났다. 즉 청교도 신앙에 뿌리를 두고 소명의 다짐과 거기에 따르는 설교자의 철저한 생활에 심한 변화가 일고 있다는 문제이다. 우리 설교의 단에 불이 꺼져 가고 있다는 지적이 일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서 설교학계에서는 ‘설교의 위기’가 도래했다는 진단을 내리게 되었다. (부교재 7쪽:선택받은 ‘말씀의 운반자’로서 온몸에는 에토스-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 양무리들에게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만이 전하여지도록 자신의 신명을 다 바치고야 말겠다는 정신과 집념-의 피가 흐르고,그 심장에는 파토스-갈급한 심령들 하나하나를 뜨겁게 사랑하는 열정-의 열기가 일고,그리고 그 뇌리에는 로고스-자신의 땀과 눈물의 결실로 터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의 고고한 메시지가 가득하도록 하자.)
『서설』(p.41-43) ▶설교사역의 재음미: 존 칼빈은 설교자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위탁을 받은 대사(ambassador)라 이름하였고 하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을 받은 존재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을 이러받은 칼 바르트도 설교를 설교자를 통하여 인간들에게 들려준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신약에서 설교의 주역들로 나타난 사도들을 보면 그들은 역사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절로서 그분을 대신하여 간곡하게 외치는 자들(고전5:20)로 자신들의 존재와 사명을 확신하였다. 에밀 브루너(Emil Brunner)는 설교를 가리켜 “아무리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설교란 인간의 사건이나 기록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신언을 전달하는 특별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막상 선포되고 해석되고 효율적으로 회중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말씀(본문)은 설교라는 이름을 위한 징검다리로 이용되고 그 본문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은 순수하게 언급되어지지 않는 위험한 실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탈선적 현상이 편만해 있는 이유는 원천적으로 설교를 신언의 전달로 이해해야 하며 자신은 단순히 전달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사실의 망각에서 비롯된다.
『원리』(p.7-17) 일리언 죤스는 두 가지 확신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사람이 설교의 방법론을 배울 수 있다면 정상적으로 계속된 목회의 설교사역에서 배우게 된다는 점이고 둘째는, 설교를 배운다는 사실은 영원히 끝나지 아니한다는 사실이다. 설교의 노련성은 꾸준한 노력, 스스로의 훈련, 계속적인 실천,방법의 장기적인 개선에 의해서만 달성되고 지속될 수 있다. ▶말씀의 청지기적 사명: 언어는 인간에게만 주어진 독특한 선물로서,인간을 하나님의 다른 피조물과 구별된 존재로 만드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가장 숭고한 청지기적 사명이 내포되어 있다. 설교와 다른 형태의 구어와의 차이점은 설교자에게는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설교의 목적,즉 그가 얻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의 설교는 언어의 능력을 가장 고상하게 사용한 것이다. 설교자의 고민은 언어구사의 능력을 현명하게즉 기독교적인 목적과,하나님의 위대하신 목적에 일치하도록 사용하는가에 대한 확신을 세우는 일이다. |
| ◆ Tags |
| 설교학, 설교사, 서설, 설교, 설교현장, 설교고난주간설교, 설교학 설교이론, 흠정역, 칼빈의 설교, 복음주의설교학, 예배설교위기 |
| ◆ 본문미리보기 |
. . .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설교의 몰락\' \'설교의 임종\'이 이땅에 다가오기 전에 오늘의 설교자들은 정신을 가다듬고 다음의 설교 문장에서 우리가 어느 길을 취할 것인지를 음미해 보자. \"(나는) 여러분이 많이 심고 많이 거두어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의 창고에 차고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땀과 눈물을 흘리는 성도들에게 오늘도 헤아릴 수 없는 은총을 더해 주십니다.\" 3강 설교의 역사적 이해 『인물로 본 설교의 역사(상)』中 설교사역의 역사적 고찰(p.9-34) ▶예언자들의 설교: 구약에 나타난 예언자들은 현대 설교자들의 역사적 뿌리로서 그들이 가당했던 사역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소중한 부분이었다. 그들은 오늘 우리가 흔히들 이해하는 대로 단순한 대변자나 해석가로서의 예언자들이 아니었다. 