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강 요나 4:1-3절 강해
요나의 착각(錯覺)
성경:요나4:1-3
주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는 신앙이 참 귀합니다. 그러기에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호세아6:1-3). 신앙 생활에 있어서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에 대하여 불순하게 가지는 그릇된 인식입니다. 바로 알 때 바로 믿게 됩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알려고 힘써야 합니다.
Ⅰ. 시험에 든 요나
한때 요나의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시지 긍휼의 하나님은 아니셨습니다. 요나는 이 부분에 있어서 결정적인 시험에 빠져들었습니다. 당연히 바닷물에 빠져 허무하게 객사할 수밖에 없었던 불쌍한 처지에서 주님의 은혜를 입어 극적인 삶을 체험하였던 요나였지만 심령이 강퍅해졌습니다. 자신에 대하여는 긍휼의 은혜를, 이웃에 대하여는 엄중한 처벌을 바라는 요나의 못된 심보를 읽을 수 있습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베푸시는 자비의 하나님을 온몸으로 부닥쳐 눈물겹게 만난 체험이 그에게는 분명히 있었지만 쉽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받은 은혜를 쏟아 붓는 어리석음에 빠졌습니다. 요나는 주체할 수 없는 격분에 쌓여 존귀하신 주 여호와 하나님을 빈정거리듯 멸시하였습니다. \'이제 보니 주님이 말씀하신 심판이란 낱말은 순전히 입에 발리운 것에 지나지 않았군요. 속뜻은 전혀 딴데 있었군요. 그러한 주님이신 것을 진즉 알지 못한 것이 내게는 너무나도 안타깝고 억울하군요.\' 울근거리는 감정을 격하게 쏟아 붓는 요나의 모습에서 혹시 우리네 모습은 안 보이는지요?
Ⅱ. 요나의 몰이해(沒理解)
헛물켠 듯한 속상함에 엄위하신 하나님 앞에서 세 치도 안 되는 혀를 함부로 놀린 요나는 분명히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설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다하더라도 그는 분명히 오해와 편견에 붙잡혀 있었습니다. 심판보다 앞서는 주님의 긍휼을 그는 가볍게 보았습니다. 할례 받지 못한 아무리 고약한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우리 주 하나님은 용납하기를 진정 원하십니다. 물론 참된 회개가 전제되고 수반될 때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하나님은 원칙도 없이 말을 바꾸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요나의 눈에는 쉽게 뜻을 바꾸시는 하나님으로 비치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기회, 즉 회개할 기회를 먼저 주시는 것에서 시작함을 요나는 놓쳤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마음을 찢으며 통회 자복하는 자들에게는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요나의 진술은 진리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바로 그러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요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심판의 유황불을 즐겨 쏟아 부으시는 심판의 주님으로만 보려고 고집을 부립니다(요나4:5).
\'아는 것이 병\'이라는 속담도 있듯 분명찮게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네 신앙 생활에 커다란 병폐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한 요나는 시험의 올무에 단단히 걸려 넘어졌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착각은 자유라 하며 실없이 장난 삼아 즐기지만 하나님에 대한 착각은 신앙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성경에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기록된 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호리라도 오해하거나 곡해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우리에게는 강력한 능력이 됩니다. 성령에 의하지 않고는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