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강 요나 4:1-3절 강해

요나의 분노


성경:요나4:1-3
어떤 경우에 솟구치는 분노로 온몸을 떠십니까? 혹 하나님을 인하여 분노하신 적은 없습니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적은 없습니까? 동생 아벨의 제사만 받으신 하나님을 향해 가인은 치를 떨며 분노의 포로에 사로잡혔고(창세기4:3-7), 순전히 주님을 위한 법궤 옮기는 선한 일에 돕기는커녕 오히려 애꿎은 사람을 쳐서 끔찍한 죽음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다윗은 일순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사무엘하6:6-8).

Ⅰ.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1절)
고국을 떠나는 것이 요나에게는 크나큰 마음의 고통이었습니다. 정든 고향 편안한 집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일이 요나에게는 쉽지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품을 뒤로하고 훌쩍 낯선 타향에서 홀로 지내자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녀들을 멀리 두고 이국에서 생활하자니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종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순순히 주님의 명령을 따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할 수 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정반대의 방향인 다시스로 줄행랑을 쳤습니다. 그렇지만 요나의 뜻대로 일은 진행되지 않았고 순전히 주님의 뜻만이 폭풍우와 큰 물고기로 인해 이루어질 따름이었습니다. 결국 요나는 제정신이 들었고 순종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고생을 감수하며 주님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요나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이었습니다.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 그리고 어렵사리 얻게 되는 음식물과 생수는 여행 중 겪는 고통의 기본이었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낯선 이방 여행객을 바라보는 곳곳의 공격적인 매서운 눈초리들은 더욱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치안부재의 그 시대에 겪는 외로움과 삭막함을 어찌 필설로 다 표현하리요? 그러나 주 하나님?명령, 오로지 그 하나만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 요나는 기꺼이 그 모든 어려움을 감내하였습니다. 니느웨를 향하여 담대하게 심판의 메시지를 외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할 일을 다한 사명완수에 가슴 뿌듯하며 그간의 모진 노고를 아이스크림 녹듯 잊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서히 요나의 뱃속은 뒤틀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는 온갖 고생하며 사명 감당했는데 정작 자기에게 막중한 임무 부여하신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아니 심판을 발설하신 하나님께서 마땅히 하셔야 할 일을 다하지 않고 계시지 않은가? 가지 않겠다고 도망치며 버틴 자신을 벼랑 끝에 몰아 넣어 가게 하신 하나님에 대한 섭섭함과 맞물려 괜한 고생 헛걸음한 마음에 억울함이 솟구쳐 오릅니다. 망할 니느웨는 더욱 멀쩡하고 그간의 고생으로 몰골이 말이 아닌 자신을 보노라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릅니다. 그간의 고생이 아무 짝에도 없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마치 농락 당하고 실컷 이용당한 기분에 분한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한 마음뿐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주를 위해 한 일에 대한 대가가 겨우 이거란 말인가? 말도 안돼. 하나님이 싫어집니다.

요나의 분노는 정당하지 않다. 머슴이 어찌 주인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거침없이 화를 쏟아 내리요?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 할지라도 혹은 부당한 처사라 판단된다 할지라도 종은 종이요, 일꾼은 일꾼입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기에 하등의 실수나 티끌 만한 부족함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