히브리 언어의 나바한 단어의 본래 뜻은 \"샘물처럼 솟아오르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즉 하나님으로 채워진 인간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선포가 견딜 수 없도록 차고 넘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헬라어로는 예언자를 프로라는 접두어를 사용한 프로페테스라고 부르면서 세 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1) 예지적 존재로서 무엇을 미리 말하는 사람 2) 사사로운 존재로서 사덤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공적인 존재로서 백성을 향한 메시지의 선포자 3)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고 이익을 거주는 존재가 아니라 누구인가를 대신하여 말하는 사람 등이다. 그들의 사역은 1) 하나님이 주셨던 율법과 지시하신 명확한 명령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원하시는 길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 갈 것을 가르침 2) 역사적인 사건들을 분별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에 의하여 미래의 방향과 결과를 전달 3) 불의와 죄악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관심과 경고를 전달 4) 계시나 소명을 받은 순간부터 예언자로 활동했다기 보다는 선지 학교하는 교육기관을 거쳐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 특별히 미래의 예언자들이 갖추어야 할 도덕적 훈련과 자신을 부정하는 삶의 훈련을 쌓았으며 하나님이 주신 영감의 바른 소화와 전달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받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회당설교: 북왕국이 앗수르의 포로로, 남왕국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자 하나님을 섬기는 제 사행위와 예언자들을 통한 말슴의 사역에 새로운 변혁을 가져오게 되었다. 포로기간 중에 성전예배가 금지를 당하자 회당예배가 새롭게 등장하였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현재적 상황에서 회당에 모여 나라 잃은 슬픔을 함께 하면서 성전 예배를 대체한 회당예배를 갖게 되었다. 여기서 그들은 지금까지 가져 온 제사 형태의 예배를 벗어나 말씀 중심의 예배로 전환하였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며 기도하는 일이었다. 이 예배에서는 동물을 제단에 바치는 의식이 사라졌고 하나님의 말씀은 집전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예배자들의 참여속에 경청되어 이해를 가져오는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되었다. 이런 회당예배는 신약시대에 화서 더욱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랍비들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이 예언 사역은 예수에게도 자유롭게 기회가 부여되었었다. ▶예수의 설교: 예수의 설교는 갑작스러운 형태나 등장이 아니라 회당에서 있어 온 설교의 연속이었다. 그의 설교사역의 특성은 1)구약부터 있어 온 예언자들과 회당의 랍비들이 계속하여 온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와 해석이었다. 2) 그의 메시지의 출발과 초점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였다. 3) 예쑤의 설교를 경청한 무리들은 민중이었고 종교나 정치의 지도자들이 아니었다. 4) 예수가 보여준 설교의 시간과 장소-그는 설교의 장소를 성전이나 회당, 또는 들이나 산을 자연스럽게 사용하였고 지정된 시간에 언제 어디서 나 자유롭게 복음을 선포하였다. 5) 예수는 승천시 그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교회는 설교의 사역을 세상 끝날까지 계속해야 함을 명령하였다. ▶사도들의 설교: 예수의 제자들로서 사명을 감수해야 할 열두 무리들에게는 사도라는 독특한 이름이 주어졌다. 그 뜻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자신들의 사상이나 경험, 또는 의지를 펼치기 위하여 나서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사도들은 그 이름이 뜻한대로 복음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데 전 생애를 바치면서 복음의 역군으로 아름다운 기록을 남겨 놓고 있다. 그들은 1) 사도들은 스승이 명한대로 한 마음으로 성령의 임재를 기도속에 기다렸고 성령의 권능으로 새로운 능력을 받아 복음의 이변을 일으켰다. 2) 사도들의 설교에서 나타난 메시지의 내용과 특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생애, 교훈과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으로부터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그가 심판주로 다시 오실 것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다드는 사도들의 설교를 선포적 설교와 신앙생활의 정도를 가르쳤던 교훈적 설교라고 분류하면서 \"초대교회에서는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과 도덕적인 교훈이나 훈계를 준다는 것은 별다른 구별없이 행하여졌다\"고 말했다. 3) 사도들은 온 천하에 나가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예루살렘을 기점으로 하여 사마리아와 다메섹 그리고 소아시아의 여러 도시로 복음의 선포는 확산을 거듭하였다. 