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강 요나 3:10절 강해


재앙을 취소하시는 하나님


성경:요나3:10

하나님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 점에 놓고 보십니다. 결코 한치를 못 보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니느웨 성의 회개를 미리 알지 못하셨는가? 언제는 심판을 말씀하시고 이제 와서는 심판을 취소하신단 말인가?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먼저 기회를 주십니다. 바로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심판은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포함한 심판인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죄에 대한 형벌이 심판이고 반면에 회개는 심판의 대상인 죄를 씻어내는 능력을 가집니다. 진정 회개함으로 죄의 뿌리가 뽑혀져 버립니다. 즉 이미 회개에 죄는 실려 저 멀리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참 회개하는 자리에는 심판은 피하여 지나갑니다. 심판의 근거인 죄가 주님의 용서로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Ⅰ. 회개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디모데전서2:4). 한 사람도 멸망에 이르기를 원치 않으시는 주님의 심정을 깊이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죄는 밉지만 사람까지 도매급으로 넘겨 미워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심판을 피할 수 있는 회개의 자리로 나아오기를 학수고대하십니다. 니느웨 백성이 진정 통회 자복하며 재에 뒹굴 때 하나님은 이미 작정하신 심판을 조심스레 저울질하며 조금도 망설이거나 갈등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눈에서 참회의 눈물을 보았을 때, 저질은 죄악에 그들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을 보았을 때, 그리고 서둘러 어그러진 길을 떠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하나님은 긍휼의 용서를 아낌없이 부어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를 진정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온전하여 의로워 질 인생은 없습니다. 다 치우쳐 진흙 구덩이에 빠집니다. 그러기에 회개가 필요합니다. 참으로 회개하며 주님의 용서의 손을 붙잡으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주님은 손을 내밀고 따뜻한 가슴으로 기꺼이 품어주십니다. 회개하는 한 영혼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Ⅱ. 심판보다 긍휼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니느웨에 내리기로 한 재앙을 취소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우리는 정말 주님은 무엇을 기뻐하시는가를 보게됩니다. 무서운 심판보다는 용서의 은혜를, 파괴적인 재앙보다는 건설적인 복을, 지옥의 유황불보다는 영광스러운 천국의 기뿜을, 차가운 배척보다는 포근한 품을, 그리고 불같은 진노보다는 자비의 긍휼을 베푸시기를 원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심판보다 앞서는 것이 바로 긍휼입니다. 한 손으로 심판의 매를 위로 높이 들고 계신다하여도 다른 한 손은 앞으로 뻗어 어떻게라도 죄인을 긍휼의 가슴으로 안으려고 힘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심판의 공포가운데 떨고 있을 것이 아니라 담대하게 주님의 품으로 뛰어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단지 무서운 심판 앞에 덜덜 떨고만 있다면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을 애써 외면하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혹 세상은 법보다는 주먹이 가까울지는 모르지만 우리 하나님에게는 긍휼의 용서가 심판의 칼날보다 가깝습니다.

인간 관계에는 거부나 배척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에 때론 원만한 인간 관계를 가지는데 적잖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닙니다. 잘못에 대하여 인정 사정없이 잘라내기 보다는 치유하여 회복할 수 있는 용서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려주시기를 진심으로 도모하십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우리에게 힘이 되고 은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