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강 요나 2:4절 강해
\"다시!(Again)\"
성경:요나2:4
실패의 자리를 딛고 다시 시작하려면 큰 용기와 결단이 요구됩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영적인 신앙생활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신앙은 늘 탄탄대로인 고속도로만을 기분좋게 질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영적 주행을 가로막는 갖가지 험로가 산재합니다. 타이어가 구멍 나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포기해야 할까요? 고생스럽지만 새 타이어로 갈아 끼운 뒤 다시 진행해야 합니다.
Ⅰ. 쫓겨난 요나-\"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죄악을 심판하십니다. 어물쩍거린다고 슬쩍 눈감아 주시지 않습니다. 죄는 매로 다스립니다. 예외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불신자냐 아니면 성도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영원한 형벌의 의미를 담은 심판의 매는 불신자의 몫이요 반면에 성도에게 있어서의 매는 일벌백계(一罰百戒)의 징계의 성격을 띱니다. 불순종한 요나를 하나님은 징계의 매로 혹독하게 다루셨습니다. 죽음의 문턱에 까지 그를 밀어내었습니다. 요나는 이러한 끔찍한 느낌을 주의 목전에서 쫓겨 났다고 털어놓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난 요나, 참으로 가련한 인생입니다.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인생의 가장 고통스러운 절망의 경험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쫓겨 났다고 여겨지는 순간입니다.
Ⅱ. 그러나 다시 시작하는 요나-\"내가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쫓겨남은 \'다시는 꼴도 보기 싫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도 요나는 다시 주 하나님을 찾습니다.설사 하나님께서 꼴도 보기 싫은 녀석 나가라 하셨을지라도 끝까지 버팁니다. 등떼밀어 문밖에 놓고 대문 걸어 잠갔을지라도 두 주먹으로 꽝꽝 대문 두드립니다. 이는 주님 밖에는 없다라는 절대적인 믿음이요(시편16:2),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주님이신 것을(하박국3:2) 알고 있는 신앙입니다. 그러기에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시작합니다. 다시 엎드립니다. 다시 찾습니다. 다시 손들고 옵니다. 다시 은혜를 구합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섭니다. \'다시\'(Again), 히브리어로 \'야사프\'( )인데 계속 반복되어 지는 것을 말합니다. 결코 주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라는 진리를 단단히 부여잡고 그저 주님께 매달립니다. 쫓겨나도 다시금 돌아가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집니다. \"저는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어요!\"
다시 시도하는 것 정말 힘이 듭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사는 길입니다. 신앙, 그것은 \'다시\'라는 단어를 빠뜨려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칠전팔기(七顚八起)는 세상사람을 두고 한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인의 여정입니다(잠언24:16). 환난의 폭풍우에 쓰라린 실패를 맛보았더라도 거기서 털썩 주저 앉아 버려서는 안됩니다. 징계의 채칙으로 차마 얼굴 들 용기가 나지 않더라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긍휼로 따스하게 감싸 주시는 은혜의 주님을 다시 바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다시\'(Again)의 은총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