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강 요나 4:3절 강해

요나의 어리석음


성경:요나4:3

인간은 지극히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삶을 어디까지나 자기 중심적으로 들여다보고 해석하여 판단하려고 합니다. 사람이 출발선을 자신에게다 놓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을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본문의 요나입니다.

Ⅰ. 요나의 입장
하나님의 불같은 진노를 불러일으킨 이방인 니느웨 백성을 보면 심정적으로 티끌만큼도 동정이 가질 않습니다. 마땅히 심판 받아 없어져야할 쓰레기 같은 존재들입니다. 사십일의 심판 유예 기간을 주는 것도 악독한 니느웨 백성들에게는 은혜일지 모르지만 요나 자신에게는 지루한 기다림입니다. 어차피 망할 백성들 빨리 망하지. 죄악의 소굴인 니느웨 성에 첫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역겨워지고 거만한 이방인들을 보니 눈꼴이 몹시 시었습니다. 더러운 죄에 한껏 취하여 비틀거리며 지금은 희희낙락거리고 있는데 머지않아 너희들 눈에서 피눈물이 펑펑 쏟아지리라. 니느웨의 최후의 날을 생각하니 내심 고소한 기분이 살며시 머리를 쳐듭니다. 두고 보자. 그런데 상황은 영 딴판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개같이 여겼던 이방인들이 재에 뒹굴며 참회의 눈물을 쏟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손을 거두십니다. 망할 니느웨가 멀쩡합니다. 요나 자신은 도무지 이 같은 상황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은혜의 안경을 끼고 해석하고 싶지 않습니다. 도대체 주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에 의해 요나 자신이 철저히 농락 당한 느낌입니다. 아주 불쾌한 기분이 소름끼치듯 요나의 가슴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갑자기 심장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 심한 분노에 온몸이 떨립니다.

Ⅱ. 요나의 어리석음
내가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온몸에서 맥이 빠집니다. 삶의 목적과 의미가 없어져버립니다. 지금까지 그래도 주님을 위하여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 나는 주를 위해 산다고 했는데 주님은 그러한 나를 이렇게 대우하고 이렇게 이용할 수 있단 말인가? 주를 위하여 갖은 고생한 대가가 겨우 이거란 말인가? 아니 아무 것도 없단 말인가? 자기 자신에 대한 불쌍한 생각이 들어 자기 연민에 푹 빠져듭니다. 힘겨운 삶에 바동거리는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너무 구차해 보이고 너무 불쌍해 보입니다. 그리고 요나는 선택합니다. 주님, 저의 생명을 취하소서. 제가 살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분노로 뒤범벅된 극심한 좌절감에 인생을 포기하려고 듭니다. 홧김에 요나는 당치 않은 말을 너무 쉽게 내뱉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자기 요구대로 어머니가 안 들어주었다고 길바닥에 나뒹굴며 성을 내며 울고불고 난리 피우며 떼를 쓰는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자기가 기대한 대로 되어지지 않았다 하여 인생포기를 그렇게 쉽게 선언하는 요나의 행위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낍니까?

요나가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심정을 가졌더라면 조금이라도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을 지녔더라면 이렇게까지는 나오질 않았을 것입니다. 순전히 자기편에서만 바라보고 생각하였길래 요나는 참으로 유치해졌습니다. 요나야말로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놈이라고 여겨집니까? 요나의 어리석음이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잠시라도 하나님의 편을 떠나고 잠시라도 주님의 심정을 잃어버리게 되면 자연히 인본주의, 즉 자기 중심적으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어리석음, 바로 자기 중심적으로 삶을 바라보고 꾸려갈 때 나타나는 결과입니다.