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강 요나 3:7-8절 강해

가축의 금식


성경:요나3:7-8

니느웨 성의 회개 가운데 특이성은 가축까지도 회개의 역사에 동참하였다는 점입니다. 물론 자발적인 참여가 아닌 왕의 명에 따른 일이지만 참 특이합니다. 죄는 주인인 사람이 저질렀고 그것에 대한 부담은 애꿎은 가축에까지 지워졌습니다.

Ⅰ. 가축의 금식과 굵은 베
어느 날부터 여물통이 텅 비기 시작하였습니다. 혀가 바짝 타 들어가도 물 한 모금을 마실 수 없습니다. 으레 동녘이 환하게 밝아 오면 쟁기질을 하러 들로 나가야 하는데 아무런 조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대신 어울리지도 않는 헝겊(베옷)을 주인이 억지로 입혀줍니다. 허기져 울어도 주인은 꿈쩍을 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갑자기 모든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니느웨 왕이 내린 조서는 단 하루만의 금식은 아닐 것입니다. 견디기 힘든 고통을 영문도 모른 채 덩달아 겪어야 하는 가축들의 모습이 측은하게 여겨집니다.

Ⅱ. 가축의 금식이 주는 교훈
애꿎은 가축까지 끌어들이는 니느웨 왕의 지나친 열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우리는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니느웨 성의 죄악은 분명히 가축을 제외시킬 수 없는 공범(共犯)의 성격을 띠기에 당연한 일로 여겨야 할까요? 본래 사람의 범죄로 모든 만물이 죄의 영향아래 떨어진 것이지 결코 짐승이 범죄 함으로 사람이 그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죄는 인격적인 행위에서 나옵니다. 지(知)정(情)의(意)의 인격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것입니다. 그럼 니느웨 성 가축의 금식에서 얻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사람은 물론이고 가축까지도 금식에 끌어들인 것은 오직 한가지 일에만 전념한다는 결연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목전에 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오직 회개만이 있을 뿐이기에 모든 일상의 일들을 접어둡니다. 니느웨 백성의 전 삶을 하나님 중심으로 모아 놓습니다. 철저히 통회 자복하는 모습이 어떤 가축이든 지간에 풀 한 포기, 물 한 모금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 니느웨 백성에게 선명하게 배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너무도 진지했고 사태의 절박함에 너무도 간절했습니다. 말 못하는 짐승에게까지 강제로 금식을 시키고 굵은 베옷을 입히는 행위에서 우리는 피눈물나는 회개의 몸부림을 읽습니다. 회개, 오로지 그것에만 매달려 있습니다. 마치 니느웨의 일상사는 회개라는 한 화면에서 정지된 느낌입니다.

회개는 적당한 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대충 얼버무리다간 큰 코 다칩니다.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송두리째 드러내야 합니다. 진정 마음을 쏟아 부어야 합니다. 철저함으로 회개의 그릇을 채워야 합니다. 회개하는 동안에는 하나님 앞에 오로지 통회 자복하는 자기 자신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다른 어떤 불순물을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의 모든 일도 멈추고 그리고 흐르던 시간도 멈춥니다. 회개는 기회입니다. 회개할 기회를 얻은 것은 전적 주님의 은혜이기에 진정 마음을 쏟아 회개에 집중하지 않으면 땅을 치며 크게 후회할 날이 이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