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의 패턴- 주해식 강해설교


설교의 패턴: 주해식 강해설교 (Textual Exegetical Type) (46)
장부영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4:11-12). 생수를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가 솔곳해서 사마리아 여인은 자기의 상황에서 생각해보니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부정론을 폅니다. 생수를 얻을 수 없는 이유는 첫째로, 물 길을 그릇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물 길러 왔으면서도 물 길을 그릇 준비도 없이 왔는지 말입니다. 우물에 물 길러 갈 때에는 물동이로 물을 길을 수가 없기 때문에 두레박과 같은 그릇을 가지고 가는 법인데, 사마리아 여인이 물 길을 그릇도 가지고 가지 않고 물길러 간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곳이 물을 긷기 위하여 항상 준비되어 있는 그릇이 있어야 하는데 어찌해서 없더란 말입니까? 다음으로 우물이 깊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두 가지 사정은 결국 사마리아 여인의 상황에서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의미에서 생수를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러한 현실 상황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의 상황을 정리하여 생수를 얻을 수 있도록 해주시자는 것이 예수님의 의도이십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여인은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끄집어 내어서 예수님을 경시하는 질문을 합니다.

“당신이 누구길래 우리 조상 야곱이 파서 마시던 우물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고갈되어 생수를 얻기가 어려운 상황인데 생수를 얻겠다고 합니까?”라는 질문입니다. 옳습니다. 역사는 흘러갔고 위대한 조상들도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하다 해도 우리의 조상들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줄 수가 없어서 오늘날 이 지경으로 우리 후손들이 목말라 합니다.

여러분! 어느 누구도 영생하는 생수를 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생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생수를 목이 타도록 찾아 헤메었고, 이 생수를 갖다 줄 메시야를 애타게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생수를 갖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사마리아 여인에게 나타나신 메시야 곧 그리스도께서 영생의 생수, 성령을 우리에게도 보내주셨습니다.

그 분이 우리 곁에서 우리와 대화를 하고 계시는데도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몰라 본다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아직도 인간의 역사적인 전통에 매여 조상만을 숭배하고 있지나 않습니까? 이러한 상황에서는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없습니다. 인간의 전툥, 인간의 지식, 고집들을 버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