4) 사도들에게서 오늘까지 이어져야 할 교훈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들은 소명을 받은 사도로서의 확고한 신념과 순교적 자세로 복음을 선포했다. 5) 사도들은 순간적 환상이나 계씨를 메시지의 근거로 삼지 아니하고 복음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면서 하나님의 은총을 수용할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였다. 호핀-사도들의 설교는 오늘의 교회가 믿음을 갖게 하는 초석이 되었다. ▶설교의 암흑기: 315년 콘스탄틴 대제에 의하여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인정되자 지금까지 이름 없는 카타콤의 그늘 밑에 있던 설교는 지상에서 마음껏 외쳐지면서 설교의 부흥과 확산은 제 5세기의 문을 열게 되었다. 이 대에 역사적 설교가들로서 동방교회에서는 오리겐, 클레멘트, 크리소스톰, 그레고리, 바질이 등장하였고 서방교회에서는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아브로시우스, 어거스틴과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430년 어거스틴의 죽음과 함께 설교의 세계는 어두워갔고 무질서와 퇴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1)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ㅇ르 사모하는 열을 상실해 버리고 눈에 보이는 화려한 의식이나 마리아와 같은 성인 숭배에 도취되어 버렸다. 2) 미사의 집전 언어가 라틴어로 공통되어 있었기 떠문에 제한된 지역을 제외하고 미사는 자연히 하나의 구경의 대상으로 전락되었고 그들의 맹목적인 헌신과 신비의 강조는 예배자들을 지극히 파동적으로 방관자적 존재들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3) 성직자들의 도덕적 탈선을 위시하여 말씀자신들에게 맡겨진 말씀의 사명을 망각해 버렸고 수도원이나 금욕생활에서 있었던 신비한 체험이나 기사 이적을 설교로 대신하면서 회중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무리로 전락하였다. 4)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달할 생각이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당시의 교회의 스승으로 인정받는 인물들의 설교를 미사에서 낭독하는 관습이 있었다. 맥스웰-미사는 순수지 못한 미신적 경배속에 행해졌다(p.21).....한편 카롤링왕조의 문예부흥기에는 국법으로 성직자의 . . . 삶의 현장에 적용할 방법 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바우만은 효과적인 적용을 위하여, 1) 예화를 사용할 것 2) 자의에 의한 결단을 내리도록 3) 암시나 제안을 시도할 것 4) 결단의 산 예증을 보일 것을 말한다. 올바른 성서적 설교는 항상 현재시제이어야 한다. 제임스 클릴랜드-\"그것은 단일한 초점 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초점을 가진다. ...건전한 설교는 언제나 관심의 중심이 두 군데 있다. 역사적 신앙과 현재이다. 하나의 타원을 그리는 데 어느 쪽 초점이 더 중요한 가? 두 초점 모두가 필수불가결하다. 둘이 합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다. 성서적 설교를 발전시키는 과정은 복음이 다이아몬드라면 우리는 삼중의 과제가 있는데 1) 탐구 2) 갈고 깍아 가공하는 해석 3) 오늘의 현장에 맞추는 적용이다.\" ☞ 예화 사용시 주의할 점 1) 예화는 2분을 능가하지 말 것 2) 자기 경험 및 주변의 얘기는 삼 갈것 3) 남의 이야기를 할 때 이름 사용하지 말 것 4) 신문 인용시 신문 이름 밝히지 말 것 5) 최근의 사건을 인용하고 외국보다는 한국 의 것을 사용할 것. 성서적 설교론 『입문』(p.126-132) 성서의 진리-말씀을 선포하는 설교 신앙과 행위에 대한 권위는 궁극적, 최종적으로 성서에 속하는 것이다. 성서적 설교의 권위는 성령의 내적 역사에 기초한다. 설교자가 자기의 해석을 성령의 영감이나 조명과 혼동한다면 좋지 못한 징조이다. 존 낙스-\"성경 본문을 기초로 전혀 비성서적 설교를 할 수도 있고 전혀 본문에 매달리지 않고도 매우 성서적인 설교를 할 수도 있다. 성서적 설교는 1) 특징적이고 본질적인 성서적 관념에 근접해 있어야 한다. 2) 중심이 되는 성서적 사건 곧 그리스도의 사건과 핵심적 관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3) 본질적 교회 생활에 해답을 주고 영양을 제공해야 한다. 4) 설교에서는 그리스도 사건이 실제적 의미에서 재현되어야 한다.\" 존 브라이트-\"성서적 설교는 어떤 성경 본문이나 성서에 나오는 교훈의 어느 부분에 대한 해석과 그것을 기독교 신앙과 생활을 위한 규범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기독교 설교의 몇 가지 보증이 될 만한 특징은 1) 유신론적 하나님에 대한 증언이어야 2) 그리스도 중심적 3) 신구약 성서에 의존해야 4) 복음의 진리와 균형을 유지해야 5) 흥미로와야 한다. 6) 변호될 수 있어야 한다. 7) 하나님이 현존하심을 전달하여야 한다. 『사역론』(p.244-27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